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마트워치는 ‘손목 위의 주치의’ 라고 불린다. 판매사의 마케팅이 버무려진 부분이 있지만 스마트워치가 패션소품이 아닌 헬스케어 아이템으로 입지를 다지는 데 꽤나 도움이 되는 듯하다.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워치는 하나같이 첨단 센서를 탑재해 심박수·심전도·혈압 측정 등 피트니스 기능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몸 상태 기록뿐만 아니라 건강 예측·관리 기능까지 기술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IT기술을 활용한 건강관리는 더 이상 신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급격히 성장하는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소비자와 직접적인 접점을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건강을 진단하고 예방을 위한 행동수칙을 제안하는 기술도 이미 대중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첨단의료분야의 발달로 이러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단순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 치료제 분야로 퍼져가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 효과가 입증된 디지털 기술로 환자의 질병과 장애를 직접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 디지털 치료제가 헬스케어 분야의 유망기술로 부상하면서 세계 주요국 보건 및 과학기술 당국과 투자자는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활용 촉진을 위한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심전도·혈압 측정에 피트니스까지
스마트워치 기술 어디까지 왔나?
코로나19 여파로 건강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늘 몸에 소지하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언제 어디서나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애플은 지난 9월 기존 심박수 측정 등 헬스케어 기능에 혈중산소 포화도(Blood Oxygen) 측정 기능을 탑재한 새로운 애플워치 6세대 제품을 공개했다. 신제품은 시계 뒷면의 4개 포토 다이오드, 녹색·적색·적외선 등 4개 LED 클러스터를 이용해 혈액의 반사광을 측정한 뒤 혈액 색깔을 근거로 15초 만에 혈중 산소포화도를 측정한다. 또한 등산·하이킹 때 유용한 실시간 고도 표시 기능과 서퍼용 페이스·사진가용 페이스·의사용 페이스 등도 더해졌다.
이와 함께 애플은 애플워치의 운동량 측정·관리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독형 유료 서비스 ‘피트니스+’도 발표했다. 피트니스+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운동 동영상을 틀면 그 순간부터 애플워치가 심장 박동수나 칼로리 소모량, 달린 거리 등을 측정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이 가능한 애플워치6
이에 대항하여 삼성전자는 지난 8월 ‘삼성 갤럭시 언팩’에서 갤럭시 워치3를 공개했다. ‘갤럭시 워치3’ 역시 전작 대비 헬스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삼성 헬스’를 통해 다양한 운동 종목을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다. 특히 달리기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달리기 자세의 좌우 균형을 실시간으로 분석해주고, 최대 산소 섭취량(VO2 max)을 확인할 수 있다. 운동종료 후에는 적절한 피드백까지 가미돼 기록 향상이나 부상 방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스마트워치와 연동된 삼성 헬스 모니터 앱을 통해 혈압뿐 아니라 심전도(ECG)를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삼성 헬스 모니터 앱은 각각 지난 4월과 5월 혈압과 심전도 측정 기능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MFDS)로부터 허가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 스마트워치 시장 점유율 2위인 가민은 최근 태양광 충전 기능을 갖춘 프리미엄 밀리터리 GPS 스마트워치 ‘택틱스 델타 솔라’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미군 군사 표준 MIL-STD-810G를 준수해 제작됐고, 디스플레이에는 군 요구에 맞춰 사파이어 글라스가 적용됐다. 이외에도 점프마스터, 듀얼 포지션 포맷, 야간 투시경 등 군 작전에 활용도가 높은 다양한 기능이 탑재됐다.
