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서 열연한 배우 설인아, 인생 캐릭터로 연기 호평… 새 도약 꿈꾼다
박세연 기자
입력 : 2019.06.27 14:32:30
수정 : 2019.06.27 14:32:54
학창시절, 선생님들로부터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라는 말을 들었던 인기만점 ‘반장 겸 오락부장’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선망해 온 배우의 꿈을 이뤘다. 무수한 신인들 사이에서도 시청자에 강렬하게 눈도장을 찍은 그녀의 매력은 단지 예쁜 얼굴과 모델 같은 몸매만이 아니었다. 타고난 끼와 야무진 감각 외에도 매 작품마다 숨은 노력 그리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이제 갓 신인 ‘딱지’를 떼고 배우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데뷔 5년차, 배우 설인아(23)의 이야기다.
설인아는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하 <조장풍>)>을 통해 데뷔 때만큼이나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배우 인생 5년 만에 처음 만난 ‘인생 캐릭터’ 고말숙을 통해서다.
극중 고말숙은 악인인 명성그룹 최서라(송옥숙 분) 회장의 개인 비서였지만 갑을기획과 함께 하게 되며 정의의 편에 서게 되는 반전 캐릭터다. 극 초반 시크하고 도도한 모습부터 센 언니의 걸크러시 매력, 화끈한 액션으로 시선을 모았다면 중후반부 이후엔 갑을기획 천덕구(김경남 분)와 커플이 되면서 정의구현은 물론, 로맨스로 설렘까지 선사했다.
▶“<조장풍>은 연기 인생 이정표 같은 작품”
블랙코미디 장면을 다수 연출한 고말숙은 시청자에게 신세계 같은 인물이었지만, 설인아에게도 <조장풍>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복 받았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촬영장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드라마 종영 이틀 뒤 만난 설인아는 여전히 <조장풍>의 긴 여운에 잠겨 있었다. “종영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그는 “오늘도, 내일도 촬영장에 갈 것만 같다”며 작품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는 비단 설인아만의 마음은 아니다. <조장풍> 종영 인터뷰에 나선 모든 배우들이 “최고의 촬영장”이라 입을 모은 역대급 드라마였던 것. 팀워크의 비밀은 특별하지 않다. 제 몫만 하고 촬영장에서 빠지는 게 아닌, <조장풍>의 모든 여정을 함께 만들어 간 덕분이다.
“촬영날 스케줄표가 나오면, 누가 몇 시쯤 오겠다고 예상이 돼요. 그러면 절대 차에 있게 두질 않죠. 대기도 무조건 같이 해요. 대기시간이 다섯 시간이었던 적이 있는데,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 정도로 모두 다 친해졌어요. 또 우린 서로를 너무 재미있어 해요. 개그 욕심도 엄청나고요(웃음). 그러면서 친해진 것 같아요.”
현장의 분위기는 고스란히 카메라 안에 담겼고, TV를 통해 시청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그렇게 <조장풍>은 시종일관 유쾌한 에너지를 ‘뿜뿜’내며 짧고 굵은 두 달 여정을 마쳤다. 동시간대 최하위로 시작한 시청률은 중반부 들어 1위로 올라섰고, 결국 ‘월화극 1위’라는 기분 좋은 기록과 함께 종영했다.
설인아에게 <조장풍>은 더 없이 즐거운 현장으로 기억되지만 필모그래피상으로도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캐릭터를, 작품을 ‘연기’하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를 알려준 작품으로 말이다.
