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제아(38·본명 김효진)가 제대로 홀로 섰다. 제아무리 인기 그룹 출신이라도 가수들이, 특히 여성 가수들이 홀로 서기엔 꽤나 척박한 가요계에서 ‘브아걸 제아’ 아닌 그 자신, 제아로서 말이다. 2006년 브라운아이드걸스로 데뷔한 제아는 지난 2013년 첫 솔로 앨범 ‘Just JeA(저스트 제아)’를 시작으로 ‘나쁜 여자’, ‘You o’clock’, ‘그댄 달라요’, ‘나만 없다면’ 등 다수의 싱글, 드라마 OST 등을 발표하며 탄탄한 가창력은 물론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최근 발표한 새 미니앨범 ‘Newself(뉴셀프)’는 지난 시간을 넘어 앞으로 더 나아갈 제아를 예상하게 하는 의미 있고 멋진 행보다.
▶“우울증 극복 과정서 나 자신 들여다보게 됐죠”
“사실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용기가 필요했어요. 반응도 살피지 않을 수 없고, 회사도 신경 쓰였고요. 그게 이번 앨범 발매하기 전까지의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게 다 쓸 데 없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구나 싶어요. 지금도 제아의 음악을 기다려주는 분들이 많다는 게, 감사하고 힘이 되죠. 예능 하면서도 음악은 배제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음악을 히트와 연결 짓지 말라고. (너는) 존재만으로도 뿌듯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자기 자신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마음의 감기’ 우울증을 치유하면서부터였다.
“어렸을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리더를 하면서 책임감이 무거웠고 항상 남 위주로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던 거였죠. 한때 심적으로 안 좋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치료를 받으며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하고 나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후 스스로 컨트롤하고 노력하면서 활동 범위도 넓어지게 됐죠.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었는데 나 자신에 대해 관대해지니 좋은 일도 더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제아는 ‘뉴셀프’에 ‘더 강한 나’로 나아가기 위한 다짐과 의지를 담았다. ‘앞으로도 나만의 길을 걷겠다’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한다.
“‘뉴셀프’ 앨범은, 제가 하려고 하는 것에 제한을 두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예요. 뉴(NEW)에 셀프(SELF)를 붙인 말인데, 수록곡 ‘뉴셀프’ 가사를 쓴 작사가의 아이디어였어요. 너무 괜찮아보여서 그대로 앨범 타이틀로 가기로 정했죠.”
제아의 이번 앨범은 “내가 하려고 하는 걸 여러 현실적 여건을 들며 제한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아 스스로 하는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지만, 주위의 말에 영향을 받는 청자들 또한 보다 당당하게 나아가는 데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을 담기도 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Dear. Rude’를 비롯해 ‘Newself’, ‘My World’ 등 총 3곡이 수록됐다.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도, 장르 자체도 기존과 확연히 다르다. 이야기적으로는 흔한 남녀 간 애정사(만남이나 이별) 아닌, 자아 및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에 대해 풀어냈다. 발라드로 대변되던 종전 ‘솔로 제아’의 음악과 다른 파워풀하면서도 세련된 신스팝 계열 음악을 시도한 점은 단연 돋보이는 변화다.
“제아 솔로는 아무래도 발라드 음악을 하는 이미지가 클 거예요. 그걸 벗어나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제일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는 마음이 컸죠. 물론 내적 갈등도 있었어요. 발라드를 주로 하다가 너무 퍼포먼스 쾅쾅 하는 곡을 하면 이질감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직 해보지도 않았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시점에 저만의 갈등이었던 것 같았어요. 해보자고 마음먹고 진행해보는데 너무 좋았어요.”
