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소영(45)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1997년 영화 <비트> 속 새초롬한 로미다.
지금 30~40대 남성들은 극 중 민을 연기한 정우성의 오토바이 뒤에 탄 고소영 혹은 놀이터에서 고소영을 중심에 두고 오토바이를 타고 도는 정우성의 모습 정도는 기억하리라.
로미와 민은 당시의 청춘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비트>를 보지 않은 자 청춘을 논하지 말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김성수 감독의 <비트>는 지금도 이따금 배우들과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이다.
▶20년 전 영화 <비트> 속 청춘으로 기억된 그녀
고소영은 이 한 작품을 남기고 이내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물론 <비트>의 스타 고소영이 갑자기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연풍연가>(1999), <하루>(2001), <이중간첩>(2003), <아파트>(2006), <언니가 간다> (2007) 등에 출연했으나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언니가 간다>는 영화계 안팎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으며 총 17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고, 같은 해 방송된 드라마 <푸른 물고기> 역시 한 자릿수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며 막을 내렸다.
그렇게 대중과 접점을 찾지 못한 고소영은 <연풍연가>로 호흡을 맞춘 배우 장동건과 2010년 결혼을 발표해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이후 연기자 고소영은 온전히 한 사람을 위한 아내이자 엄마가 됐다. 결혼한 그해 10월 첫째 아들을 낳았고, 4년 뒤인 2014년 2월 둘째 딸을 봤다. 이제 대중에게 고소영은 장동건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만 존재했다. 몇몇 CF나 화보로는 활동했으나 그게 다였다.
▶“활동 안 한 이유는 육아 때문”
지난 10년, 몇몇 작품의 제작진이 ‘고소영 컴백’ 작업을 진행했으나 당사자는 단호했다. “아이들에게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거절한 작품이 꽤 있다. ‘배우 고소영’으로 복귀가 멀어진 이유가 확실했다. 그랬던 그가 10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다. 지난달 27일부터 방송된 KBS2 월화극 <완벽한 아내>다. 이유는 뭘까.
“제가 모든 게 서툴러서 아이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었죠. 물론 제가 없어도 아이들은 울다가 잘 놀기에 엄마를 안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혼자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웃음) 큰 아이는 이제 8살이고, 둘째는 여자아이라 뭐든 빠른 편인 것 같아요. 이 시기가 아니면 내 일을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제의가 들어왔죠. 원래 우리 부부 계획은 두 살 터울로 아이를 가지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힘이 들었어요. 아이가 네 살 정도 됐을 때, 혼자 노는 것을 보니 안쓰러워서 둘째를 가지게 됐죠. 그래서 복귀 시기가 늦어졌어요.”
<완벽한 아내>는 드센 성격의 주부 재복(고소영)이 남편 정희(윤상현)와 불화를 겪은 뒤 벌어진 한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소영은 환상 속에 있는 인물이 아닌 현실감 있는 캐릭터, 우리 주변인물 중 한 명이다. “오랜만에 돌아오는데 폼 나는 것보다 친근한 작품을 택하고 싶었다”는 그는 “사실 난 털털한 편”이라며 “재복과 비슷한 면이 많다. 무거운 것도 잘 들고 힘쓰는 것도 잘한다. 남에게 ‘이것 좀 해줘!’라고 시키기보다 내가 먼저 가 있는 성격”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피곤한 성격이다. 걸걸하고 터프하기에 연기하면서 현실적으로 동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태프들도 내가 힘이 센 걸 알아서 ‘재복은 진짜 들 것 같다’며 무거운 소품을 갖다 놓는다”는 현장의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대중에게 ‘시크한 도시녀’로 각인된 이미지와 많이 달라진 듯하다. 그는 “내가 새침하고 집에서도 스테이크를 먹을 것 같은 이미지라고 하는데 나도 다를 게 없다. 평소에는 편한 옷을 입고 다닌다. 매체를 통해 화려하게 보이다 보니 그렇게 인식된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그동안 내가 한 게 육아”라며 “‘완벽한 아내’에서도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도 드러냈다.
결혼 7년 차가 된 고소영. <완벽한 아내>로 돌아왔는데 본인은 완벽한 아내라고 생각할까? 아니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그는 “세상에 완벽한 아내는 없다”며 “다 자기만족 아닐까요? 공감하고 이해하고 어느 정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비결 같다”고 짚었다. “제가 재복과 같은 상황도 아니고 권태기도 아니지만 결혼 후 1년 정도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대중이 ‘너희는 다를 것 같아’라고 하는데, 다른 엄마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 준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고민이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어느 날은 안 좋았다가 지나면 또 신기하게도 괜찮았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이래서 부부가 몇십 년을 한사람과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저도 똑같이 하며 살아요.(웃음)”
▶“세상에 완벽한 아내는 없어요”
별다를 바 없다고 한 그는 여느 아내 또는 엄마처럼 남편과 아이들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고소영은 “신랑이 지금은 아무 일도 안 하고(웃음) 집에서 몸 만들기를 열심히 하면서 육아를 많이 도와주다 보니까 일할 때 마음이 편하다”며 “신랑이 ‘그동안 수고했고 마음 편히 나가서 네 일 하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촬영장에서 재복이한테 몰두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같다”고 좋아했다.