“연기를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방향성을 알려준 이정표 같은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는 현장을 즐긴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 했어요. 스스로가 여유가 없다 보니 현장을 즐기지 못했죠. 내 것 하기에도 바빴어요. 그런데 ‘앙상블이라는 게 이런거구나’ 하는 걸 <조장풍>을 통해 배웠어요. 또 감독 작가 배우들의 호흡이 어떻게 해야 잘 맞는지 알게 됐죠. 다음 작품을 할 때, 설인아로서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현장에서 어떻게 서 있어야겠구나 하는 걸 알려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조장풍> 속 고말숙은 분명 설인아에게 특별한 의미지만 결코 연기하기 쉽지만은 않은 인물이었다.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어요. 말숙이 보여준 모습은 블랙코미디였거든요. 갑질에 억눌려 있는, 정식 비서도 아닌 심부름꾼 캐릭터라 그런 면만 나왔다면 힘들었을거예요. 다행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상대(천덕구)가 있었어요(웃음). 명성그룹 회장 앞에선 그 고함에 귀가 찢어지고 쫄아 있었지만 천덕구를 만나면 내 세계를 펼치니까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설인아는 작정하고 어느 때보다 캐릭터의 비주얼에도 공을 들였다. 결과는 대성공. 극 초반에는 시크 도도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각 잡힌 대기업 그룹 회장 비서 룩을 완성했다면, 그룹을 박차고 나온 뒤엔 다소 편안하고 여성스러운 매력이 물씬 풍기는 스타일을 연출해 뭇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는 살면서 자격지심을 별로 느껴본 적이 없는데, 말숙이는 자격지심도 크고 자존심도 센 아이였어요. 설인아는 그런 걸 운동으로 푸는데, 말숙이는 마치 자기가 최설아인 것처럼 행동하잖아요. 그런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좀 더 여우같이, 철판 깐다고 할까요? (웃음) 그리고 외적으로도 최설아에 최적화된 인물이어야 하니까, 예쁘기만 하면 안 되고 언제든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니까 주로 바지를 입고, 약간 똘기 있어 보이게 계단처럼 잘랐죠. 머리 스타일로만 감독님과 한 달 동안 상의했어요. 이후 덕구와의 본격 연애를 시작한 뒤 바뀐 스타일도 신경써서 연출했어요.”
그렇게 <조장풍> 속 고말숙은 설인아의 무한한 애정으로 탄생했다. 그는 “말숙이는 불쌍하고 바보같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워요. 멋진 여자라기보다는, 뒤늦게 자기 소신을 찾은 여자죠. 권력을 누리고 싶어했지만, 그 부분은 솔직히 멋있지 않고, 오히려 찌질하죠. 불쌍하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변화를 표현할 게 많아 재미있었어요.”
▶“고말숙의 블랙코미디와 로맨스, 재미있으셨나요?”
고말숙-천덕구 명품 코믹 커플 연기도 <조장풍>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였다. ‘도대체 뽀뽀를 몇 번 한 거냐’고 묻자 횟수를 헤아리며 수줍게 웃었다.
“한 8~9번 정도 한 것 같아요. 이정도로 많이 나올 줄은 절대 예상 못 했어요. 유일한 멜로 캐릭터들이라, 초중반까지는 서로 만날래 말래 하며 밀당하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뽀뽀신이 엄청 많아진 거죠(웃음). 사귀고, 없어서 못 살고. 불이 붙는 과정을 본 것 같아요. 대본의 지문도 구체화됐죠. 처음엔 ‘쑥스러운 듯한 덕구말숙’이었는데, ‘둘이 난리 났다’ ‘남들 눈 신경 안 쓰는 말숙덕구’ 등 지문도 재미있었어요.”
설인아는 “처음엔 어색했는데 촬영을 거듭하면서 친해졌어요. 하지만 뽀뽀신이 나오니까 또 어색해졌어요” 하고 김경남과의 호흡을 떠올렸다. “오빠는 연기하면서 뽀뽀신이 처음이었다더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조심스럽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오빠가 실례 좀 할게, 미안해’ 하면서 첫 신을 찍었죠. 그 다음부터는 대본 보면 웃음만 나왔어요 하하.”
설인아와 김경남이 보여준 커플 케미는 <조장풍> 시청자들에게 어쩌면 배보다 배꼽이 큰 재미였다. 그만큼 쑥덕(말숙-덕구)커플이 큰 사랑을 받은 것. 설인아는 “다들 예뻐해주셔서 정말 행복했어요. 우리 드라마 제목을 패러디한 ‘덕구감독관 고말숙’이라는 표현도 있더라고요”라며 시청자에 고마움을 표했다. 어쩌면 설인아의 ‘인생 캐릭터’ 중 하나가 될 고말숙을 가슴 속에 남겨두며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궁금했다.
“말숙이에게 고마운 건, 바로 저 설인아와 융화가 잘 됐던 것 같아요. 처음에 제가 좀 힘들어했는데, 고민한 만큼 말숙이가 설인아에게 잘 입혀진 것 같아 정말 고마워요. 그만큼 말숙이와 인아가 큰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이게 다 <조장풍>팀 덕분이죠.”
