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을 기점으로 산유국이 포진한 중동 정세가 복잡하게 꼬이자 원유와 천연가스 시세를 둘러싼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다만 시장 전문가들은 원유나 천연가스에 레버리지 투자하는 고위험·고수익 상품 매매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고 있다. 정세 불안을 타고 투기 수요마저 따라붙은 탓에 단기적으로 에너지 시세가 예측 불가능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를 보면 이스라엘 사태 이후인 10월 9~16일 기준 한국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5위는 상장지수펀드(ETF)인 ‘프로셰어스 울트라숏 블룸버그 천연가스 펀드(KOLD)’였다. 이는 천연가스 약세에 2배 레버리지 베팅하는 고위험·고수익 상품으로 해당 기간 국내 투자자들은 해당 종목을 총 1593만7154달러(약 21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밖에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너구리라는 애칭이 붙었던 상장지수증권(ETN)인 ‘마이크로섹터스US빅오일 3X레버리지(NRGU)’도 454만8799달러(약 62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국제 유가 강세에 힘입어 미국 주요 석유 기업 주가가 오르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데이터는 통상 매매 체결 시점으로부터 2~3일 후에 반영된다.
투자자들은 단기 원유 시세 전망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10월 중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월간 단기전망보고서(SFO)를 통해 기본적으로 공급 감소 리스크에 주목해 올해 하반기~내년 상반기 전 세계 석유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유가를 올릴 것으로 보면서 올해 유가 전망을 낮춘 반면 내년 전망치는 높였다. 공급 감소 리스크란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 감산 기조를 말한다.
EIA는 올해 연말까지 WTI와 브렌트유가 각각 1배럴당 79.59달러와 94.09달러로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이는 이전 전망에 비해 각각 6센트, 34센트 하향한 결과다. 유가가 최근 3개월간 90달러를 웃도는 식으로 고공 행진했으나 연말까지 세계 석유 소비 증가세가 둔화되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EIA는 올해 하루 단위 세계 수요 전망을 5만 배럴 낮춘 1억9200만 배럴로 제시했다.
내년 전망을 보면 EIA는 WTI와 브렌트유를 각각 90.91달러, 94.91달러로 예상했다. 기존 전망 대비 각각 7.69달러, 6.69달러 상향한 결과다. 다만 EIA는 내년 세계 석유 수요가 기존 전망보다 9만 배럴 줄어든 1억2240만 배럴일 것으로 추산했다. 이와 관련해 EIA는 “내년 석유 재고량이 하루 약 20만 배럴씩 줄어들겠지만 수요 둔화까지 감안할 때 상반기에는 유가가 오를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내년 석유 생산을 하루 1312만 배럴 늘릴 것으로 보이는 바 하반기에는 완만한 유가 하방 압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상품 시장에서는 이번 이-팔 전쟁이 중동 화약고가 될 가능성을 경계하면서도 유가가 폭등할 만한 수준인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내고 있다. 일례로 런던에 본사를 둔 상품 시장 분석 업체인 레드번 측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유가 향방과 관련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드번은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을 앞두고 OPEC+가 감산 기조인 점을 고려할 때 올해 4분기 전 세계적으로 원유가 하루 180만 배럴 부족할 것”이라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유를 생산하지 않지만, 이번 사건으로 미국이 중재해온 이스라엘-사우디 화해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언급했다.
미국은 사우디와 한·미 혹은 미·일 수준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논의해왔으며 그 조건으로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를 내건 바 있다. 협상 과정에서 사우디 측은 내년에 원유 생산을 늘리겠다고 미국 측에 10월 6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바로 다음 날 이스라엘 사태가 터진 후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분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내년에도 사우디와 더불어 원유 공급 감축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언급을 함으로써 사우디 증산 기대감을 눌렀다.
