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열연 이준호 “인생 캐릭터 이산 만나 사랑받으니 더없이 행복”
박세연 기자
입력 : 2022.01.27 14:02:09
수정 : 2022.01.27 14:02:31
“인생 캐릭터라니, 너무 감사드려요. 이제 연기한 지 9년 차인데,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저희 할머니께서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이준호(32)가 아이돌 ‘2PM 이준호’를 넘어 ‘배우 이준호’로 우뚝 섰다. 2021년 겨울을 뜨겁게 달군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극본 정해리, 연출 정지인·송연화)을 통해서다.
이준호는 올해 초 17.4%라는 요즘 보기 드문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이산 역을 맡아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왕세손의 비애, 또 조선시대를 통틀어 ‘세기의 로맨스’라 평가받는 의빈 성씨(성덕임, 이세영 분)와의 사랑을 출중하게 표현하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극본, 연출, 연기 삼박자가 고루 맞아 떨어지면서 성공하는 드라마의 정석을 보여주며 시청자를 사로잡았지만 그 누구보다 이준호는 지적인 카리스마에 섹시미까지 더해 역대급 이산을 선보였다는 평가 속 <옷소매> 신드롬의 주역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8년 보이그룹 2PM으로 데뷔한 뒤 가수이자 배우로서 쉼 없이 활동해 온 이준호는 이 드라마를 통해 데뷔 이래 최고의 주가를 달리게 됐다.
▶역대급 ‘정조’ 선보였다 평가
“많은 분들께서 봐주셨다는 것, 많은 분들께서 사랑해주셨다는 것을 가장 크게 실감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지표가 시청률인 것 같아요. 사실 무엇보다 높은 시청률로 많은 사랑을 받게 돼 기뻤어요. 즐겁게 찍은 현장을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사랑해주시는구나 싶었죠.”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주위의 제 친구들도 봤다는 것. 학창시절부터 친했던 친구들은 내가 연기를 해도 별로 관심 없어 했던 친구들인데, ‘드라마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옷소매 붉은 끝동>을 사랑해주시니까 마냥 기분이 좋았어요. 드라마 시작 전에도 우리끼리 촬영하면서 워낙 즐거워했던 현장이었는데, 반응까지 좋으니 너무 행복했죠. 전 연령층의 많은 팬들이 사랑해주셔서 굉장히 기뻤어요.”
전역 후 복귀작으로 <옷소매 붉은 끝동>을 선택한 이준호는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히 담긴 새로운 정조 이산을 탄생시키며 새로운 인생작,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그는 어떻게, 이 인생 드라마를 선택하게 된 걸까.
“드라마 대본을 볼 때 다른 생각은 안 하려고 해요. 재미를 느끼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대본을 읽고 다음 회가 궁금해지는가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센가에 대해 늘 생각하죠. 우리 <옷소매> 같은 경우, 대본이 편안하게 잘 읽혔어요.”
많은 작품이 그러하겠으나, <옷소매 붉은 끝동> 역시 재미로만 선택하기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재미있는데 힘들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 그런 그가 작품을 시작하며 마음에 품었던 목표는 단 하나, 이산 정조 그 자체가 되자는 것이었다고.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정조 이산이 살아있다면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대리만족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캐릭터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즐거웠던 작업이었죠. 제가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이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목표는 완벽한 그 인물이 되는 것이었어요.”
완벽이라는 표현도 굳이 필요치 않은, 이산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이준호는 원래 왼손잡이이던 자신의 습관부터 고쳐 나갔다.
“그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습관까지 캐릭터화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왔어요. 그 첫 번째가 젓가락질이었죠. 제가 왼손잡이인데, 조선시대 왕세손이다 보니 왼손으로 식사를 하진 않았을 것 같더군요. 그런 사소한 것부터 잡아갔어요. 사실 저희가 촬영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던 말인데, ‘산이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옷도 입혀주시고 세숫물로 얼굴도 닦아 주시고 이런 것들이, 연기하면서 답답했던 마음은 사실 있었어요. 내가 하면 되는데, 조선시대 왕세손 배역이다 보니 할 수 없는 것들이었죠. 자리에 앉아 정자세로 책을 읽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들을 계속 몸에 적응시키도록 노력했어요. 대사나 눈빛 말투도 차분하고 천천히 답할 수 있게, 사소한 디테일을 신경 썼던 것 같아요. 호흡부터 시작해서 걸음걸이도 퍽퍽 걷는 게 아니라 사뿐사뿐 위엄 있게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위엄 있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했습니다.”
