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져 있던 용산 유엔사 부지 하이엔드 오피스텔이 9월경 분양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계약면적 기준 3.3㎡당 1억원에 달하는 높은 분양가로 소비자 선택을 기다린다. 실제 이 가격대로 나온다면 지금까지 분양한 오피스텔 중 면적당 최고가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 부지 복합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일레븐건설은 최근 오피스텔 분양을 앞두고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사업계획안을 공개했다. 단지명은 ‘더 파크사이드 스위트’다. 일레븐건설이 새로 만든 주거 브랜드다. 전용 면적별로 ▲56㎡ ▲59㎡ ▲63㎡ ▲77㎡ ▲96㎡ 등 다양한 평면을 구성했다. 다분히 중소형 평면 중심이라 볼 수 있다.
분양가는 36억~67억원 선이다. 당연히 대중을 상대로 한 상품은 아니다. 상당한 분양가를 지불하고 그에 맞는 주거서비스를 누리겠다는 계층을 타깃으로 한 분양 전략이다.
이 사업은 일레븐건설이 용지를 매입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엔사 부지는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인근에 용산공원을 옆에 낀 4만4935㎡ 규모 대지다. 예전부터 서울 시내 최고 금싸라기 땅으로 꼽혔다. 부지 동쪽으로는 대형 재개발 사업지인 한남뉴타운이 있고, 이태원 상권과 한강공원이 지척이다.
여기에 유엔사 부지 복합개발 사업이란 명목으로 연면적 48만462㎡ 규모, 지하 7층~지상 20층, 총 10개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 420가구와 오피스텔 723실을 짓는다. 또 호텔, 오피스, 판매시설 등도 따라서 들어간다. 용산공원과 이태원을 연결하는 길이 330m 공공보행통로도 갖춰진다.
일레븐건설은 이 땅을 2017년 1조 552억원을 들여 매입했다. 당시 1조원이란 상징적인 금액을 훌쩍 넘어선 가격에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놀랐다. 당시 일레븐건설의 목표는 확고했다. 비싼 땅을 비싸게 산 뒤 공을 들여 비싸게 집을 지어 팔자는 전략이었다.
여기에는 출판사 사업으로 시작해 디벨로퍼로 큰돈을 번 엄석오 일레븐건설의 철학이 숨어 있다. 그는 출판으로 만진 돈으로 지난 1991년 일레븐건설을 창업했다. 작은 건물 위주로 시행을 하던 그는 1990년대 말부터 경기 용인에서 잇달아 아파트 개발 사업을 성공시키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 남는 대형 프로젝트로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기를 원했다. 그런 그와 인연을 맺은 게 유엔사 부지다. 그는 “단순히 돈만 벌 생각이었다면 아마도 다른 사업을 했을 것이다. 용산이라는 역사적인 장소에 반했다. 유엔사 부지를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이곳을 오가는 관광객과 내국인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고급 주상복합 문화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일레븐건설은 글로벌 럭셔리 호텔 로즈우드와 계약을 마쳤다. 이 호텔 브랜드는 전 세계에 걸쳐 럭셔리 호텔 30여 개를 보유한 글로벌 체인이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오스트리아 빈, 캄보디아 프놈펜 등 핵심 입지에만 객실을 여는 전략으로 유명하다. 엄 회장은 “로즈우드 호텔이 들어오면 국내 호텔 판도가 뒤집어지게 될 것”이라며 “서울에 있는 그 어떤 호텔보다 뛰어난 매력을 가지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소냐 쳉(Sonia Cheng) 로즈우드 호텔그룹 CEO는 “우리는 한국의 중심인 서울을 오랫동안 눈여겨봐왔다. 아시아의 확장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기 때문에 로즈우드의 시각으로 서울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레븐건설과 함께 우리의 특징을 보여줄 새로운 호텔을 지으면 향후 초호화 여행객이라는 새로운 세대가 서울을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즈우드 서울은 유명 인테리어 디자인 기업 스페이스코펜하겐이 디자인할 예정이다. 약 250개 객실을 비롯해 7개의 레스토랑과 바, 복합 웰니스시설 등의 다양한 부대시설이 들어선다.
공동주택과 오피스텔은 최첨단 자재가 아낌없이 투입될 예정이다.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일대 자산가가 주목할 만한 주거 상품을 만들겠다는 게 일레븐건설의 생각이다.
따라서 오피스텔 이후 분양 일정이 잡힐 예정인 공동주택 역시 하이엔드 계층을 겨냥한 주거시설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오피스텔에 비해 공동주택 면적이 훨씬 넓기 때문에 이에 비례해 분양가도 올라가는 구조다. 채당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분양가가 책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 부동산 시장도 반사이익을 받을지 관심이 몰린다. 유엔사 용지와 인접한 이태원동 청화아파트는 14년만에 재건축 사업에 다시 탄력이 붙었다. 용산구는 6월 초 이태원 청화아파트 재건축 판정을 위한 정밀안전진단 용역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밀안전진단은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아파트의 최종 재건축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관문이다. 청화 아파트는 1982년 준공해 올해로 42년 차를 맞았다. 아파트 10개동 지상 12층, 578가구 규모다.
