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해 나흘간 이어진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 MWC 2019. 폴더블폰, 5G폰, 자율주행차 등 각종 첨단 기기를 공개하는 IT 축제장에서 흥겨운 연주가 흘러나왔다. 일본 통신사 NTT도코모가 일본 음향 전문 기업 야마하와 협업해 ‘5G 사이버 잼 세션’을 선보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두 사람이 5G 네트워크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즉흥연주(잼)를 하는 공연이다. 기타를 든 연주자 옆에 피아노 담당 플레이어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실제 떨어져 있는 둘은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하며 라이브 연주를 펼쳤다. 순간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즉흥 연주는 1초라도 지연이 생기면 하모니가 어그러지게 된다. 그러나 둘은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합주를 끝내 지연 없는 5G의 위력을 보여줬다. NTT도코모 관계자는 “5G의 가장 큰 특성은 고용량 데이터 전송과 초저지연성이다. 원격지 즉흥 라이브 연주는 5G이기에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2020년 5G 상용화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NTT도코모의 숨은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 통신사 에릭슨, 중국 통신사 ZTE 등 주요 IT 기업들도 초저지연과 초연결성을 특성으로 하는 5G 기술을 뽐내기 위해 ‘라이브 연주’를 대대적으로 시연했다.
5G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 에릭슨 측은 “5G는 영상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하는 것도 4G 때보다 훨씬 빠른 처리가 가능하다. 원격지에 있는 상대방을 영상으로 보면서 즉흥 연주가 가능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5G가 본격 상용화되는 ‘5G 원년’에 열린 MWC 2019는 5G가 불러올 혁명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3G에 이어 4G까지 모바일 기반 혁신이 가속화됐다면 5G부터는 모바일을 벗어나 사물 전반으로 통신 혁명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감안해 MWC도 행사명에서 ‘모바일(Mobile)’을 떼고 출발했다.
4G보다 20배 빠른 5G는 속도 향상 외에도 초저지연, 고용량 데이터 전송 기능을 가능케 한다. 사물인터넷(IoT)과 결합함으로써 사회 인프라스트럭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반이 변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홀로그램으로 대화하고 VR로 회의
홀로그램으로 대화하고 VR(가상현실)로 회의하는 ‘SF 영화’ 같은 장면은 현실이 된다. 원격 라이브 연주가 가능하고, 원격 의료, 자율주행이 실현된다. 공장이 서로 연결돼 데이터를 주고받고 스스로 관리하는 스마트 팩토리는 MWC에서 현실이었다. 초저지연과 초연결성은 의료 산업 혁명을 예고했다. 보다폰은 5G 의료 수술 생중계를 MWC에서 선보여 5G 강점을 알렸다.
보다폰은 온라인 교육 포털 ‘AIS 채널’과 의료기관들이 협업해 의료 시술을 생중계했다. 5G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술실이 MWC 라이브 극장에서 상영됐다. 의료는 재난관리, 엔터테인먼트 등과 더불어 초고속·초저지연의 5G 기술이 가장 먼저 보급될 분야로 꼽힌다. 보다폰 스페인 네트워크 부문 관계자는 “5G는 초저지연을 특성으로 하고, 높은 속도가 고해상도 이미지를 전송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의료 서비스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보다폰은 이 밖에도 ‘커넥티드 응급 구조’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구급차 상황을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병원에 알려준다. 구급차에 실린 환자 상태를 측정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병원에 전송해 환자를 응급 처치할 수 있다. 보다폰 관계자는 “네트워크를 기능별로 쪼개 사용하는 5G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통해 안전하고 정확한 e헬스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NTT도코모는 5G 의료 혁신 서비스로 주목을 받았다. 의료용으로 개조된 트럭으로 환자를 운송하면서 집도의가 수술을 하는 동안 뇌 분야 의사가 달리는 고속철에서 5G로 영상을 보며 수술을 지시하는 서비스(SCOT Mounted Truck)였다.
