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충동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영호텔이 있다. 1955년 금수장 호텔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문을 열고 있다. 물론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세월에 따라 이름은 물론 외관도 바뀌어왔다. 이 호텔은 최근 또 다시 확 달라진 모습으로 업계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데, 바로 앰배서더 서울 풀만이다.
앰배서더 서울 풀만이 약 2년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끝내고 지난 1월 말 문을 다시 열었다. 말이 리노베이션이지 새롭게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조만 그대로일 뿐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커튼월로 시공된 외부는 세련미를 자랑하고 실내는 베이지, 라이트 그레이 등의 색감을 주로 써 밝은 이미지를 연출한다. 여기에 객실 등 곳곳에 한국 전통미를 더해 풀만만의 독특한 감각을 표현했다. 리노베이션과 함께 지붕이 개폐식으로 설계된 수영장과 각종 연회·행사 등이 가능한 루프톱이 변화된 호텔을 상징한다.
하지만 정작 호텔이 강조하는 것은 이런 외형적인 것들이 아니다. 60여 년을 넘는 긴 시간을 관통하는 호텔의 역사성과 축적된 노하우다. 유춘석 앰배서더 서울 풀만 대표는 매경럭스멘과의 인터뷰에서 “리모델링을 시작하면서 금수장에서 출발해서 지금에 이른 지난 시간과 경험들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는 틀을 세웠다”면서 “이런 것들이 호텔 곳곳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풀만은 호텔 로비부터 이를 엿볼 수 있게 했다. 호텔에 들어서면 가로 821㎝, 세로 257㎝의 대형 디스플레이가 마주하는데, 미디어아트 거장인 이이남 작가가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전도>를 소재로 만든 <금강의 빛>이란 작품이 펼쳐진다. 작품 속에는 호텔의 출발점인 금수장도 녹아 들어가 있다. 4계절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민족의 명산 금강산이 우리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으며 누구나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인 것처럼, 풀만도 계속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안주하지 않으며 누구나 찾고 싶은 장소로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새롭게 태어난 호텔의 키워드는 고객중심이다. 설계도 고객 편에서 생각하고 구현해냈으며, 최신 산업 트렌드도 적극 반영해 편의성을 더했다. 호텔의 외벽은 커튼월로 처리했는데 이는 투숙객들의 외부 조망권을 더 넓게 확보하기 위해서 선택한 공법이다. 실제 객실 내에서 바라보는 남산과 도심 조망은 전혀 답답하지 않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도입해 객실에서 TV 리모컨 하나로 룸서비스 메뉴 주문 및 컨시어지 등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창문커튼을 열고 닫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리모델링을 하면서 호텔 전용 플랫폼 ‘스마트 스테이’를 새롭게 도입했기 때문이다. 투숙객은 객실 내 마련된 서비스 관련 책자를 찾는 수고로움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TV 화면을 통해 나타나는 각종 메뉴를 선택만 하면 된다.
또 업계 최초로 태양광 시설을 도입해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실천하고 있다. 이를 인정받아 녹색건축물 인증 최우수 등급을 획득했다. 특색 있는 객실들을 마련한 것도 변화된 풀만의 또 다른 포인트다. 도심의 중심지 고급 호텔로는 드물게 2층 침대가 있거나, 미끄럼틀이 설치되는 등 수요층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준비됐다. 미식 라인업도 탄탄하게 준비했다. 라이브 뷔페 더킹스(The Kings), 새롭게 선보이는 유러피안 파인 다이닝 ‘1955 그로세리아(Groceria)’, 철판요리 등을 만날 수 있는 ‘더 쉐프스 테이블(The Chef's Table)’, 중식 대가가 음식을 내놓는 호빈 등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풀만의 리노베이션 결과물들은 눈길을 확 사로잡지만, 사실 호텔의 이 같은 변신은 좋지 않은 일에서 시작됐다. 2년 전 호텔은 화재란 대형 악재를 만났고, 이것이 호텔을 싹 뜯어고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화재로 건물 자체 손상은 물론 각종 예약 행사가 취소되는 등 호텔은 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코로나19란 전대미문의 전염병까지 퍼지면서 풀만은 호텔 역사상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수많은 기업이 넘어갔던 IMF 때보다 더 큰 위기감이 호텔 내에 퍼졌다는 것이 유춘석 대표의 설명이다. IMF 당시는 국가 부도의 상황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호텔업계는 한국을 투자 적기로 보고 밀려드는 외국 투자자들로 인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여건이 됐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돌파구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앰배서더그룹은 이 악재를 호텔 리노베이션으로 뚫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아예 새로운 호텔로 만들어 다시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는 전략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강화가 실시되면서 어차피 영업환경은 ‘이 보다 안 좋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차라리 문을 닫고 ‘새로운 변신’을 꾀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2년 전 선택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여전히 코로나19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지만 호텔업계의 영업환경은 이 전염병의 발발 초기에 비해 조금은 달라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 방역에 지친 이들의 억눌린 여행, 휴식에 대한 수요는 계속 커지고 있지만,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현실에서 여전히 갈증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 이런 가운데 이들은 그 대안으로 국내에서 대리만족할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고, 앰배서더 풀만 같은 새 고급 숙박시설이 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얼리어답터들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숙박 환경은 물론, 식음료까지 꽤 만족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물론 부정적 지적도 피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호텔 측은 이를 빠른 피드백과 개선으로 해결하고 있다. 재개장과 더불어 트래픽 관리 등 소셜미디어(SNS)상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가도 신규 채용했다. 현재 호텔은 부분 개장 상태다. 일부 시설은 아직 공사를 진행 중이며, 전체 개장은 3월께로 예상된다.