▶“‘디어 루드’, 남의 인생에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노래”
타이틀곡 ‘Dear. Rude(디어 루드)’는 남의 인생에 대해 무책임한 말로 떠드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알앤비(R&B) 리듬에 강렬한 덥스텝(Dubstep) 사운드가 가미된 곡으로, 제아와 파워풀한 보컬과 치타의 강단 있는 랩으로 전하는 ‘난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내용의 가사를 듣는 순간 가슴 벅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2013년에 써뒀던 곡이에요. 뭔가 잘 붙는 가사가 안 나와서 그대로 두고 있었는데, 우연치 않게 친구와 대화하던 중 영감이 나왔죠. ‘나이가 그 정도 찼으면 적당히 하자’, ‘네 나이에 그렇게 하면 안 돼’ 같은 말을 들은 데 대해 ‘그건 정말 무례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 과정에서 음악에 어울리는 가사가 나오게 됐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나 하나쯤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아는 “센 노래일수록 너무 과해도 세련미가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정제했다”며 “라이브 느낌은 다르겠지만 음원을 들을 땐 속 시원하게 들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녹음했다”고 작업 포인트도 전했다.
고민상담 웹 예능 ‘쎈 마이웨이’로 절친이 된 치타와의 작업에 대해 묻자 대답은 온통 ‘리스펙’이었다. 제아는 “치타는 진짜 천재인 것 같다. 사실 곡의 의도에 대해 너무 설명하면 작업에 방해될까봐 가사를 던져주고, ‘우리 무리한 사연도 많이 보지 않았냐’며 ‘가사에서는 너무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면 촌스러울까봐 뭉뚱그려 표현한 게 있는데, 이걸 랩에서 풀어주면 좋겠다’고만 했는데 내가 생각한 차원을 넘어서 너무 잘 써주어 감탄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록곡들 ‘Newself(뉴셀프)’와 ‘My World(마이 월드)’에도 제아의 마음은 고스란히 담겨있다. ‘뉴셀프’는 새롭고 더 멋진 나로 성장해가는 내용을, ‘마이 월드’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다짐을 담고 있다.
그는 “그전까지 혼자만의 생각들 때문에 진짜 하고 싶었던 걸 놓친 적이 있는데, 그냥 다 깨부수고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너무 쉬웠다”면서 “기존의 이미지는 남아 있겠지만, 이 음반을 냄으로써 인생 2막이 열리는 듯한? 이후의 다음 음악 생활이 더 쉬워질 것 같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데뷔 후 13년. 오랜 활동을 통해 스스로 변했다고 느끼는 지점도 있을까. 제아는 “성격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인생이 쌓여가며 좋은 건, 마음의 넓이는 같았던 것 같은데 그걸 드러내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면을 많이 표현하게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후배가 음악을 너무 잘 하면, ‘너 정말 잘 하더라’ 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중학교 때 언니 음악 듣고 자랐어요’ ‘에버레스팅(브아걸 팬클럽)이었어요’라고 하면? 말 끝난 거죠(웃음). 후배들과도 시원시원하게 표현하다 보니 서로 힘이 되는 게 있어요. 예전엔 좀 폐쇄적이었어요. 가수들이 사실 교류가 별로 없죠. 그런데 요즘은 ‘내 연예계 인생에서 이렇게 교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표현하고 있어요.”
예상치 못하게 가요계 ‘인맥퀸’이 된 데 대해서도 “의도한 건 아닌데, 희한한 것 같다”며 스스로도 신기해했다. 그는 “어딜 가도, 뭔가 서로 좋게 대화가 오고 가다 친해지기도 하고, 고민을 나누기도 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러다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닫고 지냈나, 나에게 다가올 준비가 된 사람들마저 막아왔었나 하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 제아는 서른아홉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는 이 시기에 연애 고민을 상담해주는 ‘화끈한 옆집언니’ 캐릭터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단다.
“0.000001도 안 했어요, 진짜. 예전에 친구들 고민 상담을 많이 해주긴 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긴 해요. 사실 그 때도 친구들에게 마냥 공감해주기보다는 공감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내가 네 상대면 너랑 못 사귀어’ 이런 얘기도 하고, 좀 솔직한 편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사람을) 잃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잘 지내는 친구 중엔 제 말에 힘을 얻고 스스로의 다른 모습을 찾았다는 친구가 많아요. 그런 점에선 재능? 적성이 없진 않았구나 싶어요.”
