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늪에서 피어나는 연꽃기업] (3) 채일 수프로 대표| 국내 유일 조경수(樹) 수출기업 청계천·서울숲·개성공단 참여
박지훈 기자
입력 : 2019.03.28 15:16:39
수정 : 2019.03.28 15: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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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 1997년 삼성SDS에 입사해 그룹정보개발실에서 일했다. IMF 이후 희망퇴직한 뒤 닷컴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전공을 살려 ‘수프로’를 설립해 인터넷을 활용한 온라인 나무 유통채널을 구축했으나 인터넷을 쓰는 농가가 적어 한 차례 쓴맛을 봤다. 이후 전국 방방곳곳을 다니며 지역별 조경수 분포 현황을 파악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산업적 성장 기반을 닦았다. 20년간 조경수를 비롯한 각종 나무를 개발, 생산, 유통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수프로는 현재 활발하게 해외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초미세먼지가 연일 전국을 뒤덮는 상황에 도시생태재생사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주거환경에도 녹지와 생태환경을 갖춘 숲세권이 각광받으며 아파트 조경산업은 물론 황폐해진 산림을 복원하는 생태녹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유난히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이 있다. 삼성맨 출신인 채일 대표가 2000년 설립한 수프로가 주인공이다. 코넥스 상장기업인 수프로는 조경수를 비롯한 각종 나무를 개발, 생산, 유통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으로 설립이후 국내 굵직굵직한 도심생태조성산업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1년 부산 아시아경기 골프장에 나무를 공급한 것을 시작으로 조경 공사와 도시 녹화 사업에 진출해 서울숲 조성, 청계천 복원에도 참여했다.
비결을 물으니 채일 대표의 입에서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이란 답이 나왔다. 수프로는 각종 묘목을 효율적으로 기를 수 있는 육묘용 용기를 개발해 2007년 특허를 받았다. 나무뿌리들이 나선형으로 뭉쳐 자라지 않고 잔뿌리가 많이 생기도록 도와 노지 재배보다 2배가량 빨리 성장하고 옮겨 심어도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2017년에는 토마토와 감자가 한 번에 열리는 친환경 식물 ‘톰테이토’를 세상에 선보이기도 했다.
세계시장에 나무 수출하는 일본 보고
2007년부터 해외시장 진출 노크
국내에 독보적인 유통인프라를 구축한 이후 시야를 세계시장으로 넓혔다. 먼저 빠른 속도로 산림황폐화가 진행 중인 북한지역 산림조성사업에 참가했다. 2007년 개성공단 조성사업에 참여해 가로수 17만 그루를 공급하고 2010년 평양 산림 복원을 위해 묘목 29만여 그루를 북한에 보내기도 했다.
2008년에는 수백억원 규모로 KOICA가 실시하는 해외 녹화사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의 가능성을 찾았다. 산림청 녹색사업단, 국립산림과학원, 각종 산학협력기관 등 국내 녹화사업을 대표하는 쟁쟁한 공공기관들을 누르고 수차례 해외 녹화사업을 맡은 바 있다. 2008년 황사 발원지 중국 우란부허 사막 확산 방지 및 생태복원 사업을 맡아 1000ha에 방사림을 조성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황투 고원 복원, 키르기스스탄 산림 복원, 우즈베키스탄 조림 사업을 마쳤다. 튀니지 코르크참나무숲 복원 사업도 완료했다.
국내외 활발한 사업을 통해 수프로가 지난해 거둔 매출액은 약 230억원이다. 내년이면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채일 대표는 중국, 베트남, 중앙아시아 시장에 조경수 수출을 확대하는 한편 ‘부채제로(0)’를 선언하는 등 안정적인 재무 상태를 유지하며 코스닥 이전도 추진하고 있다. 채일 대표는 “수프로 설립 당시 안타깝게 접었던 수목 온라인 유통사업도 정비해 다시 시도할 계획”이라며 “새롭게 물색 중인 대규모 부지에는 1차, 2차, 3차 산업이 함께 공존하는 아그로파크(Agro Park) 조성에도 나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채일 수프로 대표를 만나 수목 사업의 전망과 미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삼성SDS라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2000년 창업에 나섰다
▷대학교는 점수 맞춰서 가게 됐다.(웃음) 입학하고 나니 미적인 감각이 많이 필요한 학문이었다. 크게 소질이 없어 IT쪽을 지원하게 됐다. 1990년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SDS에서 그룹정보개발실에 입사했다. 이후 IMF가 터지고 희망퇴직을 했다. 닷컴버블이 막 일어나던 시기라 IT기업출신으로 창업을 꼭 해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조경사업은 통상 유망산업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어떤 비전을 봤나?