새롭게 태어난 앰배서더 서울 풀만은 업계 경력만 30년이 넘는 유 대표가 이끌고 있다. 전통 호텔리어로 평사원에서 대표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서정호 앰배서더 호텔그룹 회장이 직접 영입했다고 한다. 유 대표는 4년 전 그룹에 합류했다. 유 대표는 “숙박에서 끝나는 호텔이 아닌 고객들에게 추억과 경험,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의 목표”라고 말했다.
“추억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콘텐츠로 다가갈 것”
유춘석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대표
다음은 유춘석 대표와의 일문일답.
▶리모델링 후 고객들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2년 전 화재를 계기로 리모델링 작업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들에게 선보일 새로운 것들을 준비하는 소중한 기간이었습니다.
▶재개장한 풀만 호텔의 특징이 있다면요.
▷저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호텔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를 새 호텔에 녹여 발전된 모습으로 구현해낸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종종 한국형 호텔이라는 말을 쓰는데, 66년 역사가 축적된 호텔 운영 경험을 통해 이를 구현해 내고 싶습니다. 변화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 이번에 재개장하면서 로고와 심벌도 바꾸었습니다.
▶좀 추상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그래도 새 호텔 하면 여러 시설들이 먼저 눈에 띕니다.
▷물론 호텔에서 외관은 무시 못 할 요소입니다. 저희도 많은 신경을 썼고요. 없던 시설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웃도어 수영장과 루프톱입니다. 이 두 곳은 개폐형 천장이 도입됐는데, 고객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풀만 또한 럭셔리 호텔을 지향하시는데, 고급 호텔의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단순히 시설만 고급스럽다고 럭셔리 호텔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객들한테 새로운 감동을 주거나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호텔의 방향성 또한 이 지점에 있는데 럭셔리 호텔의 ‘한국형 표본’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일단 객실에 들어서면 모던하지만 동시에 한국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디자인적으로 한국적 감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던 것이고요, 또 시내 중심지란 입지와 남산이란 공간이 지척에 있는 점을 활용한 체험 콘텐츠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호텔이 머무는 공간에만 국한되면 그 가치가 빛을 바랜다고 봅니다. 호텔 투숙과 동시에 많은 경험과 추억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좋은 호텔의 조건이라고 봅니다.
다양한 레스토랑을 유치하려는 것도 이런 일환입니다. 다른 고급 호텔들도 식음료 분야가 경쟁력 있다고 내세우지만, 저희도 이 부분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사실 호텔 내 식당 운영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수지타산이 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저희는 각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면서 최상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소한 것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쌓여 풀만에 대한 좋은 이미지, 감성 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전 호텔을 둘러봤는데 객실 차별화가 눈에 띕니다.
▷맞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객실을 마련해 고객들의 선택 폭을 넓혔습니다. 투숙객들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패밀리형의 경우 이층침대와 미끄럼틀이 함께 마련돼 있습니다. 동시에 석조로 된 욕실도 객실 내 마련돼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투숙할 경우를 상정해 보면 구성원들이 각자의 즐길거리를 안전한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는 것이죠. 연인들이 방문해서 수영장과 연결돼 있는 객실을 이용한다면 로맨틱한 한때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고객 맞춤형 경험 제공이란 측면에서 고민한 결과물들입니다.
▶국내 럭셔리 호텔 업계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사실 국내 럭셔리 호텔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고객 수가 늘지 않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국가 산업 발전과 연관이 있습니다. 호텔 수요가 늘기 위해서는 한국의 투자 매력도가 올라가야 합니다. 특히 금융 분야의 발전이 필요한데,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금융 산업에 기회가 있거나 발전이 이뤄지면 럭셔리 호텔도 동반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단체 관광에만 의존한다면 국내 고급 호텔의 성장 한계는 뚜렷할 것이라고 봅니다.
▶비즈니스 수요와 관광 수요의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관광객의 경우 호텔을 숙소로만 이용하지만, 비즈니스의 경우 투숙 후 활동 반경이 꽤 큽니다. 그만큼 파생 효과를 더 기대할 수 있죠. 쉽게 말해 국내에 머물면서 소비하는 범위가 더 넓어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국내 럭셔리 호텔의 경우 비즈니스 쪽에 상당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를 키우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관광, 휴양을 타깃으로 한다면 지리적 여건에서 동남아의 경쟁력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호텔 수요에 대한 트렌드가 좀 변하는 것 같습니다.
▷M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의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경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다른 세대보다 더 과감한 것 같습니다. 주말의 경우 투숙객 중 상당 부분이 MZ세대들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응 방안이 있으신가요.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해서 제공하는 것이 저희의 숙제라고 봅니다. 차별화된 경험 혹은 감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기 힘듭니다.
그리고 디지털 분야에 대한 대응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이들이 SNS로 주고받는 경험의 파장이 꽤 크기 때문입니다. 온라인상 부정적 피드백이 있으면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30년 경력의 호텔리어로서 호텔업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입니다. 고급스러운 외관, 시설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동은 고객과 호텔이 서로 공감할 때 생겨납니다. 단순히 미소만 짓는다고 친절한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고객을 정말 따뜻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다른 호텔을 방문하실 때 가장 먼저 보는 포인트가 있으신가요.
▷사람을 제일 먼저 봅니다. 호텔리어들이 고객 응대를 할 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외형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좋은 호텔이라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시설 좋은 호텔들은 많지만 ‘사람’이 훌륭한 곳들을 찾기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호텔을 찾는 고객들의 수준이 상당합니다. 호텔에 대한 경험도 많아, 호텔들이 고객들의 니즈를 따라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호텔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노력들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죠.
▶현재 호텔 영업환경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힘들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국가 간 빗장이 여전히 걸려 있는 상태에서 수요도 자국민들에 국한돼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정상화됐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 상반기가 지나야만 어느 정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