인더스트리 변화도 실감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고용량 이미지를 실시간 분석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처리해서 불량품을 잡아내는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공개했다. 현재 SK하이닉스에 적용돼 공정 데이터 분석에 쓰이는 기술이다. SK텔레콤은 “스마트 팩토리는 설비 오류를 점검하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향후 5G 전용망이 적용된 축구장 3개 규모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하고, 연구실·기숙사도 스마트 콤플렉스로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증강현실이 5G 킬러 콘텐츠 될 듯
미디어 산업은 5G 시대 가장 큰 수혜주로 꼽힌다. VR·AR 실감형 콘텐츠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좌우할 것이다. 글로벌 IT 업체는 5G ‘킬러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디바이스와 서비스 개발에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자처럼 쓰는 형태의 증강현실(AR) 기반 디바이스인 ‘홀로렌즈2’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AR로 실시간 소통하는 디바이스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로렌즈2 언팩 행사에서 공개한 시연을 보면 5G 환경에서 홀로렌즈2와 함께하는 일상은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홀로렌즈를 쓰자 눈앞에 풍력발전소를 제어하는 기기 제어판이 펼쳐지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풍력발전소가 움직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4년 전 ‘홀로렌즈1’을 공개했지만 착용하기 불편하고 시야각이 좁아 상용화에 의문점을 남겼었다. 그러나 올해는 시야각을 2배 이상 넓히고 해상도를 높였다. 또한 수천 명의 두상을 분석해 착용감을 강화하고 AR글라스가 아이 트래킹(눈 추적)하는 정확도를 높여 완성도를 향상시켰다. 5G가 적용된 산업 현장에서 AR가 대중화될 조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2는 기업용으로 연내에 출시하며 가격은 3500달러(약 390만원)”라고 했다.
MS홀로렌즈2, PLAY6470
NTT도코모는 실시간 축구중계를 시청하면서 애플리케이션(앱)을 구동시켜 내가 원하는 선수나 공의 움직임만을 따라가며 보거나 원하는 각도로 경기장을 보는 VR 서비스 ‘디오라마 스타디움’도 선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관계자도 부스를 찾아 체험했다고 NTT도코모는 전했다. NTT도코모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5G 기술력을 공개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프로야구·골프·아이돌 라이브 기능을 비롯해 AR·VR, 홀로그램 스피커 서비스를 선보였다. LG유플러스는 “VR와 AR에서 5G 서비스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했다.
SK텔레콤은 AR(가상현실)·VR(증강현실) 콘텐츠 확보를 위해 AR 글래스 기업 매직리프의 AR 글래스를 독점 도입하고, AR게임 포켓몬고 개발사 나이언틱과 기술 협력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이번 MWC는 5G 사용 사례(유즈 케이스)를 잘 살펴봐야 한다. 당장은 일반 고객보다 기업용 서비스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서 5G를 이용해서 스마트 팩토리가 어떻게 구현될지가 관심인데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를 통해 증강현실이 5G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삼성 vs 화웨이 간 폴더블 경쟁 최대 화제
올해 MWC에서는 데이터 전송 속도가 최대 100배 빠른 5G 시대를 맞아 하드웨어 부문 혁신 경쟁이 치열했다. 4G LTE보다 20배 빠른 5G는 속도도 강화됐지만 네트워크 안정성과 초저지연성이 뛰어나다.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하거나, 고용량 콘텐츠를 감상하고, 동영상과 채팅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5G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디바이스의 변화도 필요하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직사각형 디바이스에 갇힌 스마트폰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문법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2007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선보인 후 재발명된 스마트 디바이스는 올해 본격 상용화되는 5G 시대를 맞아 ‘스마트폰 너머’로 진화 중이다.
MWC 일주일 앞서 삼성전자가 완벽히 접히는 폴더블폰을 공개하며 불을 지핀 5G 혁신 경쟁은 LG전자·화웨이·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기업의 언팩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화웨이는 “더 얇은, 밖으로 접히는 폴더블폰” 메이트X를 발표하며 삼성전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LG전자는 폴더블폰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5G 스마트폰 V50씽큐와 함께 탈착식 디스플레이 ‘듀얼 스크린’으로 화면 확장을 시도했다.
