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산후조리원`, `며느라기` 연타 홈런 친 배우 박하선 “제2의 전성기, 인생 캐릭터 만나 너무 행복해요”
박세연 기자
입력 : 2021.01.04 17:27:17
수정 : 2021.08.11 14:28:00
“제2의 전성기가 오긴 올까 생각했었는데 너무 감사하고 정말 오랜만에 많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간의 공백기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어요. 정말 일하고 싶었고, 일이 그리웠고, 그래서 쉰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열일하고 있답니다. 회사나 주변에서 많이 걱정해주시는데 정말 하나도 안 힘들어요. 지금은 새벽 공기도, 햇볕도 좋아요. 밖에만 나서도 너무 즐거운걸요?(웃음)”
자신의 2020년이 이토록 뜨거울 줄, 혹시 그녀는 예상했을까? ‘워킹맘’ 배우 박하선(33)이 올 겨울 제대로 ‘커리어 하이’ 했다. 최근 종영한 tvN <산후조리원>과 카카오TV <며느라기>를 통해 남녀노소의 공감을 자극하며 데뷔 15년 만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2005년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데뷔한 박하선은 2011년 방송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으로 시청자의 눈에 제대로 들었다. 이후에도 <동이> <투윅스> <혼술남녀> 등 쉼 없이 작품을 이어오며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보여준 그는 결혼·출산 후 복귀작인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2019)으로 한층 깊어진 감정선을 선보인 데 이어 올 가을·겨울 <산후조리원>과 <며느라기>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다채로운 스펙트럼 속에서도 특히 <하이킥>이나 <혼술남녀> 등 현실감 넘치는 설정과 캐릭터에서 유독 큰 사랑을 받아왔던 박하선이기에 <산후조리원>과 <며느라기>처럼 극사실주의 작품에서의 활약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지만, 그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비결은 어쩌면, <산후조리원>과 <며느라기> 속 설정 자체가 박하선이 지난 3년여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며 직접 경험한 일들이라 그러할 터다. 특히 <산후조리원>에서 열연한 조은정은 그 스스로도 ‘인생 캐릭터’라 할 정도로 박하선 그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었다.
▶저도 은정이처럼 육아 만렙·조리원 핵인싸였죠
“은정은 우아하고 도도하면서도 웃기고 짠하고 귀엽고 슬프고. 여러 가지 매력과 인간적인 모습이 있는 정말 복합적이고 버라이어티한 캐릭터죠. 이 정도로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연기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죠. 인생 캐릭터를 만나 정말 행복한 한 달이었고, 조은정을 떠나보내기 무척 아쉬워요.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극 중 조은정은 산후조리원의 여왕벌이자, 프로 전업맘 ‘사랑이 엄마’였다. 박하선은 초보 엄마들에겐 선망의 대상인 ‘출산 유경험자’ 은정의 까칠 도도한 외연부터 바깥 일 하느라 집안일엔 관심 1도 없는 남편과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전업맘’의 남모를 공허함까지 버라이어티한 인물의 속내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봇물처럼 쏟아진 시청자의 호평에 “너무 감사하다”고 반색한 박하선은 “‘인생캐’라는 말이 나와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반응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마지막 촬영을 하기 싫을 정도로 스스로 조은정에 대한 애착이 강했어요.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두들 그렇게 얘기해 주시고 같이 느껴주셔서 감사했죠.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천운이라 생각하고, 이 시기를 못 잊을 거 같아요. 당분간 공백이 또 생기더라도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대본을 처음 받아들 때마다 ‘이건 무조건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있게’라는 말을 대본에 적어두곤 한다는 박하선. 극 중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도 갖췄다. 모든 걸 내려놓고 ‘젖소’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조리원 안에서조차 ‘패피(패션피플)’의 면모를 잃지 않기 위해 박하선은 명품 스카프나 개인 소장 헤어밴드를 활용하는가 하면, 실제 그 자신도 출산 후 사용했던 아대, 수면양말, 내복을 사비로 구입해 활용했다. 또 실제 자신이 아이를 출산한 뒤 조리원에서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산후조리원>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같은 박하선의 디테일한 노력 덕분에 전무후무한 산후조리원 ‘여왕벌’ 캐릭터가 탄생했고, 밉상 중에 상(上)밉상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표현한 박하선의 코믹 열연 덕분에 ‘격정 누아르 출산 드라마’라는 장르극의 완급 역시 훌륭하게 완성됐다.
