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아세안 라인 3인방이 말하는 신남방정책 2년 “11월 부산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김정은 위원장 답방 돌파구 될 수도…”
문수인 기자
입력 : 2019.05.29 14:37:23
수정 : 2019.05.29 14:37:49
그동안 우리 외교부 내에서 ‘통’ ‘라인’이란 지칭은 주요 외교 상대국인 미·중·러 등을 담당하는 인사들에게만 사용됐다. 미국통, 일본라인으로 불리며 이들 주요 열강들을 다루는 인사는 외교부 내에서는 속칭 잘 나가는 축에 속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아세안을 미·중·러·일 등 한반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 4대 강국 수준의 외교 파트너로 선정하는 신남방정책이 추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아세안 외교와 담당 인사들이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임 아세안대표부 대사에 임성남 차관이 임명되면서 위상도 한껏 높아졌다.
그래서 매경럭스멘은 외교 현장에서 아세안을 오래도록 담당한 베테랑 외교관 세 사람과 함께 신남방정책과 관련한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주인공은 서정인 2019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 직전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를 지낸 김영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별대표, 현재 BBQ 글로벌고문인 백성택 초대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등 세 명으로 이들의 아세안 외교 경력을 합치면 50년 가까이 된다. 이들은 모두 아세안 외교의 거점 공관인 아세안 대표부 대사를 차례로 지냈고, 자신들의 외교관 생활 동안 아세안 지역 내 근무 경험도 모두 세 번씩이나 된다. 외교부 인사에서 이 같은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한다. 또 세 사람 모두 국내에서 세 차례 열린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에 직접적 관여를 한 공통분모도 있다. 특히 백 전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외교 자문단인 국민아그레망에서 활동했다. 당시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기초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외교부 아세안 라인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이력이다. 외시 기수로 따지면 백성택 고문(외시 14회)이 제일 맏형이고, 서정인 단장(외시 22회), 김영채 특별대표(외시 24회) 순이다. 최근 외교부 내에서 아세안국과 현지 공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니, 이 라인은 앞으로 더 길어질 것 같다.
외교부 아세안 라인 3인방(왼쪽부터 서정인 2019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 백성택 초대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김영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별대표)이 오는 11월 25~26일 부산에서 열리는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성공을 기원하며 아세안 방식으로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이 보는 신남방정책과 아세안 외교현장은 어떨까. 지금처럼 한국사회에서 아세안과 관련한 열풍이 뜨거웠던 적이 없어 신남방정책에 대한 소회도 남다를 터. 특히 올해 한-아세안은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맞이하고, 올 11월 25~26일 이를 기념해 부산에서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가 세 번째로 열리는 등 양측 관계에 큰 의미가 있는 해이다. 또 27일에는 한-메콩(베트남·태국·캄보디아·라오스) 정상회의도 처음으로 열린다.
이들 세 사람은 “아세안과 관련한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서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제는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연 5~6%씩 성장하는 경제적인 측면과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이 모두 아세안에서 열린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아세안은 경제와 외교 안보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파트너임은 분명하고 그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게다가 양측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호혜적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는 것은 현 추동력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서정인 단장은 이와 관련해 “아세안의 미·중·러·일을 포함한 대화상대국 중 특별정상회의를 세 번씩이나 연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며 “이것이 양국 관계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성택 전 대사는 상호 호혜적 관계 조성과 관련해 “아세안은 역내에서 서로 간 불개입 원칙을 표방하고 있지만 여러 국제 이슈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최근 한반도 평화 무드조성에 관심이 많고 그 일환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초청 문제를 꺼낸 것”이라고 말했다.
백 전 대사는 “김 위원장 초청 문제는 아세안을 활용하면 의외로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열린 북미회담에서 아세안은 김 위원장이 불편해 하는 인권 등의 문제보다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만 주력했고 김 위원장을 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청와대나 정부 측의 의지가 중요하고 또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김 위원장을 국제무대에 데뷔시키기 위한 안팎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김영채 특별대표는 “11월 초에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인 태국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언론보도가 있긴 했다”면서도 “공식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성택 초대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
이와 관련해 본지 취재에 따르면 2019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은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할 경우에 대비해 한반도 특별 세션 일정을 내부적으로 짜놓고 있다. 물론 초청이 무산되면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이 같은 면만 봐도 김정은 위원장 정상회담 초청 카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아세안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여느 때보다 좋을 수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측면도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신남방정책의 효과가 베트남에만 집중되는 특정 국가 쏠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 단장은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면서 “일본이 태국을 아세안 공략의 거점으로 삼았듯이 우리는 베트남을 아세안 전진기지로 삼는 베트남 플러스 원 전략으로 접근하면 된다”고 말했다.
