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유럽연합(EU)과 러시아 등 각국의 동맹국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갈등거리가 반도체·스마트폰에서 전기차로 퍼지면서 아르헨티나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초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에 따른 디폴트 리스크 탓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 부국으로서 투자 붐이 일고 있는 남미 경제 2위 국가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이 전기차를 두고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EU는 9월 말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지 않으면 오는 2030년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와의 배터리 협력을 늘려야 한다는 내부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과거에 EU가 러시아에 가스를 전적으로 의존한 탓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부족과 경제난을 겪은 점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경계론이다.
지난 9월 17일(이하 현지시간) EU는 내부 문건을 통해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단기적으로 보면 중국산 전기차가 공산당 지도부의 부당한 보조금을 지원받아 시장을 침식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가격을 넘어 전기차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배터리 부문을 중국산이 장악하게 되는 것이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다.
문건에 따르면 EU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오는 2030년까지 리튬 이온 배터리와 연료전지 부문에서 중국 의존도가 커질 것이며, 그 의존도는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했던 것처럼 과도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와 다각적인 협력을 하자”는 결론을 냈다. EU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기 전인 2021년에 역내 가스 소비량의 40% 이상, 석유는 27% 이상, 석탄은 46%를 러시아로부터 공급 받았지만 이후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제재가 나오면서 에너지난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자 이를 교훈 삼아 배터리 공급망 재편을 강조한 셈이다. 해당 문건은 10월 5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리는 EU 정상 회의에서 유럽 경제 안보 이슈 참고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전기차는 ‘리튬 이온 배터리’가 핵심이다. EU는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된 결과 리튬 이온 배터리와 연료 전지, 전해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며 향후 몇 년 안에 수요가 10~30배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1990년 일본 소니사가 처음 상용화했지만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중국이 뛰어들어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물량 공세에 나선 상황이다. 지난해 중국의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량은 750기가와트시(GWh)로 전년 대비 130% 이상 증가했으며, 그중 에너지 저장형은 100GWh를 돌파했다. EU는 전기 분해 장치 부문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지만 배터리와 연료전지는 중국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UBS는 중국산 전기차가 배터리 공급력에 힘입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키워 지난해에는 전 세계 시장의 17%를 중국산 전기차가 차지했지만 오는 2030년까지는 3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2030년까지 중국산 전기차는 유럽시장의 20%를 점유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배터리의 원료가 되는 리튬은 전 세계 매장량의 절반 이상이 아르헨티나·볼리비아·칠레로 구성된 남미 지역 ‘리튬 트라이앵글’에 매장돼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볼리비아의 리튬 추정 매장량이 약 2100만톤으로 가장 많다. 아르헨티나(1930만톤)와 칠레(960만톤)가 그 뒤를 잇는다.
이 때문에 EU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리튬 자원 확보 경쟁이 한창인 지역이다. 미국 남부사령부 사령관 로라 리처드슨 대장은 지난 3월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겉으로 투자를 내세워 자원에 눈독 들이고 있다”면서 “특히 아르헨티나 등 리튬 집중 매장지에서 중국이 아주 영리하고 공격으로 리튬 확보에 나서는 현실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벤저민 게단 중남미 프로그램 담당자는 “리튬은 미·중 간 기술·지정학적 경쟁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주요 강대국이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싸우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같은 중남미 지역이 최전선”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등은 ‘세계의 공장’ 중국을 대체할 글로벌 공급망 주축으로 인도에 주목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인도에 비해 아르헨티나 투자 수익률이 더 높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를 보면 인도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MSCI 인디아 ETF(티커 INDA)’의 수익률은 지난달 중순 9월 15일(이하 현지시간)을 기준으로 연중 7.68%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아르헨티나에 투자하는 ‘글로벌 X MSCI 아르헨티나 ETF(ARGT)’는 37.04% 올라 상승폭이 인도 ETF의 5배에 달했다.
같은 라틴아메리카 ETF를 비교해보면, ‘남미 경제 1위’ 브라질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MSCI 브라질(티커 EWZ·연중 상승률 24.60%)이나 멕시코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MSCI 멕시코(EWW·19.01%)에 비해서도 ARGT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신흥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신흥 시장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ETF인 ‘아이셰어스 MSCI 코리아(EWY·13.87%)’에 비해서도 아르헨티나 ETF의 상승폭이 눈에 띈다.