‘찐’현실 조동(조리원 동기) 친구들의 피드백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는 “드라마에 대한 피드백은 제 주변 친구나 지인 반응이 가장 정확한데, 이렇게 끝까지 재미있다며 피드백을 준 적은 처음”이라며 “얼마 전에도 단톡을 했는데, 이분들과는 전우애 같은 게 있고 실제로도 굉장히 힘이 된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산후조리원>으로 만난 조동 배우들 역시 박하선에겐 특별한 인연으로 남아 있다고. 박하선은 “지금도 배우들과의 단톡방이 다 남아있고, 여전히 카톡 중이다. (최)수민 선배님까지 다 계실 정도로 모두 친하고 좋다. 코로나19 시대라 잘 모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많이 친해졌다”고 말을 이었다.
“엄지원 언니는 물론이고, 특히 장혜진 언니랑 많이 친해졌는데, 언니도 4살 늦둥이 자녀가 있어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됐었어요. 언니는 굉장히 재미있고 편안한 분이셔서 마음이 잘 맞았죠. 또 까꿍이 엄마 역의 김윤정 배우나 열무 엄마 최자혜 배우도 다 너무 좋았어요. 다들 바쁘기 때문에 바람이 있다면 시즌2로, 일로 다시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극 중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지만, 극 중 인물과 실제 박하선이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는 법. 캐릭터와 자신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에 대한 질문에도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은정이와 결도 다르고 그만큼의 노력에는 못 미치지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점이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완모도 해봤고, 혼합(수유)도 해봤죠. 육아 서적도 10권 이상 읽었고, 실제로 ‘육아 만렙’ 은정이처럼 육아에 대한 정보가 많고, 조리원 내 핵인싸라는 말도 들었었어요. 2년을 육아하면서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은정이처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은정에게 공감을 많이 했죠. 그렇지만 은정처럼 고단함과 외로움을 혼자 다 짊어지려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그런 차이점을 기반으로, 박하선은 조은정의 ‘엄마론’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저는 은정처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강박적인 완벽주의자는 아니에요. 어렸을 때는 저도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었지만,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남한테 도움도 받고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고단함과 외로움을 혼자 다 짊어지려는 은정이가 안타까웠어요.
너무 모유만 고집하는 부분도 이해하기 어려웠죠. 모유가 사실 하려고 해도 안 나오는 사람도 많고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고 보통은 많이 먹이기 힘들거든요. 너무 모유만을 고집하면 아이도 엄마도 힘들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이 쉽진 않았죠.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극 중 루다가 대변도 해주고, 혼합수유에 대한 얘기도 해주기에 잘 해결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엄마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공감이 쉽진 않았지만, 결국에는 은정이가 마지막에 할 말도 하고 달라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는 극 초반에는 조은정과 오현진(엄지원 분)이 ‘전업맘’과 ‘워킹맘’으로 대립하는 구도로 시작, 먼저 엄마가 된 조은정이 우세한 느낌으로 전개되지만 궁극에는 엄마들이 대립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보여준다. 각자의 다른 상황 속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행복, 엄마에 앞서 ‘자아’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것. 박하선 역시 이 같은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엄마’로서 공감과 감사를 표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해 이렇게 말해주는 드라마가 그동안 없었고 이 작품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은정이는 모성애에 너무 치우쳐있는 사람이었지만 점점 깨달아가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죠. 드라마에서는 아이가 먼저인 은정이 같은 캐릭터도 있고, 엄마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루다나 현진이 같은 캐릭터도 있었기에 그런 다양성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거예요. 엄마가 있어야 아이도 있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그러니까 저마다의 선택과 방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속 조리원에 간 여성들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면서 이뤄낸 자아의 성장만큼이나 인상적인 점은 다름 아닌 부부의 성장이다. 특히 ‘내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 안에서 인내할 줄 밖에 모르던 은정이 부부 관계에 대해 각성한 뒤엔 남편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면서 부부로서도 한층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에게 각성을 줬을 대목이다. 실제 결혼 4년 차 박하선의 부부 철학은 무엇일까.