이산을 연기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 역시 답답함이었다고 했다. 그는 “왕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서 왕답지 않은 왕의 모습도 생각해봤다. 꼭 정좌를 지켜야 하나 혼자 되묻곤 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 가상의 왕이었다면 혹은 정조라는 왕이 아니었다면 겉모습으로라도 쉽게 표현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외적으로 보이는 정조의 이미지가 크게 다가왔죠. 정조는 모범적이지만 아픔을 갖고 사는, 겉으론 아닌 척 해도 내면의 아픔을 숨기고 사는 인물, 할아버지에게 보이는 것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허투루 보이면 안 되는 인물이었죠. 그래서 정자세를 지켰고, 걸음걸이 하나하나까지 노력했어요. 오대환 선배님, 이세영과 연기할 때, 그 호흡을 주고받으면서 저 역시 재미있는 애드리브도 하고 싶었어요. 그런 걸 최대한 자제하는 게 가장 힘들었던 지점이었어요.”
기존 사극에서 왕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역대급으로 ‘섹시한’ 왕을 선보였다는 반응에는 쑥스러워하며 “전역하기 3~6개월 전부터 식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닭가슴살 4장과 고구마 4개만 먹으며 촬영 강행”
“식단을 일 년째 하고 있어요. 드라마 끝나고 며칠 사이에 많이 먹었는데 감량을 위해 노력하고 있죠. 촬영 들어가면 운동하기 어려우니까 촬영 전에 운동을 하고, 이후엔 식단을 열심히 하는 거죠. 식단은 닭가슴살 4장과 고구마 4개만 챙겨 먹었어요. 촬영장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죠. 일석이조였어요.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대본도 보고. 그렇게 드라마 끝날 때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마른 모습이었을 듯합니다.”
이제 보니 섹시하기만 한 게 아니라, 독하기까지 한 왕이었다.
드라마는 뜨거운 인기에 1회 연장됐지만 완벽한 완성도로 막을 내렸다. 특히 극 막바지인 16, 17회차에서 이산의 감정은 극에 달했다. 이를 연기한 이준호 역시 오롯이 산 그 자체로 몰입해 흐트러짐 없는 열연을 보였다.
“사실 막바지에는 (감정 표현의) 간극이 너무 컸어요. 사랑이 이루어져서 사랑을 하는 젊은 이산과, 왕으로서 사랑과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산, 덕임을 떠나보낸 이산, 그리고 말년의 정조까지. 워낙 폭이 넓어 이 사람의 감정에만 집중했죠. 오롯이 그 인물이 되기 위한 감정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호흡이나 걸음걸이나 대사의 속도,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와줬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인물에 집중해서 하다 보니 저 역시도 너무 편했고, 제가 뭐 하고 있는지도 사실 모를 정도였죠. 오직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덕임이 산의 품에서 죽음으로써 새드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산 역시 왕의 소임을 마친 뒤 덕임과 재회, 영원한 사랑을 이뤄내는 아련한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새드&해피 엔딩에 대해 이준호는 “굉장히 만족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밥을 먹으면서 엔딩 클립을 보는데, 먹먹해서 밥이 안 넘어가더라고요.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어요. 너무 슬픈데, 그들이 만났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온전히 필부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서 개인적으로 만족했어요. 왕으로서의 임무를 다했고, 오래 기다려줬지만 다시 만났다는 점에서요.”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산이 빛났던 건, 배우들의 케미와 앙상블에서 온 시너지다. 특히 로맨스의 주인공, 성덕임 역을 맡은 이세영이 보여준 혼신의 열연은 드라마를 더욱 아련하게 빛나게 했다. 파트너 이세영과의 호흡에 대해 묻자 이준호는 “정말 사랑스럽고, 연기를 너무 잘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상대 배우와 연기할 때 그 사람이 너무 좋아질 때가 있는데, 정말 연기를 잘할 때예요. 나 역시 그 사람에게 그렇게 비춰지고 싶고, 서로 연기를 하다 보면 희열을 느낄 때가 있어요. 주고받는 합이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촬영 현장에서 세영 씨는 장난도 잘 치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는 사람이었어요. 저 같은 경우 이 드라마 전까지는 현장에서 절대적으로 NG를 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일말의 빈틈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번 현장은 너무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NG를 내도 서로 다독이고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세영 배우와 자연스럽게 동화됐어요. 서로 힘이 됐죠. 굉장히 (호흡이) 좋았습니다.”
