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빈자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과 시대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욕심 없는 사람은 적게 가져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대에 맞지 않는 기준은 한국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1% 부자는 분산투자하는데… 여전히 부동산 집중 과세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에만 초점이 맞춰진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이다. 정부는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재산세 과세표준액 기준으로 9억원(시가 18억원 상당)을 초과하는 자산보유자에 대해서는 자녀의 직장 건강보험 피보험자 자격을 박탈할 계획이다. 여기서 자산은 부동산이 중심이고 금융재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작은 집에 살며 세금 안 내는 고리대금업자는 자녀의 직장에서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를 대신 내준다. 하지만 현금이 없는 부동산 보유 노인은 앞으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한 달에 22만원 이상(자산 9억원 기준)의 건보료를 내야 한다.다양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 있는 ‘스마트’한 부자들은 이 같은 기준을 피해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얼마든지 건보료 납부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10년 가계 금융조사 원시자료(표본대상 1만 가구)를 입수해 자체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1% 부자의 포트폴리오는 거주주택(22%), 투자용 빌딩(57%), 저축액(13.8%) 등으로 다양했다. 지난해 금융자산을 2009년에 비해 크게 늘렸다는 응답이 49.8%에 달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겠다’는 것이다.무엇보다 큰 문제는 부동산 등 특정 자산에 집중해 세금을 매기게 되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5년 전면 시행된 종합부동산세 제도의 경우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씩 세금이 부과되는 바람에 세금 납부를 제때 하지 못하는 ‘부동산 부자’들이 속출했다.프랑스는 과세 대상자가 전년에 냈던 모든 세금을 합쳐 당해 연도 소득의 30%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땅이나 집이 많은 부동산 부자들이라 하더라도 당장 세금을 낼 현금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10년 간 두 배… 소득세는 10% 인상
소득세 과세표준(이하 과표)의 기준과 구간이 경직돼 있는 것도 문제다. 현재의 고소득 기준 8800만원은 1996년 설정된 8000만원에서 10% 인상된 것이다. 그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얼마나 성장했는가. 1996년의 1007만 원에서 무려 두 배 넘게 상승했다.
소득세 과표 구간이 경직돼 있다 보니 소득재분배 효과가 미미해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소득재분배를 위해 부자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고 있지만 정작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6월 초 조세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과세자 854만1000명 가운데 상위 20%(근로소득자 상위 12%)가 부담한 금액은 10조8897억원으로 전체 세액 12조8518억원의 84.7%를 차지했다. 전체 근로자 중 40%는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하지만 재분배 효과는 낮았다. 2009년 귀속분 소득세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은 소득세 과세로 지니계수 감소율(3.2%)이 작은 반면 선진국의 경우 소득세 과세로 지니계수 감소율이 뚜렷했다. 캐나다 10.9%, 영국 8.1%, 미국 6.5%, 뉴질랜드 5.4% 순이었다. 지니계수란 소득 분배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런 모순을 시정하려면 과세표준을 물가상승률에 연동시키고 구간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표가 물가에 연동되면 모든 개인이나 법인이 실질소득에 합당하게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 등 많은 선진국이 과표를 인플레이션에 연동해 매년 조정하고 있다.
빈자(貧者)의 기준도 들쭉날쭉
그렇다면 빈자의 기준은 어떨까. 정부 부동산 구입 자금 대출 정책의 기준은 들쭉날쭉하다.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신용이 양호한 만 20세 이상, 부양가족이 있는 무주택 세대주가 그 대상으로 연소득 3000만원 이상 계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원 내용이 대동소이한 ‘저소득가구 전세자금 대출’은 지원 대상이 최저생계비의 두 배 이내 계층이다. 신혼부부 등에 지원해주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은 부부합산 연소득이 4000만원 이하다.이 기준에 맞는 대상 계층을 확인해보면 허구성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임금계층별 근로자수 통계를 분석해보면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 대출 제도(연 3000만원)의 혜택을 받는 월 소득 240만원 이하 계층은 전체의 54.9%나 된다. 5세 미만 아동에 대한 지원 기준은 월소득인정액 480만원 수준으로 전체의 70%가 수혜를 받게 될 전망이라는 것이 정부의 추정이다. 심지어 만 5세 아동의 보육료 지원 기준은 혜택 대상 계층이 전 계층이다.물론 정부가 가능한 한 많은 계층에 정책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그다지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복지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기준은 가난한 계층의 근로 의욕을 꺾어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재정 건전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의 남발은 국가 경쟁력의 약화를 부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