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6일 개시된 중국•대만 경제협력기본협정(이하 ECFA)이 6월25일 타결됐다. FTA와 같은 통상협정이 보통 협상기간만 2~3년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ECFA가 5개월 만에 초단기간 협상으로 타결됐다는 것은 그만큼 양측의 타결의지가 확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CFA가 이처럼 급진전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경제협력이라는 실용적 이슈를 중심으로 양안관계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 대만의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은 중국대륙 중심의 1국가 2체제 통일방안에 맞서 대만의 독립을 주장했다. 이에 중국대륙은 대만 독립 선포 시 무력 개입을 상정한 반국가분열법 제정과 대대적 군사훈련 실시 등 천수이볜 정권 내내 양안 간 안보적 긴장은 매우 높이 지속됐다.
양안관계의 급속한 진전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는 통일이냐, 독립이냐 하는 양자택일형 질문 대신 악화된 대만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대만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국인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대만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걸고 2008년 정권 탈환에 성공한다. 머나먼 독립의 길과 계속되는 대륙과의 긴장 속에 지쳐가던 대만인들은 실용노선의 마잉주를 선택했고, 마잉주는 공약대로 집권 후 대륙과 경제협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여기서 마잉주 정권의 탄생에서 ECFA의 체결까지 중국공산당의 적극적 지지가 핵심적 역할을 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중국의 대만 정책의 핵심은 ‘하나의 중국(One China)’ 원칙을 유지하되, 대만의 독립은 불허하는 것이다. 특히 대만의 천수이볜 정권의 등장 이래 통일은 장기적 과제로 접근하되, 먼저 대만 내 독립 움직임을 차단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경제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현재, 당장 무리한 통일을 추진하기보다 먼저 경제협력을 강화해 대만 내 우호적 세력을 지원하고, 동시에 대만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높여 장기적 통일 기반을 형성한다는 노선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국 지도층 간 입장 전환은 2008년 마잉주 집권 후 양안 간 직접 통상(通商•무역), 통항(通航•교통), 통신(通信•우편)이라는 역사적인 ‘대삼통(大三通)’의 허용, 중국 여행객의 허용 숫자 증가 및 투자 규제 완화 등 대만 측 조치와 대만 물품 우선구매와 투자 규제 완화 등 중국의 대대만 경제우대조치 발표 등으로 인해 소위 차이완(Chiwan) 시대의 개막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최근 양안 경제협력 강화와 ECFA 타결은 양안관계 전반이 실용주의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파악돼야 할 것이다.
대만의 실리와 중국의 장기적 관점
ECFA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동일한 것이다. 다만 중국•대만 간 정치적 관계를 감안해 국가 간 협정의 뉘앙스가 강한 FTA보다 양안 간 특수관계를 반영한 ECFA란 명칭을 사용한 것뿐이다. ECFA의 명칭 유래를 살펴보면 당초 대만은 ECFA를 중국•홍콩 간 FTA라 할 수 있는 경제긴밀화협정(CEPA: 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중국이 자국의 일부인 홍콩과 CEPA를 체결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당초 홍콩은 1997년 중국에 귀속되기 전에 이미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WTO 회원국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귀속된 후에도 홍콩은 여전히 WTO 회원국으로 남아있었다. 이로 인해 중국•홍콩 간 내부교역에서 상호 부여되는 혜택이 WTO 최혜국 규정(MFN) 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양측은 WTO 규정의 예외로 FTA(CEPA)를 체결하는 방법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과 유사한 협정모델을 상정했으므로 CEPA라는 명칭 사용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홍콩은 실질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모두 중국의 일부가 되었고, CEPA의 명칭도 국가 간 협정을 의미하는 Agreement 대신 그보다 의미가 약화된 Arrangement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중•대만 경제협정에서도 이와 동일한 명칭을 사용할 경우 국제적으로 마치 대만이 홍콩과 같이 중국에 귀속된 인상을 줄 수 있다. 이에 대만 국내적으로 독립파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음을 우려한 마잉주 총통의 지시로 ECFA란 명칭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FTA와 같은 국제통상협정은 협정문과 시장개방 분야를 명기한 양허안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ECFA와 같은 ‘기본협정(Framework Agreement)’은 협정의 주요 권리의무만 명기하고 구체적 시장개방 리스트는 포함하지 않는 것이 상례-따라서 ECFA 협정문에는 ECFA 발효 후 6개월 내에 상품과 서비스의 구체적 시장개방협상을 개시하기로 명기한 상태다-인데 중국•대만 간 ECFA는 기본협정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대만 측 요구로 조기수확 프로그램(Early Harvest Program)―중국이 기체결한 FTA 가운데 중•파키스탄, 중•아세안 FTA에서 조기수확 리스트를 작성한 선례가 있다-이라는 선 개방 품목이 협상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ECFA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의 핵심은 바로 이 조기수확 리스트에 있다 하겠다.
