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프런티어] 박효순 나루가온 회장 “대종손家 전통의 손맛 지키며 사회적 약자들 창업 돕는 게 꿈”
김병수 기자
입력 : 2019.02.27 11:29:43
수정 : 2019.02.27 11:30:39
She is…박효순 나루가온 회장
경기도 이천의 대종손 집안에서 자라 불혹에 한식당을 열어 매출 100억원대 기업으로 키웠다. 현재 광장동 가온과 나루가온에프앤씨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범죄 피해자를 돕기 위한 민간기구인 KOVA의 설립자이자 수석부회장이다. 최근 세종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서울 광진구 광나루에 따뜻한 집을 뜻하는 식당 ‘가온(加溫)’이 있다. 음식에 관심이 좀 있다는 이들에게는 종갓집에서 지켜 온 전통 한식의 맛이 살아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광장동 ‘가온’을 경영하는 박효순 회장은 불혹이 돼서 한식사업을 시작, 매출 100억원대의 기업 ‘나루가온’으로 키워냈다. 2008년 광진구에서 한식당으로 시작된 나루가온은 현재 광장동 ‘가온’을 비롯해 명동성당점, 그리고 4곳의 현대백화점에 직영매장 ‘리원’을 운영 중이다. 남양주에는 한식류 전문 제조공장까지 갖춰 한식 식품과 식자재를 제조·판매한다.
나루가온 한식의 뿌리는 전통의 종가 음식이다. 박 회장의 집안은 경기도 이천에서 유명한 대종가였다. “많은 제사와 손님 접대로 늘 집안에선 음식 만드는 일이 끊이지 않았어요.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가족, 손님들과 맛있게 나눠먹던 기억이 현재의 나루가온으로 이어진 셈이죠.” 업계에서 박 회장은 전통 음식의 노하우를 외식 비즈니스로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요리 전문가이자 한식 문화를 선도하는 외식 기업가인 박 회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회사명인 ‘나루가온’의 뜻이 궁금합니다.
▷나루터의 나루에 따뜻한 집을 뜻하는 ‘가온(加溫)’을 붙였습니다. 추울 때 따스한 음식과 아늑함이 있는 곳을 지향하자는 의미입니다. 가장 좋은 음식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나루가온의 음식과 식재료 모두 고객들에게 ‘따스함’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요리연구가에서 외식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첫 외식 사업은 한식은 아니었어요. IMF 직후에 광장동에서 레스토랑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맛과 분위기, 고급 인테리어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외식업 성공 노하우를 익히게 되면서 다시 크랩 전문점, 이자카야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업을 중단하게 됐어요. 사업이 커지면서 단순히 음식과 맛 문제가 아니라 경영이 필요했습니다. 심신이 지치기도 했고, 좀 편하게 살자는 마음도 있었죠. 그러다 2008년 광장동 ‘가온’에서 한식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박 회장이 다시 외식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남다르다. 사업을 접고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에서 민·형사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가장 많은 조정건수를 달성해 검찰총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정위원으로 일하면서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 부족을 절감했다. 박 회장은 “피해자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 특히 아이들의 2차 피해가 막심했어요. 반면 구제를 위한 국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나서 관련 민간 기구 설립에 나서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범죄 피해자를 돕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미국, 일본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나온 결과가 관련 민간기구의 설립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단체가 바로 KOVA(사단법인 한국피해자지원협회)다. 코바는 현재 전문변호사, 의사, 사업가, 교수진 등 순수민간인들이 참여해 피해자들에게 의료, 법률 지원, 생활비 지원, 등록금 면제 등 일상에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준다. 회원만 3만 명을 넘는다.
협회활동을 하면서 한계가 있음을 느껴 개인적으로 피해자를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박 회장은 피해자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다시 외식업을 시작했다.
“피해자들을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범죄나 재난 피해자를 돕기 위해 다시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전과는 달리 한식메뉴를 선택하셨습니다.
▷피해자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마음으로, 음식으로 전수해 주려는 마음으로 다시 외식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창업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 목표를 세워놓고 보니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품목을 택해야 했어요. 익숙하면서도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음식은 ‘한식’이었죠. 면이나 만두 같은 비교적 간편한 한식 메뉴를 고급화해 나가는 데 주력했습니다.