운동 시 최대 산소 섭취량을 분석해 주는 갤럭시 워치3
10ATM 방수등급도 갖춰 수중에서도 심박수를 측정할 수 있다. 또 혈중 산소 포화도 측정 센서 탑재로 사용자 현재 에너지 보유량을 측정해주는 보디 배터리TM 기능과 고급 수면 모니터링 등도 지원된다. 심박수, 분당 호흡 빈도 측정, 스트레스 지수 등 사용자가 실시간 건강 데이터를 시계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글이 지난해 11월 인수한 핏빗은 최근 심전도 측정(ECG)과 피부전기활동감지(EDA)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 신제품 ‘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제품은 내장된 심전도 응용 프로그램으로 심방세동 등 건강 시장 징후를 조기에 감지한다. 핏빗은 현재 이 기능을 미국 식품의약국(FDA) 공식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스마트워치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2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간 정체를 보이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과 달리 스마트워치는 헬스케어에 특화기능을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SKT가 개발한 유전자 검사 기반 개인 맞춤형 건강코칭서비스 ‘케어에이트 디엔에이(care8 DNA)’
▶스마트폰 활용한 심층건강진단
통신 3사 디지털 헬스케어 확대
AI(인공지능),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 기술과 의료가 접목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확대되고 있다. 가장 대중화된 기기인 스마트폰을 활용한 의료 서비스도 나날이 세분화되고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적극적으로 관련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곳은 SKT, KT, LG U+ 등 국내 이동통신 3사다. 이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 관련 기업과의 협약 등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사업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SKT는 지난 9월 모바일 앱으로 과학적인 유전자 검사와 전문적인 개인 맞춤형 건강 코칭을 간편하게 받을 수 있는 유전자 검사 기반 구독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선보인 바 있다. SKT는 지난 9월 21일 인바이츠헬스케어, 마크로젠과 함께 DTC(소비자 직접의뢰, 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 기반 개인 맞춤형 건강 코칭 서비스 ‘케어에이트 디엔에이(care8 DNA)’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케어에이트 디엔에이는 SKT의 ICT 플랫폼, 인바이츠헬스케어의 건강관리 서비스 개발 및 운영, 마크로젠의 유전체 분석 기술 역량이 합쳐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다. 유전자 검사, 코칭 상담, 건강 정보 등을 제공한다. 이용 고객은 집으로 배송된 검사 키트에 침 등 검체를 채취해 보내기만 하면 된다. 약 2주 후 전용 앱을 통해 유전자 검사 결과와 이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건강 코칭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영양소, 식습관, 운동, 건강관리, 피부·모발, 개인특성 등 6개 영역의 총 29개 종류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함께 전문 영양사와 운동 처방사의 일대일 코칭 상담도 제공한다.
KT는 지난 9월 21일 MPK(메디컬파트너스코리아)와 ‘해외거점형 대한민국 디지털&바이오 헬스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및 보건의료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러시아 분자진단검사센터 설립 등 유라시아 지역으로 사업 확대를 검토 중이다. KT는 ICT 기반 헬스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시장 잠재력을 보유한 해외 중진국을 중점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MPK는 해외거점 한국형 병원 개발 및 직영사업, 해외 공공·민영병원 경영신탁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부터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 외래종합병원 및 수탁 검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카자흐스탄 민간병원 처음으로 코로나19 분자진단 국가 검사기관으로 지정됐다. 앞서 KT는 GC녹십자헬스케어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공동 개발과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KT는 헬스케어 플랫폼과 솔루션 개발을 주도하고 GC녹십자헬스케어는 건강관리 서비스와 관련 데이터 분석 플랫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서비스 구현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해 8월에는 GEPP(글로벌 감염병 확산방지 플랫폼)를 가나에서 해외 최초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 기업이 가나 정부와 공식적으로 협력한 최초 사례다. 가나 국민이 스마트폰에 ‘GEPP 가나’ 앱을 설치하면 누구나 감염병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LG U+는 올해 3월 IoT 솔루션기업 세이프티랩, 헬스케어 기기 전문기업 다우코리아와 ‘플라즈마 공기 살균기 활용한 헬스케어 시범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요양시설 등에서 노인들이 IoT 기술을 활용해 기기를 손쉽게 제어하고 관리하는 ‘실버 헬스케어’ 솔루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사는 올해 하반기까지 ▲무선통신(LTE) 기반 원격제어 및 모니터링 ▲시설 내 공기질 자동 관리 ▲위급상황 시 양방향 비상 통화 ▲이상 변화 감지 시 담당자 자동 연결 등의 기술 개발과 실증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앞서 LG U+는 지난해 9월 을지재단과 함께 ‘‘5G 스마트병원’ 구축·운영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공간 설계 단계에서부터 5G 환경으로 조성되는 병원은 을지재단이 처음이다. 이를 통해 AI 음성녹취를 통한 의료기록 정보화, VR(가상현실) 간호 실습, IoT 기반의 위험약품 위치 및 이동경로 관리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격리 환자의 감염을 예방하고 보호자의 실감형 원격 면회를 가능하게 해주는 360도 VR 병문안,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한 가상현실 힐링, 수면을 돕고 공기질을 체크하는 IoT 병실 등을 통해 보다 편안한 병원 환경 조성이 가능해진다. LG U+관계자는 “AI 알고리즘, 빅데이터, 로봇 서비스, 웨어러블 기기 등을 고도화시켜 의료 현장 곳곳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 발굴해 나아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인 ‘솜리스트’
▶약물중독·조현병·당뇨·비만까지
진단·관리 넘어 디지털 치료제로
IT 기술을 활용해 건강진단이나 관리를 넘어 치료의 영역까지 개척해 나가는 분야가 ‘디지털 치료제’다. 소프트웨어 또는 디지털기기를 활용해 질환을 관리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모이면서 디지털 치료제가 또 하나의 치료옵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알약이나 캡슐 등 저분자 화합물인 1세대 치료제, 항체 또는 단백질 등 생물학적 제제인 2세대 치료제에 이어 3세대 치료제인 디지털 치료제의 문이 열렸다.
