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진출 20주년 맞은 한국엡손 시부사와 야스오 대표이사 | “올해는 B2B 원년, 엡손의 제품은 엡손이 직접 책임집니다”
안재형 기자
입력 : 2016.09.02 17:28:42
1917년 하토리 긴타로가 세운 작은 수입시계상에서 출발한 일본의 시계 제조사 세이코(Seiko)는 세계 최초로 쿼츠 손목시계(건전지로 동력을 얻는 쿼츠 무브먼트 탑재)를 개발하며 명성을 얻게 된다. 1964년 도쿄올림픽의 공식 타임키퍼로 세이코가 채택되자 자회사 신슈 세이키는 종목별 기록을 인쇄물로 남기기 위해 프린터를 제작한다. 이 프린터를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개발했는데, 1968년에 탄생한 세계 최초의 미니 프린터 ‘EP-101’이 그 주인공이다. 이 상징적인 모델명 ‘EP’와 그 자손이란 의미의 ‘SON’이 합쳐져 탄생한 브랜드가 ‘EPSON(엡손)’이다.
종합정밀기기 제조업체 세이코엡손(이하 엡손)이 한국에 진출한 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현재 전 세계 90곳의 그룹사, 직원 수만 6만7000여 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엡손은 잉크젯 프린터를 비롯해 복합기, 프로젝터, 스캐너, 스마트글라스, 대형 프린터, 산업용 로봇, POS, 골프스윙분석기 등 정밀한 기술이 필요한 완제품을 생산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가산디지털단지에 자리한 한국엡손 본사에서 만난 시부사와 야스오 사장은 “엡손은 프린터 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미래 비전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엡손은 더 이상 프린터 기업이 아닙니다
▷출장이 잦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8월 25일에 있을 20주년 기념식도 준비해야 하고, 생각보다 할 일이 많네요.(웃음) 지난주엔 세일즈 미팅이 있어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왔어요.
▷한국엡손의 현 상황이 궁금합니다.
계획대로 진행 중입니다. 매출 결산이 3월인데, 1사분기 기준으로 102% 성장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1115억원인데, 올해는 1260억원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프린터도 선전하고 있지만 프로젝터는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한국엡손은 프린터(잉크젯)와 프로젝터가 전체 매출의 65%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올해 매출 성장의 디딤돌은 B2B시장입니까. B2B 원년으로 선언했는데요.
사실 한국시장에서 엡손은 그동안 가정용 프린터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았습니다. 향후 오피스, 비즈니스 영역의 프린터 판매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상업용 대형 프린터지요.
▷비즈니스 프린터라면.
첫째는 포토 분야인데 포스터나 사진을 인쇄하는 대형 프린터예요. 둘째는 옥내·외 광고물을 제작하는 대형 프린터, 셋째는 텍스타일, 그러니까 천에 인쇄하는 날염 프린터죠. 이 세 분야의 판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엡손의 프로젝터와 상업용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우선 지금까지 엡손의 프로젝터는 밝기가 1만 루멘 이하의 제품이 메인이었어요. 올해는 고광량 제품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우선 레이저 광원을 탑재한 고광량 2만5000루멘 제품의 출시가 예정돼 있는데, 레이저 광원을 탑재했기 때문에 크기가 콤팩트해졌고 열 발생이 줄어들면서 수명이 길어졌습니다. 일종의 친환경이죠. 말씀하신 대로 로봇도 성장 동력 중 하납니다. 한국에선 아직 인지도가 낮은데, 글로벌 엡손 매출의 30%를 산업용 로봇이 차지하고 있거든요. 2013년부터 한국에도 출시했는데, 지난해 출시한 산업용 수직 다관절 로봇 C8 시리즈 (C8XL)는 최대 1400㎜ 작업 반경에서 주위 사물을 건드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긴 팔을 가졌습니다. 자동차 부품업이나 전자 산업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어요. 사람의 팔 구조를 본떠 만든 스카라 로봇(G시리즈)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입니다. 한국엡손은 프린터, 프로젝터, 로봇 등 각 사업별로 올해 5%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설계, 개발, 제조, 판매까지 엡손이 책임지는 수직통합형 구조
▷사실 글로벌 엡손에 비해 국내 시장의 매출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엡손의 미션 중 하나가 매출확대예요.(웃음) 매출이 낮다고 글로벌 엡손의 비즈니스 전개나 방향이 다르거나 축소되는 건 없습니다. 엡손의 기업 이념은 전 세계 고객들의 삶에 공헌하는 것이죠. 매출 규모에 따라 그 지역의 비즈니스 전개 규모가 달라지진 않습니다.
