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이 작품이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다. 이 국가적 보물이 지닌 가치에 대해 최근 아트넷(artnet.com)에 흥미로운 내용이 보도됐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가 재정과 미술문화계의 지원이 어려워지자 프랑스의 한 기업가가 “(재정 마련을 위해)모나리자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가 한 매거진을 통해 밝힌 모나리자의 판매가는 무려 500억유로나 된다. 우리 돈으로 약 68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그가 500억유로를 제시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경매에 나오지 않을 줄 알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2017년 경매에서 4억5000만달러(약 555억원)에 낙찰됐다는 점, 현재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를 전시하며 벌어들이는 수입이 약 30억유로에 달하니 저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게 그 이유다. 물론 실제로 벌어질 리 만무한 일이지만 SNS상에선 한동안 “과연 국가가 지정한 보물의 가치는 어떻게 산정될 수 있을까”란 질문이 이어졌다.
지난 5월엔 국내에서도 한동안 이 질문이 회자됐다.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문화유산을 지킨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이 수집한 보물 2점이 경매에서 유찰된 것. 간송미술관의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은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경매에 나왔지만 응찰자가 없어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두 불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후 최근 간송미술관 측이 재정난을 이유로 매각을 결정해 경매에 나왔다. 7세기 중반 통일신라시대 불상인 금동여래입상은 팔각 연화대좌 위에 정면을 보고 당당한 자세로 선 높이가 38㎝나 된다. 6~7세기 신라 불상인 금동보살입상의 높이는 약 19㎝로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 미술계 일각에선 “지금은 유찰됐지만 다시 경매에 나올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매에 다시 내놓거나 다른 유물을 낼 때 한꺼번에 같이 낼 것이란 주장이다. 덕분에 국내 미술계에선 이른바 골동품이라 불리는 고미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매경LUXMEN>이 이번호에 준비한 미술시리즈의 주제도 ‘고미술의 가치’다. 앞으로 회를 거듭해 고미술 아트테크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고미술품 시장 양극화,
10억원 선 웃도는 보물도 나와
글 김준선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
지난 5월, 국내 미술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작품이 있다. 바로 고(故) 간송 전형필 선생의 구장품, 불상 2점이 경매 시장에 나온 것. 비록 작품들은 유찰되었지만 단번에 고미술과 문화재에 대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근래 미술 시장에 있어 고미술의 추세는 그리 좋지 않다. 골동품 판매를 업으로 하는 고미술상과 문화재 매매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미술이 성행하던 30년 전에 비해 지금의 가격은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경매 시장의 데이터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낙담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터, 광고계를 비롯한 전 분야에 펼쳐지는 레트로 열풍과 신생 박물관의 설립, 그리고 경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주요 문화재들의 활약 등 몇 가지 추이가 범상치 않다.
백자대호
서울옥션 152회 미술품 경매, 31억원 낙찰 ⓒ서울옥션
▶골동품이란 무엇인가
인터넷 검색 창에 골동품(骨董品)을 입력하면 ‘유서 깊은 오래된 기물 또는 서화 등의 미술품’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나온다. 경매회사에서 작품의 분야를 나눌 때 쓰는 ‘고미술’이란 단어 역시 이와 동의어로, 현재 인사동, 답십리 등 골동상이 밀집된 지역들이 있다.
박물관,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오래된 그림, 글씨, 도자기부터 할머니가 쓰시던 가구, 공예품들까지 유서 깊은 이 분야는 선사와 역사시대만 떠올리던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실제 경매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다 그 가치를 알고자 가져오는 작품들 중 수작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또한 근래에는 100년 안팎의 근대기 유물들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작년과 올해 고미술 시장을 살펴보면 특히 고가에 낙찰된 유물들이 눈에 띄어 몇 점 소개해보고자 한다. 과거에 비해 시장가가 하락하고 양극화가 진행되었지만 점차 10억원 선을 웃도는 문화재들이 다양해진 점은 흥미롭고도 반가운 소식이다.
