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국민의힘 의원 | 바이든 시대 개막… 대북 정책 전면 전환 필요 “美 새 정부, 북미 싱가포르 합의 계승할 뜻 없어”
문수인 기자
입력 : 2020.12.01 14:01:10
수정 : 2020.12.01 14:05:56
바이든 시대를 맞아 여의도 정가에서 가장 바쁜 정치인이 있다. 바로 박진 국민의힘 의원이다. 그를 찾는 이들이 최근 부쩍 많아진 것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박 의원은 2008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기 직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카운터파트(미 상원 외교위원장)였던 바이든 당선자와 만나 편하게 독대를 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 바이든 당선자와의 소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박 의원의 새 미국 정부의 인맥은 바이든 당선자뿐만 아니다. 입각이 예상되는 바이든 당선자의 최측근 상당수와 직간접 소통이 가능하다. 이에 바이든 측과 줄을 대거나 향후 예상되는 정책 기조 등을 파악하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측 인사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세를 파악할 때 박 의원은 꼭 챙겨야 할 인사 중 하나다.
지난 10월 말 미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바이든 당선자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회장이 한국을 비공개로 찾았는데, 그 역시 박 의원과 따로 만나 오찬을 하면서 대북 문제 등 여러 현안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최근 자누지 회장의 비공개 방한 일정 중 이인영 통일부 장관 면담 및 통일부 강의 사실이 드러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자누지 회장은 바이든 당선자가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보좌관을 12년간 지냈으며, 그 역시 미중 관계와 북핵 문제 등에 있어 전문가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바이든 캠프의 동아시아 외교 자문역할을 맡았다.
박 의원은 “자신과 바이든을 연결해준 이가 바로 자누지 회장”이라면서 “초선 의원 시절부터 외교를 고리로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은 “현재 바이든 외교팀은 ‘바이든식 대북 정책’을 펼치기 위해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접근법인 ‘전략적 인내’를 리뷰하고 있다”면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교훈을 찾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의원은 “대북 정책의 큰 틀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재와 압박을 유지해 비핵화란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제재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해 주는 당근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큰 틀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라는 북핵 해법과 비슷하게 보이겠지만 각론은 과거와 다를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 접근 방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여권일각에서 싱가포르 북미회담이 새 북미 관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현재 바이든팀은 트럼프의 대북 성과를 그대로 계승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현 정부가 바이든 대통령을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햇볕정책 지지자로 규정짓는다면 이는 오판”이라면서 “바이든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프로세스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과거 바이든 당선자와의 독대가 화제입니다. 어떻게 만나시게 되었는지요?
▷2008년 7월 종로 3선 의원으로 국회 외통상임위원 시절 만났습니다. 한미 의원외교협회 단장으로 워싱턴을 방문해서 공식 일정을 마치고 당시 그의 미 의회 집무실에서 만나서 환담했습니다. 북핵 문제를 포함해 한미, 미중 관계, 자유무역 등 여러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자 측과의 화려한 인맥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초선 의원시절부터 관계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10월 하순 방한 때 종로 가회동에서 만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회장이 대표적이고요,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 차관보 등과도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로 소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오바마 정부에서 일한 경험들이 있어서 행정부 진출이 예상됩니다. 론 클레인 신임비서실장은 만난 적은 없지만 하버드 동문입니다. 프랭크 자누지도 하버드 케네디스쿨 동문이고, 커트 캠벨 전 차관보와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은 옥스퍼드 동문입니다. 플러노이 전 차관은 2009년 6월 서울에 방문했을 때 용산에서 오찬을 함께하면서 한미동맹 현안을 논의한 기억이 있네요.
▶아무래도 우리의 관심은 미 새 정부의 대북 정책에 있을 것 같습니다.
▷바이든 캠프 내부와 소통을 해보면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는 진화한 ‘바이든식 대북정책’을 펼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통령을 지냈던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됐던 ‘전략적 인내’의 기계적인 연장선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이든 당선자는 전략적 인내 정책의 취지와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8년간 부통령을 하면서 세 차례의 북한 핵실험을 경험했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과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목도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한계는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하고, 북한 김정은 정권의 국제적 위상만 올려줬다는 점입니다. 현재 바이든 당선자의 외교안보팀에서 기존의 정책들에 대해 정밀 검토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이든식 대북정책이라 함은 어떤 것일까요.
▷바이든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치밀하게 단계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큽니다. 비핵화가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이라는 원칙하에서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행동에 따라 부분적 제재 완화 등 융통성도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이든은 대선 토론에서 ‘비핵화를 위해 핵 능력 감축에 동의한다면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라고 언급했는데,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만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보다는 유연한 자세입니다. 채찍과 당근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비핵화 진전 상황에 따라 각론은 유연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란과의 핵합의 도출 과정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현재 핵 개발 수준은 이란보다 앞서 있지만, 바이든 캠프에서는 이란 핵 합의 과정이 북한 비핵화 로드맵에 적용될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이든 캠프 내 외교안보 정책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앤서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은 2018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에 대한 접근처럼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도록 하는 중간 합의서를 체결하고, 국제적 감시하에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인프라를 동결하고, 제한된 경제적 구제의 대가로 핵탄두와 미사일을 파괴하도록 한 후, 좀 더 포괄적인 거래를 위한 협상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서는 미국이 ‘처벌’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핵 공급망 전체를 포괄하는 이란 협정과 같은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지 공은 북한에 가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에 대해 북한이 보름이 넘도록 침묵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고민이 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현 정부는 ‘한반도 프로세스’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것 같은데요.