서 단장은 “글로벌 다국적기업들은 아세안 전체를 하나로 보면서 국경과 상관없는 실리위주의 접근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점점 커가는 아세안 역내교역 시장을 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고려돼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아세안 역내 교역은 25% 수준이지만 10년 내 35%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에 차관급이 임명됐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서 단장 아세안을 4강 외교 반열에 올린다는 것을 거듭 천명한 것이고, 신남방정책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 같은 우리 정부의 행보에 아세안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외교부 내에서도 인정받는 인사가 아세안 대표부 대사로 임명됐다는 것도 나름 상징적인 측면이 있다.
김 특별대표 외교부 내에 아세안국이 만들어진 것도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특이하고 대담한 발상이다. 미국도 아세안국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서 단장 아세안 외교를 중시하겠다는 제도적 틀을 갖췄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차관급이 대사로 가는 곳은 전 세계 10곳이다. 물론 다시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 급을 낮출 수는 있겠지만 한 번 확정된 것을 다시 되돌리기는 힘들다.
백 전 대사 이번에 임명된 임성남 아세안 대표부 대사가 아세안 지역 공관장들보다 외시 기수에서 앞선다. 쉽게 말해 지역 내 거점 공관장이 선임이니 각 공관장들과 업무가 조금 더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겠나. 이런 것들도 신남방정책의 효율성과 관련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서 단장 맞는 말씀이다. 한-아세안 사이 연간 회의가 120여 차례나 열린다. 과거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덜할 때는 각료회의에 실장급을 보내거나, 고위급 회의에 국장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이럴 경우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회의에서 진행되기 힘들다. 하지만 수석대표의 급이 높아진 지금은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예상된다.
서정인
2019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
그런데 신임 아세안 대표부 대사는 아세안과 별 인연이 없는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서 단장 그래서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고, 우리 같은 전임 아세안 대표부 대사로부터 조언도 들었다.
백 전 대사 아세안을 상대하기 전에 먼저 지역 특성을 알아야 하고 이런 맥락에서 감성적인 방법론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했다. 국가 간 관계에서 감성이란 말이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세안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이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신남방정책 추진 2년째이지만 구체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백 전 대사 너무 단기적인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무조건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더 느끼게 된다. 1년 후를 내다보지 않는다. 현지 매출을 올리지 않으면 자리가 위태롭다. 신남방정책도 마찬가지 분위기인 것 같다.
서 단장 선진국은 아세안을 접근할 때 10~20년 후를 내다보고 전략을 짠다. 우리의 신남방정책도 그와 같은 기조를 가지고 있다. 올해 신남방정책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장학 사업만 봐도 그렇다. 친한 인사를 키우는 것이 1~2년 안에 되는가. 시간이 필요하다.
김 특별대표 같은 선상에서 그동안 아세안 외교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한-아세안 간 교역액은 1600만달러로 우리와 국력이 비슷한 호주의 경우 700만달러에 그친다. 그리고 한-러 교역의 10배 수준이다. 또한 1000만 명의 인적교류도 이뤄진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서 단장 장기적 안목이 중요한 대목은 아세안 역내 교역이 커지는 현실과 관련한 전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세안의 교역 구조를 바라보면 역내 25%, 역외 75%다. 그런데 이 25%를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보호주의 같은 흐름이 지속된다면 아세안 역내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0년 내 35%까지 커진다는 분석도 있다. 이 시장을 공략하려면 아세안 전체를 보는 거시적 전략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들이 있을까요.서 단장 나무도 봐야 하지만 숲도 같이 봐야 한다. 이는 아세안을 상대할 때 개별 국가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아세안 전체를 바라보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글로벌 다국적기업들은 각국 특성에 맞는 양자적 접근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아세안 전체를 하나로 보고 각국별 비교우위에 따라 분산화 또는 집중화 전략을 편다. 다국적 기업인 P&G가 아세안 전체를 국경이 아닌 소득별 수준으로 나눈 시장 공략 정책을 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도 우리만의 거시적 차원의 아세안 공략이 필요한 것이다.