반면 원자재물류 데이터 분석 업체인 케이플러의 호메이윤 팔락샤히 상품담당 수석연구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관해 추가 제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이란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이란산 원유를 주로 거래하는 중국 본토와 홍콩·아랍에미리트·오만 무역상을 제재할 가능성이 있지만 자체 데이터 집계 결과 올해 3분기(7~9월)의 경우 이란은 하루 140만 배럴씩 원유를 수출해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최대 1.4%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팔락샤히 연구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이 이란으로 번지는 경우와 관련해 “유가가 20%급등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양자 갈등에는 이란 지원을 받는 레바논 준군사 단체인 헤즈볼라가 가세한 상황인 바, 국제 사회가 이란 관련 단체를 압박하는 경우 전 세계 해상 석유 수출량의 37%가 지나는 이란 남부 국경 소재 호르무즈 해협이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와 관련해 영국 왕립연합군 국방안보연구소의 토비아스 보크 선임연구원은 “호르무즈는 현재 분쟁지와 지리적 거리가 먼 데다 미국 연합군이 호르무즈 교역로 취약성을 인식하고 이전부터 인근에 대규모 군사 주둔을 유지해왔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이스라엘 사태가 중동 산유국 갈등으로 번지지 않는 한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브렌트유가 내년 상반기까지 1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통신은 최근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 제재를 일부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소식이 나온 시점은 이스라엘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 나왔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부채 상환을 위해 외국계 석유 기업을 통해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에 진전을 보이고 있는 바 두 국가 대표단은 앞으로 몇 주 안에 멕시코에서 대면 협상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 이스라엘 사태로 인한 공급 부담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
이스라엘 사태를 계기로 ‘제5차 중동 전쟁 위기론’까지 나왔던 10월, 유럽에서는 천연가스 시세가 하루 새 12~15% 가까이 급등해 투자 눈길을 끌었다. 다만 이스라엘 사태 외에도 돌발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시세 흐름 예측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스라엘 사태 이후 첫 거래일인 10월 9일(현지시간)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는 유럽 천연가스 지표 역할을 하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11월물이 하루 새 12.49% 뛴 결과 1메가와트시(㎿h)당 43.01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헨리허브천연가스 11월물이 전날 대비 1.14 % 올라 1영국 열량 단위(MMbtu)당 3.376달러에 거래된 것에 비하면 시세 변동 폭이 극명히 대비된다.
유독 유럽 TTF 가스 시세가 급등한 배경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공격을 받은 이후 미국계 글로벌 석유 기업 셰브론등이 운영하는 타마르 해상 가스전 생산을 중단시키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부각된 탓이다. 이스라엘 에너지부는 성명을 통해 “국방부 요청에 따라 남부 해안 소재 타마르 가스전 생산을 일시적으로 전면 중단하며 필요한 대체 연료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50년 전인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욤-키푸르 전쟁)’ 이후 처음 나온 것으로 타마르에서 생산된 가스는 이웃 국가인 요르단과 이집트로도 수출된다. 다만 이번 조치 여파로 글로벌 시장에서 이스라엘 등의 천연가스 수입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유럽으로 확산되며 TTF 시세가 올랐다.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주로 의지했던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줄이고 다른 곳으로부터 수입 확보에 나선 상황인 데다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천연가스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매수세로 이어졌다.
두 번째로는 ‘천연가스 수출대국’인 호주에서 셰브론이 운영하는 액화천연가스(LNG) 공장 두 곳의 노동조합이 또다시 파업을 거론하면서 공급 부족 리스크가 떠올랐다. 호주 위트스톤·고르건 소재 셰브론 공장 노조는 10월 중순 파업을 예고하면서 시세 변동성을 키웠다. 해당 지역은 전 세계 LNG 생산량의 약 6%를 책임지는 곳이다. 유럽 TTF 가스 가격은 이미 올해 3분기(7~9월)에도 호주 노조 파업 리스크를 따라 급등락을 거듭해왔다.
세 번째로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발트해 가스관이 10월 초 불가사의한 유출 문제를 이유로 일시 폐쇄되면서 공급 측면 불확실성이 더해졌다. 핀란드 가스 업체인 가스그리드는 당시 성명을 통해 “발틱 해저 가스관이 77㎞ 해저 경로 어딘가에서 누출이 발생했으며 누출 사고에 따라 일시적으로 가스관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가스 누출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고가 이스라엘 사태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해당 가스관은 러시아군 접근이 가능한 곳이라는 점이 투자 불안을 자극했다.
다만 최근 한국 투자자들이 집중 매수한 ‘프로셰어스 울트라숏 블룸버그 천연가스(KOLD)’ 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이 주된 기초상품이기 때문에 유럽 TTF 급등 영향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해당 종목은 천연가스 시세 하락에 2배 레버리지 베팅하는 고위험·고수익 ETF 다.
