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뒤집을 듯한 큰 대풍이 불어와 소나무 수천 그루가 뽑혔다.’
'고려사'에서 충해왕 2년(1341년)에 발생한 태풍을 기록한 글이다. 바람의 강도는 ‘나무가 부러졌다’, ‘나무가 뽑혔다’, ‘기와가 날아갔다’, ‘건물이 무너졌다’는 등의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태풍을 ‘대풍(大風)’이라 불렀다.
중국에서는 태풍을 바람이 강하고 바람 방향이 빙글빙글 돈다고 하여 ‘구풍(颶風)’이라고 한다. 현재처럼 ‘태(颱)’라는 글자가 사용된 것은 1634년 편집된 ‘복건통지(福建通志) 토풍지(土風志)’에서였다. 태풍(颱風)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06년이었다. 일본 학자들이 태풍의 영어 단어인 ‘Typhoon’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 단어로 태풍을 만들어냈다. 일본 중앙기상대가 간행한 '기상요람(氣象要覽)'에서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이때부터 태풍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게 된다.
태풍이 워낙 강력해서일까. 각 문화권에서 태풍신은 엄청난 힘을 가진 신으로 그려진다. 그리스신화의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들고 땅과 바다를 가르는 태풍을 부른다. 중동신화에 나오는 마르둑은 괴물 등 위에서 태풍을 조종한다. 일본신 스사노오는 태풍과 큰 물결을 일으킨다. 마야신화의 최고 신 우라칸은 태풍신이다. 우라칸은 영어로는 허리케인(hurricane)이고 프랑스어로는 우라간(ouragan)이며 독일어로는 오르칸(Orkan)이라 불린다.
2010년부터 한반도 이상기온, 현재진행형
지난해 9월 폭우로 물에 잠긴 세종로 사거리
태풍은 그 기본적인 성격이 열대성 저기압이므로 태풍 발생 조건은 강하게 발달할 수 있는 열대성 저기압의 발생 조건과 같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풍이 발생하는 열대 서태평양 지역의 해수면 온도(Sea Surface Temperature)가 높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27도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수분의 증발로 인해 나오는 잠열이 태풍의 주된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류권 중층의 상대습도가 커야 한다. 태풍은 대류권 상부까지 발달하는 거대한 열대성 저기압이므로 초기 생성하는 단계에서는 태풍 자체적인 불안정성이 커야만 발달할 수 있다.
셋째, 대류권 하층의 회전하려는 성질(절대와도, Absolute Vorticity)이 커야 한다. 태풍은 자체적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회전하려는 성분이 태풍의 성장 및 발달에 역학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런 조건들을 갖춰 태풍이 발생하면 점차 발달하면서 주변 기압계에 따라 이동하게 된다.
올해 태풍과 더위를 예측하기 위해선 전년도 기상분석은 필수적이다. 날씨는 일정한 트렌드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 초부터 이상기상이 발생했다. 지난해 1월4일 서울에 25.4cm의 폭설이 내리면서 80년 만에 최대량을 기록했다. 겨울철 내내 기록적인 혹한이 몰아쳤다. 3월 하순부터 4월 말까지 40년 만의 이상저온 현상이 지속됐다. 비가 자주 내리면서 봄철 강수일수가 40년 만에 가장 많았고 봄철 일조시간도 평년 대비 76.8%밖에 되지 않았다. 봄철 황사도 역대 최고 농도를 기록했다.(2010년 3월20일 흑산도, 2712㎍/㎥) 여름에 접어들면서 이상기상은 힘을 더 받았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이례적인 발달로 여름철 92일 중 81일 동안 전국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은 폭염이 찾아왔다. 추석 전날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는 100년 만의 기록이었다. 몇 년 동안 잠잠했던 태풍도 무려 3개나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특히 서해상을 타고 북상하다 인천 지역에 상륙한 태풍 곤파스는 예상보다 큰 피해를 가져왔다. 가을철엔 강한 황사가 서울을 내습하더니 겨울로 접어들면서 혹한이 닥쳤다. 2010년 12월 하순부터 시작된 혹한은 37일간 지속되면서 가장 오랜 한파기록을 갈아치웠다. 평년보다 낮은 기온은 올 4월까지 이어지면서 봄이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4월 말부터 기온이 높아지면서 작년보다 더 더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마디로 이상기상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상기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지구온난화를 들 수 있다. 지구온난화는 지속적인 기온상승을 가져온다. 엘니뇨에서 라니냐로의 급격한 열대 태평양 해수면온도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동태평양 해수온도가 높은 엘니뇨현상이 2010년 5월 이후 급격하게 해수온도가 낮은 라니냐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례적인 발달도 한몫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발달로 폭염과 열대야가 장기간 지속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태풍도 정상적인 발생 범위인 북위 5~15도 부근이 아닌 20도 부근에서 발생해 급속히 이동하는 특성을 보였다. 또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 발달한 대기 불안정의 영향으로 8월 이후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했다. 비가 많이 오면서 기온이 높았던 이유다.
7~8월보다 9월에 강력한 태풍 상륙
그렇다면 2011년 여름 기상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첫째, 지구온난화현상은 올해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지구온난화는 조금씩 기온이 상승하는 지속적인 현상이기에 기온이 높아짐과 동시에 강수량의 증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올 여름도 평년보다는 더울 확률이 높다.
