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닮은 미소의 그녀가 2022년 봄날을 완벽하게 그 자신의 계절로 완성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여우(女優)였다니. 봄날 안방극장을 알콩달콩 핑크빛 로맨스로 가득 물들인 <사내맞선>의 주인공, 가수 겸 배우 김세정(26) 말이다.
김세정은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사내맞선>을 통해 자신의 배우 필모그래피에 ‘커리어 하이’를 썼다. <사내맞선>은 얼굴 천재 사장 강태무(안효섭 분)와 정체를 속인 맞선녀 직원 신하리(김세정 분)의 스릴 가득 ‘퇴사 방지’ 오피스 로맨스를 그린 작품.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된 동명의 웹소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11.6%(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안방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는 종영 당일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2위 기염
탄탄한 원작과 쫀쫀한 연출이 돋보였지만, 역시나 드라마의 완성은 배우의 열연.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달달한 청춘의 연애를 그려낸 안효섭, 김세정의 활약은 <사내맞선> 성공의 핵이었다.
“한 명의 노력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한 결과라 더 행복하게 성적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SNS에도 이런 글을 올렸거든요. ‘열심히 하는 건 좋은 결과를 주지만 당장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요. 그런데 이번엔 감사하게도 바로 좋은 결과를 주셔서 더 행복했어요.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내맞선>의 히로인, 김세정은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작품에 큰 사랑을 보내준 시청자에 감사를 전했다.
<사내맞선>은 첫 방송이 4.9%라는 무난한 시청률로 ‘평타’를 예고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올라 최종 자체 최고 기록은 두 자릿수를 돌파했다. 이 기분 좋은 상승세는 촬영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더 큰 시너지를 냈다. 김세정은 “화제성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시청률이 좋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작품의 여정을 떠올렸다.
“사실 시청률은 신의 영역이라고 하거든요. 열심히 했다고 모든 것에 답이 오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이렇게 좋은 순간을 선사해준 건 작품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사랑의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시청률이 현장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죠. 현장 분위기는 원래도 행복했지만 더 행복하게 임할 수 있었어요.”
필모그래피에 ‘성공작’으로 이름을 남긴 전작 <경이로운 소문>에 이어 찾은 차기작이 <사내맞선>이었던 만큼, 김세정으로서는 부담도 없지 않았을 터다. 김세정은 “처음엔 아무 부담 없이 ‘그냥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은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다. 혹시나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김세정은 그러면서도 “당연히 잘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겠지만 결과로만 과정을 대해주지 않으셨으면 한다”며 “결과가 안 될 때가 있더라도 세정이는 책임감을 갖고 갈 것 같다는 기대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극 중 김세정은 절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대신 선 자리에 나갔다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사장을 맞선 상대로 맞이하는 식품 연구원 ‘신하리’ 역을 맡았다. 하리는 얼굴도, 직업도, 능력도 평범하지만 장녀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 김세정은 이 하리라는 ‘본캐’와 맞선녀 금희라는 ‘부캐’까지, 1인 2역을 소화해야 했다.
신하리 캐릭터에 대해 김세정은 “그동안 ‘사람 김세정’을 보여주는 연기를 해왔던 터라 변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눈에 들어온 역할이 신하리였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로맨틱코미디 장르물은 이번이 처음. 하지만 김세정은 “로코지만 저를 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라며 캐릭터와 자신의 싱크로율에 대한 견해를 전했다.
“저는 처음에 하리와 제가 많이 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워낙 사내대장부 같고 털털한 성격이다 보니 (감정을) 잘 가려내지 못하는 편인데, 하리는 상황이 닥치면 판단을 잘하는 친구거든요. 그런 점에서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갈수록 하리에게 동화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지금 점수를 매기자면 90% 정도 닮아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실제 ‘인간 김세정’과 <사내맞선> 신하리를 비교해 소개했다. 그는 “저는 의견이 있으면 먼저 입 밖으로 내뱉고 이해를 받는 편인데, 하리는 말을 뱉기 전에 상대방 이야기를 먼저 듣고 수긍을 하고 난 뒤 말을 하더라”라면서 “그렇다고 하리가 본인의 의견을 숙이는 편도 아니다. 그게 같으면서도 다르더라”라고 말을 이어갔다.
“닮은 점은 일을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일을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재밌어서 하거든요. 하리를 연기하면서 얻게 된 건, 어딘가엔 결국 날 좋아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게끔 만들었다는 거죠. 팬들과 시청자분들의 사랑을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리가 ‘꿈 같은 순간을 좋아해도 괜찮다’고 위로해줬어요.”
그렇게 하리가 된 김세정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카메라 속에서 펄펄 날았다. 로맨스면 로맨스, 코미디면 코미디 모두 찰떡이었다. ‘연기돌’로 짧지 않은 시간 쌓아온 내공을 <사내맞선>에서 맞춤옷을 입은 듯 펼쳐 보였다.
▶‘연기돌’로 짧지 않은 시간 쌓아온 내공
하지만 로맨스와 코미디 중엔 “코미디 연기가 어려웠다”는 그다. 그도 그럴 것이, 보는 이들에겐 코미디지만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여느 때와 같이 진지했을 순간 아닌가. 김세정은 “태무와의 첫 맞선 장면에서도 웃기기만 하지 않고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납득이 돼야 하더라”라며 “왜 이 장면에서도 웃음이 필요하고, 그 웃김 속에서 캐릭터가 매력 있는지 보일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나름의 고민을 털어놨다.