백자대호
서울옥션 25회 홍콩 경매, 약 25억원 낙찰 ⓒ서울옥션
최근 미술 시장에서는 흔히 ‘달항아리’라 부르는 ‘백자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다양한 크기의 백자호 중에서도 높이가 45㎝에 달하는 대형의 크기는 대호라 불린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졌으며, 위아래 두 개의 반원 형태 사발을 포개어 이음새를 적당히 다듬어 제작했다. 달항아리라는 별칭은 별도의 설명 없이 작품의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미가 전달된다. 동시대 중국, 일본에서 제작된 좌우 대칭의 반듯한 항아리들에 비해 조선의 백자호는 재단하지 않고 생긴 모양 그대로 둔 점이 큰 특징이다. 불균형한 형태는 예부터 많이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본격적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여러 학자들의 찬(讚)이 이어지면서부터였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 혜곡 최순우, 고 우현 고유섭, 고 삼불 김원룡 선생 등 내로라하는 미술사학자들이 대를 거쳐 달항아리를 찬하고 수집하면서 고미술에 있어 백자호의 위상이 높아져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최고가를 찍은 고(故) 수화 김환기 화백를 비롯, 도상봉을 거쳐 고영훈, 구본창, 강익중, 정광호, 최영욱 등 현대 화가들과 박영숙, 권대섭, 강민수 등에 이르는 도예가들에 이르기까지, 달항아리를 오브제로 한 작업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가 1935년 경성에서 달항아리를 구입해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인 일화는 더할 나위 없이 유명하다.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대의 모티브가 되어 개막식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명성 때문일까. 10여 점 정도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최근 경매에서는 도자기 부문 최고가 낙찰 1, 2, 3위를 나란히 독차지했다. 2015년 서울옥션 17회 홍콩 경매에서 약 18억원 낙찰을 시작으로, 2018년 25회 홍콩 경매에서 약 25억원 낙찰, 그리고 작년 152회 경매에서 31억원 낙찰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아직 해외 경매 시장에서 수백억 대에 낙찰되는 중국 도자기 가격에는 못 미치지만 차근차근 그 가치를 인정 받아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백자대호
서울옥션 17회 홍콩 경매, 약 18억원 낙찰 ⓒ서울옥션
역시 작년 서울옥션 154회 경매에서 ‘화성능행도’ 8폭 병풍은 30억원에 낙찰됐다. 작품은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그 안의 스토리는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를 주제로 한다. 1795년 초 정조는 8일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현재 경기도 화성의 현륭원을 방문했다. 실제 정조는 현륭원을 여러 차례 방문한 데 비해 혜경궁 홍씨는 이 해 처음 찾았다고 전하는데, 1795년은 정조가 국왕이 된 지 20년이자 사도세자와 어머니가 함께 회갑을 맞는 의미 있는 해였기 때문이다. 당시 행차에서 벌어진 주요 장면 여덟 가지를 그림으로 남긴 것인데, 이동 시에는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물을 토대로 본격적인 그림 제작에 들어갔다. 그 중 현재 8폭의 형태가 온전히 전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작, 그리고 출품작까지 4점뿐으로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시장에 있어 희소성은 가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더욱이 왕실에서 주도적으로 제작했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행차를 하며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노인들을 위한 회갑연을 베풀기도 하고 군사훈련을 거행했으며, 과거 급제자들에게 합격증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병행했다. 또한 왕의 행차 중간중간에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서민들과 당시 다리가 없던 한강에 배를 이어 붙여 건너는 모습 등은 한 폭의 역사 기록물 못지않다.
버나드 리치가 구입한 백자대호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영국 박물관에서 위탁 관리하고 있다.
정조는 궁중의 관례에 따라 행사 장면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함과 동시에 강화된 왕권을 드러내고,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당위성을 높이는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갖고 제작에 착수했다. 조선시대에는 이밖에도 다양한 궁중기록화가 제작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세계의 그 어떤 국가보다 많은 기록물을 남겨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왕실기록화 제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당대 유명 화원들이 동원되어 분업화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 또한 흥미롭게 살펴볼 부분이다. 10억원에서 시작해 13억6000만원까지 경합을 이룬 ‘경혜인빈상시죽책’은 지난 5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낙찰된 작품이다. 대나무로 제작한 자그마한 책자 크기지만 겹쳐진 면을 다 펼치면 가로 길이가 장장 2m에 달하는 유물이다. 역시 궁중 기물에 속하는 죽책은 왕실에서 책봉 내지 존호·시호·휘호를 올리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대나무에 글자를 새겨 넣은 문서를 일컫는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선조의 후궁이었던 인빈 김씨에게 경혜(敬惠)라는 시호를 올리며, 인빈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저경궁, 무덤을 순강원이라 격상시켜 이장하고 의례를 봉헌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전한다. 이 행사는 1755년 영조 때 이뤄졌으며 ‘경혜인빈상시봉원도감의궤’에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죽책문은 영돈녕부사 이천보가 짓고 이조판사 신만이 썼으며, 60개의 죽간을 6개씩 엮어 총 10첩으로 제작했다. 1첩마다 10자 내외의 글씨를 새기고 각 글자를 아교에 갠 금박으로 채워, 제작에 있어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죽책 역시 미술 시장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작품으로, 그림 못지않게 화려하게 공예기술까지 더해진 조선 왕실 서예 작품의 진수를 보여준다.