▷우리의 공급처는 임업 혹은 농업이고 수요처는 조경이다. 양쪽에서 모두 수익모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농업이나 임업분야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수 있고 조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조경사업은 건설업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는 인식이 많은데 수프로는 임업에서도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실제 사막화방지사업 등 해외사업의 경우 주로 임업이 많다.
▶창업 당시 조경수 유통 온라인플랫폼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조경을 비롯해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전문적으로 나무를 유통하는 기업이 없었다. 전공을 살려 인터넷을 활용한 조경수 유통 플랫폼을 만들어 B2B(기업 대 기업) 비즈니스를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래처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현업에 바쁜 농부들은 인터넷환경에 익숙지도 않았다. 6개월 만에 과감하게 플랫폼 사업을 포기했다. 나무를 사서 조경을 하는 조경 대행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환경이 많이 달라져 모바일에 익숙한 농가들이 많아졌다. 새롭게 사업모델을 구상 중이다.
▶전국에 있는 나무 데이터베이스(DB)는 어떤 과정을 통해 구축했나?
▷처음에는 전국에 있는 나무를 찾아다니며 3만 리씩 다녔다.(웃음)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목격한 것만 판매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무의 스토리텔링도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예전 헬로 네이처가 농산물을 가지고 했던 전략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매출액이 100억원이 넘어가면 그러한 전략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수프로와 여러 번 거래했던 농가는 신뢰가 쌓이고 자연스럽게 DB화가 가능하다.
▶국가가 공공기관에서도 해볼 만한 사업 같은데?
▷이전에 시도는 있었다. 통계청에서 매년 나무 생산을 집계하기도 하다. 그러나 특히 조경분야에서는 데이터베이스의 질이 중요하다. 그냥 밭에 심어놓는다고 해서 상품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상품가치를 파악하고 어디에 어울릴지 판단해 수요자가 원하는 나무를 매칭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세부적인 나무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밥값, 기름 값, 숙박비 등 모든 것이 비용이다. DB의 퀄리티(Quality)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바로 높은 진입장벽이 된다.
▶판매되는 나무의 평균 상품의 단가는?
▷100원짜리 풀부터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조경수까지 다양하다. 평균단가는 10만~20만원 정도다.
▶현재 국내 나무 시장규모와 성장 가능성은 어느정도로 내다보고 있나?
▷현재 7000억원에서 크게는 연간 1조원쯤으로 추정된다. 점점 초미세먼지로 인해 숲세권에 대한 수요와 도시생태재생사업 등 다양한 사업기회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아주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향후 대북 녹화사업에 뛰어들 예정인가?
▷단기적인 이슈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고 있다. 북한은 산림 황폐화가 심각해 복구가 시급한 상황이다. 수프로는 이미 2006년 개성공단 조성공사에 조경식재공사용 조경수를, 2010년 봄 평양에 산림복원용으로 소나무 묘목을 공급했다. 2015년에는 겨레사랑 숲 조성용 ‘백두산 미인송(소나무)’ 묘목도 보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대북협력지원사업이 재개된다면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의 산림황폐화 정도는 얼마나 진행됐나?
▷북한의 연도별 산림면적비율은 1990년 68%에서 2007년 47%로 줄었다. 근 20년간 북한 전체 산림면적의 3분의 1인 260만ha(78억 평)쯤 사라졌다. 산들은 거의 헐벗었다고 보면 된다.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고 옥수수 밭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개마고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황폐화를 겪고 있다. 필히 조림사업이 필요한데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 땅에 심어진 일본산 소나무 보고
전세계 직접 수출도 노려
▶200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해외 녹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 공사에서 70~80%가량은 수프로가 선정됐다. 총 6차례 해외사업을 진행했다. 2008년 중국 내몽고(2008~2010년) 100만달러 규모의 사막화 방지 사업을 처음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섬서성(2010~2013년), 키르기스스탄(2011~2015년) 우즈베키스탄(2013~2016년), 우즈베키스탄(2013~2016년), 최근에는 튀니지(2014~2018년)에서 총 750만달러 규모의 사업을 완료했다. 수익은 물론 해외진출의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 현지 네트워크와 경험측면에서 상당한 도움이 된다.
▶공공기관과 경쟁하는 KOICA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비결이 있나?
▷‘맞춤형 특수제안’을 많이 한다. 같은 예산에서도 단순히 치고 빠지는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수혜국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사막화방지 사업에 있어서는 양묘장을 작게라도 조성해서 나무를 키우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산에도 심을 수 있도록 한다. 사막이나 열대지역에서도 인위적으로 나무를 자라게 할 수 있는 기술도 함께 전수한다.
