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금과 구리. 올 들어 금은 전반적으로 오르고 구리 가격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한 달 사이 양상이 바뀌어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주목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구리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이유와 구리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외변수들을 꼽아봤다.
올해 들어 금 가격과 구리 가격은 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하면서 금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한 반면 구리 가격은 하락세를 보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 가격은 올해 초 트로이온스당 1875달러에서 7월 12일(현지시간) 1961달러로 4.6%가량 상승했다. 5월 초에는 2055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구리 가격은 같은 기간 파운드당 3.9달러에서 3.8달러로 2.6%가량 하락했다. 지난 5월 하순에는 3.6달러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금과 구리 가격은 원래 반대 흐름을 보인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탓에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되면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반면 구리는 산업 전반에 두루 쓰이는 특성이 있다. 경기가 둔화되면 수요도 줄기 때문에 가격은 떨어진다.
그런데 지난 6월부터 이 같은 흐름에 변화가 감지된다. 구리는 하락을 멈추고 반등을 준비하는 모양새고, 금 가격은 상승 동력을 잃고 주춤하는 형국이다. 최근 한 달(6월 13일~7월 12일)간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1971달러에서 1961달러로 떨어졌고 구리 가격은 파운드당 3.7달러에서 3.8달러로 소폭 올랐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간 투자심리를 가늠할 때 보통 사용되는 구리-금비율이 6월 이후 반등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난 데는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기 흐름에 대한 전망이 지난 상반기 내내 드라마틱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황 연구원은 “주식 시장의 견조한 상승세와 달리 상반기 구리-금 비율은 미국 지역은행 파산, 연방 부채한도 협상 난항 속 디폴트 우려 등을 고스란히 반영했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주도의 긴축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까지 맞물려 연초 한때 5배 수준에서 반락해 지난 5월에는 약 4배까지 저점을 낮추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증권 전문가들은 향후 구리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지난 6월 중순 보고서를 통해 “6월 16일 미국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발표했던 구리에 대한 순투기 포지션은 5600계약으로, 그 전주 순매도 포지션(-1만2277계약)에서 순매수로 전환돼 구리 강세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6월 20일 순매수 계약수는 2만1840건으로 더욱 확대됐다. 구리 강세에 베팅하고 있는 투자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뜻으로 가격 상승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구리 가격도 연저점에 비해서는 유의미하게 회복된 모습이다. 황연구원은 “연초 중남미 등에서 발생한 광산 공급 차질은 거의 대부분 해소됐고 중국 부동산 회복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전기동은 8000달러를 밑돌았으나 6월 들어 재고 부족과 연준의 금리 동결, 그리고 중국부양책 기대감에 8500달러까지 낙폭을 회복했다”고 분석했다.
구리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첫 번째 이유는 수급이 타이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급은 원활할 예정이지만 중국발 구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광래 삼성선물 연구원은 “하반기 글로벌 구리 수급은 타이트할 전망”이라며 “6월 22일 기준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구리 출고 예정 재고를 뺀 가용 재고는 3만125톤으로 4월 14일 이후 처음으로 4만톤을 밑돌았으며 공급 부족 우려에 전기동 가격은 5월 9일 이후 처음으로 8600톤 선을 웃돌았다”고 말했다. 중국의 풍력 및 태양광 생산 설비와 에어컨, 전기차 부문이 최근 구리 수요를 이끈 데 이어 향후 부동산 부양책까지 이어지면 구리 사용은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 넷제로 이행에 따라 석탄 연료의 전기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선의 원료가 되는 구리는 전기화와 함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원자재다. 지난 5월 세계변호사협회(IBA)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 건설이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소보다 8~12배 더 많은 구리를 필요로 한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또한 제조과정에서 구리 소비량이 내연기관차보다 3∼4배 높다. 이 때문에 S&P글로벌은 2035년까지 구리 수요가 현재 대비 2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에 국내외 증시 전문가들은 구리 관련주 매수를 추천하고 있다. 마이크 두다스 버티컬리서치파트너스 연구원은 미국 광산기업인 프리포트 맥모란에 대해 “현재는 장기 구리 상승 사이클상 초기일 수 있다”며 주가 전망을 긍정적으로 점쳤다. 그가 제시한 프리포트 맥모란의 적정 주가는 현재 수준(40.85달러) 대비 39% 높은 57달러다. RBC캐피털의 적정 주가도 50달러로, 현재 수준 대비 25%가량 높다. 프리포트 맥모란은 구리뿐만 아니라 금, 몰리브덴 광산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구리 생산 기준으로는 세계 2위 수준을 자랑한다. 구리 가격과 주가 흐름이 매우 큰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어 주가로만 보면 사실상 구리 가격에 투자하는 것과 유사한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배당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는 평가다.