화성능행도
서울옥션 154회 미술품 경매, 30억원 낙찰 ⓒ서울옥션
‘감로탱화’는 보물 제1239호라는 유물 번호를 지닌 문화재이다. 경매 시장에 가끔 국가 지정 문화재가 등장하는데, 개인 소유일 경우 거래가 가능하며 소유주 및 보관처가 변경될 경우 문화재청 내지 관할구청에 신고가 필수적이다.
숙종 7년인 1681년 제작된 이 불화는 이른 조성 시기와 희소가치, 도상의 선구적인 특징 등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 보물로 선정되었다. 또한 불화를 제작한 화승과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그림 하단에 남아 있어 연구사적 가치도 높은 작품이다. 기록에는 당시 궁궐 내 상궁이었던 송절이, 박노정 등의 실명이 등장하는데 왕실에서 상궁의 이름을 대신 빌려 발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감로도는 아귀들에게 감로를 베푸는 장면을 담은 그림으로, 조선 전기에 형성돼 주로 후기에 제작되었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잦은 전쟁과 역병으로 억울하게 죽어나간 이들을 달래기 위해 천도재가 성행함에 따라 그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감로도는 현재 단 4점만 확인될 정도로 전기 제작품은 남아 있는 수량이 현저히 적다. 그나마도 2점은 일본 내 사찰에서 보관 중이니 희소성에 있어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조선이 워낙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삼국시대부터 10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불교의 전통을 하루아침에 배척할 수 없었음을, 왕실 내에서도 암암리에 성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경혜인빈상시죽책
케이옥션 5월 경매, 13억6000만원 낙찰 ⓒ케이옥션
마지막으로 근래 5년 동안 가장 높은 추이로 가격이 증가한 고미술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8억원에서 시작해 경합을 거쳐 무려 12억원에 낙찰된 ‘요지연도’ 병풍이다. 요지연도는 도교에서 권위 있는 신선으로 꼽히는 서왕모라는 인물이, 그녀가 사는 곤륜산의 정상에서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연회에는 근처를 지나던 중국 주나라의 목왕뿐 아니라 저 멀리 바다 건너 노자를 비롯한 도교의 다양한 신선들, 시성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 등도 등장한다. 즉 앞서 감로탱화가 불교미술품에 해당한다면, 요지연도는 일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도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에는 화려한 채색과 함께 봉황, 영지버섯, 소나무, 불수 등 온갖 장수를 의미하는 상징물들이 잔뜩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천도복숭아가 중앙에 큰 나무로 자리해 있다. 3000년에 한 번 과실을 맺으며 그 열매를 따먹으면 장수한다는 천도가 열린 것을 기념해 벌어지는 잔치였던 셈이다. ‘삼천갑자 동방삭’. 다들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 글귀가 바로 이 요지연에서 나온 것이다.
요지연도
151회 미술품 경매, 12억원 낙찰 ⓒ서울옥션
사실 이 요지연도는 중국 고사에서 비롯, 중국 복장에 중국 인물들을 그리다 보니 과거 미술 시장에서 크게 주목 받던 소재는 아니다. 그러나 점차 궁중 관련 유물들의 희소성과 작품성에 대한 재평가, 작품 제작에 참여했던 화가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다 보니 자연히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7년 4억원에 채 미치지 못하던 요지연도의 가격은 2018년 10억원 내외를 기점으로 작년 경매 시장에서 12억원이라는 최고가를 달성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와 완성도 높은 박물관, 미술관의 전시들, 그리고 무엇보다 한·중·일의 뗄 수 없는 영향관계에서 그것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의 완성도가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비록 고미술 시장이 불황이라고는 하나, 10억, 20억, 30억원으로 점차 그 값어치를 찾아가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보다 더 많은 골동품들이 제 값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폭 넓은 교육과 관심, 틈새시장을 노린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감로탱화
152회 미술품 경매, 12억5000만원 낙찰 ⓒ서울옥션
▶멈추지 않는 뉴트로(New-tro) 열풍
마지막으로 여전히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는 근대기 유물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에 살았던 작가들과 그 시기 제작된 작품들이 생각보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작품이 수억원대에 달하는 작가도 일부에 해당할 뿐, 아직 미술 시장이 넓혀야 할 저변과 발굴해야 할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은 우리가 촌스럽다고 등한시했던 문화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레트로한 매력으로 신선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을지로가 힙지로로 변하고, 옛날 약방을 모델로 한 카페부터 인테리어 소품으로 근대 동양화와 골동을 쓴 가게들까지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옛날 디자인을 다시 불러오는 뉴트로의 광고들까지,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복고주의의 열풍은 쉬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수요는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맞물려 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다수의 신생 박물관과 미술관 설립 계획이 추진되면서, 고미술의 세부 분야뿐 아니라 근·현대사를 다루는 기관들까지 그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미 몇 해 전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해양박물관뿐 아니라 설립을 준비하는 국립체육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국립항공박물관, 국립농업박물관 등. 우리 집에 걸려 있던 그림, 사용하던 가구들, 취미로 모으던 우표와 화폐, 엽서들, 심지어 어릴 때 사용하던 체육용품들까지, 우리 생활 속 다양한 분야가 점차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Fast) 문화 속에서 이러한 변화와 수요는 침체되어 있던 고미술 시장을 살리는 데 결코 무관하지 않을 거란 희망이 든다.