둘째, 라니냐는 2010년과 가장 다른 변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6월부터는 동태평양의 해수온도가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세계적인 예보기관들이 예측하고 있다. 라니냐가 종료되더라도 피드백 되는 여름철까지는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발달은 작년보다 강하지 않겠지만 평년보다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
북태평양 고기압지역의 해수온도 또한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올 여름도 작년처럼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강하게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 여름철 강수량과 기온에 영향을 주는 티베트 동부 눈 덮임 면적은 평년보다 넓은 상태를 보이고 있다. 여름 중반 이후 티베트 상층 고기압의 확장은 동아시아 지역의 상층 기압골을 태평양 쪽으로 이동시킨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방향으로 더 발달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다섯째, 유사년도의 경우다. 지금까지 라니냐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해는 최근 1999년과 2008년이었다. 이때 장마 기간은 강수량이 적었다. 올해도 장마 기간보다 그 이후인 8월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대류불안정에 의한 호우가 더 많은 비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여섯째, 태평양 해수온도의 변화다. 태풍 발생지역의 해수온도는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태풍 빈도 및 강도 분석을 보면 발생 빈도는 30% 감소, 강도는 증가 추세에 있다.(<일본기상학회지>, 2006) 라니냐 유사년도 분석에서도 태풍은 평년보다는 다소 적거나 비슷하다. 그러나 태풍의 장기변동성으로 볼 때 발생 횟수는 비슷할 것으로 보이며 더 강한 강도의 태풍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상의 여러 가지 분석 자료 외에 미국의 WTI자료, 영국기상청과 유럽자료(ECMWF), 일본기상청 자료를 참고하고 오랜 기간 자체 예측기법을 종합해 전망한 케이웨더 예보센터의 2011년 여름 태풍 및 이상기온 전망은 다음과 같다. 전반적으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다소 일찍 발달하면서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7월은 평년과 비슷하고 8월은 평년보다 무더운 가운데 폭염과 함께 열대야도 평년보다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더운 찜통더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2010년 여름처럼 비도 많이 내리면서 폭염이 발생하는 독특한 기상은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무덥고 비도 평년보다 많겠다. 특히 장마가 끝난 후 지역에 따라 발생하는 게릴라성 집중호우도 1~2차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태풍은 최근 10년 간(2001~2010년) 23.0개가 발생해 2.5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평년보다 약간 많은 2.5~3.5개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7월과 8월 중에 2개 정도, 9월에 1개 정도가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 9월에 북상하는 태풍은 7월과 8월보다 더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이젠 비가 내리면 호우의 형태를 보인다. 기온도 예측 이상으로 올라가 폭염이 기상재난에 속할 정도로 무섭다. 태풍의 강도도 점차 강해지면서 슈퍼 태풍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많은 피해를 가져오는 낙뢰도 평년보다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천재지변처럼 발생하는 폭염이나 태풍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정확한 예측과 대비로 피해는 최대한 줄일 수 있다.
태풍과 폭염은 피해 예방이 최선
먼저 태풍에 대비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태풍권으로 들어가면 정전과 단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라디오, 랜턴, 배터리 등을 준비하고 물을 충분히 저장해 둬야 한다. 둘째, 강풍에 유리창이 깨질 수도 있으므로 테이프를 X자로 붙여 파편이 튀는 걸 방지해야 한다.
셋째, 바람에 날아가기 쉬운 깡통과 각종 연장 등은 미리 치운다.
넷째, 축대나 담장 등을 미리 점검한다.
다섯째, 라디오나 TV를 통해 태풍의 위치를 확인하고 태풍이 통과한 후에도 다시 바람이 강해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섯째, 일 강수량이 100mm가 넘거나 시간당 20mm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하면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도심지역도 시간당 강수량이 20mm를 넘으면 홍수나 침수 피해에 대비해야 하며 가로등, 신호등 및 고압전선 근처는 피해야 한다.
일곱째, 호우가 내리면 산간 계곡 근처 거주민들은 토사 유실을 경계해야 한다.
여덟째, 해수욕장 폐쇄 및 가시설물을 철거해야 하며 냇가나 계곡 등지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아홉째, 침수 등으로 오염된 음식물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열째, 습기 찬 전기기구는 절대 이용하지 말고 말린 후에 점검해야 한다.
열한째, 해안지역 저지대 및 상습 침수지역 등 재해위험지구 주민들은 대피를 준비해야 한다.
폭염 피해 예방법은 무엇일까. 2003년 유럽에 몰아닥친 폭염으로 3만5000명이 죽었다. 이 중 2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한 프랑스는 경악했다. 과학과 의료의 선진국이며 사회적인 인프라가 가장 잘 구축돼 있다던 프랑스의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폭염은 열사병 등 열중증 질병을 유발시켜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대책을 알아보자.
첫째, 정부는 폭염이 국민들의 건강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및 대책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폭염은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둘째, 정부는 폭염이 예상되면 개인 건강에 주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TV·라디오 등에서 매시간 기온을 알려 외출을 삼가거나 쉴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신문 등에선 건강관리 코너를 연재해 햇볕에 의한 피부화상, 일사병, 열경련, 열에 의한 피로, 뇌일혈 등에 대한 예방법과 대처방법 등을 알려줘야 한다.
셋째, 병원에서는 폭염이 발생하면 어린이·노약자·고령자 등을 우선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넷째,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재난방송을 청취한다. 다섯째, 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만일 외출하게 되면 햇빛을 차단해야 한다. 여섯째, 열이 나고 두통이 심할 때는 즉시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 피곤한 일을 삼가고 체력을 보전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평상시에 재해 관련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면 위급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작은 노력으로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최근의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과거의 모든 기록을 갱신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상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 여름 태풍과 이상기온에 철저히 대비해 피해가 없는 여름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