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IoT) 시대의 개막, 웨어러블 기기의 대중화, 중국 스마트폰의 공습, 제3의 OS 대전.
지난 2월 24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4’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MWC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연합체인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매년 개최하는 행사로 올해 28회째를 맞았다. 올해 행사에는 전 세계 1700여 개 장비·단말제조업체, 이동통신사업자, 서비스업체가 참여했고 7만5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이번 MWC 행사에서 ‘입는’ 컴퓨터를 의미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이제는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소비자들의 일상생활에 깊게 침투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을 비롯해 일본의 소니와 중국의 화웨이도 야심차게 웨어러블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겨냥하는 인간의 신체 중 하나가 ‘팔목’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웨어러블 손목시계의 가장 큰 강점은 고령화 시대에 가장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헬스(건강)’ 문제에 대해 갖가지 보완책을 제안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기어 핏’
삼성전자 기어 후속 ‘기어2 네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 손목시계 ‘갤럭시 기어’를 선보이며 전 세계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삼성전자는 이번 MWC 행사에서 그 후속작을 선보였다. 기어의 후속제품부터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아닌 삼성과 인텔 주도로 제작된 자체 OS ‘타이젠’을 탑재했다. 고사양 제품인 기어 2의 경우 이전 모델과 가장 큰 차이점은 스트랩(시계줄)에 위치했던 카메라를 본체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로써 소비자가 스트랩을 색깔별로, 무늬별로 기호에 맞게 교체할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는 저사양 버전인 ‘기어2 네오’도 같이 공개했다. 기어 2 네오는 생동감 있는 색상의 스포츠형 제품으로, 카메라가 빠져있어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된다.
삼성은 이번에 개인용 피트니스 밴드 ‘기어핏(Gear Fit)’도 공개했다. 기어핏은 통화나 메시지 기능보다는 헬스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스마트 워치보다는 헬스밴드에 가깝다. 기어 핏을 손목에 차면 뒷면에 있는 센서가 심장박동수를 세기 시작한다.움직이면 내가 걸은 거리가 표시된다. 실시간 피트니스 코칭 기능을 통해 운동량 관리도 가능하다.
1.84인치의 길쭉한 커브드(곡면) 슈퍼아몰레드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기어2와 달리 손목에 완전히 밀착된다.
전체를 손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돼 패션 기능을 강화한 점은 기어2와 같다. 웨어러블 기기가 소비자의 일상생활에 침투하려면 디자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삼성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소니는 ‘스마트밴드’라는 이름의 웨어러블 기기를 공개했다. 안드로이드 앱 라이프로그(Lifelog)와 연결해 사용자가 방문한 장소, 청취한 음악, 재생한 게임과 읽은 책 등 ‘생활과 엔터테인먼트’를 쉽게 기록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소니표’ 방수 기능도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삼성전자 바로 앞에 부스를 설치해 주목을 받은 중국의 화웨이는 손목시계형 웨어러블 기기 ‘토크밴드’를 선보였다. 기기 앞면의 1.4인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를 분리하면 블루투스 헤드셋이 돼 화웨이 스마트폰과 연결해 통화를 할 수 있다.
이처럼 글로벌 IT 대기업뿐 아니라 수십 개에 이르는 전 세계 중소기업들도 손목시계형, 안경형, 백팩(뒤로 메는 가방)형 등 웨어러블 기기를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신종균 삼성전자 인터넷·모바일(IM)부문 사장은 “앞으로 웨어러블 기기 시장이 제법 커질 것이고 핵심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본다”며 “손목시계형을 포함해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석우 카카오 사장도 “웨어러블 기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MWC 2014는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가시화되는 장이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흐름을 이끌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제조사와 이통사 등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하나같이 사물인터넷과 사물지능통신(M2M) 등을 선보였다. 특히 인터넷을 활용한 스마트 카(자동차)가 앞으로 대세가 될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6배 빠른 롱텀에볼루션(LTE)
자동차 회사인 포드와 BMW는 물론 스페인 이동통신사인 텔레포니카, 미국 칩셋 제조업체인 퀄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ZTE 등도 모두 자사 부스에 자동차를 전시하면서 사물인터넷시대에 스마트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지를 보였다. 텔레포니카는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와 함께 만든 전기차 모델S를 세워두고 엔진 없는 스마트카를 시연했다. 포드는 자동차 내부에 와이파이를 장착해 주변 차량과 소통하면서 운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동차 위에 레이더를 설치해 차량 주변 물체와 움직임을 탐지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아주는 기술도 보여줬다.
도시 전체를 인터넷과 연결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현하는 스마트시티 모델도 눈에 띄었다. NEC는 이용자 간 통화 빈도를 조사해 번호이동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골라 마케팅을 강화하는 이동통신사 번호이동 방지 마케팅 도구(CMS)를 전시했고, 에릭슨은 가로등을 롱텀에볼루션(LTE) 통신망과 연결해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IBM은 폐쇄회로TV(CCTV) 등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교통체증과 사고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SAP는 시스코와 협력해 소비자 취향을 파악하고 상품을 추천해주는 ‘인터넷 연결 자동판매기’와 건설장비 안전관리, 운행량을 배분하는 ‘인터넷 연결 건설현장’ 등을 제시했다.
이번 행사를 장식한 또 하나의 주요 키워드는 ‘6배 빠른 롱텀에볼루션(LTE)’이었다. 이동통신 기업들은 세계 최초로 멀리 떨어져 있는 3개 주파수를 묶어 일반 LTE에 비해 6배까지 속도를 끌어올린 새로운 기술을 보였다.
