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솔비(38)의 행보를 보면, 가수 겸 방송인을 통칭하는 ‘엔터테이너 솔비’에서 확실히 ‘화가 권지안’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이따금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침없이 솔직한 발언으로 사랑받던 명불허전 존재감은 여전하지만 솔비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은 작품을 통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201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화가의 길을 연 그는 2015년 음악과 미술을 결합한 이른바 ‘셀프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2016년 <블랙스완>, 2017년 <하이퍼리즘-레드>,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 2019년 <하이퍼리즘-바이올렛> 등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 솔비는 가수라는 본업에 힘입어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인 KBS2 <뮤직뱅크>에서 하이퍼리즘-레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20년 말 발표한 문제작(?), <저스트 어 케이크(Just a Cake)>를 통해서는 코로나 시대에 축하의 기능을 상실한 환영받지 못한 케이크를 통해 상처받은 현대인들의 초상을 담아냈다. 이 작품을 둘러싼 논란과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본 바르셀로나 국제 아트페어(FIABCN) 측의 정식 초청을 받고 지난해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양박물관에서 열린 페어에 메인작가로 참석했다가 ‘2021 바르셀로나 국제 예술상(PIAB21)’에서 대상을 거머쥐기까지 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수많은 작가를 제치고 대상을 받은 사실 자체는, 수상의 주체가 그 누구라도 금의환향이라 할 만한 일일 터. 그렇게 솔비는 기분 좋게 귀국 후 자가격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몇몇 현직 화가들이 해당 아트페어에 대해 “참가비만 내면 시상식 후보 등록을 해주는 소규모 전시”라며 솔비의 수상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
“축하를 누릴 수 없었어요. 어쩌면 그 케이크처럼…. 마음이 저도, 그 부분에 있어선 속상했죠. 살면서 대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웃음)”
최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는 솔비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서울 논현동 소재 갤러리 치로에서 그를 만나 지난 논란의 소회를 들을 수 있었다. “현지에서 친구가 ‘네가 퀸이 됐어’라며 축하해줬어요. 그 친구는 케이크 사건도 다 알고 있는데, ‘너는 이걸 작품으로 증명했어, 너는 퀸이야’라고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와서 환영받지 못한 느낌이었죠. 약간은, 왜지? 싶었어요.”
논란에 대한 여론은 분분했지만, 분명한 건 좋은 일 뒤엔 꼭 좋지 않은 일이 온다는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결과론적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야 할까 싶은 지경. “작업 과정도 쉽지 않을 텐데 왜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기만 하면 이렇게 힘들까?”라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지자 솔비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냥, 솔비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 때문일까요? ‘내가 아는 솔비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죠. 저도 이게 왜 이슈가 될까에 대해 곰곰이 고민해봤는데요, 솔직히 재미있잖아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대기업에서 성과를 내면 재미없지만, 대기업 다니던 사람이 회사 때려치우고 나와 치킨집 해서 대박나면 재미있으니까. 그렇게 다뤄주시기도 한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어떤 분들이 봤을 때는 특혜처럼 느껴지는 것 같고.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게 첫 번째 아닐까 싶어요.”
솔비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상을 받고도 나 자신에게 축하해준 적이 없었다. 그래도 조금 지나고,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넌 열심히 했고, 잘 하고 있어’라고 스스로 이야기해주니 위로가 되더라”라고 말했다.
논란은 뒤로하고, 현지에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를 묻자 솔비는 마치 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선, 어워즈가 있는 줄 몰랐어요. 현장에 가서 알았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굉장히 많아요. 1월부터 초대받아 간 거라 사실 고민이 많았죠. 초대까지 됐는데, 그리고 해외에서 열리는 행사니까, 잘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작업을 현지에서 했고,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도 관람했는데 거기서 영감을 받은 게 있었어요.”
이른바 ‘도끼로 파괴된’ 케이크 스토리가 탄생한 배경이다. “‘전시를 기존에 했던 방식으로 하지 않아도 되잖아?’라고 생각하면서 도끼를 떠올리게 됐죠. 도끼를 케이크에 찍어야겠다. 그렇게 해서 케이크가 파괴된 스토리가 이어지게 됐어요.”
