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7일(현지시간), 세계 3대 마라톤으로 불리는 ‘뉴욕 마라톤’이 2년 만에 개최됐다. 50회째를 맞는 뉴욕 마라톤은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 여파로 열리지 못했다. 2년 만에 열린 뉴욕 마라톤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상징하는 행사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대한민국이 11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가운데, 사실상 위드 코로나 안정기에 접어든 미국이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일상으로의 복귀를 서두르고 있다. 감염자 폭증과 여전히 만연한 공포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지 미국을 거울삼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폭발적인 코로나 감염자를 양산했던 미국은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11월 7일 미국 뉴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중단됐던 ‘뉴욕 마라톤’이 2년 만에 열렸다.
▶뉴욕 마라톤 3만 명 참여
올해 뉴욕 마라톤은 평소보다 40% 적은 3만 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몇 개 그룹으로 나뉘어 레이스를 펼쳤고 관람객 숫자도 제한됐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였던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뤄지는 상황을 놓고 뉴욕 시민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는 상태다.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뉴욕 시민들에게는 올해 마라톤이 도시가 팬데믹으로부터 회복해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코로나19의 공포를 서서히 극복해나가고 있다. 백신 보급의 확대와 5~11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곳곳에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 도시 뉴욕은 완전히 멈췄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일상 복귀의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백신 접종 의무화라는 강력한 카드를 앞세워 조건부로 많은 활동을 허용 중이다. 일단 뉴욕 시내 식당을 이용하려면 백신 카드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식당 입장조차 허가되지 못한다. 또한 최근 개막한 전미농구협회(NBA) 경기를 비롯해 메이저리그, 전국풋볼리그 등 각종 스포츠 행사 역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만 입장 및 관람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확정지었다. 이러한 백신 의무화는 도시의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식당 등 백신 의무화 조건부로 활발히 영업
그동안 매출 감소로 허덕여온 식당 등 자영업자들은 북적이는 손님과 인파로 수입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썰렁하게 무관중으로 운영해온 스포츠 경기들도 뜨거운 응원소리와 열기로 가득차고 있다.
특히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뒤 입장을 허용한 만큼 해당 장소 내에서만큼은 감염 우려를 덜고 자유롭게 행사를 즐기거나 활동할 수 있어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는 분위기다.
미국을 대표하는 핼러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과 관련된 행사들 역시 속속 열리거나 개최를 준비 중이다. 지난 10월 핼러윈데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는 ‘트릭 오어 트릿’ 행사를 즐겼다. 지난해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분위기와 달리 가정집들은 핼러윈 분위기에 맞춰 집을 꾸미고 아이들을 맞이하는 등 핼러윈 분위기를 한껏 냈다.
추수감사절을 대표하는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역시 성황리에 개최됐다. 행사를 구경하는 현장 인원만 350만 명에 달한다는 전국적인 행사인 만큼 지난해 열리지 못했던 아쉬움까지 만회한 분위기다.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인 메이시스는 매년 대형 인형들과 음악대를 동원한 거리행진 퍼레이드를 개최해왔다. 작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못했다. 행사에 참여했던 조나단 메리언 씨는 “미국인들에게 이 행사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작년에 열리지 못한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념적인 행사를 구경했다는 점에서 진짜 코로나19가 멀리 물러선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영업자 숨통, 경제상황도 개선 기대
코로나19의 상징이 된 마스크 의무화 규정도 하나둘 완화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폐지하고 선택 사항으로 변경에 나선 셈이다. 대표적으로 조지아·루이지애나·사우스 캐롤라이나·테네시·켄터키·오하이오주의 일부 학교가 코로나19 확진자 수 감소를 이유로 마스크 착용을 선택사항으로 바꿨다. 텍사스 주의 경우 주차원에서 마스크 의무화를 금지했다. 또 오하이오주 페리스버그 교육구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대신 강력하게 권고한다는 지침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물론 뉴욕, 워싱턴주 등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교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있지만 학부모 및 학교의 반대에 부딪히며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마스크를 쓰면 감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라며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 등을 병행하면 언젠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을 끝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지표도 긴장감 속에서 점차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테이퍼링 시작 등으로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스닥, S&P 500 등 뉴욕 주가는 현재 역사상 유례없는 최고점을 돌파하고 있다. 당분간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 속에서도 코로나19가 불러온 근로형태의 변화, 수익구조의 재편 등으로 기업들이 더 나은 성과와 실적을 거두면서 향후 이러한 실적 중심의 기업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여전히 미국인 상당수가 구직활동을 멈춘 채 일자리 복귀를 미루고 있어 노동 시장에서의 불안감은 잔존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경제가 소비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자영업자와 숙박업 등 서비스 소비가 살아나고 있어 경제 전반적으로는 훈풍을 불어넣고 있는 분위기다.