먼저 중국이 조기수확 리스트를 통해 대만에게 개방한 분야를 보면, 상품 분야에서는 석유화학(88개), 기계(107개), 방직(136개), 농산품(18개), 운송공구(50개) 등 총 539개 품목을 3년에 걸쳐 무관세화를 약속했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보험•은행•증권 등 금융서비스, 회계•영화•의료서비스•컴퓨터와 연구개발 서비스 등 11개 분야를 개방했다. 특히 금융의 경우 보험, 은행, 증권 3개 분야를 개방했는데 보험업의 경우 총자산이 50억 달러 이상, 보험회사 경영경험 30년 이상, 중국대륙에 대표사무소 설립 2년 이상 등 요건을 충족할 경우 대만 보험회사의 인수합병을 허용했다.
이에 반해 대만 측 개방 분야를 보면 석유화학(42개)•기계(69개)•방직(22개)•운송공구(17개)•기타(117개) 등 6개 분야에서 267개 상품을, 서비스 분야는 연구개발•컨벤션전시•영화•위탁판매•엔터테인먼트•항공위치추적서비스 등 9개 업종을 개방했다. 관심이 집중된 금융서비스의 분야의 경우 대만은 중국과 달리 은행 서비스만 일부 개방했다.
ECFA는 중국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적 양보를 한 협상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ECFA의 경제적 효과를 양측이 합의한 상품 조기수확 리스트에 기초해 분석해 보면 대만의 경제적 혜택이 월등한 불균형적 결과가 도출됐음을 알 수 있다. 즉 양측 개방 분야 비교 시 개방품목은 중국이 두 배나 많으며, 금액 기준에서도 대만의 수혜 분야가 중국보다 4.8배나 크고, 평균 관세율도 중국이 높아 대만의 경제적 혜택이 더욱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ECFA 협상에서 단순히 손해만 본 것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한 점이 있다. 관세 인하를 제외한 장기적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은 대만의 자본 유치나 선진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대만의 선진기술을 획득해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를 마련, 대만과 교역 시 위안화 사용을 장려해 장기적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 등 보다 원대한 시각에서 협상에 임한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ECFA와 대응 방향
중국은 지금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중국 진출은 과거와 같은 저임금에 기반을 둔 생산업체 설립보다 날로 거대해지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중국 시장에서 현재 대만과 우리나라는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와 대만의 대중국 상위 20대 수출품목을 보면 14개가 중복되는데, 여기에는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전자부품, 화학제품 등이 포진해 있다. 물론 14개 품목 모두가 ECFA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등 IT 관련 품목은 정보통신협정(ITA)이라는 다자간 협정으로 한국·중국·대만 모두 무관세로 거래되기 때문에 ECFA로 인한 피해산업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학제품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이 6% 이상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
전체적으로 ECFA로 인한 우리나라의 손실은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아직 크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ECFA는 ‘기본협정(Framework Agreement)’인 바 협정 발효 후 6개월 내 상품과 서비스 분야의 추가협상을 진행하게끔 되어 있다. 지난 8월17일 대만의회에서는 이미 ECFA가 비준됐으므로 중국만 전인대에서 비준될 경우 ECFA는 곧 발효될 것이다. 이 경우 양측은 6개월 내 추가협상을 개시하게 돼 있어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ECFA 추가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만에서는 추가협상에서 LCD와 같은 전략 수출품목의 관세를 철폐해 중국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과 경쟁에서 확실히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ECFA 후속협상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세계시장으로 부각되는 중국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국가적 대응책 마련이 요구된다 하겠다.
ECFA에 대한 정부 및 기업 차원의 대응방안으로 먼저 중국·대만 ECFA에 맞서 지체되고 있는 한·중 FTA 추진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중 FTA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대만과 경쟁하는 품목은 우리도 ECFA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획득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한·중·일 FTA의 추진 등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의 허브로서 우리나라의 역할 강화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 경쟁국인 일본의 경우 대만과 중국 시장에 공동진출하는 것이 일반화 돼 있어 ECFA로 인한 충격에서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따라서 그동안 사실상 무시된 대만과 기업 및 정부 차원의 경제협력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경제협력 활성화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조업 생산기지로 각광받던 중국이 최근 노사분규와 임금 상승으로 점차 매력도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으로 진출한 우리 업체들은 새로운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데 지리적·문화적으로 근접하고, 비용 경쟁력이 있는 북한은 유력한 대체지라 할 수 있다. 또한 ECFA와 같이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이 결합된 남북한 경제 공동체 성립은 우리나라의 경쟁력 강화와 차이와는 효과가 주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