저명한 현지 작가를 몰라본 웃지 못 할 사연도 있었다. “아트페어에 어떤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거동도 불편하신 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현대미술관에서 본 재미있는 작품의 작가님이었던 거예요. 그 작가님을 미술관에서도 봤는데, 저를 보시더니 ‘맑다’고, ‘작품 계속 하라’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작가이고 심사위원이었던 거예요. 그냥 관람하러 오신 분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제 작업에 대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국제 아트페어에서 햇병아리 신인 격인 솔비가 겪은 웃지 못 할 일은 또 있었다. “사실 심사위원에 대해 별로 궁금하진 않았어요. 들어도 (누군지) 잘 모르니까요(민망한 미소). 그런데 또 다른 심사위원은, 파밀리아 성당(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별탑의 제일 위 마지막 부분을 조각하는 분이시더라고요. 우와, 대박이다 했죠. 그런 분들이 내 작업을 보셨다는 그 자체도, 그분들이 내 것을 평가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저 낯선 일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건, 솔비에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미술계에 호된 신고식 마쳤다
졸지에 세계 미술계에 호된 신고식을 마친 솔비에 대해, 나탈 발브(Natal Vallve) 바르셀로나 국제아트페어 총예술감독은 “솔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며 용기 섞인 조언을 건넸다. 그는 “우리는 시기, 질투, 좌절, 악의가 많은 잔인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며 “비록 사회의 일부가 인간적 가치관을 잃어버리더라도 계속해서 그 길을 가야 하고, 예술과 음악, 춤 등을 통해 작가만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작가 권지안은 분명 작품으로 말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앞으로도 그의 행보에는 따가운 시선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논란(대상 논란)이 있고, ‘그분들이 왜 이런 시선을 갖지?’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봤어요. 어떤 분은 저에게 ‘아카데미에 가면 좋겠다’고, 추천하기도 하셨어요. 물론 저도 그 고민을 했죠. 지금이라도 해볼까, 싶기도 한데. 사실 그건 어려운 것 같진 않아요. 아카데미를 수료하기 위해 가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제가 가고자 하는 길,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까 하고 질문을 해보면 그건 아니거든요. 제도권 교육이 중요한 것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써내려가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내 경험에서 쓰는 스토리, 다른 시각에서 보는 미술 관점…. 그 순수성에 대한 부분들을, 강한 의지와 마음가짐으로, 이런 편견도 뚫고 헤쳐 나가야 하는 게, 저에게 놓인 큰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솔비는 “어떻게 다양성이라는 화두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전공·비전공을 나누지 않고, 왜 저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을 계속 하느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면, 결국에는 다양성에 대한 화두가 아닐까. 다양성이 더 열려야 이런 것도 확장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그 부분을, 저만의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한 치유, 개인에 대한 치유를 넘어 사회적 치유를 하는 데 있어서 저만의 확신을 갖고 계속 헤쳐 나가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년에는 제 작업에 대해 설명을 많이 안 하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이유도 있었고, 그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스스로를 정리하다 보니 소통이 끊겨서 그렇게 된 부분도 있고요.”
솔비를 바라보는 미술계 내부의 시선은 극과 극이다. 그만의 작품 세계를 리스펙트하고 응원하는 부류도 상당하지만, 그의 작품을 폄하하고 그에게 큰 상을 건넨 시상식 주최 측마저 평가 절하하는 시선도 상당한 게 사실. 덕분(?)에 솔비의 다음 작품 행보에 대한 관심이 치솟은 만큼, 작업에 대해 부담을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솔비는 평가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NO”를 외쳤다.