▷저는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정부와 이뤄냈던 대북 성과를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승하자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 정부가 정말 미국의 새 정부를 대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이든 당선자의 대북정책 방향을 예상해 볼 때 이는 적절치 않은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가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4년간 펼칠 대북정책을 면밀히 분석하고 한미공조의 전략을 짜야 합니다. 종전선언 언급도 이제 자제했으면 합니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출구가 돼야지 입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실질적인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고, 한반도 안보를 오히려 위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비핵화가 먼저 진행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추후에 결정할 문제입니다.
▶바이든 외교 정책의 핵심은 ‘트럼프 시대 무너진 동맹 강화’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의원님 발언을 보면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시는 것 같은데요….
▷바이든 당선자는 미국이 부상하는 중국을 혼자 상대하기보다는 동맹과 우방국들이 연대해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유리하다고 봅니다.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뿐만 아니라 미국과 동맹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자가 “민주주의를 위한 글로벌 정상회의”를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이것이 한미일 협력을 위한 커다란 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바이든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을 “인도태평양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핵심 축(린치핀)’”이라고 했는데요.
▷이 역시 트럼프 정부 시절 삐걱거렸던 한미동맹의 복원에 대한 강조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 앞서 재향군인의 날에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한국전 참전 용사의 희생과 봉사에 경의를 표한 것은 물론 한미동맹의 가치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린치핀에는 당연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포함돼 있고요.
▶미국 동맹 부활에 맞서는 중국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물러나더라도 기본적으로 미중 갈등 관계는 지속될 것입니다. 무역전쟁과 치열한 기술패권 경쟁으로 국제사회는 ‘미중 신(新)냉전’이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 있습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형식적인 이분법 구도를 벗어나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바이든과 대화를 나눴을 당시 그가 “미중관계는 봉쇄(containment)가 아닌 관여(engagement)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이든 당선자는 한 기고에서 “경제 외교가 국가 안보”라고 했습니다. 결국 바이든도 경제에 있어서는 자국 우선주의를 펼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국익 차원의 전략적 접근과 다변화를 위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화웨이 거래금지조치로 삼성, SK하이닉스는 화웨이와 반도체 거래를 끊고 판매를 중단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바이든 정부하에서도 중국 견제 기조는 이어질 전망입니다. 그러나 화웨이 제재로 인한 일시적인 손해가 우리에게는 오히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줄이고 새로운 수요자와 시장개척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중앙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 지역의 잠재력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햇볕정책에 대해 실패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바이든 캠프와 소통을 해보면 햇볕정책의 취지는 순수했더라도 결과적으로 예상을 빗나갔고 북한 비핵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실제 북한의 핵 개발 기술은 지난 10년간 많이 발전했습니다. 때문에 정부여당에서 과거 바이든 부통령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에 현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당연히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북한 비핵화를 중시하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도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이제라도 균형감각을 가지고 유화적인 대북정책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진 국민의힘 의원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자의 측근인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회장과 10월 말께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는 모습. 자누지 회장은 미 대선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비공개 방한했다.<사진=박진 의원실 제공>
▶바이든 당선자를 미국 정치인 중 “최고의 외교 전문가다”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느낀 관련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바이든은 36년간의 미국 상원의원 생활을 통해서 국제정세와 핵군축문제, 중동 평화와 아시아 지역 문제 등에 있어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정치인입니다. 미국이 러시아와 전략무기 감축협상을 할 때에는 미국 상원의원들을 이끌고 크렘린 관리들과 만나서 비준을 위한 구체적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고, 테러리즘과 대량살상 무기, 탈냉전 질서 등과 관련된 문제들에도 앞장서 관련 입법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면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美 새 정부의 여러 공약 중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대목이 있다면요?
▷기후변화와 클린 에너지 정책을 들 수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을 1호 정책으로 내걸었습니다. 인수위 4대 우선 국정과제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채택했습니다. 더불어 여기서 재생 수소와 함께 ‘첨단 원전’을 청정에너지 기술로 선택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8월 바이든이 속한 미국 민주당은 첨단 원전 등 모든 탄소 제로 기술을 활용해 전력 부분에서 탈탄소화를 추진하겠다고 정강정책을 수정했는데, 이를 종합해보면 태양광, 풍력만으로는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문 정부의 급진적 탈원전 정책과는 상반되는 것이죠. 합리적인 정책 대안 마련이 시급합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자질 문제가 자꾸 거론되는데요.
▷외교부가 지적받는 이유는 지금처럼 국제정세가 격동하고 있는데 기민한 대응보다는 무사안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가 대외관계를 주도적으로 잡고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부처 간 이견만 노출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강경화 장관의 경우 UN에서 활동한 국제인권 전문가인데, 장관 취임 후 인권 외교가 오히려 후퇴한 느낌을 받습니다.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피살됐을 때 국제사회에 이를 알리고 국제규범에 따라서 진상 규명과 북한에 응당의 책임을 물어야 했지만 그런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 눈치만 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박지원 국정원장의 일본 방문도 논란입니다.
▷외교 일선에 국정원장이 나서는 것 자체가 한일 간 공식적인 채널 자체가 결여돼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부의 공식 외교와 함께 국회 차원의 의원외교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고 있는데, 마음은 정하셨습니까?
▷참신하고 경쟁력을 가진 후보를 내보내서 꼭 이겨야 합니다. 만약 그런 후보를 찾을 수 없으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