외환위기가 끊이지 않는 아르헨티나의 환율 문제를 감안하면 현지 거래소를 통해 투자하는 것보다는 뉴욕증시에 상장된 아르헨티나 기업 주식의 미국 예탁 증서(ADR)에 투자하는 것이 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뉴욕증시를 통해 아르헨티나에 투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개별 종목을 매매하거나 ETF를 매매하는 방식이다. 개별 종목의 경우 대형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다. 개별 종목 주가 변동 리스크가 크다는 점에서 ETF를 선택하려는 경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글로벌 X MSCI 아르헨티나 ETF(ARGT)다. ARGT 구성 종목을 통해 매수할 만한 개별 종목을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투자 시점과 관련해 10월 말 열리는 아르헨티나 대선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기업 차원과 달리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초인플레이션과 경제난,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 아르헨티나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아르헨티나 소비자물가지수는 월간 12.4%, 연간 124.4% 폭등했다. 인플레가 잡히지 않자 정부는 8월 기습적으로 페소화를 18% 평가절하했다.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10월 22일에는 대선 결선투표가 이뤄진다. 앞서 8월 13일 실시된 대선 예비선거에서는 제3당으로 여겨지던 야당 ‘진보자유’ 소속의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 의원이 깜짝 1위에 올라선 상황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출신인 밀레이 의원은 중앙은행 폐쇄와 공기업 민영화뿐 아니라 페소화를 달러화로 대체하자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운 상태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예비 선거 결과가 대선 본선에서 뒤집힌 전례가 없는 만큼 이달 말 결선 투표에서도 밀레이 의원의 승리가 유력하지만, 당선되는 경우 공약 이행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고려해야할 시점이다.
메르카도리브레는 ‘라틴 아메리카판 아마존’으로 통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증시뿐 아니라 뉴욕 나스닥증권거래소에서도 ‘MELI’라는 티커로 거래되는 종목이다. 나스닥 100 지수 포함 기업이기도 하다. 지난 1999년 아르헨티나에서 설립된 메르카도리브레는 현재는 본사가 아르헨티나 옆 나라인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있다.
뉴욕증시 기준으로 메르카도리브레 시가총액은 약 700억달러다. 미국 아마존(1조4500억달러) 대비 5%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아마존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온라인 상거래 외에 핀테크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개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 서비스를 비롯한 카드 서비스와 온라인 결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남미에는 신용카드나 은행계좌가 없는 인구 비중이 높기 때문에 핀테크 사업 성장 여력이 크고 메르카도리브레가 핀테크와 온라인 상거래를 모두 아우른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아왔다. 뉴욕증시에서 15일 기준으로 해당 기업 주가는 최근 한 달 새 16.72% 뛴 결과 1주당 1396.66 달러(약 186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ETF인 ARGT에 비하면 메르카도리브레주가 상승세가 상대적으로 더 가파른 편이다.
YPF는 아르헨티나 국영 에너지 업체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아르헨티나가 리튬 부국으로 떠오른 가운데,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해온 중국 CATL이 YPF와 리튬 채굴 프로젝트를 추진해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 확보 총력전을 펼친 바 있다. 최근 YPF는 바카무에르타 인프라 프로젝트 참여 사업자들과 프로젝트 착수 전 예비 협의안에 합의했다. 아르헨티나 중서부 네우켄 지역에 위치한 바카무에르타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은 셰일 오일과 두 번째로 많은 셰일 가스가 매장돼 있다. 바카무에르타는 앞서 2011년 해당 지역에서 1억5000만배럴 규모의 셰일 유전이 발견되면서 많은 기업과 국가들이 뛰어든 곳이다. ARGT의 경우 뉴욕증시에서 거래되는 YPF ADR에 투자한다. 해당 종목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돼 있으며 티커는 YPF다.
리튬아메리카스는 캐나다 밴쿠버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후후이주에 위치한 카우차리-올라로즈 프로젝트와 살타주에 위치한 파스토스 그란데스 프로젝트, 미국 네바다주 북서부에 위치한 태커 패스 프로젝트에 대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회사 이 사회는 북미·아르헨티나 사업부를 분할해 독립 법인으로 출범시킨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번 분할은 중국의 간펑리튬과 거리를 두고 미·중 갈등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로 이뤄졌다. 앞서 존 카넬리차스 리튬아메리카스 부사장은 “태커 패스 광산 프로젝트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간펑리튬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회사는 중국 간펑리튬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다는 점이 리스크로 꼽혀왔다. 앞서 미국은 중국을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서 배제하겠다는 취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했고, 전기차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한 배터리 광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면서 중국을 제외했다.
IRA 조항은 리튬아메리카스의 악재로 꼽혀왔다. 리튬아메리카스와 간펑리튬은 북미 최대 리튬 사업으로 꼽히는 태커 패스 프로젝트를 통해 리튬을 연간 최대 8만톤 생산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공급할 계획이었다가 IRA에 발목을 잡혔다. 미국 상·하원에서는 국가 안보를 지키려면 미국 내 주요 광산 개발 사업에서 중국을 배제해야 한다면서 회사를 압박해왔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