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큰증권(STO) 시장이 2024년 본격 개화기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다양한 금융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토큰증권은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화된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의미한다. 미술품,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나 IP 등 무형의 자산을 디지털자산으로 연동하여 소유하게 되며, 토큰을 보유하는 사람들은 배당금, 분배금, 이자 수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토큰증권 시장이 활성화하면 알짜배기 입지의 꼬마빌딩이나 개별 아이돌그룹, 영화에 투자해 수익금을 배분받을 수도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국내 토큰증권 시장 규모가 2024년 34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2030년에는 36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시장성을 바탕으로 제도권 편입을 결정하고 올 초 ‘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토큰증권을 새로운 먹거리로 눈여겨보고 있는 증권사들은 플랫폼 개발은 물론 조각투자사와의 업무협약 체결 등을 통해 선제 대응하고 있다.
토큰증권 서비스 출시에 가장 가까운 분야는 음원이다. 음원 저작권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는 지난 11월 16일 금융감독원에 첫 번째 음악수익 증권신고서 제출을 승인받았다. 플랫폼을 통해 공시를 완료한 뮤직카우는 아이돌 가수의 음원으로 본격적인 거래에 나선다. 지난해 4월 증권성 판단 이후 신규공모 절차를 중단했던 뮤직카우가 약 1년 반 만에 신규공모에 돌입할 예정이다. 뮤직카우는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에 대해 감독당국이 마련한 양식에 따라 작성된 첫 번째 증권신고서’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이번에 제출된 1호 증권신고서 대상곡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엔씨티 드림(NCT DREAM)의 ‘ANL’이다. 금감원은 이후 투자자 보호에 필요한 중요 사항들이 서식에 맞게 충분히 공시됐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금감원의 승인 시 해당 음악수익증권에 대한 옥션은 12월 8일로 예정돼 있다.
2016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뮤직카우는 대중음악의 ‘저작권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경영 활동을 시작했다.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조각투자 상품으로 만들어 자체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청사진을 만들었다. 이를 사들인 사람들은 마치 주식에 투자한 것처럼 저작권을 통한 배당·매매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음원 외에도 부동산·미술품·한우 등도 서비스 출시를 위해 증권신고서 제출이 예상된다. 금감원은 지난 7월 31일 자율 기재 형식에 가까웠던 투자계약증권 서식을 전면 개정했다. 이에 따라 5개 기존 조각투자사업자 및 신규사업자도 개정 서식에 따른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 제출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미술품과 한우 등 조각투자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 5곳이 당장 투자계약증권사업을 할 수 있다. 제도 불비로 지금까지 사업이 중단됐던 한우 조각 투자 스탁키퍼(뱅카우)와 미술품 조각투자 테사, 서울옥션블루(소투), 투게더아트(아트투게더), 열매컴퍼니(아트앤가이드) 등이 후보군이다.
그러나 애초 뮤직카우보다 먼저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던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들이 가격 산정 등의 이유로 자진 철회하거나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받는 등 초기 진통을 겪고 있다. 투게더아트는 지난 8월 11일 정식 투자계약증권 인정을 받은 5개 조각투자 업체 중 하나로 제일 먼저 증권신고서를 접수했다. 투게더아트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기초자산으로 선정된 스탠리 휘트니의 미술작품은 <스테이 송(Stay Song)61>로 작품 감정가는 7억2000만원으로 산정됐다. 발행제비용 7920만원을 합산한 공모총액은 7억9920만원이었다. 투게더아트가 미술품을 취득, 관리하고 있다가 10년 내 매각을 통해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증권신고서는 20일 만에 자진철회했다. 업계에서는 투게더아트의 증권신고서 자진 철회 배경에 기초자산의 가격 산정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가격 논란이 빚어진 건 작품 매입처가 모회사인 케이옥션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다음으로 열매컴퍼니는 지난 10월 13일 호박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유명한 구사마 야요이 작가의 2001년작 <Pumpkin>을 기초자산으로 토큰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열매컴퍼니는 캔버스 3호 크기의 작품을 서울옥션으로부터 11억2000만원에 취득했다. 애초 이러한 기초자산 취득금액에 발행제비용 1120만원을 더한 11억3200만원 규모로 공모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권신고서가 금감원의 심사를 넘지 못하며 불발됐다. 최근 공시에 따르면 금감원은 열매컴퍼니가 제출한 투자계약증권 발행 관련 신고서에 대한 심사를 마치고 11월 2일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 외에 투자계약증권 1호를 노렸던 테사와 서울옥션블루가 증권신고서 제출 시점을 다소 연기했다. 금융당국이 강조한 미술품의 객관적인 가치 산정과 작품 선정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증권신고서 제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시장에서는 12월 혹은 2024년 초 미술품 1호 투자계약증권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본격적인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토큰증권을 통해 다양한 자산의 유동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전기차 충전 인프라 전문기업 차지인과 토큰증권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기반의 토큰증권 발행, 투자계약증권의 토큰증권화, 계좌관리기관 서비스 협력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차지인은 전기차 충전과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기술을 토대로 콘센트 기반 충전 플랫폼을 구축, 솔루션을 제공해왔다. 토큰증권으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금을 모집하고, 충전 인프라 운영에 따른 수익을 배분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나증권은 상업용 부동산 토큰증권을 위해 피나클을 운영하는 레빗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두 회사는 상업용 부동산 STO 사업모델 개발을 위한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피나클은 상업용 부동산 STO 발행을 위한 상품 개발과 조각투자 플랫폼 운영 등을 담당한다. 최원영 하나증권 디지털본부장은 “피나클과 함께 상업용 부동산 투자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 협업을 확대할 것”이라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고객들에게 다채로운 투자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포블게이트와 핀테크 전문기업 ㈜플러스플랫폼은 지난 11월 9일 미분양 주택 기반 토큰증권 발행 및 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양 사는 미분양 주택을 기반으로 토큰증권 발행을 통해 건설경기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자 힘을 합친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 공공 분야에서도 토큰증권 도입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부산시는 조선업 등 해양 산업의 증권화·토큰화로 해양 금융을 발전시켜 해양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토큰증권 시장 선점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증권사들은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공동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먼저 미래에셋증권은 토큰증권 비즈니스 연합체 넥스트 파이낸스 이니셔티브(NFI)와 토큰증권 실무 협력체인 워킹그룹(STWG)의 이원화 형태로 비즈니스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NFI는 국내 대표 ICT 기업인 SK텔레콤과 대형 금융지주회사인 하나금융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STWG에는 K-콘텐츠 및 프롭테크, 조각투자회사 등 토큰증권 발행 협업 중인 업체뿐 아니라 법무법인, 블록체인 기술회사 등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9월 KB증권·NH투자증권과 토큰증권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해 ‘토큰증권 증권사 컨소시엄 구성’ 전반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금융기관 중심으로 형성된 토큰증권 연합 첫 사례로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손잡고 협의체 ‘한국투자 ST프렌즈’를 구축했다. 조각투자 회사들과 증권업계가 토큰증권 산업화를 대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관련법 통과는 미뤄지고 있다. 증권업계는 올해 얼마 남지 않은 기간과 오는 2024년 총선 일정 등을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에도 관련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토큰증권 관련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현행법상 투자계약증권 발행에 관해서만 증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유통에 관한 내용에 더해 거래소나 다자간 매매체결회사 외에도 종합금융투자 사업자, 투자중개사업자 등을 통해 다수 투자자 간 증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와 조각투자 업체들은 빠른 시장 선점과 신시장 개척에 대한 기대감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법안 통과 시기는 예측하기 힘들다”라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제도 마련이 동반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