‘통일은 대박’ 발언 이후 글로벌 큰손·중국 잰걸음…대북사업 준비한다면 물류·인프라에 주목
입력 : 2014.08.05 09:00:15
“통일은 말 그대로 ‘대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가 시작된 지난 1월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후 각계에서 ‘통일’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다. 특히 공기업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기다렸다는 듯 대북 추진사업을 발표하며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 한국도로공사를 비롯해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 철도공사 등 사회기반 인프라 관련 공기업들이 대북사업에 대한 새로운 사업구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통일이 정말로 대박이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통일에 대한 경제적 효과를 떠나 통일가능성은 아직 점치기 어렵다. ‘만약’이란 가정법을 통해 갖가지 장밋빛 전망과 사업계획이 나왔지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통일’은 재계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가능성의 문제이지만,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사업 준비를 차근차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왼쪽)2010년 10월 열린 나진-성봉 경제특구 관리위원회 착공식, (오른쪽)북한 평양시 대동강 인근 건재공장
글로벌 큰손들이 눈독 들이는 대북사업
1998년 6월 16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소떼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었다. 재계에서는 이때를 대북사업의 출발로 보고 있다. 이후 정 창업주의 현대그룹이 현대아산을 설립해 금강산관광을 주도하면서 남한 자본이 본격적으로 북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 협상을 통해 개성공단을 조성하는 등 대북사업이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남북한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활기가 넘치던 개성공단 역시 기계들이 하나둘씩 멈추기 시작한 것.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로의 급속한 권력이동 역시 대북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피격사건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이후 변화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큰손들이 북한을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대북사업의 물꼬가 터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에 따르면 대북사업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글로벌 큰손들은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과 마크 파버 마크파버리미티드 회장이다. 이 중 짐 로저스 회장은 “지금 북한은 공장, 호텔, 음식점 등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다”면서 “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북한의 여행상품은 앞으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밝혔다. 짐 로저스 회장은 과거 헤지펀드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창업해 10년 동안 420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자자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세계 경제의 메가 트렌드에 주목하라>를 통해 “앞으로는 북한에서 큰돈을 벌 것”이라며 “이미 중국인들은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고 대북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하며 ‘닥터 둠’이란 별명을 얻은 마크 파버 마크파버리미티드 회장도 “남북한의 통일 과정에서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이 구축되면 건설·유통·미디어·엔터테인먼트 등 남한의 대기업들이 새로운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단언했다. 특히 그는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한이 북한과 통일하지 않는다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것”이라며 “대북사업에 확실한 우위를 갖고 있는 남한 기업을 눈여겨보라”고 밝혔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 역시 대북사업의 속도를 서서히 높이고 있다. 지난 2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주최 심포지엄에서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단둥 소재기업 176개를 조사한 결과 중국기업의 대북사업 진입이 2008년 이후 급증하고 있으며, 무역액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아예 중국 국영기업이 대북사업에 나선 경우도 있다. 2011년 6월 국영 소유인 ‘야타이그룹’이 나선특구 내 20만㎡ 부지에 연간 100만톤 생산 규모를 갖춘 시멘트 공장 건설을 시작했으며, 시양그룹은 지난해 광산에 2억4000만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러시아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프로젝트를 내걸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러시아 극동 하산지역과 북한의 나진항을 잇는 54km 구간의 철로 개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북한 나진항의 항만 현대화 및 복합물류 사업 등에도 나서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철도 물류망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 현대그룹과 포스코 등도 컨소시엄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
한 KOTRA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대북사업에 대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북한을 매력적인 투자처 중 하나로 보고 있다”며 “아직까지 투자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대북사업을 진행 중인 중국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압록강 상류 황금평 특구의 멈춰버린 중장비들, (오른쪽)황금평 경제 특구 입구
광산투자에서 유통·제조로 확대 중
현재까지 대북투자는 대부분 중국 및 러시아 기업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북한 정권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기업을 통해서야만 안정적인 투자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종목도 단순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광물투자를 선호하고 있다. 아직까지 북한 내부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고 임금이 낮기 때문에 1차 산업인 광업에 집중도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북한이 세계 최대 규모의 광물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이 광물투자를 선호하게 만드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의 총 광물자원 매장량의 잠재가치는 698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특히 개발될 경우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10대 광종의 잠재가치가 2661조원으로 예상돼 중국 기업들의 광산개발이 줄을 잇고 있다.
북한자원연구소 및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중국기업이 투자하고 있는 북한 내 광산은 함경북도 무산철광, 함경남도 상농금광, 양강도 혜산청년동광, 평안남도 2·8직동 청년탄광, 황해북도 은파(아연) 광산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은 무산의 철광산과 혜산의 동광산이다. 무산광산은 북한 최대의 철광산으로 매장량만 17억톤으로 추정되는 노천광산이다. 또 중국과 불과 4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혜산동광산에서는 아예 채광하는 동시에 중국으로 광물을 옮기고 있다.
실제 중국의 대북 광물 수입액도 근 10년 사이 급증하고 있다.
