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시장의 뜨거운 관심사인 NFT(대체불가능토큰·Non Fungible Token)가 올봄 TV 업계를 관통할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예술작품을 소유해서 인테리어 효과는 물론 재테크 수익까지 얻는 일명 ‘아트테크’가 고화질 스마트TV와 만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리모컨 하나로 거장의 그림을 구매해 고화질 TV로 감상하고 또 언제든 손쉽게 판매해 수익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NFT는 대체가 불가능한 가상자산의 일종이다. 기존 채굴을 통해 얻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과는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NFT는 그림·영상 등의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을 블록체인상에 저장해 위·변조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영구 보존하고, 해당 소유권을 구매자가 갖게 되는 구조다. 특히 NFT 소유권을 플랫폼 등에서 사고팔 수 있어 투자 수단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어드에이프요트클럽(BAYC)의 이른바 ‘지루한 원숭이 요트클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NFT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BAYC NFT의 최저 가격은 지난해 말 기준 52.85ETH(이더리움), 약 21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1만 개의 원숭이 캐릭터가 발행되며 각각의 캐릭터들은 고유한 특징을 가지는데 희소성이 높을수록 높은 가격에 팔린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인 스테픈 커리 선수가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BAYC로 바꾸며 화제를 모았고 축구 스타 네이마르, 세계적인 래퍼 포스트 말론도 이에 동참했다.
삼성전자 모델이 코엑스에서 열리는 ‘코엑스 윈터 갤러리 2021’에서 라이프스타일 TV를 통해 전시되는 디지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올 상반기 내 NFT 플랫폼 대중화
NFT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가전사들도 본격적으로 시장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본격적으로 NFT 플랫폼 대중화에 나서기로 했다. NFT 플랫폼은 지난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2’에서 처음 공개됐다. 혁신성을 인정받아 ‘CES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TV에 NFT 플랫폼이 탑재된 것은 세계 최초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신규 플랫폼은 삼성 스마트TV의 스마트허브에 애플리케이션(앱)이 추가되는 형태다. ‘더 프레임’과 ‘마이크로 LED TV’, ‘네오QLED TV’ 등 올해 출시되는 프리미엄 TV 라인업 제품들에 탑재된다.
이를 이용하면 소비자들은 TV를 켠 뒤 리모컨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고 바로 구매해서 화면에 띄워 마치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다. 삼성전자 측은 “디지털 예술작품을 발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직관적인 통합 플랫폼이다”라며 “소비자들은 소파를 떠나지 않고도 NFT를 검색하고 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신규 플랫폼은 마켓플레이스(구매자와 판매를 연결하는 상거래 플랫폼) 형태로 운영된다. 단순히 그림을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것뿐 아니라 작가가 직접 삼성 플랫폼을 통해 예술품을 올릴 수도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외부 거래소와 협업해 NFT 디지털 예술품을 가져와 TV에 맞게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TV로 NFT 예술품을 선택해 창작자나 작품 해설 등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우선 NFT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작품 수급을 위해 니프티 게이트웨이와 협업한다고 밝혔다. 삼성 NFT 플랫폼을 통해 니프티 게이트웨이에 등록된 NFT 예술작품을 열람할 수 있고, 이후 구매를 원할 경우 PC나 모바일 앱을 통해 거래할 수 있다.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미국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SDFS) 감독하에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Gemini)’가 소유한 곳이다. 제미니 창업자이자 비트코인 억만장자로 유명한 윙클보스 형제가 2019년 11월에 니프티 게이트웨이를 인수했다.
LG전자가 서울옥션블루와 협업해 NFT 콘텐츠 사업을 공동 추진한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위치한 가나아트 보광에서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 <우주>의 NFT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음악·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취급하는 타 거래소와 달리 예술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거래소다. 6000개가 넘는 예술작품 NFT와 400명 이상의 작가들이 등록돼 있다.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거래 등록을 신청한 NFT 작품과 작가를 가장 엄격하게 검증하는 거래소로 유명하다. 유명 작가들과 협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타 거래소는 암호화폐로만 거래가 가능하지만,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로 NFT를 결제할 수 있다.
지난해 초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의 연인 캐나다 가수 그라임스가 니프티 게이트웨이를 통해 자신의 디지털 작품 10점을 온라인 경매에 부친 지 20여 분 만에 580만달러(약 65억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다. 암호화폐 분석 회사 메사리는 니프티 게이트웨이의 가치가 최대 12억달러(약 1조4300억원)에 달해 NFT 거래소 중 가장 가치가 높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오픈시와의 협업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NFT 업계의 아마존이라고도 불리는 오픈시는 최대 규모 NFT 거래소다. 지난 2017년 설립된 오픈시는 출범 4년 만인 2021년 기업가치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돌파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각종 벤처캐피털(VC)과 개인·기관들로부터 자금 지원이 이어졌다.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케빈 듀랜트와 영화배우 애슈턴 커처 등도 투자에 나섰다고 알려졌다.
오픈시에 각종 디지털 자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NFT를 올리면 개인 간 거래(P2P)가 이뤄진다. 매매는 암호화폐 가운데 하나인 이더리움을 사용한다.
삼성전자는 벤처캐피털 삼성넥스트를 통해 NFT 사업 유망주들을 발굴해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NFT를 활용한 이른바 돈 버는 게임(P2E·플레이투언)으로 알려진 크립토키티를 개발한 대퍼랩스에 지난 2018년 투자했고, 최근에는 슈퍼레어, 애니모카 브랜즈, 니프티스, 페이즈, 오프 등 NFT 관련 스타트업의 지분을 흡수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비상한 NFT 아트전’에 참여해 자사의 더프레임 TV 등을 활용해 작품을 전시했다.