▷올해는 한국엡손이 설립 2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법한데요.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페이퍼랩’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도 높더군요. 한국 출시도 예정된 상황입니다. 종이를 재활용하는 기기인데, 한 번 인쇄한 종이를 다시 재생하는 순환형 인쇄 환경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좀 더 친환경적인 세상이 되겠지요. 또 잉크젯 프린터 분야에선 지난해부터 한국 내 파트너 사를 통해 오피스용 렌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페이퍼랩의 국내 출시 시기가 정해진 겁니까.
현재 일본에서 고객들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환경에 따라 관련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2018년에는 한국시장에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일본에선 현재 지방자치제와 일부 은행에서 페이퍼랩의 도입을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대표님도 엔지니어 출신이라고 들었는데요. 엡손의 강점 중 하나가 R&D 투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엡손에선 연구개발을 진행함에 있어서 최근 어떤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고객의 니즈는 어떤지 취합해 반영하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개발 담당자와 설계담당자가 직접 고객 사용처를 방문해 눈으로 확인하고 고객들이 요구를 개발부에 전달합니다. 지금도 신제품이 나오면 회사 임직원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고 불편한 점을 확인하고 있어요. 이러한 활동이 엡손 발전의 바탕입니다. 제품의 설계에서 개발, 제조, 판매까지 엡손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수직통합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이러한 구조를 갖춘 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외주 제작 없이 자체 생산한다?
물론입니다. 엡손이 자체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건 제조상의 효율화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효율이 떨어지면 다음 제품 설계 때 반영해 제조 단가를 낮추는 방식이죠. 그렇게 되면 고객의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더 저렴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요. 엡손의 제품은 엡손이 직접 책임지고 있습니다.
▷국내 AS도 직접 책임지는 겁니까.
한국에선 파트너 사가 AS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엡손은 파트너 사에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매달 파트너 사에서 품질 관련 데이터를 받고 있고,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을 땐 고객에게 직접 피드백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한국엡손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일본 본사의 엔니지어가 방한해 해결합니다.
▶비전, 그 이상에 도전합니다
▷렌털 사업은 국내 시장에서 후발주자인데, 마케팅 전략이 궁금합니다.
렌털 파트너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후발주자지만 이 사업은 이제 막 0에서 시작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플러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케팅 전략이라면 두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우선 렌털 파트너의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겠지요. 한국엡손이 렌털하는 복합기는 잉크젯이 기반입니다. 레이저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하죠. 덕분에 파트너 사 입장에선 충분히 매력 있는 분야예요. 또 하나는 소비자의 입장인데, 한국엡손은 파트너 사를 선정할 때 가장 먼저 얼마나 정확한 서비스를 할 수 있는지 먼저 살펴 봅니다.
▷그렇다면 엡손만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엡손의 핵심역량은 ‘쇼쇼세이(省小精) 정신’이 아닐까요. 쇼쇼세이(성·소·정)는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고, 작고, 정밀하다는 뜻입니다. 최근 소비자가 원하는 트렌드와 일치하는 가치죠. 저희만의 강점을 살려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완성해 나갈 겁니다. ‘앱손25’라고 명명한 엡손의 장기 비전을 살짝 공개하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4가지 영역의 이노베이션을 실현할 계획입니다. 첫째 잉크젯, 둘째 비주얼, 셋째 웨어러블, 넷째 로보틱스 이노베이션인데요. 이를 통해 현실 세계와 사이버 공간을 연결하는 제품을 제공한다는 게 엡손의 기본 방침입니다. 지금까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면 현대는 인터넷이 확대된 세계이기 때문에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자는 보다 확장된 개념입니다.
▷앞서도 살짝 밝혔지만 한국시장에서의 미션도 달라지겠군요.
한국엡손은 지금까지 일반 소비자와 소호시장에서 강자였습니다. 일반 소비자에겐 인지도가 높았지만 상대적으로 오피스나 산업 부문에선 그렇질 못했어요. 앞으로 그 영역을 넓히려고 합니다. 올해를 B2B 원년으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죠.
▷변화하고 있는 한국엡손에 취업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합니까.
우선은 성실한 사람이어야죠. 면접을 진행할 때 체크하는 가장 첫 덕목입니다. 저희는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만큼 고객 서비스가 중요한데,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대응할 수 있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외국어? 물론 일본어를 한다면 좋겠죠.(웃음) 일본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이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어가 가능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중 개인적인 소망도 있을텐데요.
한국엡손부터 말씀드리면 무엇보다 판매 확대가 우선이지만 이를 위해선 사원들이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사내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장협의회 활동이죠. 기존 방식이 톱다운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원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글쎄요… 한국에 부임한지 2년째인데, 그동안 인천에서 경기도 여주까지 자전거로 일주를 해봤습니다. 제대로 휴가를 낸다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달려보고 싶네요. 그럴 수 있을지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