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2기 경제팀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지난 7월 1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투 톱 체제로 내각이 꾸려졌다. 두 사람 모두 최근까지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호흡을 맞춰 당을 이끈 인물이어서 박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 방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최측근으로 평가되고 있다.
친정체제 강화로 제1기 현오석 경제팀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청와대와의 엇박자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이전보다 강력한 정책 추진력과 성장 동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다.
최 부총리는 이러한 기대에 화답하듯 지난 7월 18일 서울 광화문 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경제관계 장관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생각하면 새 경제팀은 아마도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만 할지도 모른다”며 “과감한 정책 대응을 통해 잔뜩 움츠러든 경제 주체들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강력한 정책 추진을 예고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좋지 않다. 저성장 기조가 오래 지속되면서 전반적으로 활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위축된 소비 심리와 수출 회복세까지 주춤하며 “경제 회복의 모멘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장기간 한국 경제 위기의 뇌관으로 지적된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 산업 경쟁력 저하 등 곳곳이 지뢰밭 같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 새 경제팀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5가지 문제들을 짚어봤다.
가계 가처분 소득 늘려 내수 활성화
2기 경제팀이 풀어야 할 첫 번째과제는 내수 활성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민간 경제연구소에 이어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4% 에서 3.8%로 내렸다. 정부 역시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 부총리는 꺼진 성장 동력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내수를 살려 민생 경제를 보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소득 창출의 근원인 기업과 소비 주체인 가계가 살아나야 한다”며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과감하게 개혁하고, 기업 성과가 일자리와 근로소득을 통해 가계 부문으로 원활히 흘러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 마련될 새 경제 정책에서는 민생 분야를 중심으로 내수를 살리는 과감하고 강도 높은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꺼내 든 첫 번째 카드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축소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이익금 중 지출을 빼고 사내에 축적한 이익 잉여금에 자본 잉여금을 합한 금액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인사 청문회에서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투자와 배당, 임금 분배 등을 통해 가계 소득으로 흐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 중심 소득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또한 버블 붕괴와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늘려 나가고 부채와 투자를 줄여 가는 과정에서 불황에 빠진 전례가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같은 모습이 나타나며 위기 의식이 높아지자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것이 최 부총리의 복안이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기업 투자나 배당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직접적인 가계소득 증가를 위한 법안은 절차상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기업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급여소득 증가보다 기업의 투자와 배당을 늘리는 편이 간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먼저 배당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사내유보율 기준으로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 배당세율 인하, 배당주 펀드에 대한 감세, 분리과세 등의 추가 세제 개편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태다.
카드는 제시됐지만 시행되기까지 진통은 예상된다. 지난해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사내유보금 과세 법안이 적용될 경우 대기업들이 올해 더 내야 할 세금은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기업들은 법안 발의 단계부터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독자적인 운영과 투자자금’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효과 측면에서도 사내유보금 축소가 실질적으로 가계에 직접적인 소득 증진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또한 기업들의 지분구조를 비춰볼 때 배당의 증가 역시 민간 소비 증대에 끼치는 영향력은 미비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로자들의 급여 소득이 증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인책을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 활성화시켜야
장기간 침체된 부동산 시장 활성화 역시 새 경제팀의 중요 과제 중 하나다. 이는 끝없이 상승하고 있는 가계 부채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소비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처럼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통해 가계가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7월 17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2기 경제팀,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주제하의 토론회에서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통한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가 최경환 호의 중요한 정책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총 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은행의 자율에 맡기고, 분양가 상한제 운용 개선을 위한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를 반복적으로 시사해 왔다. 특히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아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에서 중도 제외된 LTV·DTI 규제가 완화될 전망이다.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켜 현재 1000조원이 넘어간 가계 부채를 가계 스스로 탕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취지다.
손정식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LTV와 DTI를 은행 자율성에 맡겨 놓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이 같은 자율성으로 은행에 큰 손실이 생기게 되면 정부에 손을 내밀게 되고 결국 혈세로 손실을 메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은행의 행태를 제어할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LTV와 DTI 규제 완화는 국민에게 은행 대출 범위를 늘려 주는 것을 골자로 한 정책 특성상 ‘오히려 가계 부채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특히 야당은 법안통과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 대해 여야의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방법론에 있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세다. LTV와 DTI 규제 완화를 포함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인 최경환 호가 내놓을 정책에 귀추가 주목된다.