MWC에서 5년 연속 단독 전시관을 운영한 SK텔레콤은 이번 행사에서 최고속도 450Mbps(초당 450메가비트)의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을 선보였다. 20㎒폭 광대역 밴드 3개를 묶어 ‘3밴드 롱텀에볼루션(3band LTE-A)’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기술은 기존 LTE(최고속도 75Mbps) 대비 6배, LTE-A 대비 3배 속도를 구현한다. 이 기술이 상용화하면 영화 한 편(800MB)을 내려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15초로 줄어든다.
KT는 이동통신망과 무선 랜을 묶어 최대 600Mbps의 속도를 내는 ‘광대역 LTE-A 헷넷(Het Net)’ 기술을 소개했다.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주력으로 하고 여기에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근거리 무선통신을 추가해 데이터 송수신을 하는 이종망 결합기술이다. 이 서비스는 올해 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LG유플러스도 중국 장비업체 화웨이와 함께 주파수를 묶어 450Mbps를 내는 기술을 시연했다. 3밴드 LTE-A가 활용될 수 있는 휴대폰은 올해 말이나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이 외에 삼성전자, 에릭슨, NSN, 화웨이 등 장비 업체도 최고 속도가 450Mbps에 달하는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최진성 SK텔레콤 정보통신기술(ICT) 원장은 “통신 시장에서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망은 가장 큰 경쟁력이자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라며 “전 세계 기업들이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앞다퉈 기술개발에 나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차이나 파워’
‘차이나 파워’는 올해도 빠지지 않는 이슈였다. 이번 MWC 행사에서 중국 기업들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선보이면서 경쟁사들에 경종을 울렸다.
중국 화웨이, 레노버, ZTE가 내놓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유럽과 한국의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비교해서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인도, 동남아 등 신흥 시장을 겨냥한 중저가 스마트폰도 이번 행사의 화두였다. 박종석 LG전자 MC사업본부장(사장)은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 중저가 시장은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에 보급형 LTE 스마트폰 공급을 시작했고, 노키아는 최저 89유로(약 13만원)짜리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노키아X를 공개했다. 레노버와 블랙베리도 200~250달러(약 21만~27만원) 수준의 스마트폰을 내놨다.
이번 MWC 2014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의 자리를 넘보는 제3의 모바일 운영체제(OS) 진영이 세를 확대하기 위한 기싸움을 치열하게 펼쳤다. 특히 삼성전자가 타이젠을 탑재한 스마트워치 ‘기어2’를 전격 선보이면서 새로운 모바일 OS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도하는 타이젠 연합은 행사 하루 전날인 2월 23일 단독으로 ‘타이젠 리셉션’을 열었다. 료이치 스기무라 타이젠 연합 의장은 이 자리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15개의 새로운 파트너사가 타이젠 연합에 합류했다”며 “타이젠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가 올해 본격적으로 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러리스 카메라 ‘NX300’에 타이젠 OS를 적용했고, 향후 스마트TV에도 타이젠 OS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타이젠을 탑재한 제품은 안드로이드 기반 갤럭시 제품과 연동된다”며 제품 확산에 문제가 없음을 시사했다.
새로운 OS의 등장은 모바일 생태계 활성화를 통해 소비자 선택의 폭이 커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난 2012년 타이젠 OS 첫 버전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 기세는 대단했다. 특히 한국은 지나치게 특정 OS에 종속돼 있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안드로이드 거인인 삼성이 선보이는 새로운 OS에 거는 기대감이 컸고,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냉장고 등 모든 전자기기에서 채택될 수 있는 리눅스 기반 모바일 OS로 주목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LG전자, 레노버, ZTE, 폭스콘 등 9개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현재 윈도폰OS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있는 삼성전자, HTC, 화웨이 등 3사에 더해 총 12개 제조사가 윈도폰을 만들게 됐다. MS는 오는 4월 연례개발자콘퍼런스에서 윈도폰8.1 OS를 공개해 확산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중소기업들도 당당히 글로벌 무대에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우분투 OS 역시 모바일용으로 변신을 선언하고 중국의 메이주와 스페인의 BQ를 제조 파트너사로 소개했다. 이와 함께 모질라는 이번 MWC에서 파이어폭스 OS를 탑재한 25달러(약 2만7000원)짜리 스마트폰 시제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올해 말 출시될 이 단말기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2세대(G)용 스마트폰이다.
이번 MWC 2014에서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당당히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글로벌 무대에 선보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한국관’을 설치하고 최대 규모인 21개 국내 중소업체 부스를 지원해 홍보를 도왔다.
스마트폰 사용자 환경(UI) 전문기업 ‘웰게이트’는 구글의 크롬캐스트와 유사한 안드로이드 TV 스틱 ‘유스틱’을 선보였다. 직접 시연을 보여준 강승용 웰게이트 영업본부장은 “비싼 스마트TV를 사지 않아도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우리 기술을 세계 시장에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알서포트는 모바일 멀티미디어 허브 애플리케이션(앱) ‘모비즌(Mobizen)’을 공개했다. 모비즌은 인터넷 화면에 스마트폰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 컴퓨터를 통해 스마트폰을 제어할 수 있는 앱이다. 지문인식과 휴대폰결제가 결합된 다날의 차세대 모바일 결제서비스 ‘bioMe’도 이번 MWC 행사에서 관람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SK텔레콤도 유망 중소협력업체를 선정해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 모바일 성능관리 솔루션 시장에 뛰어들어 우수한 성능과 합리적 가격으로 인정받는 ‘비바엔에스’, SK텔레콤과 공동 개발한 롱텀에볼루션(LTE) 모바일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제품을 들고 나온 ‘아라기술’ 등도 자사 기술을 마음껏 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