이트레이드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중국의 대북 광물 수입액은 3293만달러였지만 2010년에는 6억7883만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20배에 달할 정도로 광물수입액이 증가한 것이다. 한 KOTRA 관계자는 “개방개혁의 기치를 내건 중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자업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면서 희토류 등 다양한 광물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가임에도 자국 내 수요가 넘쳐 북한 광산에 관심을 갖는 중국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광물투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제조업과 유통업 역시 중국 투자자들의 투자처다. 중국 사업가들은 2000년대 이후 건설자재, 컴퓨터, 식품 등 제조업 분야와 평양 시내의 백화점 및 유통센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북한의 광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라면, 중국 민간기업들은 북한 내 제조업과 유통채널을 담당하는 구조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자본으로 구축된 개성공단 역시 중국의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단둥과 신의주를 거쳐 사리원까지 이어지는 고속철도 건설을 북한과 합의했다. 나진·선봉 지구의 두만강 지역에서 출발해 압록강의 신의주 지역에서 개성까지, 북한 전역에 중국자본들이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진행해왔던 대북사업이 2008년 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멈춘 상태다. 명맥을 유지해왔던 개성공단 역시 5·24 조치와 남북 정부 간의 입장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기섭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회장은 “개성공단이 중국을 비롯한 제3국 기업의 유치를 통해 국제화됐으면 좋겠다”며 “대통령의 통일 대박이 헛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북한 개성공단 내 순천세멘트 연합기공소 및 관제소
중국, 북한 내 인프라 구축사업에 집중
현재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대북사업은 중국 국영기업들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북한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이용해 북한 내 광산개발에 나서는가 하면, 이를 운송할 교량과 철도 및 항만시설까지 산업인프라 부문까지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0년 중국정부가 발표한 ‘창지투개발선도구’ 프로젝트다. 중국 정부는 2010년 지린성 내 창지투개발선도구에 2020년까지 약 2000억위안(약 35조원) 규모의 ‘초국경 경제협력지구’를 개발하기로 했다.
북한 두만강 유역의 나진-선봉 지역과 연결되는 대규모 교통 인프라 시설 확충에 나선 것이다. 특히 중국 지린성 내 창춘에서 출발해 지린과 투먼을 거쳐 훈춘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를 확장해 북한의 나진항까지 잇는다는 계획이다.
중국과 북한, 몽골, 러시아를 연결하는 대규모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 정부 역시 이 같은 흐름을 읽고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 ▲개성 공업지구(개성공단) ▲금강산 관광특구 ▲신의주 특별행정구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등 5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며 중국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 우려스런 모습이다. 외교적 문제로 대북투자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중국 자본들이 북한 내 광물자원과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를 독점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건설경제연구원에 따르면, 5대 경제특구에서 발생할 고속철도 및 도로 등의 건설물량이 약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여기에 해당 경제특구에서 사용하게 될 막대한 전력을 생산할 발전소 및 송전시설 등을 포함하면 건설 물량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건설 물량을 모두 중국이 싹쓸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5대 경제특구의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에만 60조원이 필요한데, 그곳들에 전력시설과 거주시설까지 들어선다면 개발규모는 6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며 “경제특구와 평양 및 각 도시와의 연계도로망까지 포함한다면 북한의 인프라 구축사업 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서는 엄청난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기업들, 대북사업은 아직 불안하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대북사업에 대해 여전히 미지근한 모습이다. 높은 이익이 기대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리스크 또한 그에 못지않게 높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게다가 북한과 사업을 하려면 외교부와 통일부는 물론, 국가정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점도 골칫거리다. 사업하기도 어려운데, 여기저기 눈치볼 곳이 너무 많다는 게 경영자들의 반응이다.
한 건설사 임원은 “현행법상 북한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통일부와 외교부 등 다양한 부서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북한과도 안정적인 교감이 있어야 한다”며 “아무리 큰 사업 기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남과 북이 서로 날카롭게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라 사업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중에서도 살얼음 같은 남북한의 불안한 외교관계가 대북사업의 첫 번째 걸림돌이란 지적이 많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2년 2월 국내기업 300곳을 조사한 결과 “북한의 투자환경이 안정되면 사업을 하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23.6%에 달했다. 위태로운 남북관계 때문에 북한에서 사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기업들 역시 이와 비슷한 분위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북사업이 엄청난 기회라는 것은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북한 정권의 특성상 리스크 역시 너무 커서 막상 대북사업에 나서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와 현대아산 등이 직접 북한에 투자하지 않고 중국을 거쳐 대북사업에 나서는 것처럼 남에서 북으로 자금과 개발인력을 보내기가 힘들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이후 꿈틀대기 시작한 대북사업. 하지만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북을 갈라놨던 휴전선처럼 대북사업에 대한 관심은 아직 미지근하다. 오랜 기간 동안 차갑게 굳어진 남북관계를 다시 따뜻하게 해줄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국기업들의 대북사업은 앞으로도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