▶“덕임 역 이세영과 찰떡 연기호흡”
그렇게 이준호는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산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준호는 “이제 연기 9년 차인데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눈을 반짝였다. 정성과 노력을 다한 호연에 시청자가 응답했고, 보상은 그야말로 ‘핫’했다. 지난해 말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과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것.
이에 대해 이준호는 “영광스럽게도 정말 좋아하는 선배와 대상 후보 거론이 되니까 많이 뿌듯하더라”면서 스스로를 칭찬해줬다. “수상소감에서도 말했지만, 솔직히 사람인지라 기대하면서도 제가 스스로 대상감일까 생각했어요. 심사하신 분들이 알맞은 평가를 한 것 같고, 받으실 분이 받으신 것 같아요.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남궁민과) 4년 전 같이 <김과장>을 하면서 베스트커플상을 받았는데, 여러모로 뿌듯했습니다.”
이준호의 최우수연기상 수상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건 그의 ‘개념소감’과 더불어, 그 스스로를 ‘2PM 이준호’라 소개한 사소한 멘트였다. 지금은 가수 활동과 연기를 병행하는 일명 ‘연기돌’이 너무도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연기하는 가수들이 ‘배우’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연기 관련 행사에선 자신의 소속팀은 잠시 뒤로하고 그 자신을 앞세우기 마련인 상황에서, 이준호는 여전히 2PM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 이에 대해 이준호는 “줄곧 그렇게 인사해왔다”며 크게 괘념치 않으면서도 “이렇게 인사하는 이유는 거슬러가야 하는 역사가 있다”고 말을 이었다.
“예전에 2PM 활동을 하면서 여러 방송에서도 이야기했던 건데, 제가 소속팀(2PM)을 알릴 수 있는 힘이 없었을 때가 있었어요. 그게 마음이 안 좋았고 사무쳤고 아픔으로 남아있죠. 데뷔한 지 14년이 다 돼 가는데 과거에는 내가 혼자 그룹을 알릴 수 없었을 때가 가슴 아팠고, 그게 마음에 응어리가 져있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시작하고 일본에서도 가수로 데뷔해 투어도 하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서 든 생각은 ‘혼자 활동할 때도 2PM을 모두에게 더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굳어져 가면서 특별한 의미 없이도 자연스러운 상황이 된 거예요.”
이준호는 “지금 나이 어린 팬분들 중에는 나를 배우라고 알고 계신 분들도 많고, 가수와 배우 활동할 때 외모가 달라서 아직 모르는 분도 계시다”며 “그런 분들을 위해 편안하게 인사하는 게 일상화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2010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직 자신의 계절이 오지 않았다’고 다부지게 말했던 이준호. 이후 10년간 쉼 없이, 꾸준히,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는 짧지 않은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더해진 노력의 힘으로 무척이나 단단해져 있다. 그렇게 지난해 2PM ‘우리집’ 역주행의 수혜자가 되더니, 그 자신의 선구안과 노력 하나로 <옷소매 붉은 끝동>을 만나 톱스타이자 배우로 발돋움하며 결국엔 ‘이준호의 계절’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이 발언에 대해 언급하자 이준호는 “최근 영상들이 다시 올라오더라”며 아련한 표정과 함께 지나온 10년의 시간을 떠올렸다.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서른이 넘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웃음), 사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도 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드라마가 잘 됐고, ‘우리집’이라는 노래가 역주행해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제가 염원했던 계절이라는 칭찬을 해 주시는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염원했던 대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이준호는 “꾸준함이 (나의) 큰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10년 전의 내가 어리고 뭔가 덜 성숙했다면 지금은 더 성숙해진 것 같은데 그 비결은 꾸준함인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는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 모습을 요즘 많은 분들께서 찾아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흐름으로 봐주시는 것도 기분 좋고, 그런 긍정적인 힘이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기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요즘도 생각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연예인으로 타고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편안하진 못하죠. 어떤 현장에서도, 이게 천성에 맞아서 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즐거울 뿐인 거죠. 거울을 보며 혼자 다그치던 때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데, 그때의 나보다는 그나마 조금 나아져 이젠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 노력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계속 큰 꿈을 꾸면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어요. 어찌 보면 지금의 이 모습처럼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다는 게 굉장히 큰 꿈일 수 있는데, 그 꿈을 꼭 이루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