난생 처음 소화한, 안효섭과의 베드신의 어려움도 털어놨다.
“부끄러워요.(웃음) 현장에서 모니터링도 못 했어요. 태무와 하리의 여러 감정선을 봤을 때, 시련과 곤란을 겪고 그 끝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었거든요. 사실은 관람등급상 덜어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 정도로 나온 것 같아요.”
김세정은 “저는 노출이 크게 있지 않아서 준비는 안 했는데 (안)효섭 선배는 관리를 많이 하신 것 같다”면서 “제가 준비한 지점은 감정선을 잇는 점이었다”고 베드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덧붙였다.
데뷔 첫 정통 로코물에 생애 첫 베드신까지. 적지 않은 고민 속에도 고민보단 고(GO)를 택한 김세정의 열연에, OTT를 통해 <사내맞선>을 접한 글로벌 시청자들은 ‘코리안 에마 스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결정적 맞선 장면에서 상대방에게 비호감 이미지를 주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액션을 취하는 김세정의 모습이 유튜브 등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다.
이같은 세간의 평가를 전하자 김세정은 쑥스러운 미소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만면 가득 미소를 보였다.
“‘코리안 에마 스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두 가지의 감정이 있었어요. 하나는 너무 감사했죠.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기도 했고, 첫 회 맞선 장면이 (시청자분들이) 금희에 대해 제일 처음으로 맞이하는 장면이잖아요. 보는 시청자까지 수긍해야 하기 때문에 하리가 마냥 웃겨보이는 게 아닌, 왜 이렇게 하는지까지 설득이 돼야 했죠.”
김세정은 “제가 에마 스톤을 좋아한다. 옛날부터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저만 알고 있는 별명이었는데 모두가 그렇게 불러주셔서 좋더라.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에마 스톤의 이름을 받은 만큼 기대 반, 부담 반이 공존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한 이른바 K로코, <사내맞선>의 힘은 무엇일까. 김세정은 글로벌 인기에 대해 “사실 예상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국 로맨스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소박한 부분, 작은 부분을 건드려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청나게 큰 사건이나 대단한 일들을 담는 게 아니라, 소박하고 작은 이야기를 담은 게 K로코의 장점이죠. <사내맞선>은 그런 부분이 잘 살아있는 드라마라서 대본을 읽자마자 해외에서 반응이 올 거라 생각했어요. 사실 걱정은 우리나라였죠.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길 기도했는데, 다행히 감사하게도 모든 곳에서 반응이 와서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사내맞선>으로 뭇 시청자를 설레게 한 김세정. <사내맞선> 전후, 그의 연애관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김세정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왜… 현실에는 그렇게 사랑해줄 것 같은 사람이 없을까요? 하하. 언젠가는 만날지 모르지만, 저는 아직 인생에서 일만큼 저를 사랑해 줄 사람을 못 만났어요. 전 운명을 믿거든요. 저만큼 저를, 제 일을 같이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런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드라마로만 로맨스를 보여드릴게요(웃음).”
2015년 Mnet <프로듀스 101>을 통해 대중의 눈도장을 찍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김세정.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 활동을 짧고 굵게 마친 뒤엔 걸그룹 구구단 멤버이면서 솔로 가수로, ‘연기돌’이면서 ‘예능 샛별’로서 말 그대로 ‘전방위’ 활약을 펼쳤다.
데뷔 초 무한 긍정 에너지와 햇살 같은 미소의 ‘소녀’ 이미지로 대표되던 김세정은 <학교 2017> <너의 노래를 들려줘> <경이로운 소문> 등을 통해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내공을 다졌고, <사내맞선>을 통해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잘 버텼을 뿐 아니라, 지혜롭고 현명하게 그리고 다부지게 자신을 가꿔온 결실을 맺은 셈이다.
“20대 후반을 <사내맞선>이 너무 잘 열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작품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저는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감사하게도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서 더 넓은 시장에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빠르게 돌아가고, 1등만을 기억하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도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더 편안해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던 김세정. 2년 전 인터뷰 당시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 혼자만의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고 담담하게 자기고백을 했던 그의 2022년 지금의 마음은 어떨까.
▶배우, 뮤지컬 등 다방면 활동 포부
“그동안은 자꾸 넘어지고 다치고 아팠어요. 그런데 이제는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습관이 생겨서 걱정이나 강박도 없고, 방전될 때면 좋은 사람들 속에서 채우면서 이겨내고 있어요.”
이미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팔방미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가수, 배우, 뮤지컬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는 여전하다.
“이렇게 폭넓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이 커요. 부담감이 드는 건, 단지 ‘앞으로 게을러져선 안 되겠다’는 다짐,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이죠. 저에게 모든 일들은 다 기쁨이에요. 노래도 연기도 다 행복해요. 가수로서의 모습도 빠른 시일 내에 보여드리지 않을까 싶어요. 체력이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요.”
휴식에 대한 열망은커녕, 이렇게나 욕심 많은 ‘선수’였다니. 매일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가수이자 배우, 김세정의 팬들은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