▶LG전자, 자사 TV 활용한 전시회 열어
LG전자도 자사 TV를 활용한 NFT 전시회를 열면서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연초 올해 디스플레이 전략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올레드가 아트에 최적화됐다고 판단해 왔다”며 “아티스트들과 많이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향후 NFT도 탑재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로 LG전자는 지난 3월 22일부터 4월 9일까지 하남시 ‘스타필드 하남’에서 열리는 한 전시회에 LG 올레드(OLED) TV 20여 대로 NFT 작품을 선보였다. ‘Amulet 호령展_범을 깨우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는 NFT 작품을 담기 위해 LG 올레드 TV 20여 대를 설치했다.
이번 전시는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호랑이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원에서는 원화 작품을, 스타필드 하남에서는 원화를 NFT화한 디지털 작품을 올레드 TV로 선보인 게 특징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시된 원화와 올레드 TV로 전시된 NFT 버전 모두 똑같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취지다.
전시에는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인물화로 유명한 강형구 화백 ▲목탄화가 이재삼 ▲전통 서예를 회화로 재해석한 이모그래피 장르의 선구자 허회태 작가 ▲강렬한 색채와 독특한 질감의 작품으로 알려진 우국원 작가 등 국내 유명 작가 38명이 참여했다.
LG전자는 �캪G 올레드 TV는 화소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고 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섬세한 화질 표현이 장점”이라면서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색을 표현해 예술 작품 전시에 최적의 TV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LG전자는 미술품 경매 회사 서울옥션의 자회사인 서울옥션블루와 협업도 진행한다. 양사는 LG 올레드 TV를 앞세워 NFT 미술 분야의 신시장을 개척해나갈 계획이다. 향후 서울옥션블루가 진행하는 NFT 작품 경매와 전시에 참여하는 고객은 LG 올레드 TV의 섬세한 화질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먼저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고(故)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인 <우주(Universe, 05-Ⅳ-71 #200)>의 NFT 작품이 3월 22일 첫 경매에 나왔다. 이 작품은 원작에 표현된 푸른색의 무수한 점들이 원을 그리며 빨려 들어가는 느낌의 디지털 무빙 아트로 재탄생했다. 서울옥션블루는 작품을 낙찰받는 고객이 작품을 가장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LG 올레드 에보(OLED evo·모델명: 65G1)에 작품을 담아 제공했다. 경매 시작가는 2억5000만원이었다.
기업 로비에 설치된 LG LED 사이니지에 예술작품을 띄워놓은 이미지.
LG전자는 지난해부터 올레드 아트(OLED Art) 프로젝트를 통해 LCD와 차별화되는 자발광 올레드의 강점을 부각하며 ‘예술에 영감을 주고 아티스트가 선호하는 올레드 TV’라는 브랜드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인 그라운드엑스와 협업해 카카오의 디지털지갑 클립(Klip)에 구매 보관 중인 NFT 작품을 TV에서 감상할 수 있는 드롭스갤러리(Drops Gallery) 서비스를 론칭했다.
김선형 LG전자 한국HE마케팅담당 상무는 “차별화된 화질과 디자인의 LG 올레드 TV가 특별한 예술작품과 함께 고객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TV에서 더 나아가 대형 디스플레이인 LED 사이니지에도 NFT 디지털아트 플랫폼을 탑재했다. LG전자는 미국 마이애미에 본사를 둔 세계적 디지털아트 플랫폼 업체 ‘블랙도브(Blackdove)’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는 자사 LED 사이니지에 블랙도브의 디지털아트 플랫폼을 탑재했다.
블랙도브는 400명이 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확보해 전 세계 50여 개 국가에 고화질 디지털아트 감상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LG전자는 마이크로 LED 사이니지 ‘LG 매그니트’를 포함해 LG 케이블리스 LED, LG LED 올인원, 울트라 슬림 등 다양한 크기와 해상도의 LED 사이니지로 블랙도브의 디지털아트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이다.
LG 사이니지 고객들은 블랙도브의 전문 큐레이터가 선정한 일부 작품들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고, 블랙도브 모바일 앱에서 유료 구독하거나 구매한 디지털아트를 LG LED 사이니지에서 즐길 수 있게 된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LG전자가 제품은 물론 경영에도 NFT를 접목하고 있다. NFT는 블록체인 플랫폼하에서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고 거래를 쉽게 해주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LG전자 또한 NFT의 향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자사 비즈니스에 접목하며 그 잠재력을 확인해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10일 소프트웨어 전문가 교육 과정을 마친 임직원 120명에 대해 지난 9일 온라인 인증식을 갖고 NFT 인증서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크고 NFT가 영구성, 소장가치 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올해부터 NFT 인증서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원화를 NFT화한 디지털 작품을 담은 LG 올레드 에보.
가전 업계가 NFT 플랫폼에 주목한 이유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TV의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도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등으로 실내 생활이 더욱 많아지면서 다양한 콘텐츠 요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NFT 아트 시장이 각광을 받으면서 디지털을 통해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려는 계층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고 소형 디바이스보다는 TV와 같은 중대형 기기가 미술 감상에 적합할 수 있다는 판단도 탑재를 추진하는 배경으로도 보인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업체 댑레이더(DappRadar)에 따르면 지난해 NFT 거래액은 약 249억달러(약 29조8000억원)로 2020년(9490만달러·약 1135억원) 대비 200배 넘게 커졌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올해 전 세계 NFT 시장 규모가 350억달러(약 42조원), 오는 2025년에는 800억달러(약 96조원)까지 커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