▶해외에 직접 나무를 수출하는 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8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나무는 수출입이 어렵고 검역도 어려워 생각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8년 중국 내몽고 사막화방지 사업을 맡아 현지에 가보니 일본산 소나무가 엄청 심어져 있더라. 일본이 중국에 엄청난 물량의 나무를 수출하고 있었다. 직접 일본의 수출처를 찾아가보니 거대한 소나무가 잔뜩 포장돼 있더라. 일본의 작은 기업들이 중국 외에 대만, 베트남, 유럽까지 살아있는 나무를 수출하고 있었다. 그때 보고 이런 시장도 가능하구나 생각했다.
▶해외수출을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유통망이고 패킹(Packing)기술도 중요하다. 30~50년 된 나무를 잘 포장해서 죽이지 않고 이동시키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또 각 국가의 통관 및 검역을 통과할 수 있는 노하우도 있어야 한다. 미국 같은 경우는 나무를 수입하기 위해서 흙이 1톨도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무균질의 인공토양을 사용해야 한다. 유럽은 더 까다로운 통관절차가 있다.
▶가시적인 해외수출 실적은 나타나고 있나?
▷해외수출은 현지에 없는 수종을 판매하다보니 부가가치가 국내 사업에 비해 몇 배는 높은 편이다. 지난해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작년에 최초 광저우 지역에 5000만원 규모의 수목을 수출했고 지난주에 2억원이 조금 넘는 규모의 계약도 체결했다. 또 현재 50~100억원 단위의 주문이 들어와 계약을 최종 조율 중이다.
▶50억~100억원 규모의 계약이라면 수프로의 외형 대비 꽤 의미 있는 규모인데?
▷중국의 거대 유통기업 쑤닝사가 골프장내에 영빈관을 짓는데 한국산 나무를 공급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계약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 총 85주의 원하는 나무 리스트를 보내왔는데 그 중 우리가 몇 그루의 나무를 찾아 공급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도 해외 수출사업에 있어서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계약이라 생각한다.
▶임야 자원이 풍부한 중국이 나무를 수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같이 발전일로에 있는 국가들은 그동안 조경분야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건물은 1년 만에 뚝딱 올릴 수 있지만 그에 어울리는 나무는 중국내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오랜 기간 육성이 필요하고 어울리는 나무는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상지카일룸이 10%지분참여를 통해 전략적 투자자로 가세했는데?
▷사실 그동안 직접투자를 받는 것은 지양해 왔다.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해 추진하는데 외부투자자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금융사에게 CB, BW를 발행했는데 다 상환했다. 수목의 성장주기나 사업모델을 봐도 3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라 보고 상지카일룸과 손을 잡았다. 함께 건축, 조경, 임야 토양 등 함께 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오랜기간 조성한 강진의 6만 평 규모의 양묘장을 매각했다. 새로운 조성사업계획이 있나?
▷그동안 나무를 키우고 조경에 주로 신경을 썼는데 나무도 키우고 휴양도 할 수 있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남 강진에 운영하던 6만 평 규모의 양묘장을 매각했고, 대신 20만~30만 평 규모의 산림을 매입할 계획이다. 이곳에 양묘목과 휴양시설을 갖춘 6차 산업을 해볼 계획이다.
▶6차 산업이라 하면?
▷소위 말하는 아그로파크(Agro Park)다. 풀어서 애그리컬처 파크다.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논,밭, 임야에 나무를 심어 육성해 1차 산업, 판매나 유통을 하는 2차 산업, 나무가 크면 수목원이나 관광지를 조성하는 등 3차 산업도 영위가 가능한 종합개발사업이다. 이후에는 등산코스가 생길 수도 있고 양묘장도 조성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들여서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조성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부지의 가격이 상승하는 캐피털 이익도 노려볼 수 있다.
▶내년 20주년을 맞이하는데 새롭게 설정한 비전이 있나?
▷조경수 모바일 플랫폼 ‘격(格)’을 선보이려고 준비하고 있다. 중국, 대만, 베트남, 유럽까지 수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북관련 사업 역시 기회를 보고 있다. 인건비 문제나 부지를 투자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도 있다. 대북사업역시 장기적으로 수프로의 중요한 기회로 체계적으로 잘 준비하고 있다. 올해 ‘부채제로’를 계기로 20년 사업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코엑스 이전상장이 이뤄질 경우 긴 호흡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자금이 조달 가능하다. 구상하고 있는 사업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 단계 퀀텀점프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