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의 AI노믹스 ② 인공지능 선생님 | ‘수포자’ ‘영포자’ AI 튜터가 구제할 수 있을까?
박지훈 기자
입력 : 2020.03.03 14:48:56
수정 : 2020.03.04 10:16:55
“이세돌 9단과 NHN 양측 모두 승부 자체보다는 이번 기념 대국을 기반으로 접바둑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을 통해 더 많은 바둑인을 양성하는 데 뜻을 모아서 이러한 대결 방식을 정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이세돌 9단과 국산 토종 바둑 AI ‘한돌’의 승부가 접바둑으로 열리게 되자 대중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한돌의 실력이 이세돌 9단을 압도한다고 평가를 받고 있어도 세기의 바둑기사의 은퇴전을 접바둑 형태로 마치게 하는 데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었다. 한돌의 개발사이자 행사를 주최한 NHN 측은 교육프로그램의 이야기를 꺼냈다. 바둑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홍보를 위해 이세돌이 대의적인 선택으로 이번 대국을 받아들였다고 풀이할 수 있다. NHN은 향후 이용자들의 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교육용 AI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세돌의 기풍(플레이스타일)을 한돌에 담아 일반인들이나 예비바둑기사들이 상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AI의 바둑실력은 이미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 인간은 AI 바둑선생님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단순히 일반인들이 게임형태로 바둑을 즐기는 것을 넘어 프로바둑기사를 꿈꾸는 꿈나무들의 교육에 AI가 도입됐다. 대표적으로 프로기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권갑룡 바둑도장은 최근 AI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인간 선생님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했다. 현역에 있는 프로기사들의 형편도 비슷하다. 많은 이들이 AI를 통해 바둑을 공부한다. 대국을 마치고 나면 컴퓨터 속 ‘AI 선생님’에게 복기를 받으며 실력을 기르고 있다.
▶발음교정부터 토익시험까지 영어교육에 활성화된 AI 튜터
매해 초가 되면 국내 주요 포털의 광고지면은 영어공부 관련 앱이나 서비스가 상당 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영어학습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이다. 이러한 시장 수요를 인공지능 튜터가 파고들고 있다.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영어회화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서비스는 물론 토익학습 등 자격시험 영역에도 여러 서비스가 출시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머니브레인은 AI 기술이 적용된 인공지능 영어회화 학습 서비스 ‘스픽나우’의 웹 서비스를 지난달 27일 정식 출시했다. 앞서 스픽나우 앱은 지난해 9월 선보였다. 기존의 3D 캐릭터와 달리 스픽나우 인조인간은 현지 원어민 튜터들을 영상에 합성해 실제 사람과 대화하듯이 영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구현된 것이 눈에 띈다. 영어 초보 학습자부터 중급, 고급 학습자까지 누구나 24시간 365일 이용할 수 있다.
에듀테크 스타트업인 ‘뤼이드’도 인공지능 기반 토익 학습 서비스를 제공한다. ‘산타토익’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뤼이드는 토익유저의 1억 건 이상의 풀이 데이터와 사용자의 실시간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 순간 변화하는 학습자의 실력을 분석, 예측해 개발 맞춤형 문제와 학습자료를 제공한다.
뤼이드는 카이스트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2016년 11월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NIPS(세계 신경정보처리시스템 학회)의 교육부문 워크숍에 논문을 등재하기도 했다.
뤼이드 측은 “산타토익 가입자는 최소 6문제의 진단 테스트를 풀면 인공지능이 실력분석을 거쳐 어떤 문제를 틀릴지, 어떤 오답을 고를지까지 90% 이상의 적중률로 예측하고, 학습자의 실력 향상을 위한 문제와 강의를 선별해 최적화된 커리큘럼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학습자가 반복적으로 틀리는 부분을 짚고 반복학습을 시키거나 훨씬 효율적인 학습방식을 유도하는 형태다.