앞으로도 미국 내 서비스 소비가 늘어나고 고용회복세가 점진적으로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으로선 좋은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지만 미국 내에서는 점진적인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엿보이고 있다.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그동안 멈췄던 문화관련 행사들도 속속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오징어 게임>의 열풍 덕에 세계 경제·문화의 중심지인 뉴욕 한복판에서 <오징어 게임> 놀이가 재현되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0월 개최한 ‘오징어 게임과 함께하는 뉴욕 속 한국여행’에서는 미국인 80명과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한국 관광문화를 간접 체험하고 ‘달고나’ ‘딱지치기’ 등 전통놀이를 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1주일 만에 3114명이 신청해 높은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 속에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오프라인 행사가 하나둘 재개되면서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역시 11월 5일 미국 뉴저지주 아메리칸드림몰에서 한국 소비재 기업의 미국 수출을 지원하는 ‘K-라이프스타일 미국’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뷰티, 식품, 패션 등 소비재 분야 53개 제품들이 전시돼 온라인 수출 상담회, 온라인 지식재산권 설명회 등이 곁들여 진행됐다. 이번 행사 역시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어온 행사들과 달리 현장에서 직접 소비자들과 만나고 제품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뉴저지 주민은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았으나 이렇게 직접 체험하고 경험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처럼 직접 한국 관련 제품을 써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11월 5일 뉴저지주 아메리칸드림몰에서 한국 소비재 기업의 미국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K-라이프스타일 미국’ 행사가 열렸다.
▶백신 의무화 반대 진통… 공무원·시민 등 시위 반발
이처럼 위드 코로나의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위드 코로나가 불러온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사실상 코로나19 이전의 경제활동이 재개될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다시금 집값 상승과 중고차 가격 상승 등 실생활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활발한 재택근무 확대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거주비 축소를 위한 이사를 이끌어냈다. 굳이 비싼 중심지 거주를 포기하는 대신 보다 넓고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늘어난 바 있다. 하지만 사실상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다시 뉴욕,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등 주요 도심 주변 집값이 들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중고차 가격 역시 마찬가지다. 사상 초유의 반도체 부품난으로 인해 신차 공급에 차질을 빚은 데 이어 본격적으로 일자리에 복귀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생긴 중고차값 밀어올리기로 실수요자들의 부담을 높이고 있다.
실제 코로나19로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다시 도심지로 돌아오려는 사람들은 최소 30% 이상 뛴 아파트 월세로 인해 사면초가에 처한 상황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파트먼트리스트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뉴욕의 월세 평균은 방 1개짜리 아파트 기준 1932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8.9% 상승했다. 팬데믹 초기인 지난해 3월과 비교해도 2.2% 오른 수치다. 시애틀 역시 전년 대비 15% 이상 급증했다. 지난 9월 미국 중고차·트럭 가격 상승률 역시 24.4%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을 부추겼다.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 조치를 피하기 위해 가짜 백신접종 카드를 제출했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뉴욕시에 따르면 뉴욕시 위생국(DSNY) 소속 공무원 수십 명은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를 피하기 위해 가짜 백신접종 카드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기도 했다.
이들은 대형 약국체인 직원을 통해 가짜 백신 카드를 몰래 구입하거나 백신 접종일자와 백신 종류 등이 기재되지 않은 새 백신카드를 훔치는 등의 불법 거래를 통해 허위정보를 작성하고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뿐 아니라 소방국 등 여러 공무원 집단에서 유사한 불법사례가 발견되면서 뉴욕시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뉴욕시는 11월부터 시공무원에 대해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를 시행 중이다. 드블라시오 뉴욕시장이 11월부터 교도소를 제외한 모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대체되거나 무급휴가를 가야 한다. 최소 1회 이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공무원들은 무급휴직에 처해진다. 뉴욕시에 따르면 14일 기준 백신접종을 거부해 무급 휴직을 받은 공무원은 9000명에 달한다. 수천 명의 공무원들은 의료적 또는 종교적 이유로 백신접종 면제를 신청한 상태다. 뉴욕시 공무원의 93%가량이 백신 1회 이상을 맞았지만 뉴욕시 경찰 86%, 소방국 85%, 위생국 87% 등 일부 부처의 백신 접종률은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
일반 시민들의 백신 의무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 10월 28일 뉴욕 시민들과 제너럴 일렉트릭 공장 직원들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단체 항의 시위를 벌였다. 미국 정부가 100인 이상 기업체에게 백신 의무 접종을 명령했고 접종 불응자에게 무급휴가를 강요함에 따른 반대 시위다. 이날 시위에는 6000명이 참여해 뉴욕 시청 앞까지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뉴욕 경찰과 뉴욕 소방대원들도 제복을 입고 참여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미국은 자유국가로 백신을 맞을 권리도 개인에게 있다는 점을 정부가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이런 식의 백신 정책은 시민들의 반발만 더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갈등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시카고 역시 민주당 소속 로리 라이트풋 시장이 경찰, 소방관 등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모두 맞도록 명령한 바 있다. 이에 수천 명의 공무원들이 무급휴가 등을 단계적으로 받고 있는 상황이다. NBA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인 카이리 어빙 역시 NBA와 구단의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에 반대해 백신을 맞지 않는 바람에 현재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다.
미국 11개 주는 대기업 코로나 백신 의무화 정책을 결정한 연방정부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송을 주도한 에릭 슈미트 미주리주 법무장관 등은 소장에서 정부의 백신 의무화가 “반(反)헌법적이며 불법적이고 현명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제8 순회항소법원에 제기된 이 소송에는 미주리주 외에도 알래스카·애리조나·아칸소·몬태나·네브래스카·뉴햄프셔·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와이오밍주가 합류한 상태다. 민주당 소속인 톰 밀러 아이오와주 법무장관실도 소송에 동참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명령으로 현재 100인 이상 민간사업장은 내년 1월 4일까지 직원들의 백신 접종을 끝마쳐야 한다. 이 조치의 영향권에 드는 직원은 8400만 명으로 이 중 3100만 명은 아직까지 백신을 맞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