일선진료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전통적인 약물이 아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나 웹, 게임, 가상현실(VR), 인공지능 등이 질환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전통적인 약물과 달리 실시간, 연속적으로 24시간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디지털 치료제로 불리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을 통한 유효성 및 안전성 검증’이 필수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는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의 약물중독 치료 앱인 ‘리셋(reSET)’으로 알려졌다. 알코올, 코카인, 대마 등 약물중독 환자에게 인지행동치료(CBT)를 제공하는 앱으로 2017년 9월 FDA 승인을 받았다. 리셋은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환자에게 의사가 앱을 처방하면 환자는 앱을 내려 받아 약물 사용 여부 등을 입력하고 앱을 통해 충동을 조절하는 법 등을 익힌다. 임상시험에서 리셋을 사용한 환자군에서 금욕을 유지한 비율이 40.3%로, 앱을 사용하지 않은 환자(17.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한참 전인 2010년 웰닥(Welldoc)의 당뇨관리 플랫폼인 ‘블루스타(Bluestar)’가 FDA로부터 의사 처방용으로 허가받아 블루스타를 최초로 꼽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허가사항에 ‘치료목적’이 포함된 것은 리셋이 처음이기에 리셋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테라퓨틱스는 이후 2018년 12월 마약성 진통제 중독에 대한 디지털 치료제인 ‘리셋-오(Reset-O)’가, 지난 3월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인 ‘솜리스트(Somryst)’에 대한 FDA 허가를 받아 내기도 했다. 페어 테라퓨틱스뿐만 아니라 여러 국내외 회사가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개발 분야는 신약 개발이 어려운 중추신경계 질환과 생활습관 개선으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만성질환, 인지행동치료의 효과가 큰 신경정신질환 등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미국 ‘아킬리 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는 신경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게임 형태의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했다. 지난 6월에는 아킬리 인터랙티브가 개발한, 8~12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환자의 주의력을 컴퓨터 게임을 통해 개선하는 ‘엔데버Rx(EndeavorRx)’가 FDA 승인을 받기도 했다. 이는 FDA 허가를 받은 최초의 게임 기반 치료제다.
오하
디지털 치료제는 이러한 중독치료와 주의력 개선 외에도 여러 질병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마다 헬스(Omada Health)’의 ‘당뇨 예방 프로그램’, 프랑스 ‘발런티스(Volun tis)’에서 개발한 인슐린 용량 조절을 돕는 ‘인슐리아(Insulia)’와 ‘다이아비오(Dia beo)’, 스웨덴 ‘오렉소(Orexo)’의 알코올 중독 치료제 ‘볼비다(Vorvida)’ 등 앱과 게임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제는 이미 미국 또는 유럽 등에서 시판되고 있다.
일본 오츠카제약과 미국 스타트업 프로테우스디지털헬스는 공동으로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란 디지털 약을 개발했다. 이 약은 조현병 치료용 알약에 센서를 넣은 형태이다. 환자가 약을 복용하면 센서가 위산에 반응해 가슴에 붙인 웨어러블 패치에 신호를 보낸다. 마그네슘 등으로 만들어진 센서는 신호를 보낸 뒤 몸속에서 소화돼 없어진다. 패치와 연결된 스마트폰 앱에 복용 날짜와 시간이 기록된다. 정신질환자가 약을 제때 정량 복용하도록 유도해 치료 효과를 높여준다. 그 밖에 만성질환인 당뇨나 비만 예방·치료에 디지털 치료제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숨튼
국내 기업들도 속속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프시맨틱스’는 호흡기질환 환자를 위한 호흡재활 프로그램 ‘숨튼’, 암 환자의 예후 관리 프로그램 ‘레드필케어’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레드필케어는 프로그램인 ‘오하(오늘 하루는 어땠나요?)’를 개발했다. 오하는 암환자가 기본적인 정보를 입력하면 앞으로 어떤 치료를 진행할지 알려준다. 치료 상태에 따라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 환자가 예후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외에도 ▲VR 기반의 뇌손상 시야장애 치료제인 뉴냅스의 ‘뉴냅 비전’ ▲웰트의 근감소증 치료제 등도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디지털 치료제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관련 시장은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올해 21억달러(약 2조5000억원)인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매년 27% 성장해 2025년에는 69억달러(약 8조3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한 IT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IT플랫폼이 개발되고 의료분야의 규제완화를 통해 디지털 치료제는 다양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 제약사들 역시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과정도 용이하고 비용도 적어 관련분야에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