김 특별대표 일본의 경우 양 대신 질적인 면을 강조하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하이 퀄리티 인프라란 개념을 내세우는데 일대일로에 대한 반발적 성격이 있긴 하지만 아세안 중산층이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베트남 집중 문제는 ‘플러스 원’ 접근 방식으로 해결
베트남 집중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서 단장 마침 SK가 베트남에 1조원을 투자한다는 뉴스가 있다. SK는 베트남만을 겨냥해 투자한 것은 아니다. 베트남을 중심으로 아세안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우리가 선점효과를 누리는 베트남을 거점으로 라오스·캄보디아·태국 등 주변 국가로 진출하려는 구상은 시의적절한 것 같다. 태국의 경우 일본의 뿌리가 깊어 우리 기업들이 이 같은 전략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베트남 올인은 안되지만 베트남과 주변국을 함께 아우르는 베트남 플러스 원 전략은 맞다고 본다. 일본의 아세안 전진 기지인 태국에 대홍수가 나자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에서 1차 한-메콩정상회의가 열리는데 이것도 베트남 플러스 원의 전략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다. 아세안경제통합으로 각국의 국경은 사라지고 있다. 시너지를 내기 위해 도로망도 잘 갖춰져 가고 있다. 베트남을 거점으로 삼으면 우리는 남부경제회랑을 통해 호찌민-방콕-프놈펜-다웨이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 문제는 베트남 플러스 원에 대한 공감대가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특별대표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 집중되는 것은 일본과의 상대적 격차가 적다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역사적 과거 때문에 일본은 다른 아세안 국가에 비해 베트남에 대한 투자가 적었고, 우리는 여기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특정 국가 집중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다른 아세안 국가들에서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이 커지면 자연스레 베트남 집중화 현상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일례로 현재 미얀마에서 한국자동차가 일본자동차와의 경쟁에서 앞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서 가장 큰 이슈는 자동차 핸들 방향 문제인데, 왼쪽 핸들 차량을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오른쪽 핸들 차량을 금지하면 일본 차량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미얀마에서 자리를 잡으면 분산효과도 일어나지 않겠나.
신남방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면에서 아세안과의 관계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백 전 대사 앞서도 언급했지만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고, 여전히 아세안을 파트너로 보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다. 일본을 한 번 보자. 일단 아세안을 보는 정치인들의 리더십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 각료들은 아세안 방한 인사 혹은 단체가 있을 경우 잘 만나주질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수상이 아세안 청소년 대표단을 관저로 초청한다. 아세안은 이 같은 부분을 관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세안은 ‘명분’을 상당히 중시하는 성향이 있다. 우리 정부에서 이 같은 지역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김 특별대표 확실히 이런 측면에서 일본은 앞서 나가는 것 같다. 일본은 이를 토대로 각국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함께 그 나라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태국에 투자를 할 경우 특정 지역에 대해서 분석하고 논한다. 그런데 우리는 막연히 태국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큰 차이다. 우리가 베트남에 물밀 듯이 밀려가지만 베트남 사정을 우리 것처럼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서 단장 정부가 아무리 정책을 통해 아세안을 강조한다고 해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인식 변화를 위해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 같다. 초중고 교과과정에 달라진 아세안을 넣을 필요가 있다. 또 인도네시아를 보면 지방의 주요도시에 아세안센터가 있다. 우리도 각 지방, 그리고 주요대학에 아세안 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면 이해의 폭과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김 특별대표 사실 외교부를 제외하고 정부 각 부처, 또 기업 등에서 아세안을 주특기로 가지고 있을 경우 별로 실익이 없다. 일부 부처는 아세안 담당이 기피 대상이다. 이런 바탕부터 잘 다져야 실질적 정책의 성과가 날 것 같다.
김영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별대표
아세안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김 특별대표 외교관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상호 이익이 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균형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아세안이 현재 우리에게 바라는 부분도 이 대목이다.
아세안은 현재 우리에게 무역 균형을 맞춰 달라고 하고 있다. 우리는 아세안으로 부터 4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수입이 늘거나 수출을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다. 필리핀 바나나 수입 문제만 해도 양국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지만 이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 입는 우리 농가들이 있어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다.
서 단장 개발 격차를 줄이는 문제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 캄보디아, 라오스 등 메콩지역 빈국들의 최대 관심은 선진 아세안들을 어떻게 따라 잡을까에 있다. 이들은 한국의 빠른 성장 과정과 관련한 비법을 전수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무역 수지 균형과 관련해선 확대 균형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 일본도 아세안에 대해 막대한 흑자를 거뒀고, 이에 대한 아세안 내의 불만이 있자 현지 진출 일본 기업들의 자국 수입 규모를 크게 늘렸다.