4살 딸 윤설 양에 대해서는 “혼자 보기 아깝다”며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 내보내고 싶은 바람을 전했다. 그는 “아들은 굉장히 수줍어하고 내성적이다. 그런데 딸은 매일 연기를 한다”며 “‘백설 공주’를 보고 난 후 사과를 주면 쓰러지고, 내가 뽀뽀해주면 일어난다. 그런 걸 보면서 ‘우리 혼자 보기 아깝다’고 얘기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보이면 너무 공주병이 될 것 같더라.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신랑도 유명인이다 보니 생각할 게 많다. 또 내가 쉽고 편하게 보는 것과 달리 촬영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아니까 감당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아이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큰아이는 엄마, 아빠 직업을 잘 아는 것 같은데 둘째는 잘 몰라요. 화보 촬영장에 데려갔는데, 막 울고 난리가 났죠. 본인이 예쁜 옷을 입어야 하는데 엄마가 입고 있다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당황했죠(웃음). 아들은 ‘엄마가 TV에 나오는 게 좋다’고 해요. 그러면 ‘엄마가 TV에 나오려면 밖에 나가야 하는데 그래도 좋아?’라고 묻죠. 그러면 또 ‘나가는 건 싫다’고 하더라고요. 아빠, 엄마가 나온 영화 <연풍연가>도 최근에 보여줬는데 보면서도 쑥스러워했죠. 아들은 ‘유아 사춘기’라 그런지 좋아하는 건지 쑥스러워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제 생각에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것 같지만요.”
▶변하지 않는 미모의 비결은 관리
오랜만에 만난 고소영을 보고 놀란 건 변하지 않은 미모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관리는 습관”이라고 단박에 답했다. “항상 몸무게를 재요.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도저히 안 되는 한계점을 느꼈죠. 몸무게가 갑자기 늘었는데 어떻게 해도 안 빠지더라고요. 그러니 우울해졌죠. ‘이게 뭐지’, ‘혈액순환이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슬퍼졌어요. 다행히 일을 다시 하면서 식욕이 떨어졌고 2.5㎏ 정도 빠졌어요. 이걸 유지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어요. 윤상현 씨와 저염 다이어트도 같이 하고 있고요. 몸이 가벼워지니 기분도 더 좋고, 드라마 끝날 때까지 2㎏ 더 빼서 몸무게를 예전처럼 유지하고 싶어요.”
고소영이 아줌마가 된 건 본인에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10년 전이면 절대 생각 못 했을 대답들을 했다. 그는 “나 아줌마 맞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이어 “요즘 들어 내가 뻔뻔해진 것 같다”며 “19금 농담도 하는데 제가 그런 말을 하면 스태프들도 좋아하더라. 농담을 할 때 빵빵 터지는 걸 즐기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 예고편에서부터 공개돼 관심을 받은 대사 “나랑 하는 게 그렇게 싫어?”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전했다.
“참담할 것 같아요. 자존심도 좀 상하고요. 남자한테 버림받은 건 아니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참담할 것 같아요. 요즘 100세 시대인데 한 배우자를 보면서 산다는 게 현실적으로 유혹이 많을 수 있다고는 봐요. 남자든, 여자든요. 그런데 그건 드라마적인 요소니까 음, 참 말하기 난감하네요. 부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저도, 신랑도 피곤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이해하려 합니다.(웃음)”
▶“새침한 도시녀? 저 아줌마 맞아요”
고소영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다양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분명 씩씩한 장면인데 눈물이 나오는 때가 있다”며 “삶의 경험이 풍부해져서인지, 부모가 돼 느끼는 자식에 대한 감정도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확실히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홍보 차원에서는 드센 아줌마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좋게 ‘걸크러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작품 만난 시점이) 보이시하고 걸크러시한 인물에 매료된 시점이었죠.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의 배우들을 보면서, 여자가 보기에도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드세고 억척스럽다기보다 재복이는 씩씩하고 자립적인 여성인 것 같아요. 저도 독립적이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편이고 많이 의지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대한민국에선 여자가 뭘 막 하면 ‘굉장히 세다’, ‘아줌마 같다’ 이런 표현을 하는데 안타까워요.”
잠시 숨을 멈춘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힘들게 살아도 다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자기 자신에 대해 관리를 훨씬 잘하는 시대잖아요. 옷 하나를 입더라도 자기한테 잘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그런 현명한 주부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외모적인 면 때문에 (제가 재복 역과) 안 어울린다고 얘기해 주시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제가 좀 더 진정성 있게 재복이를 이해하고 다가서면서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드라마보다 예능을 많이 보는데 특히 요리 프로그램을 많이 봐서 너무 출연하고 싶다”고 한 고소영은 “결혼하고 매일 요리 프로그램을 보니 남편이 ‘너무 이상하다. 이 밤에 왜 남이 먹는 걸 보냐’고 하더라. 그런데 지금은 본인이 더 많이 볼 정도가 됐다. 요즈음 장기 많은 친구가 많은데 ‘내가 나가서 보여줄 게 있을까?’라는 우려 때문에 못 나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리얼리티를 살린 예능이라면 언제든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