삼성전자와 화웨이의 폴더블폰 경쟁은 MWC 기간 내내 최고의 화제였다. 삼성전자 부스는 갤럭시폴드를 보기 위한 참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갤럭시폴드는 유리장 안에 전시돼있었지만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가까이 실물을 확인하기 위해 유리창을 골똘히 들여다봤다.
삼성 갤럭시폴드
갤럭시폴드는 안으로 접는 인폴딩 방식이다. 접었을 때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4.3인치지만 펼쳤을 때는 작은 태블릿 수준(7.3인치)이다. 콘텐츠 감상, 웹서핑, 문자메시지 등 여러 앱을 한꺼번에 쓸 수 있는 멀티 액티브 윈도우를 지원한다. 오는 4월 26일 미국에서부터 출시되고, 가격은 1980달러(약 223만원)다.
삼성전자 공식 미디어 뉴스룸에 따르면, 정의석 삼성전자 부사장은 “영화를 보거나 영상통화를 할 때도 다른 작업 때문에 방해받을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제품을 접었다 폈을 때 하던 작업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도 있다. 그는 “접힌 화면에서 지도를 보다가 화면을 펼치면 그대로 큰 화면에 지도가 나타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들은 책을 펼치듯 안으로 접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제품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 부사장은 “갤럭시폴드를 이용하면 접었을 때는 통화, 카메라 등 필수 기능을 간단히 사용할 수 있고 폈을 때는 큰 화면으로 콘텐츠를 즐기거나 멀티태스킹을 실현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크다”면서 “‘갤럭시폴드’는 더 큰 화면을 원하지만 투박하고 육중한 제품을 바라지 않는 소비자들을 위한, 스마트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화웨이가 공개한 메이트X는 이와는 달리 밖으로 접는 아웃폴딩 방식이다. 접었을 때 6.38인치, 펼쳤을 때 8인치다. 화웨이는 “경쟁사(삼성전자)보다 더 얇은, 세계 최초로 5G가 지원되는 폴더블폰”이라며 기술력을 강조했다.
가격은 2299유로(약 293만원)로 갤럭시폴드보다 70만원가량 비싸다. 화웨이는 MWC 언팩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폴더블폰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했는데, 이때 메이트X를 사용한 기자들이 올린 유튜브 영상에서 접히는 부분의 우글거림이 포착돼 기술력 논란에 휩싸여 아쉬움을 남겼다.
2월 20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빌 그레이엄 시빅 센터에서 삼성전자 IM부문장 고동진 사장이 ‘갤럭시 폴드’를 무대에서 직접 공개했다.<사진제공=삼성전자>
LG전자는 폴더블폰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5G 지원 스마트폰 V50씽큐와 탈착식 보조 디바이스 ‘듀얼 스크린’을 선보여 “대화면 수요를 반영한 실속형 제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무게 131g로 휴대폰 케이스처럼 생겼다. 듀얼 스크린을 장착하면 이용자는 마치 2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처럼 V50씽큐 화면에는 문자메시지를 띄워놓고, 듀얼 스크린에는 유튜브를 볼 수 있다. 게임을 할 때는 듀얼스크린은 게임 화면으로, 스마트폰은 게임 컨트롤러로 사용할 수있다. LG전자는 “이용자들이 평소 휴대할 때는 얇고 가벼운 디자인을 선호하고, 콘텐츠를 즐길 때는 큰 화면을 원한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제조사 ZTE 자회사 누비아는 웨어러블형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스마트 워치처럼 생겼지만 디스플레이가 팔목 절반을 감싸는 구조다. 전화 받기, 알림 확인에 한정됐던 스마트워치에 비해 폭넓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T업계는 올해 5G가 포화상태에 다다른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사의 디바이스 혁명, 콘텐츠 및 앱 생태계의 새로운 서비스가 맞물려야한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지난 10여 년간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최근 1~2년에는 이제 스마트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나왔다는 회의적 생각이 강했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면서 “5G가 IT 기기의 퀀텀점프를 촉발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