‘영단기’로 유명한 ST유니타스 역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고, 자사 서비스에 이를 적용해 나가고 있다. 영단기는 토익문제 출제예측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토익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다음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문제 유형을 자동으로 추출해주는 시스템이다. 영단기가 개발하고 축적해온 수만 건에 달하는 토익문항과 자사 어학연구소 직원들이 실제 토익시험을 분석한 토익 트렌드와 출제 유형 등의 빅데이터를 스텔라가 스스로 학습하도록 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AI 영어학습법은 원어민과의 학습 비용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고, 원어민과 대화하기 어려운 실력을 갖췄더라도 심리적 부담감 없이 AI와 충분히 연습을 할 수 있다”며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가운데 교육시장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듀테크 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AI 영어 학습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LG CNS는 AI 기반 영어 학습 플랫폼 ‘AI튜터(AI tutor)’를 일반인을 상대로 오는 7~8월 공식 출시하기 위해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앞서 LG CNS는 지난해 6월 AI 튜터 개발을 완료했으며 B2B영역을 통해 시험가동을 해왔다. 지난해 7월 AI튜터 플랫폼을 아시아나항공 신입 승무원 대상의 영어회화 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해 시범 운영한 것이 대표적이다. 향후 기업과 추가 제휴를 통해 서비스를 운영한 후 단계적으로 일반인에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LG CNS의 AI튜터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학습이 가능한 스마트폰 앱 서비스다. 음성인식, 언어지능 등의 AI 기술을 토대로 대화의 내용, 맥락, 유창성 등을 파악하고 사람과 AI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LG CNS는 지난해 아시아나 승무원 대상으로 AI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시험운용했다.
LG CNS 관계자는 “영어 학원에 굳이 안 가도, 외국인 선생님과 전화 영어회화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학습이 가능하다”며 “외국인과 대화할 때 주저함과 어색함을 느꼈던 사용자들도 AI와 편하고 자신감 있는 대화가 가능해져 학습효과 또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NHN은 지난 5일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교육부가 추진하고 EBS가 주관하는 ‘AI 기반 영어 말하기 시스템 구축’ 사업의 수행 개발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들이 개발하고 있는 시스템은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 수용자인 학생 음성 인식과, 문장 대화 연습, 발음 교정 서비스 같은 기능을 구현하며,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상호작용형 영어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기술을 ‘어댑티브 러닝(Adaptive Learning)’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시장에서는 이미 애플이나 구글 등 공룡 IT 기업부터 D2L, 드림박스 러닝(Dreambox Learning), 뉴턴(Knewton), 스마트 스패로우 PTY LTD 등의 전문기업까지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선구자는 뉴턴이다. 어댑티브 러닝 플랫폼을 제공하는 뉴턴은 각 교육기관이 이 플랫폼 위에서 자신의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직접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대학에 교육 프로그램을 판매하면서 수익을 창출한 이 회사는 최근 고등학교 시장에 진출했다. 뉴턴 측은 자신의 고등학교 교육 프로그램이 교과서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편 어댑티브 러닝 스타트업 ‘스마트 스패로우’는 SAT와 함께 양대 대학입학시험인 ACT로부터 750만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스픽나우 구동화면
▶사교육 시장에 불어온 AI 튜터, ‘수포자’들 구제할 수 있을까?
# 초등학교 1학년 A군은 숫자가 낯설다. 수학시간이 돌아오면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다. 가르치는 쪽도 학생들의 집중도를 유지시키며 개념을 설명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나눠준다. 화면을 켜보니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는 게임이 시작된다. 화면에 과일 4개가 뜨면서 캐릭터가 ‘과일이 몇 개인지 고르라’고 말한다. 한참을 고심하다가 보기 중에 ‘4’를 선택하자 캐릭터가 활짝 웃으며 보상 아이템을 준다. A군이 따라 웃는 동안 인공지능(AI) 시스템은 A군이 또래 평균보다 더 망설인 점을 고려해 다음 문제도 낮은 난이도의 문제를 준비한다.
AI 선생님이 수포자(수학포기자)를 양성하고 있는 국내 교육과정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 초중등 교육을 위한 AI 선생님은 이미 교육업계 화두로 떠올랐다. 기존 교육 기업은 물론이고 스타트업들까지 AI를 접목한 교육 서비스 론칭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영어는 기본이고 AI 수학, AI 과학 등 다양한 교육과정에 접목되고 있다. 올해부터 일부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은 이런 AI 기반 수학 콘텐츠를 ‘가지고 놀 듯이’ 수학을 재미있게 배우게 된다. 교육부는 지난해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AI 초등수학 콘텐츠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수학이 과목 특성상 저학년 단계에서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따라잡지 못하고 흥미와 자신감을 잃는 경향이 짙어 ‘수포자’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육부가 그리는 그림은 ‘놀이형 콘텐츠’와 ‘AI 기반 학습관리시스템(LMS·Learning Management System)’의 상하 결합이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같은 놀이를 통해 숫자와 사칙연산을 가지고 놀고, 그 밑바탕에서 AI 시스템은 아이들이 자주 틀리거나 어려움을 겪는 수학 개념이 무엇인지를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한편 데이터를 축적한다. 연구학교 학생들이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이에 축적되는 단원별·문제별 정답률과 오답 경향성 등의 데이터는 추후 LMS 연구에 활용된다. LMS 연구는 창의재단과 교사·교수·연구원 등 전문 연구진이 진행한다.