김 특별대표 자국 수입 규모 확대는 우리도 고민해 볼 수 있는 방안이지만 국내 시장의 규모가 작다. 시장이 커야 규모의 효과가 나오는데, 현지 진출 우리 기업들은 국내보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것이 더 이익이다. 또 자카르타에서 보니 한국에서 지갑을 열 인도네시아 부자들이 많은데 비자 문제 때문에 타국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비자 발급에 대한 편의성 문제도 아세안 각국이 꾸준히 요구하는 것이지만 국내 불법체류자 문제도 있어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이런 문제들이 한-아세안 양측에서 신남방정책에 대해 깊이 체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닌지요.서 단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외교 현장의 과제다. 신남방정책이 추진되니 관련 규제도 완화되고, 금융도 조달하기 쉬워졌고, 대사관과의 접면이 넓혀졌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뭔가 정책 효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부족하니 여전히 신남방정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많이 약한 것 같다.
백 전 대사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외교정책은 바뀌지만 신남방정책과 관련된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다. K팝 등으로 촉발된 한-아세안 간 인적·물적 교류증대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부의 역할은 이 같은 흐름이 더 잘 유지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서 단장 중국과 인도를 빼고 연 5% 성장하는 지역은 아세안 말고는 없다. 세계 각국이 아세안을 놓고 경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남방이란 이름이 나중에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위정자가 성장지역을 빼고 다른 곳에 정책을 집중할 수 있겠나. 아세안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더 노력하겠다.
그래서 이번 연말 열리는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서 단장 맞다. 대화관계수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정상회의지만 양측 관계의 새로운 시발점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미래 30년을 양측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담은 비전 성명을 준비 중이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열리는 한-메콩정상회의를 주목해 달라. 아세안 내 개발격차를 해소하고 베트남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기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준비과정에서 느낀 점은 여전히 아세안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에 대국민 홍보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올해 신남방정책은 관광·금융 등 기존 산업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5G 데이터경제, 바이오·헬스케어 등 4차 산업 분야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더 많은 기회들이 양측에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아세안이 원하는 비자 개정, 항공문제, 장학사업 기술교육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10년 만에 한-아세안 FTA가 개정될 예정이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과도 새롭게 FTA 체결 추진에 나설 예정이다.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은 한반도특별세션 준비 중
아무래도 빅 이벤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 여부인데요.김 특별대표 제가 뭐라 말할 입장이 못 되지만 아직도 유동적인 부분이 많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아세안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기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세안이 내세우는 중심성 원칙에 따르면 국제 이슈를 자기들이 주도해서 풀어나간다는 외교 방침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더군다나 2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모두 아세안에서 열리지 않았나.
백 전 대사 김정은 위원장은 동남아에서의 환대를 기억할 것 같다. 아세안은 남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비동맹 중립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남에 대한 배려가 있다. 김 위원장 방문 시 아세안은 인권·미사일 문제 등 북한이 껄끄러워 하는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아세안 방문이 굉장히 편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참가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김 특별대표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없지만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이 11월 2~4일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할 의사가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긴 했다. 하지만 추측일 뿐인 것 같다.
백 전 대사 인도네시아는 오래 전부터 북한과 가까웠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 초청 언급도 이 같은 양국의 관계가 바탕이 됐을 것으로 본다.
현지 신남방정책에 대한 인지도는 어떠합니까.김 대표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한국이 아세안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는 것은 느낀다. 일반 국민들은 솔직히 K팝, 한국 드라마, 삼성 스마트폰 등으로 한국을 인지한다.
백 전 대사 그런데 우리는 아세안을 잘 모른다. 대사 시절 보면 현지를 방문하는 우리 정치인들 언론인들조차 아세안이란 말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아세안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각국 사람들은 자국에 대한 정체성이 강하지 아세안이란 틀에서의 정체성은 그리 강하지 않다. 이는 아세안 내부에서도 통합에 대한 저항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신남방정책도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신남방정책의 핵심 정책인 3P에서 사람(People)을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잘 한 것이다. 아세안 통합과정에서 신남방정책이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우리의 현지 입지도 크게 강화될 것이다. 아세안 지도자들의 고민도 아세안 통합을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체감할 수 있느냐에 있다.
서 단장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아세안에서는 최근 국민중심 공동체, 국민지향성 공동체라는 말을 부쩍 내세우고 있다.