10월 중순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둘러싸고 글로벌 증시 투자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진 가운데 연준 인사들이 연달아 금리 인상 자제 발언을 내 시장의 눈길을 끌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노동조합 파업 장기화와 이-팔 전쟁 에너지 수급 불안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해 3분기 뉴욕 증시를 흔든 미국 국채 가격 폭락(수익률 급등) 사태가 빠르게 안정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연준 다수 인사들은 여러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시중 장기 금리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동향을 살피면서 금리 인상을 자제하겠다는 식의 완화적 발언을 내고 있다. 일례로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10월 중순 유타주에서 열린 미국 공화당 행사에서 “금융시장이 긴축되고 있는 바 이런 추세가 연준의 결정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해 관심을 받았다. 월러 이사는 연준 FOMC 회의 고정 투표권을 가지고 있으며 위원들 중 매파로 통하는 인물인데 다소 완화적인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내년 FOMC 투표권) 역시 메트로 애틀랜트 챔버 연설에서 “인플레가 지속적으로 둔화되는 한 우리가 금리와 관련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완화적 발언을 내놓았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내년 FOMC 투표권)는 시카고 국제문제 협의회 행사에 참석해 “채권 수익률 상승이 금리 인상을 대체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올해 FOMC 투표권) 역시 마이넛주립대 연설에서 “연준이 물가 안정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 선언을 하기는 이르지만 채권 수익률이 높다고 판단된다는 것은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완화적 발언을 했다.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올해 FOMC 투표권)도 “나는 연방기금 금리(미국판 기준금리)보다 금융 조건이 제한적인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언급해왔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면서 “장기물 국채 수익률이 계속 뛴다면 금리를 인상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립 제퍼슨 연준이사(FOMC 고정 투표권) 역시 “FOMC 위원들이 필요한 추가 긴축 정책 범위를 주의 깊게 평가하는 상황”이라면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국채 수익률 상승이 경제를 얼마나 제약할지 염두에 둘 것”이라며 비슷한 취지의 완화적 언급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판 기준 금리인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의 전문 투자자들은 지난 달 15일 집계 기준으로 연준이 올해 12월까지 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67.1%로 보고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연 5.25~5.5%다. 이런 가운데 미국 국채 투자와 관련해 스위스계 UBS글로벌자산운용의 솔리타 마르첼리 아메리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 미국 국채 수익률이 장기 균형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되면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2.75%, 성장세가 긍정적이면 4% 정도일 것이며 기본적으로는 앞으로 12개월 안에 3.5%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가 침체되면 연준이 금리 인상을 하지 못하리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한편 미국 국채 수요 측면과 관련해 연준은 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양적긴축(QT)은 더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연준이 공개한 9월 FOMC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은 금리 목표 범위를 줄이더라도 양적긴축은 한동안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연준은 지난해부터 만기가 돌아온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에 재투자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시장 유동성을 거둬들여왔다. 미국 국채 공급 측면에서는 재무부가 앞서 올해 7월 말 “재정 지출을 위해 20~30년 만기 국채 입찰 규모를 늘림으로써 총 1조달러를 조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입찰 확대는 2년 반만에 처음이다.
뉴욕 증시 어닝 시즌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만 10월 중순 이후에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주요 상장 기업들의 분기 실적 발표가 이어진다. 투자자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종목은 AI 대장주로 통하는 엔비디아(NVDA)다.
TSMC는 3·4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5467억3000만대만달러(약 22조9079억8700만원), 영업이익은 2110억대만달러(약 8조8409억원)로 10월 19일 공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8%, 24.9% 감소한 수치다. 시장 예측치인 1904억대만달러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면서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황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미·중 갈등도 엔비디아 매매 타이밍과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미국 정부는 AI용 첨단 반도체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해왔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AI용 첨단 반도체인 A100과 H100의 중국 수출 길이 막히자 성능이 다소 떨어지지만 수출 규제에는 걸리지 않는 H800 반도체를 중국 수출용으로 개발해 생산해왔다. 다만 미국 정부가 기업들이 수출 규제를 우회하는 방안을 차단하고 나서면서 엔비디아로서는 차이나 리스크가 커진 상태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