착한 규제-강화, 나쁜 규제-타파
현명한 솔로몬의 지혜 발휘할때
지난 7월 16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민경제자문회의와 대한상의정책자문단 자문위원 46명을 대상으로 ‘새 경제팀의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그 결과 경제 혁신에 있어 필요한 우선순위를 묻는 설문에 ‘규제 개혁 및 창조경제 전환(43.5%)’이 ‘내수 서비스산업 육성 등을 통한 부문 간 균형 발전(43.5%)’과 함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규제 개혁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규제 개혁은 단순 완화가 아닌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구분하는 사회적 합의와 혜안이 절실하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지 않아,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국가 경쟁력을 저하하는 나쁜 규제를 적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사회 안전, 소비자 보호, 공정 경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착한 규제는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한편 관피아 개혁과 공직사회 혁신도 시급하다. 최근 정부는 이를 위한 공직자 윤리법 및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처벌 규정은 따로 수정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심사 없이 취업 제한 기관에 들어갔다가 적발돼도 과태료만 물면 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을 통해 감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산적한 개혁 작업이 탄력을 받으려면 경제팀의 추진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산하 단체들에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관피아 문제는 경제 분야에 있어서도 세월호 참사에 버금가는 인재(人災)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공단 방문한 최경환 부총리
제조업 위기 넘을 신산업 기반 마련
“규제 개혁해 시장과 정부 역할을 재정립하고 서비스 고용 창출에 힘써야 한다”
- 최성호 경기대 교수
“경제 구조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
수십 년 동안 한국의 기반사업이었던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는 한편 중국의 추격이 가시화되면서 장기적인 중장기 성장 토대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2기 경제팀의 숙제 중 하나다.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에 따르면 전문가들의 제조업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 후발 신흥국에 밀리거나 제조업 공동화가 예상된다는 답(75.6%)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제조업 공동화가 시작되는 시기도 이미 진행(42.4%)되고 있거나 3년 후(33.3%)에 시작될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독일 등 경제대국이 제조업 부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지만 국내 제조업은 위기 국면에 서 있다.
이에 대해 제조업 쇠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는 ICT 접목을 통한 제조업 혁신(41%), 해외 대신 국내투자 우호 여건 조성(32.3%), 외국인투자 및 해외투자기업 U턴 촉진(22.6%) 등이 제시됐다.
제조업 쇠퇴에 대한 대안과 성장 잠재력이 큰 서비스 업종 육성의 필요성도 커졌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서비스산업 대책은 쏟아졌지만 공염불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번번이 이익단체와 정치권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기재부 한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영업 육성 정책으로는 서비스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서비스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또 서비스업의 고용창출, 투자 세액 공제, 추가 공제율을 인상하는 등 세제 혜택을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지원 간극을 좁혀 나가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창조경제 주역, 중소기업 지원 확대
창조경제의 주역인 벤처·중소기업 지원도 2기 경제팀의 숙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지난 2월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CEO 300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100점 만점에 64점을 획득해 국정 운영 전반 점수(70점)보다 낮은 수준에 그친 바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이렇듯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 분야에 적극 뛰어들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인천 남동산업단지에 위치한 파버나인에 방문한 최 부총리는 “경제가 도약하느냐 못하느냐의 핵심은 중소·중견기업이 살아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가속상각제도, 공정자동화 설비 수입에 대한 관세 감면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그는 “정부는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더 탄탄하고 촘촘한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를 구축하고자 한다”면서 “우수한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회사를 창업해 중견기업, 대기업까지 키워 나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도전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새 경제팀은 최근 재지정 논의에 들어간 중소기업 적합 업종 재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대기업-중소기업 간 갈등의 조정자 역할도 맡아야 한다. 현재 지정된 적합 업종은 총 100개이며 이중 82개가 올해 말 지정 만료될 예정이다. 대기업들은 50개 품목에 대해 지정해제를 신청한 상태이며 중소기업들은 떡, 순대 등 77개를 재지정해 달라고 요구해 양쪽의 간극이 큰 상황이다. 갈등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인 만큼 최경환 부총리는 직접 포청천 역할을 자처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