Interview고미술의 세계
“시대의 감수성, 풍속, 역사가 담긴 그림을 눈여겨봐야”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40여 년간 한국미술사에 매진해 온 미술사학자다. 그동안 쓴 논문만 600여 편에 이르는 그는 한국미술에 관해선 회화, 공예, 조각 등 장르를 불문하고 직접 체험하며 한국의 미(美)를 알려왔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 직접 그림의 배경이 된 장소로 발품을 팔았던 일화는 이미 국내 미술계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2016년 정년퇴임을 하고선 이듬해 직접 그린 산수화 30여 점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지난 6월 중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만난 이 교수는 “어제도 산에서 그림을 그렸다”며 직접 그린 화집을 꺼내 하나하나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붓펜으로 그린 인왕산과 북한산의 부드럽고 오롯한 기세가 당당했다.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
▶침체된 고미술계, 국가적 관심 필요해
“고미술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극심한 침체기예요. 시장은 있는데 값이 많이 떨어져 있어요. 특히 근대 서화나 도자기, 공예품이나 민예품들이 그러한데, 경매에 나온 걸 보면 5만~10만원대도 있더군요.”
조선시대부터 20세기 중반 근대미술을 고미술로 정의한 이태호 교수는 시장은 살아있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새로운 컬렉터 층이 고미술 분야에 눈길을 주지 않는 사실이 가장 아픈 부분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값이 떨어졌다는 건 반대로 지금 수집하려는 이들에겐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고미술에 대한 관심이 우선돼야 합니다. 공공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기획전이나 작가 발굴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게 너무 부족해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30년 동안 진행한 기획전 중 전통서화 관련 전시는 5~6%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의 없는 것이죠. 국립근대미술관이 없으니 현대미술관에서 관심을 가져야하는데, 너무 부족해요. 청전(靑田) 이상범과 소정(小亭) 변관식 한두 사람을 빼고는 기획전에 나서질 않았어요. 그렇다보니 근대서화가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으면서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침체된 고미술계의 붐업을 위해선 침체 과정을 반대로 밟아 가면 된다고 답했다. 국공립 기관이 유물에 관심을 갖고 미술관과 박물관이 각 시대에 초점을 맞춘 전시회와 작가발굴에 나선다면 서서히 관심이 돌아올 것이란 기대다.
“서양화를 살펴봐도 20세기 전반기에 태어나 활동한 작가들은 대체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내의 근대작가들, 서화가들도 그러한데, 이 분들의 작품이 어찌 보면 민족적, 국가적 부(富)라고 할 수 있거든요. 너무 소홀히 관리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박수근 그림의 인기는 생활 풍속 때문
그렇다면 이태호 교수가 꼽은 한국 고미술의 매력은 무엇일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근대 시기는 우리에겐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어요. 과거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그 속에 담겨있는 정서를 재평가하는 의미가 있지요. 물론 이 시기 작품에 대한 염려도 있습니다. 컬렉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믿기 어렵다고들 하더군요. 작품의 진위 문제가 속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위작이나 진위에 관해선 완벽할 순 없겠지만 좀 더 걸러졌으면 좋겠어요. 그건 국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이태호 교수는 신진 컬렉터를 위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특히 구상 계열의 작품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전문가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웃음) 전체적으로 구상 계열 작가들을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감수성, 풍속, 역사가 담긴 그림들이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민예품 중 괜찮은 작품이 많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가 높은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그의 그림에는 그 시대의 생활 풍속이 담겨 있어요.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