“세간의 평가가 부담되기보다는, 제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어요. 작가가 그 작품을 바라보는 첫 번째 관객이니까요. 그런 것들에 있어서 조금 무거운 느낌은 있어요. 고민도 더 많이 하게 되고, 준비도 더 잘 하고 싶고요. 사실, 평가하는 건 제 몫은 아니에요. 그건 결과물의 다음 영역으로 넘어간 거니까요. 저는 다 수용하고 비평의 시각에는 열려있어요. 그런 게 재미있고, 저를 중심으로 하는 얘기들, 작업에 대한 비평은 다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요.”
그러면서도 솔비는 “하지만 제 행보에 대한 비난과 비평은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조금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뿐만 아니라, 이걸 뚫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굉장히 폄훼될 수 있는 이야기니까, 우리 사회가 서로에게 더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 힘든 시기니까, 조금 더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준다면… 누군가는 저를 통해 또 희망을 얻고 용기를 얻기도 할 테니까요.”
인터뷰에 앞서 본 그, 작가 권지안의 작품은 흡사 솔비를 닮았다. 이 같은 평을 조심스럽게 전하자 솔비는 눈을 반짝이며 스스로 꿈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음, 우선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미(美)의 기준이 다 다를 수 있는데, 제 작업은 특히나 미의 기준이 조금 더 파괴된 것들이 있어요. 그래도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정말 많이 하고, 그것들이 비정형적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틀을 좀 벗어났다 하더라도 거기서 오는 심미안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많이 담겨 있어요.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제 작품을 통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을 나만이 갖고 있는 작가로서의 심미안을 담아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까를 당연히 고민하고,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초, 그 초의 단단함이 전하는 의지, 확신 같은 것들이 희망과 용기로, 성찰로 비춰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통해 타인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솔비지만, 그러면서도 곧바로 “그런데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실제로 마음이 심각하게 공허했던 2010년 무렵, 미술치료를 하면서 처음 붓과 연필을 잡은 그는 “작업하면서 내가 치료되고 치유되는 부분이 있으니 하는 것”이라며 “우선은 (미술 작업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장치라는 건 유지해야겠다. 그게 첫 번째”라고 강조했다.
“제 자신이 행복해지고 치유가 돼야 타인의 고통도 보이는 거잖아요. 사실 지금은, 그 영역을 넘어서는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행복을 위해 작업을 한다는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이걸 끌고 가야 하는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화가 권지안’으로서 맞이하는 데뷔 10주년의 소회도 궁금했다.
▶‘화가 권지안’으로 맞이한 데뷔 10주년
“그러게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 돌이켜보면 10년 동안, 굉장히 큰 상을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과정 속에 있었을까 싶어요. 사실 ‘뮤직뱅크’ 무대에 캔버스를 깔아놓는데도, 몇 번을 고민했죠.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무수히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었죠. 그런 것에 대한, 어떤 레퍼런스가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의심하고 내가 가는 이게 맞는 길일까를 계속 질문했어요. 스스로 확신을 못 가져서 주위에 많이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되게 외로워지더군요. 제 행보에 대해 응원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저에 대한 이야기를 잘 못하더라고요.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없는 거죠. 제가 가는 길을 맞다 틀리다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에 바르셀로나에서 받았던 상이 어쩌면, ‘잘 해왔고,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라는, 메시지를 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아직까지도 정답은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정답이 없다고도 하지만, 저는 정답은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정답까지 어떻게 버티고 가는가, 어떤 걸 선택하고 가느냐가 큰 숙제죠. 거기에 흔들리지 않게끔 스스로 확신을 갖고, 무너지지 않게끔 환경을 잘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엿한 화가이자 작가인 솔비지만, 이에 앞서 그는 2006년, 스물 셋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만능 엔터테이너’ 아니던가.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데뷔 초부터 ‘핵인싸’로 주목받으며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20대, 30대를 보낸 그는 어느덧 30대의 마지막, 빛나는 시기에 도달했다. 서른아홉 솔비에게 지나온 시간을 돌아봐달라 하자 그는 “30대를 멋지게 마무리하고 40대를 맞이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30대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요. 그래서 40대가 더 기대돼요. 출발부터 멋있는 ‘권지안’으로 40대를 맞이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