청화아파트는 지난 2009년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세우고, 2014년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하지만 같은 해 정밀안전진단 동의율을 채우지 못해 사업이 무산됐다.
이곳은 대대로 용산에 살던 숨은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또 외국인을 상대로 월세를 놓는 사업자도 아파트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굳이 재건축을 진행해 이주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손바뀜이 일어나며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여기에 청화아파트와 경계를 두고 마주한 유엔사 부지 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자 분위기에 불이 붙었다. 결국 지난 2월 청화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가 용산구에정밀안전진단 시행을 요청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청화아파트는 그동안 서울 핵심지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유엔사 부지 개발 속도가 빨라질수록 청화아파트에 쏠리는 관심도 덩달아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사부지를 축으로 낡은 용산전자상가도 천지개벽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는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 메타버스 산업을 집약한 ‘메타밸리’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용산정비창에 조성되는 국제업무지구와 연계해서 용산 일대를 서울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산업 중심지로 만든다는 게 서울시 계획이다.
용산 일대 상가는 각각 개발이 가능하게 된다. 개발 사업 붐을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줘서 1000%의 용적률까지 적용할 예정이다. 용적률 절반까지는 주거시설도 허용해 도심형 복합주거단지로 거듭날 가능성이 커졌다.
6월 15일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 개발 가이드라인 ‘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전자상가 일대 연계전략 마련’에 대한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는 용산 전자상가 일대를 AI·ICT 기반 신산업 혁신지역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일자리와 주거, 녹지공간이 어우러지는 융복합 도시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각오다. 인접한 용산 국제업무지구와도 연계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새롭게 변모할 용산전자상가와 국제업무지구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신산업 혁신·창업공간 구축 ▲열린 녹지네트워크 조성 ▲도심형 복합주거 공급을 위한 용적률 인센티브 제공 등을 마련했다. 미래 비전은 ‘AI·ICT 기반의 디지털+메타버스 신산업 혁신지, 용산 메타밸리’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 일대를 신산업 혁신·창업공간으로 구축한다. 표준산업 분류상 전자부품, 컴퓨터, 정보통신 등 신산업 용도를 연면적의 30%이상 의무도입한다. 구체적으로 ▲전자부품 ▲컴퓨터 ▲영상·음향 ▲통신장비 제조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정보통신 방송·서비스업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 콘텐츠업 등이다.
의무 기준을 초과하는 신산업 용도를 집어넣으면 추가 용적률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전자상가 일대 개발 시 도시계획시설 폐지에 따른 공공 기여를 부지 면적의 평균 27%에서 평균 18%로 완화, 공공기여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청파로 인근 건축물 높이는 100~120m로 관리하되 개방형 녹지를 확보하면기준 높이도 유연하게 완화해줄 방침이다.
용산전자상가에 녹지공간을 조성하고 국제업무지구 및 용산역과 도보 이동이 가능하도록 연결한다. 공개 공지와 건축물 저층부 입체녹지 조성 유도를 위한 용적률 인센티브도 만들었다. 전자상가 일대 건축물 간 보행통로를 연결하고 국제업무지구와 전자상가, 나진상가와 용산역도 보행로로 잇는다.
개발 땐 도심주택 공급을 위해 주거용 건축도 허용한다. 다만 원칙이 있다. 늘어난 용적률의 50% 이하만 가능하다. 주거시설 중 일정 부분은 중소형 평형 위주로 구성한다. 일정 부분은 창업지원주택 등으로 특별공급한다.
시나리오대로 일정이 돌아가면 용산 일대는 젊은 창업가 엔지니어가 야근을 불사하며 일을 한 뒤 걸어서 5분 만에 도착하는 집에서 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는 직주근접의 끝판왕으로 떠오른다. 공간 곳곳에는 멋진 디자인의 고층 건물이 수놓아질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조해온 혁신 디자인이나 친환경 기준 등도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해 이번 개발 사업에 적극 반영된다. 서울시 창의혁신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제로에너지빌딩(ZEB) 등 에너지 관련 친환경 기준을 준수할 경우 1000% 이상의 용적률 적용이 가능하게 된다. 법정 상한 용적률은 1500%이지만 실질적으로는 1000% 내외로 건축이 가능해진다.
녹지 면적 목표는 전체 면적의 50%이상으로 잡았다. 용산전자상가 부지에 들어설 건축물 저층부에 녹지를 조성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유수지 상부는 공원화할 계획이다.
용산전자상가 내 11개 상가는 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발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천편일률적인 ‘톱다운’형 설계는 배제하기로 했다. 각자의 개성이 사는 디자인으로 용산 가치를 올리겠다는 각오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과거 전기·전자 중심의 용산전자상가가 빛을 잃으면서 주변 지역이 침체 됐지만 용산정비창 개발계획, 용산공원 개방 등의 상황 변화로 성장 잠재력이 올라가고 있다. AI·ICT 기반의 신산업 거점지역으로 용산전자상가 일대가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제고하는 미래 혁신지역으로 거듭날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용산 개발을 축으로 낙후됐던 서울 곳곳에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 느껴진다”며 “강남과 여의도, 도심을 잇는 용산은 향후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 중 하나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일경제 부동산부 홍장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