제아는 “처음엔 저를 찾아주신 것 자체가 신기했는데 지금은 자꾸 다른 방송에서도 상담해달라고 한다”고 난처해하면서도 “계속 그렇게 소비되는 것도 기분 좋다. 대단한 연륜이 있는 건 아니지만 깨방정 이미지도 있고 언니 같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자신의 생각을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나의 역사’를 공개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단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풀어낼 공간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사연을 듣다 보면 ‘아 나도 그랬는데’ 싶을 때도 많죠. 그에 대해 ‘나도 이런 적 있었는데’라며 자연스럽게 리액션하니 듣는 입장엔 공감으로 전달되어 더 좋은 거죠. 때로는 작가들이 제 멘트를 더 걱정할 때가 있는데, 오히려 그럴 때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웃음)”
▶“누군가 나를 찾기 전에 내가 찾아서 해왔던 시간들, 제일 중요한 건…”
‘쎈 마이웨이’ 같은 프로그램에선 상담자로, ‘프로듀스 101’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가수 지망생들의 멘토로, 그 외 다양한 예능에선 30대 후반 여성 엔터테이너로. 여전히 무대는 물론, 예능까지 많은 영역에서 제아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 스스로 생각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글쎄요. 남이 (나를) 찾기 전에 내가 무언가를 찾아서 한 건 맞아요. 주위 분들은 ‘네가 걸그룹으로서만 보여지다가 혼자 하면 왠지 어색해서 안 찾지 않을까’ ‘소극장도 힘들다’면서 걱정도 하더라고요. 낮은 반응에 괜히 제가 다칠까봐 그러신 거죠. 그런데 실제로 단독 공연을 해보면 중학생이 1/3이 찾아와요. ‘너희는 나를 어떻게 아니’ 싶어서 물어보면 ‘프로듀스101을 봤는데 브아걸이 누군지 몰라 찾아보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콘서트를 안 했다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집에서 공상만 하면 누가 그걸 알아줄까요. 중요한 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거죠.”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 제아에게 ‘음악’은 각별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기다리고, 이야기를 지지해주는 모든 이들이 “큰 힘이 된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음악을 들어줄 팬들을 생각하면 너무 힘이 났고, 음악을 듣고 ‘역시 기다리길 잘했다’ 하는 팬들의 모습을 상상할 때면 혼자 울컥하기도 했어요.(웃음) 또 팬 아닌 누군가라도 내 노래를 듣고 가슴이 뻥 뚫린다면, 에너지를 받는다면 좋겠어요. 어렵게 접근하지 마시고, 그냥 듣고 즐기고 속 시원해졌으면 해요.”
3년 만의 솔로 앨범으로 음악 활동에 재시동을 건 제아는 하반기로 계획하고 있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컴백 현황도 살짝 귀띔했다. 그는 “차근차근 하고 있다. 우리가 나왔을 때 많은 분들이 반가워해주셨으면 좋겠다”며 반색했다.
‘대한민국 최장수 걸그룹’ 호칭을 받고 있는 팀에 대해서는 “브아걸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며 좋아했다. 제아는 “얼마 전 ‘훈맨정음(MBN)’에 박준형(g.o.d) 오빠와 함께 출연했을 때 쭌오빠는 남자(그룹) 중 최장수, 저는 여자(그룹) 중 최장수고 둘(의 나이) 합쳐 90대라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간 버텨왔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 거고. 할거면 1등 해야지 싶은 거죠 하하.”
특히 제아는 “예전에, 가령 서른두 살 쯤? 애매할 때는 ‘최장수’라고 하면 너무 나이로만 어필하나 싶기도 했는데, 아예 나이가 많아져 버리니까 이렇게라도 각인되자 하고 좋게 생각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우리가 또 아주 옛날사람 느낌도 아니지 않느냐” 반문하며 “브아걸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이 있어서, 그냥 좋다”고 빙긋 웃었다. 1시간 남짓 울고 웃은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계획 또는 행보에 대한 질문을 남겨뒀지만 굳이 묻을 필요는 없었다. ‘디어 루드’의 가사 중 제아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갈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난 채우고 더 나아가지’라는 가사가 있어요. 제가 그랬던 것 같아요. 뭔가 날 지치게 하거나 힘든 상황이 올 때면 오히려 그 쪽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충만함으로 채우는 거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요. 그러고 나면, 나아가는 길 밖에 없더라고요. 계속 그러려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