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해진입니다.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자연스럽게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려 했는데 마침 라인 상장이랑 타이밍이 맞아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7월 14일 이해진 의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이해진 의장은 공식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한게임 유료화를 발표한 이후 공식적으로 언론 앞에 선 것은 지난 2013년 라인의 가입자 3억명 돌파기념 행사와 지난 7월 라인 상장을 기점으로 마련한 간담회 자리였다. 10년 넘게 나타나지 않았던 이해진 의장이 최근 3년간 두 차례나 라인의 성공을 자축하는 자리에 모습을 보일 정도로 애정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있어 라인은 ‘미운 오리’ 같은 존재였다.
“정보기술(IT) 하는 사람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한국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에 나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툴 것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승부를 보자고 해서 ‘첫눈’을 인수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나와 오랜 시간 고생했습니다. 지난 6년 정도 계속해서 여기(일본)에서 열심히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매달 오가면서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웃음)”
지난 2013년 간담회에서 이 의장은 라인의 성공에 오랜 기간이 걸렸고 스스로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밝혔다.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던 해외 진출 시도의 끝자락에 거둬들인 성공이 라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미운오리’ 라인이 품은 황금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었습니다. 부딪혀 보니 인터넷 서비스로 다른 나라에서 자리 잡기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 대에서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 안 되더라도 후대에 잘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의장은 1999년 네이버로 독립한 이후 2000년 11월 21일 자본금 1억엔으로 네이버재팬을 설립했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에 치여 살던 벤처기업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구글과 야후가 선점한 일본 검색 시장은 좀처럼 치고 들어갈 빈틈이 없었다. 결국 이 의장은 해외 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05년 1월 31일 검색 서비스를 중단하고 커뮤니티 서비스만 유지시켰다. 8월에는 네이버재팬 사이트(naver.co.jp)도 폐쇄했다.
이듬해인 2006년 6월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로 350억원이라는 비용을 들여 검색업체 ‘첫눈’을 인수했고 2007년 11월엔 네이버재팬을 다시 설립했다. ‘첫눈’ 출신으로 네이버의 검색센터장을 맡고 있던 신중호 현 라인주식회사 CGO를 일본으로 파견했다. 네이버의 핵심 경쟁력인 검색을 책임지는 임원을 일본으로 보내는 결단을 보인 것이다. 2010년 4월에는 일본에서 블로그를 서비스하던 라이브도어를 인수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으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토메를 제외하면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다시 방향을 틀었다. 이 의장은 향후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간관계 및 커뮤니케이션 방식, 그리고 이에 최적화된 서비스는 무엇인지를 내부적으로 조사, 검토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라인은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전화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터넷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들은 무리 없이 작동하는 것에 주목했다. 또한 대지진으로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인터넷상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온라인 인맥 중심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진의 여파가 계속되던 4월 말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라인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네이버가 다년간 쌓은 인터넷 서비스 노하우, 초창기부터 일본 시장에 도전하며 얻은 이해도 등을 바탕으로 출시된 라인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아기자기한 일본인 감성에 맞춰 준비한 라인 스티커(이모티콘)가 인기를 끌면서 라인은 금세 일본인 80%가 쓰는 국민 메신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라인은 전 세계 가입자 10억명, MAU(월간이용자수) 2억2000만 명의 글로벌 메신저로 거듭났다.
이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지난 7월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 주식회사가 도쿄증권거래소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에 성공했다. 국내 기업 중 두 곳의 해외 증시에 자회사를 동시 상장시킨 최초의 사례다. 이 의장은 라인이 상장되는 역사적인 장면을 TV화면으로 지켜보며 신중호 CGO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축하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통화는 안 하고 메시지만 주고받았습니다. 방송에서 종치고 하는데 뭉클하더군요. 그래서 울지 말라고 보냈습니다. (중략) 라인이 일본에서는 꼴찌인 상황에서 발버둥치고 괴로워하던 걸 보고 위로하느라 사람들이랑 술 먹다가 해가 뜨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게 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꿈에서 깨면 또 꼴찌이고 답답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꿈. 근데 벨이 울리고, 인터뷰를 하는 걸 보니까 마음이 좀 그래서 어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이 친구(신중호 CGO)도 거기서 그렇지 않을까 하고.”
한편 업계에서는 라인이 신화를 쓰기까지 이해진-신중호의 신(新) ‘도원결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해외 매출 견인을 주도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LINE은 지난 2006년 ‘첫눈’ M&A에서 시작된다. 첫눈의 핵심 개발자였던 신중호 라인주식회사 CGO(Chief Global Officer)는 당시 구글로부터의 구애를 뿌리치고 ‘글로벌’이라는 목표로 의기투합하며 네이버로 합류했다.
신중호 CGO는 네이버의 검색센터장을 맡으며, 해외 진출을 준비하다 첫눈 개발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뒤 연이은 일본 검색 실패 뒤에 어렵게 찾아낸 결실이 바로 라인이다. 이해진 창업자는 지난 2013년 말에 가진 LINE 가입자 3억명 돌파 기자간담회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시 멤버 그대로 일본에 넘어갔다”며, 글로벌 진출을 위한 인수였음을 재확인시킨 바 있다. 네이버의 글로벌 도전기는 글로벌 시장에 목말라하던 피인수 기업의 핵심인력들이 이탈하지 않고, ‘글로벌’이라는 약속을 위해 매진한 결과의 산물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를 신(新) ‘도원결의’라 부르는 이유다.