구리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프리포트 맥모란의 대차대조표는 건전하다는 분석도 있다. 에밀리 치엥 골드만삭스 연구원은 “프리포트 맥모란의 순부채비율은 0.28로 경쟁사인 서던코퍼의 0.78보다 낮다”며 “수익, 현금 수요 및 기타 요인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질 수 있는 ‘변동 배당 수익률’은 1.5%”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자들은 구리 가격의 단기적인 움직임에 대해 집중하지만 프리포트 맥모란은 대차대조표의 건전성, 일관된 운영 실적 및 훌륭한 자본 수익 정책을 갖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중장기적인 투자자들이 프리포트 맥모란을 선호할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구리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파운드당 3.6달러 이상을 유지한다면 구리 관련 주식의 매력도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배런스는 정유 관련 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이상인 것처럼 구리 가격도 3.6달러 이상을 유지하면 관련 기업들에 투자하기 나쁜 타이밍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맥스 레이턴 씨티그룹 이사도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구리 가격이 하락한 지금이 매수하기에 이상적인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구리 가격이 2025년까지 톤당 1만50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구리 가격이 단기적으로는 더 하락할 수 있지만 시장이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을 인식하게 되면 향후 6~12개월 내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구리 관련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로는 ‘KODEX 구리선물(H)’ ‘TIGER 구리실물’ 등이 있다. KODEX 구리선물(H)은 ‘S&P GSCI 북미 구리 지수 TR’을 기초 지수로 한다. 이 지수는 미국상품거래소(COMEX)에 상장된 구리 선물의 최근 월물로 이루어져 있다. 환헤지를 통해 국제 구리 가격 움직임을 반영한다. TIGER 구리실물은 ‘S&P GSCI 현금 구리 지수’를 기초 지수로 한다. 환헤지를 실시하지 않으며 구리 실물 보관에 따라 발행된 창고증권을 주 투자대상으로 한다.
물론 중단기적인 변수도 있다. 삼성선물은 구리를 비롯한 비철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4가지 대외 변수로 ▲중국 더블딥 우려에 따른 부양정책 ▲미국 제조업 경기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 차질을 야기할 엘니뇨를 꼽았다.
상반기 제조업 경기와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았던 중국은 정부의 부동산 지원책을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국유은행을 통한 주택담보대출 금리인하와 주택 구매 제한의 부분 철회, 그리고 대규모 인프라 지출 등이 기대할 수 있는 지원책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의 경기 하강 압력이 완화되고 4분기까지 주택 경기 부진이 완만하게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부진한 제조업황으로 미국 경기가 둔화할 경우 원자재 투자자들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고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측면에서는 강한 것으로 보이지만 서비스 부문 지출에 의존하는 모습이 강하고 제조 업황이 부진하다. 금리 인상 여파가 시차를 두고 이어질 경우 지금과 같은 골디락스(적당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도 변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면 위험 자산 기피 분위기가 커져 비철 가격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글로벌 공급망에 다시 영향을 주는 사건이 벌어질 경우 비철 가격에는 상방 압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마지막 대외 변수는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기후 현상인 ‘엘니뇨’ 현상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하반기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고 미국 해양대기청(NOAA) 산하 기후예측센터 역시 2023~2024년 겨울까지 엘니뇨 현상이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습기가 아메리카 대륙 연안에 갇히며 페루와 칠레 같은 중남미 지역에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들은 구리의 주요 생산지로, 자연재해로 인해 공급 차질이 생긴다면 가격 상승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매일경제 증권부 강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