2008년 광장동 가온을 시작으로 박 회장의 한식 외식사업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2010년에는 법인을 설립하고 이후 직접 한식 식자재 생산에도 뛰어들었다. 현재 박 회장의 외식사업은 광장동 가온, 나루가온, 리원 세 브랜드로 구성돼 있다. 광장동 가온은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고, 현대백화점 입점 업체인 리원은 좀 더 대중적인 맛을 선보인다. 나루가온에프앤씨의 남양주 공장에선 사골육수와 양념 베이스 등 전반의 재료를 생산하고 있다. 직원 수가 100여 명으로 늘어나면서 생산, 인력, 품질관리 등 경영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한 박 회장은 최근 대학원에서 프랜차이즈 MBA과정을 마쳤다.
▶한식이 우리 음식이기는 하지만 사업화하기에는 어렵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한식은 무엇인지요.
▷한식을 배운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당장 손맛, 장맛은 천차만별이고 전통을 고수하는 일도 어려워요. 대표적인 한식이라는 신선로를 1년에 몇 번이나 접해봅니까? 같은 이유로 이제는 전통을 지키되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쉽게 익힐 수도 있어야 하구요. 저도 한식 사업을 하다 보니 손맛, 장맛을 표준화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한식 세계화라며 김밥, 떡볶이를 내세우는데 전통 한식이라고 하기에는 아쉽습니다. 베트남 쌀국수는 세계화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전통 양반음식인 사골국수는 어때요. 우리에게도 된장찌개, 갈비찜, 구절판처럼 건강에도 좋고 보기도 좋아서 외국인들도 좋아할 만한 음식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음식들을 번거롭지 않고 만들기 쉽게,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게 바로 실력입니다.
박 회장의 음식 철학은 간단명료하다. 신선한 재료가 으뜸이라는 것이다. 원가가 높더라도 품질에는 타협이 없다. 고유의 식재료와 맛, 향, 식감을 잘 살리되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광장동 가온이나 나루가온에서 사용하는 사골육수만 해도 ‘엄마가 해주는 건강한 맛’을 고수하되 쉽고 표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끊임없이 찾는다. 박 회장은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음식이 별로면 몇 번을 다시 방문하겠느냐”며 반문한다. 동시에 “장인 정신만 가지고는 영업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맛이든 영업이든 표준화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게 박 회장의 지론이다.
최근 박 회장이 젊은이들을 위한 온라인 동영상 요리 강습에 공을 들이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다. 그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20분 만에 만드는 돼지갈비찜’ ‘불지 않는 잡채’ 같은 레시피 프로그램은 15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전통을 지키되 1인 가구와 같은 최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한식 수요를 보여주는 사례다.
▶여러 곳에 매장을 운영하고 계신데, 특히 신경 쓰는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명동성당점은 의미가 있어요. 명동성당에서도 성당을 방문하는 내외국인이 고루 좋아할 수 있는 한식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음식점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적이면서도 친숙한 곳으로 나루가온을 낙점했다고 들었어요. 한국을 대표할 만한 공간에서 마음으로 차려낸 전통 한식을 선보인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최근 자영업자들이 어렵습니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공부가 안돼있거나 기술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지원은 없이 방치해놓고 있다가 구조조정을 얘기해요. 자영업자들은 실업급여 같은 복지 제도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합니다. 당연히 국가 차원의 제도적인 지원이 따라야죠. 예를 들어 외식업을 시작하기 전에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한다든지, 멘토-멘티 제도를 활성화해서 준비된 창업자로 만들어 준다든지 하는 게 꼭 필요합니다. 위생, 인력관리, 원가 관리 같은 것만 교육시켜줘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요. 실패한 경우나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재활 프로그램도 고려해야 합니다.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라고 방치하는 게 정책은 아니죠.
▶나루가온을 어떤 기업으로 만들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일단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이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는 틀을 만들고 싶습니다. 당연히 직원들의 처우도 개선해 나가야 하구요. 그리고 한식 레시피가 손맛, 장맛, 비법 이런 식이 아닌 젊은 사람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노력해야겠죠. 간편하게 전통의 맛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한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외부적으로는 KOVA 설립에 기여한 만큼 범죄 피해자들에게 창업 지원을 해나갈 작정입니다. 피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스스로 독립해서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올해부터는 한 가정 정도를 선정해 창업할 수 있도록 계획 중입니다. 가게 오픈을 위한 보증금, 음식, 경영 등 통합 솔루션을 만들어서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