마지막회, 웨딩마치를 울리며 해피엔딩을 장식한 천덕구에게는 “덕구야, 우리 속도위반이던데 시즌2에 번외로 잘 나왔으면 좋겠다. 시즌2 때 보자”며 털털하게 웃었다. ‘너무나 완벽한 현장’이었던 만큼, 설인아에게 <조장풍> 시즌2에 대한 열망은 강렬했다. 그 중심에는 타이틀롤 조장풍(조진갑) 역의 김동욱이 있다.
“이렇게 끈끈할 수 없는 현장이었어요. 마치 대학에서 하나의 작품 올리는 기분이었죠. 김동욱 선배님은 한 명도 빠짐없이 친해져야 한다는 철학이 있으셔서, 덕분에 모두 다 친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주연이고 제일 바쁜데도 늘 먼저 모이자고 말씀해주셨어요. 절대 강압이 아니고, 후배 입장에선 우러러 볼 선배님이 모임을 만들어주시니 너무 좋은 거죠. 전혀 어렵지 않은, 어제 본 교회오빠처럼요. 피곤하실 텐데도 늘 먼저 다가와주셨죠. 영향력이 있는 배우를 떠나, 그 자체로 멋진 배우고, 멋진 사람이었어요. 연기를 떠나 선배님의 마인드도 많이 배웠습니다.”
연신 ‘기분 좋은 아쉬움’을 표한 설인아. <조장풍>을 통해 얻은 것으로는 “설인아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한 인물을 통해 여러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성공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다면 반은 성공하지 않았나 싶어요. 뿌듯함을 얻었죠. 앞으로 연기하는 데 많이 도움 될 것 같아요. 현장에서 배운 게 너무 많기 때문에, 물론 전작에서도 많은 걸 배웠지만 <조장풍>은, 제 연기 생활에 있어서 제일 영향력 컸던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데뷔 5년, 꿈을 이룬 소녀의 다음 스텝은…
2015년 KBS 드라마 <프로듀사> 단역을 시작으로 2017년 JTBC <힘쎈여자 도봉순>, KBS <학교2017>에 이어 2018년 KBS <내일도 맑음>의 주연으로 당당하게 발돋움한 설인아. 그리고 만난 작품이 <조장풍>이다.
전작에 이어 <조장풍>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그의 행보는 흡사 계단을 뚜벅뚜벅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다. 데뷔 후 공백 없이 다양한 작품에서 당차게 활약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영화가 좋고, 영화 속 배우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꾸기 시작한 배우의 꿈. 그 길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설인아는 왜 배우가 되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한 사람이 작품마다 다른 매력을 가진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는 솔직하고도 원론적인 답으로 일갈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 란에 ‘만능엔터테이너’라고 써놨어요. 아빠는 (자녀의 희망직업으로) 예술가, 엄마는 아나운서라고 써놓으셨죠.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공부에 대한 강요가 전혀 없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주신 분이셨어요. 덕분에 여러 예체능을 오래 경험했는데, 갑자기 꿈이 생겼다고, 그 꿈이 연예인이라고 했는데도 두 분 모두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셨죠.”
데뷔를 꿈꾸며 본격적으로 연습생으로 들어가 트레이닝을 이어왔지만 노력과 달리 데뷔의 꿈은 요원했다. 연기자를 꿈꿨지만 가수 데뷔를 준비해야 했던 시스템적 한계 속, 기약 없는 꿈을 향한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고3때 처음으로 그만 두고 싶어졌어요. 그 때 엄마가 붙잡으셨죠.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는데, 지난 시간이 억울하지 않냐’고요. 그 한 마디에 다시 이를 악 물었죠. 어린 나이에, 꿈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살고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한 생활에서도 멀어졌는데, 억울하더라고요. 그 때 포기했으면 너무 후회했을 것 같아요. 엄마가 잡아줘서 너무 고맙죠.”
정식 데뷔한 지 5년째지만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보낸 시간에 비해 발전이 너무 더딘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은 항상 한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앞만 보고 달려갈 준비가 된, 한창 펄펄 뛰는 신예인 만큼 하고 싶은 장르는 무한하다. 설인아는 “이번엔 액션과 멜로가 적절히 섞인 장르였는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며 “제대로 된 액션 코미디, 혹은 더 진한 액션 멜로를 해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