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금액이 크고 상습적이면 ‘도박’이지 절대 친목성의 놀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스포츠를 하든지 재미의 요소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기를 많이 한다. 그저 재미의 한 요소”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차태현은 소속사를 통해 “해외에서 골프를 친 것은 아니고 국내에서 저희끼리 게임이라 생각하고 쳤던 것이고 돈은 그 당시 바로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또 “저희끼리 재미삼아 했던 행동이지만 그런 내용을 단체방에 올린 제 모습을 되돌아보니 너무나 부끄럽다”며 “많은 사랑을 받은 공인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차태현과 김준호는 방송 하차를 결정했고 ‘손실 금액’으로 보면 이들은 내기 골프 금액인 ‘200만원대’의 수백 배가 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에게는 ‘수억원짜리 골프 한 판’이 된 셈이다. 내기 골프가 ‘오락’이냐, ‘도박’이냐는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싱글 골퍼가 되기 위해서는 집 한 채는 팔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적인 테두리에서 보면 한국 골퍼의 절반 이상은 ‘상습 도박꾼’이 될 수도 있다.
우선 ‘도박’의 정의부터 알아보자. 형법 246조는 도박을 한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일시적인 오락 정도에 불과한 때에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를 뒀다.
운동경기도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놓고 ‘내기’를 했다면 도박죄로 처벌될 수 있다. 법원은 1타당 50만~100만원을 걸고 한 ‘내기 골프’가 도박죄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가 있다. 다만 도박죄가 성립하려면 ‘우연성’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내기를 빙자해 일부러 골프를 져주고 돈을 주는 경우에는 도박죄가 아니라 돈을 받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뇌물수수나 청탁금지법 위반이 문제될 소지가 있다. 내기 골프를 ‘오락’으로 판단했다가 ‘도박’으로 다시 정정한 경우도 있다. 2005년 서울남부지법의 이정렬 판사는 내기 골프를 상습적으로 한 혐의로 기소된 이 모 씨에 대해 이례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이 씨의 내기 금액이 8억원대에 달했지만, 이 판사는 “도박은 우연에 의해 결과가 좌우돼야 하는데, 운동경기인 골프는 경기자의 기량이 승패에 영향을 미치므로 도박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곧바로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골프는 경기자의 기량이 어느 경지에 올라 있어도 매 경기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는 게 불가능하다, 화투나 카지노와 달리 볼 이유가 없다”며 이 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골프에서 ‘내기’를 빼면 앙꼬 없는 찐빵같은 밍밍한 분위기가 될 수 있다. 보통 1타당 1000원짜리 내기를 하거나 각각 5만원씩 거둬 20만원을 만든 뒤 각 홀에서 승자가 1만원씩 갖고 파3홀 2곳을 정해 홀에 볼을 가깝게 붙이는 ‘니어핀’ 시상을 하는 이유다.
‘내기 골프’에 대해 오락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골프가 목적이고 돈은 자극제이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름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친선 축구 경기를 할 때 음료수 내기, 당구를 칠 때 자장면 값 내기 등은 보편적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내기 골프는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이 세기의 맞대결을 펼칠 때 둘은 ‘첫 홀 버디에 20만달러(약2억원)’ 내기를 하고 중간 중간 개인적인 내기를 덧붙여 흥미를 더욱 끌어올리기도 했다. 또 프로골퍼들도 대회를 앞두고 연습라운드를 할 때 ‘캐디피 내기’를 하기도 한다. 전투력을 끌어올리기에 ‘내기’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골프 여제’ 박인비도 남자 선수들과 내기를 하며 실력을 끌어올린 적이 있다. 2013년 박인비는 전지훈련동안 남자선수들과 ‘1타당 10달러’ 라운드를 하기도 했다. 물론 10번에 9번은 잃었다. 박인비는 당시 “대부분 돈을 잃었지만 레슨비를 냈다고 생각한다. 가끔 돈을 따게 되면 밥을 산다”고 웃었다. 고수의 코스 공략법, 다양한 쇼트게임을 직접 보고 경쟁하는 것이 ‘잃은 돈’의 가치보다 크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친구들과의 연습 때에도 1000원이나 2000원 내기를 즐긴다. 최근에는 골프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내기 골프’의 살벌함도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내기의 경제학’으로 본 ‘내기 1만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보통 1타당 1000원으로 내기를 할 경우 적게는 1만~2만원에서 많으면 10만원까지 잃기 때문에 ‘1만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주요 기업 임원들은 ‘1만원은 20만원의 가치’라고 여기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1만원이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만큼 순간적인 체감가치가 치솟는 것이다. 특히 상급자로 갈수록 ‘1만원의 가치’는 더욱 치솟았다.
정갑영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는 몇 년 전 매일경제신문을 통해 ‘기회비용과 효용이론을 적용한 내기 골프의 가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보통 1만원의 가치에 기회비용이 추가되고 주관적인 요소마저 가미돼 체감가치는 훨씬 커진다는 논리다. 기회비용으로 계산하면 ▲10시간(차에서 보내는 시간 포함) 정도 소요되는 시간적 가치와 ▲휴식을 포기한 대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때 골프 게임에서 1만원은 대략 5만~10만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막상 내기 게임을 하면 ▲경쟁 요소 ▲비교열위에 따른 자존심 상처 등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돼 1만원의 가치는 다시 높아진다. 정 교수는 “만약 5만원씩 내고 스킨스 게임을 했고 거기에서 1만원을 땄다고 가정한다면 20만원의 제로섬 게임에서 처음에는 5%를 가져오지만 전체 금액이 적어질수록 1만원의 체감 가치는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때로는 ‘내기 골프’를 통해 ‘성향 분석’도 가능하다. 골프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이 즐기는데 이들은 마이어 프리드먼의 성격 구분상 ‘타입A’ 특성을 지닌다. 대부분 최고경영자(CEO)에 해당하는 타입A는 다혈질이면서 공격적이고 활동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 타입A 성격은 경쟁에서 지면 무척 자존심을 상해하면서 참지 못하는 성향을 보인다. 반대로 타입B의 유순한 성질을 타고난 골퍼들에게는 1만원 가치는 그저 재미 수단에 불과하다.
‘싱글 골퍼’로 통하는 이현세 화백은 ‘내기 골프 예찬론자’다. 그는 “골프도 인생도 똑같아. 밥과 같이 매번 기다려지고 설렌다. 기대가 있기에 골프 칠 맛도 나고 인생 살 맛도 나는 게 아닐까? 내기는 거기에 들어가는 양념”이라고 말한다. 맛있게 밥을 먹으려면 ‘양념’은 필수다. 내기를 하지 않는다면 동반자가 아무리 좋아도 라운드 자체가 영 맹맹한 것이 양념 없는 싱거운 음식을 먹은 것 같이 허전한 느낌이다. 이처럼 골프와 내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오락’과 ‘도박’을 구분하는 것. 이제 분명하다. ‘목적’이다. 돈을 따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거나 심지어 마약류를 투약해 수억원을 갈취하는 경우도 종종 뉴스를 통해 알려진다. 이런 경우는 ‘골프’라는 종목을 떠나 ‘사기’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주말 골퍼들은 라운드를 할 때 종종 내기를 하지만 ‘오락’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내기도 자존심 경쟁도 돈에 대한 욕심도 어떤 것이든 과하면 해가 된다. ‘오락과 도박’.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자신의 골프는 어떤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당신의 골프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골프를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목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