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장기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극도로 높아지며 자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8월 말 4% 초반대에 머물러 있었던 미 10년물국채 금리는 9~10월 중 급등세를 보이며 지난 10월 20일 5%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며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국채 금리는 지난 11월 9일 30년물 입찰에 대한 수요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며 전날보다 12bp나 오르는 등 급등세를 보였다. 같은 날 미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제롬 파월의 매파적 발언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변동성을 키웠다. 미 증권협회는 당시 중국공상은행(ICBC)의 결제시스템이 랜섬웨어에 감염돼 미국채시장이 교란될 위험이 있다고 회원사에 통보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14일 미국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치를 밑돈 것으로 발표되면서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한때 4.38% 부근까지 떨어지며 9월 말 이후 약 두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다만 이날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는 이날 인터뷰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극복했다고 선언하기는 너무 이르다”라며 “추가 긴축이 테이블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조기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시장의 분위기를 일축했다. 그러나 다음 날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까지 2020년 4월 이후 약 2년 반 만에 가장 큰 낙폭(전월 대비)을 보이며 연준의 매파 기조가 끝났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11월 17일 종가 기준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4.439%를 기록했다.
미국 장기국채 금리상승에 전 세계의 눈이 쏠린 이유는 글로벌 자산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보통 미 국채 금리의 상승은 달러화 강세 및 여타 통화 약세를 유발하면서 달러 표시 자산 수요를 촉진하고, 글로벌 위험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를 강화한다. 특히 미 10년물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 다양한 금리에 벤치마크로 작용해 동반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채권 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산 가격 하락 등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화하면 대내외 수요 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GDP 위축을 초래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해 달러 자산의 강세는 여타국의 수입 가격 상승과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 악화 등도 교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최근의 미 장기국채 금리의 하락에 주식시장은 큰 반등세를 보이며 환영하고 있다. 미 증시만 놓고 보면 11월은 계절적 강세라는 증시 공식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미 산타랠리가 시작됐다는 분석마저 나올 정도로 연말 효과에 대한 증시 참가자들의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최근 미국의 물가 상승률 둔화로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예측이 시장을 지배하며 연준이 금리 인하로 언제 방향을 전환할 것인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아울러 최근 장기채 금리 상승을 일으키는 세력으로 지목됐던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의 철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채권 자경단’은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국채 매도를 통해 금리를 대거 끌어올려 항의하는 세력을 의미하는 용어로 야데니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최근 야데니 대표는 지난 11월 15일 그간 시장을 공포에 떨게 한 채권 자경단이 후퇴했다고 주장했다.
야데니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해 “최근 몇 달간 있었던 증시 조정장에서는 채권 자경단이 장을 주도했다”라며 “이제는 다시 증시 투자자들이 운전대를 잡을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미국 10년물 채권 금리가 5%를 터치했지만, 실물 경제에는 즉각적인 영향이 없었다”라며 “이에 따라 증시 투자자들은 주가를 끌어 올릴 자신감을 얻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채권 자경단의 공격은 언제든지 다시 자행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11월 1일 빌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채권 자경단이 취약한 미국 재정정책에 처벌을 내리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경고했다. 이날 시드니에서 열린 UBS 호주 컨퍼런스에 참여한 더들리는 “지난 5월 3.5%였던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지난 10월 5%로 급등한 것은 단순한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통화정책 관점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이 예상하는 시점보다 연준은 더 많이 금리를 인상하고 더 오랫동안 고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어 더들리 전 총재는 경제가 완전고용상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재정적자가 “끔찍하다”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채권 자경단이 돌아올 것이며 시장은 언젠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그 일이 다음 주에 일어날지, 6개월 후에 일어날지, 아니면 2년 후에 일어날지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한 향후 미국 장기채 발행량이 예상보다 축소된 것으로 나타나며 통화정책에 민감한 단기국채 위주로 금리가 내림세를 보였다. 미국은 20년물과 30년물 등 초장기 국채 발행을 줄이는 대신 10년물과 3년물, 7년물 등 중기채 발행을 약간 늘리고, 만기 1년 이하 단기재정증권 등 단기물을 더 많이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물 발행이 늘면 장기국채에 공급 압력이 줄고 장기금리 급등 부담도 그만큼 낮아진다.
다만 최근 국채 금리가 하락한 만큼 신규 입찰 참여자로서는 입찰 매력이 낮아진 상태다. 채권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높은 가격에 응찰하는 셈이기 때문에 수요가 저조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연준의 움직임만큼 미국 국채 입찰 결과가 금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라며 “시장이 4분기 물가 둔화 지표를 과도하게 반영한 감이 없지 않기 때문에 입찰 이벤트를 통해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향후 공개되는 FOMC 회의록에서의 미묘한 톤의 변화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의 미 국채 보유량 감소도 눈에 띈다. 미국 증권산업 및 금융시장협회에 따르면 미국 국외 개인 투자자와 각국 중앙은행 등 외국인이 보유한 미 국채 비율은 30%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의 약 43%에서 대폭 줄어든 수치다. 중국과 일본 등 한때 미국의 주요 국채 투자자였던 나라의 미 국채 보유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 9월 미 국채 보유액이 7781억달러로 전달보다 273억달러 감소했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이 8000억달러를 밑돈 것은 14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과 일본이 미국 국채 보유 규모를 줄이는 것은 미국 국채를 팔아 얻은 달러로 자국 통화를 사들여 환율방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금리 정책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역시 장기금리가 상한인 1%를 초과하더라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를 통해 사실상 장기 금리를 인상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 투자자들이 미 국채에서 일본 국채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다만 유럽에서 미 국채 보유 규모를 늘리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유럽 투자자들은 지난 12개월 동안 2140억달러의 미국채를 매입했다. 유럽 국가들의 미국채 매입은 중국과 일본의 매각에 따른 채권 가격 하락을 상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연준의 고금리 정책이 지속되면 유럽국들의 경기 후퇴로 미 국채 매입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최근 미국의 물가 상승률 둔화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져 장기채 금리가 하향안정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길게 가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하향안정세가 연준의 매파적 통화정책을 부추길 것이란 예상이다.
최근 파월 의장을 비롯한 몇몇 연준 위원들은 국채 금리 급등이 연준의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추가 인상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의원 중 하나인 매파 성향의 로리 로건 댈러스연방은행 총재는 지난 10월 초 “장기금리가 높은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으로 인해 계속 상승한다면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라고 밝혔다. 자회견에 나선 파월 의장도 장기채 금리 상승에 따른 긴축적인 시장 상황을 시인했다. 그는 “국채 금리 상승을 비롯해 달러화 강세, 주가 하락 등 광범위한 금융 시장 여건이 향후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 지난 10월 ‘미 기준금리 7%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해 월가의 눈길을 끈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 11월 17일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보이는 것보다 약간 더 끈질길 수 있다”라고 경고하며 “CPI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들여다보면 환호하는데 타당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미 연준이 이미 500bp(베이시스포인트)의 인상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리 인상을 잠시 중단하는 것이 옳지만 여전히 금리를 더 높일 수 있으며 사람들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