▶실제 결혼 4년 차… “부부 사이는 동지”
“부부 사이는 동지인 것 같아요. 육아를 시작하면, 육아 동지이자 친구가 되는 거죠. 서로의 영역은 존중해주면서 친구처럼 소통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박하선이 지닌 부부 철학은 현실에서 이미 유효하다. 그는 ‘현실남편’인 배우 류수영과의 결혼 생활에 대해 “남편이 요리를 좋아해서 신혼 때부터 한 끼씩 번갈아 가며 요리를 해 왔다. 또 우리는 신혼집을 반반 부담했었는데 둘 다 벌고 있기 때문에 생활비도, 살림도 반반 나눠서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분담이 잘 되어있는 가정”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여배우로 느끼는 ‘결혼’과 ‘출산·육아’에 대한 소회는 어떨까. “항상 정답은 없지만, 여배우들에게 출산과 결혼, 육아라는 경험은 감정이 풍부해지는 데 큰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눈물연기도 굉장히 힘들어 했었는데, 이제는 기사 헤드라인만 봐도 눈물이 나서 기사 클릭을 못할 정도로 감정이 풍부해졌고 이게 스스로에게 큰 무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연기가 너무 좋아졌고 좀 더 간절해졌고 더 열심히 하게 됐죠. 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예전에는 그냥 젊고 예쁘니까 가능했던 것들이 이제는 연기를 잘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금방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저에겐 너무 고마운 경험입니다.”
기혼의, 출산 유경험의 ‘여’배우에게 방송가 캐스팅 현실에선 분명 ‘유리천장’이 존재하지만, 오히려 이 같은 세평을 보란 듯 비웃으며 자신의 경험을 무기 삼아 더 단단한 배우가 된 박하선.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을 시작으로 <산후조리원>을 거쳐 <며느라기>까지. 연속 세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연기로써 인정받은 그가 각 작품에 대해 느끼는 소회도 궁금했다.
“그냥 제 얘기라 공감이 너무 가고, 제가 너무 재미있으니까 끌렸는데요. 이 작품들을 보는 미혼, 기혼 여성들뿐 아니라 그들의 옆에 있는 남성분들도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하게 됐었어요.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 이후부터 작품을 통해 제 얘기를 하는 게 두렵지 않더라고요. 예전에는 진짜 나를 숨기고자 했다면, 이제는 저에겐 여러 모습들이 있는데 ‘거칠 것 없이 다 보여줘야겠다’라는 배우로서의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나를 보여줘도 사랑 받을 수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고, 두려움이 많이 극복된 것 같아요.
<산후조리원>은 작품이 제게 가르쳐줬다기보다 그냥 ‘내 생각이 맞았구나’ 싶었어요. 제 선택이 옳았다 싶은 작품이었죠. 배우라는 직업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저는 아이 엄마지만 아직 일적으로도 성공하고 싶고, 남편과 아이에 대한 사랑도 아직 고픈, 일과 사랑 모두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을 통해 자꾸만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배우란 게 묘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박하선에게 <산후조리원>은 타이밍적으로도 운명 같은 작품이었다. 그는 “내가 왜 이 직업을 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라고 제게 휴식기가 주어진 것만 같았고, 내 출산경험이 없었다면 이 작품을 못 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더 좋아졌고, 잘 맞는다고 느꼈다”며 웃어 보였다.
회당 100만 뷰를 훌쩍 뛰어넘으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동명 웹툰 원작 드라마 <며느라기>에 대한 소회도 덧붙였다. “실제 산후조리 중 웹툰 원작을 접했어요. 조동 친구들이 추천해줘서 보게 됐었는데 당시에 너무 재미있게 봐서 책까지 샀죠. 과하지 않게, 깔끔하고 적당히 고부갈등이나 가족 간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라 좋았어요. 원작의 민사린 캐릭터는 답답할 정도로 착하고 고구마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저는 요즘 며느리, 요즘 여자, 요즘 기혼 여성처럼 연기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사린이 머리(헤어스타일)를 장착한 순간,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이 작품을 위해 준비할 건 머리였고, 그 머리를 장착하면 사린이 연기가 저절로 나오는 작품이었어요.”
박하선은 그러면서 “두 작품을 하는 동안 ‘내가 이 시기를 지나왔구나’라는 걸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면서 “많은 여성분들께 며느라기 시절이나 산후조리원 시절 모두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알려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2020년, 빨리 찾아온 ‘혹한’을 누구보다 뜨겁게 맞이한 박하선이 지닌 2021년 목표는 무엇일까.
“요즘에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며 일을 즐기고 있어요. 칭찬 받고 있을 때, 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을 때가 감이 제일 좋은데,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해서 계속 연기를 하고 싶고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전 아직도 보여드리지 않은 게 너무 많거든요.”
새로 개봉할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가 있는데, 아동 학대를 다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고백>과 산후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아이>다. 두 작품 모두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만큼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청년경찰> 이후로 공백이 길어서 영화적으로도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계속 쉬지 않고 좋은 연기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꿈도 전했다. 그는 “모든 걸 소화할 수 있는 배우, ‘박하선이 연기하는 건 다 재미있더라’라는 평을 들을 수 있는 믿고 보는 배우,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