공교육 시장은 물론 사교육 시장도 AI 교육 서비스가 봇물 터지듯 출시되고 있다. 웅진씽크빅, 대교, 교원 등 국내 대표 교육업체는 AI 기술을 적용한 수학 등 교육서비스를 전 과목으로 확장하는 데 조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기존 수익모델이었던 수만 명의 방문교사 조직은 줄여나가면서 장기적으로 AI 교육 서비스의 학습관리자로 전환시킬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웅진씽크빅은 50억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실리콘밸리 학습분석 기업인 키드앱티브와 공동으로 AI 수학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는 최소 한 달 이상 아이의 학습 내용과 패턴을 분석해 학습자가 느끼는 체감 난이도, 문제풀이의 적정 시간, 각종 공부 습관을 분석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 학생이 어떤 수학 문제를 풀기 전 이미 맞힐 가능성까지 예측한다. 만약 정답을 맞힐 가능성이 10%인데 적정 시간보다 빨리 문제를 풀면 모르고 ‘찍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음 문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반대로 예측 가능성 90%인 아이가 오답을 내놨다면 “OO야! 맞힐 수 있어. 다시 도전해보자”는 식으로 반응한다. 오답을 낸 뒤 개념 정리 또는 힌트로 되돌아가는지, 틀린 문항에 몇 차례나 재시도하는지 등 모든 학습행동을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학력수준과 학습 습관 등을 분석해 총 13개 단계로 학습자를 분류, 맞춤형 학습 콘텐츠를 제공한다. 아이의 레벨은 매주 재조정된다.
닌텐도 라보
교원그룹이 선보인 ‘레드펜 AI수학’은 태블릿PC에 장착된 카메라가 공부하는 아이의 눈동자 움직임을 추적(eye tracking)하는 기술을 담았다. 집중하지 않거나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가면 AI 선생님(마이쌤)이 “집중해줘~” 하며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학습자의 오답률을 분석해 취약한 유형의 문제도 반복·재학습시키기도 한다. 아이스크림에듀의 ‘아이스크림 홈런’ 역시 조만간 영어, 수학 등 개별 과목에 AI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AI를 통한 교육은 비단 교육 관련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8년 4월, 일본의 글로벌 게임회사 ‘닌텐도(Nintendo)’는 자사의 게임 플랫폼인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와 연동하여 실감형 학습 활동이 가능한 골판지 완구 시스템인 ‘닌텐도 라보’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토이콘(Toy-Con)’으로 불리는 골판지제의 공작 키트(Kit)를 조립하여 로봇, 피아노, 낚싯대, 가방 등 여러 도구를 제작하고, 이를 닌텐도 스위치의 다양한 게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시스템이다.
이 제품이 교육 산업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게임 콘텐츠(Contents)에 인공지능, 가상현실, 햅틱(Haptic) 기술 등 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기술들이 적용되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교육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라보’의 VR 키트를 구입하면 카메라·안경 등 가상현실 체험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으며, 현실에서 몸을 움직이면 게임 세계와 연동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서사 기반의 실감형 교육 현실화에 대한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라보’의 피아노 키트를 활용하면 피아노 학습을 지루해하는 어린아이들이 게임을 하듯이 즐겁게 창의성과 심미성을 계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10월, 닌텐도는 미국의 비영리 교육 단체인 ‘놀이 연구소(Institute of Play)’와의 협업을 통해 미국 뉴욕 초등학교에 ‘라보’를 공급하였으며, 2019년까지 미국 전역의 100여 개 학교로 공급을 확대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닌텐도 라보’는 산업 간의 융합을 통해 게임 플랫폼이 교육산업을 혁신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으며, 일본이 기존에 확보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및 콘텐츠 산업의 강점은 이러한 교육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인공지능 기반의 융합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에 적용됨에 따라 전통적인 분야를 막론하고 AI 튜터의 역할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채점, 첨삭, 피드백 등과 같은 기본적인 교육활동이 자동화되며, 학생 수준별 진도 학습 및 교육과정의 난이도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교실 안의 혁신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가상·증강 기술의 발전으로 학습자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형태의 초실감 교육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AI 튜터의 무기는 가상·증강현실이다. ‘체험’ ‘몰입감’ ‘상호작용’ ‘1인칭 시점’의 제공이 가능해지는 체험과정은 피교육자가 가상의 공간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통해 상호작용 콘텐츠 기반의 교육프로그램도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모바일과 사물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교실 밖에서도 언제든지 양질의 초실감형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군사작전 훈련과 항공, 의료, 소방 등 직업 훈련 트레이닝에 이러한 가상·증강현실 기술이 활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점차 가속화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