▶철저한 성과보상 네이버의 큰 철학
“스톡옵션은 누구보다도 평가에 대한 공정성,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잘 성장하려면 특히 그렇죠. 그래서 평가위원회를 만들어서 그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중호 CGO가 가장 많이 받고, 저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보상은 회사의 의사결정 체계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굉장히 큰 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네이버 상장을 통해 이해진 의장이 얻은 스톡옵션은 557만2000주다. 신중호 CGO는 이보다 두 배 많은 1026만4500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라인 공모가인 주(株)당 3만244원(2800엔)으로 계산해보면, 이 의장 스톡옵션 가치는 1685억1957만원, 신 대표 스톡옵션 가치는 3104억3954만원이다. 이외에 라인은 2012년 1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임직원들에게 2568만4500주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을 부여한 바 있다.
신중호 CGO의 라인 스톡옵션수가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의장보다 두 배가량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술렁거렸다. 그동안 이 의장이 라인 스톡옵션을 활용해 네이버와 라인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의장이 보유한 네이버 지분은 4.6%로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쳐도 5%에 불과해 라인 상장은 이 의장의 지분율을 늘리는 절호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의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갔다.
“제가 창업자라서 스톡옵션을 받은 건 아닙니다. 10년 넘게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고요. 저도 리스크 테이킹을 하고. 이사회에서 이 사업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할 만큼 리스크테이킹을 해서 거기에 따른 보상이었습니다. 앞으로 네이버 안에서 좋은 사례가 될 겁니다. 안주하지 말고 헌신적으로 성과를 내면 의미 있는 보상이 될 수 있도록, 그런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해 나갈 계획입니다.”
실제 평소 이해진 의장은 측근에게 “라인의 성공이 없었다면 나도 잘렸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지분율과 무관하게 성과로 능력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회사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평소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의 이 의장은 직원들에게 맘먹고 쓴소리를 쏟아낸 적이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사내 강연에서 “‘삼성에서 일하다가 편하게 지내려고 네이버로 왔다’는 글을 보고 너무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다”면서 “NHN을 ‘동네 조기축구 동호회’쯤으로 알고 다니는 직원이 적지 않다”고 질타한 바 있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보다 절실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조기축구회와 달리 프로야구에서는 승패가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IT는 프로야구에 가까운 환경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잘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조기축구회만 너무 부각된 것 같습니다.(웃음) 6년을 일본에서 노력하고 많은 실패를 하다 마지막에 끝까지 남아있던 친구들이 만든 게 라인입니다. 이게 잘된 것을 보면 드라마틱하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절박함이 담겼을 때 사업이 성공하는구나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글로벌 경쟁에 언제나 꼴찌의 심정
제2·3의 라인신화 곧 터뜨릴 것
“네이버를 공룡이라고들 하시는데 구글 같은 큰 회사도 같이 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고질라나 어마어마한 괴물로 해야 할 겁니다.(웃음) 카카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할 겁니다. 저희보다도 해외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서비스들, 엄청난 자본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서비스와 어떻게 경쟁해야 좋을까. 이 고민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네이버는 대중에게 1등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 의장은 극심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 언제나 생존을 고민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초창기 구글, 야후와의 힘겨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던 절박함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네이버가 초기에 시작부터 강하게 누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대한민국을 장악했던 곳은 야후였습니다. 야후라는 브랜드는 너무나 강력했습니다. 또 라이코스도 있었고요. 전 세계에 큰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이나 SK텔레콤, 네이트 등 이미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네이버는 경쟁을 해오면서 성장했다고 자부합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미국에서 시작한 인터넷 업체들입니다.”
그는 아침마다 국경도 없이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는 인터넷 환경에 국내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바로 네이버와 비교를 한다고 넋두리를 하면서도 매일매일 펼쳐야 하는 경쟁을 ‘스트레스’라고 표했다. 그러면서도 라인상장을 필두로 본격적인 경쟁 채비를 마쳤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라인이 상장하게 되면서 라인 쪽 상장을 통해 많은 자금 확보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가 회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자금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전에도 수익은 냈지만, 그 수익을 가지고 일본이나 해외에 투자하고 국내 사업까지 끌어가기에 바쁘고 빠듯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이 확보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회사가 한 단계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거죠. 많은 자금을 기술 쪽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 의장은 라인이 독립과 상장으로 모회사인 네이버의 비전에 투자자들이 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와 새로운 성장동력을 묻는 질문에도 입을 열었다.
“네이버로서는 이제 또 위기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저희 임원들과도 많이 얘기하는데 다시 네이버를 (투자자들이)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글로벌 회사를 하나 키운 회사였다면, 이제 라인을 뺀 다음에 어떤 것을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이건 기술투자나 새로운 자회사들을 잘 키워서 ‘라인이 끝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뭔가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죠. ‘네이버에 투자하는 게 주주에게 이득이 되겠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네이버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3의 라인을 만들겠다고 자신한 이 의장은 곧 후속작을 터뜨릴 준비가 끝났다고도 밝혔다. 정확한 분야나 기술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좀처럼 듣기 힘든 이 의장의 비전은 그의 자신감 있는 말투에서 엿볼 수 있었다.
“웹툰을 10년 넘게 해 왔습니다. 의외로 스노우(동영상 메신저 앱)처럼 깊은 기술보다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도 있습니다. CIC(Company In Company)나 셀, 자회사 형태로 굉장히 많은 능력 있는 후배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로 시도를 합니다. 굉장히 기쁩니다. 라인이 첫 번째이지 라인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 다음번에 더 큰 시장에서 회사가 성장을 하는 데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기여하고 산업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또 재밌는 성공사례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많이 성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