아세안 베테랑 외교관 세사람이 신남방정책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방향성은 옳지만 우리의 역할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서 단장 그래서 ‘사람’에 초점을 맞춘 사회문화적인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 신남방정책의 주요 방향성 중 하나다. 일본이 이 분야에 앞서 있긴 하지만 우리도 공간이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한-아세안협력기금을 기존 700만달러에서 1400만달러로 크게 올렸다. 우리도 이를 사용해 동아시아및아세안경제연구소(ERIA) 같은 연구소를 만드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아세안경제통합의 주요 현안인 노동력 이동과 관련해 직업교육 표준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모두 사람에 중심을 둔 정책이다. 올 연말에 있을 특별정상회의에서 구체적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다.
백 전 대표 지원을 하려면 통 크게 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관련 예산인 한-아세안 협력기금보다 많은 액수를 일본은 연구소 하나에 투자한다. 그동안 우리는 아세안에게서 막대한 이익을 누려왔다. 아세안도 이 같은 사정을 다 안다. 겉으로 포장하는 것도 좋지만 실질적인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진정성이 없으면 아세안도 우리를 공동 번영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
김 특별대표 정부는 내주고 민간에서 이익을 더 창출하는 이런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서 단장 이번 아세안특별정상회의에서 아세안협력기금은 증액됐고, 이번에 신설된 열린 메콩회의 관련한 기금도 100만달러에서 200만달러로 늘린다.
중국과 일본처럼 전폭적 지원은 불가합니까. 해법은.김 대표 경제 규모도 다르고 경제구조도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중국이야 정부 입김이 세니 일대일로 같은 정책을 펴면서 통 큰 투자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경제 사회적 구조가 아니다. 그러고 우리 사회 각계 리더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백 전 대사 아세안을 이익 추구 대상이 아닌 상생의 파트너로 여기지 않으면 결국 실기할 수 있다. 긴 호흡의 물적·인적 투자가 필요하다. 일본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상대에 대한 배려다. 일본 사람들은 동남아 사람들과 편하게 지낸다. 한국 사람들은 아세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윽박지르고 위에 서려는 습성이 강하다. 일본도 한때 우리와 비슷했지만 꾸준한 캠페인을 통해 바뀌었다. 우리도 그런 것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 특별대표 재외국민보호과장을 할 때 해외여행에서 추태를 보이는 우리 국민 문제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일본도 1970~1980년대 우리와 비슷했다. 일본 정부는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이를 바꾸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각계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자카르타에서 한국 언론을 모니터해보니 공통의 시각이 경제적인 것에만 치우쳐져 있었다. 솔직히 좀 답답했다. 한국이 너무 이익만 챙긴다는 인식은 좋지 않다. 포장이라도 다르게 해야 한다.
사실 신남방정책 자체도 경제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서 단장 신남방정책이 너무 경제적인 측면만 보인다는 것은 유의해서 들어야 할 대목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신남방정책 중 우선이 사람(People)이다. 다만 부각이 안됐을 뿐이다. 아세안 문화원을 통해 아세안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또 베트남 3대 도시에 복수비자를 발급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김 특별대표 사실 대통령의 부르나이 방문은 아세안 전체와의 거리를 좀 더 좁히기 위한 정무적 판단의 성격이 강했지만, 언론보도는 양국의 경제적 협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안타까웠다.
끝으로 한 말씀씩 해주시면.서 단장 아세안과 동남아는 같은 뜻이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동남아는 지리적 개념과 식민지 국가의 경험이 있는 단어고, 아세안은 자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서 스스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을 향한 호칭부터 ‘아세안’으로 통일 할 필요가 있고, 상호 방문 1000만 명 시대에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서로를 봐라봤으면 좋겠다.
백 대사 아세안 외교의 기본은 감성이다. 미국통인 임성남 신임 아세안대표부 대사에게 당부한 말이기도 하다. 감성적 접근이 중요한 이들이 11월 연말에 한국의 현실을 보면 어떨지 솔직히 걱정이 된다. 벤치마킹의 대상인 한국의 거리가 갈등으로 얼룩지고 사회가 혼란스럽다면 ‘이런 나라를 우리가 배우려고 했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의 현실은 손님을 맞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 행사는 현 정부 들어 가장 규모가 큰 행사라고 알고 있다. 우리부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되지 않나 생각된다.
김 특별대표 아세안 외교는 국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외교 현장에서 보면 아세안 사람들은 정권 바뀌면 기존 정책은 무용지물이 아닌가 하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꽤 된다. 정책 영속성에 대한 컨센서스가 중요하단 얘기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