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사뭇 전설적인 인물이었는데 허름한 술자리에서 어떻게든 맛있는 안주를 조달해 오는 능력이 있었다. 군대 시절 산을 몇 개씩 타 넘으면서 닭 서리를 해오거나 하다못해 김장 김치라도 한 바가지 퍼오던 그였다. 그 버릇은 ‘도둑질’과 ‘서리’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곤 했는데, 어느 때는 문 닫은 시장통의 반찬가게에서 깻잎장아찌에 멸치볶음, 노각무침까지 아예 한정식 한 상을 차려도 될 것 같은 반찬들까지 가져오곤 했다. 도덕심이 슬슬 알코올에 희석될 만큼 다들 술에 취하면 일어나는 일이라 누가 날을 세워 타이른다는 생각도 못하고 낄낄거렸다. 그때 누군가 따끔하게 질러줬어야 하는데,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새벽녘까지 이어지던 술자리가 파할 무렵, 사라진 B가 한참만에야 돌아왔는데 어이없게도 푸른색 박스를 하나 들고 있었다. 내용물을 본 일행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 우유와 요구르트 따위가 한 가득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행까지 모두 공모자로 몰려 파출소로 연행되고 그간 없어진 우유 값까지 몽땅 덤터기로 물고-그래도 싸지-단단히 훈계를 들은 후 어찌어찌 사법 처리는 면할 수 있었다. 그는 영락없이 좋은 사람이었고 가진 걸 저보다 못한 이에게 몽땅 퍼주고도 허허 웃는 위인이라 그 못된 술버릇이 더욱 미워지고 말았다.
그와 언젠가 대천 바닷가로 놀러간 일이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그가 보이지 않았는데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술집 입구가 수런거렸고 제복 모자가 보였다. 나는 당연히 B가 또 사고를 쳤음을 직감했다.
“글쎄, 밖으로 나온 낙지 한 마리를 주웠을 뿐이야.”
혀 꼬부라진 B의 변명이었다. 사단은 이랬다.
그가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근처 어느 횟집 수조가 보이더란다. 영업은 끝나 횟집 안은 컴컴한데 수조 안이 환해서 잠깐 구경을 했다. 그런데 수조 밖으로 낙지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나오더라. 그래서 ‘주웠다’, 그런데 무슨 도둑놈 취급을 하느냐. 이런 요지였다. 듣고 있던 경찰이 한마디 했다.
“여보슈, 낙지가 자물통을 저 스스로 풀고 나온답니까. ”
얘기인즉슨, 안 그래도 관광지라 뜨내기 손을 탈까봐 수조에 자물쇠를 걸어뒀는데 B가 그걸 열고 낙지를 꺼냈다는 것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횟집 주인이 어이가 없어 퉁을 놓았다.
“기왕 자물쇠를 열었으면 광어라도 한 마디 꺼내갈 것이지 쩨쩨하게 낙지가 뭐야. ”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B가 아니었다.
“광어는 저 혼자 밖으로 기어 나오지 않잖아요. 낙지니까 나왔지. ”
경찰의 현장검증(?)까지 거친 후에야 자물쇠는 B가 푼 것이 아니고, 주인이 미처 잠그지 않았다는 결론이 났지만 낙지 한 마리도 훔친 건 훔친 것이었다. 경찰의 말마따나 이랬다.
“사법경찰리가 범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근거가 미약한 고로, B가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
B는 그렇게 실정법 위반으로 조서까지 쓰고 말았다. 옆에서 워드프로세서를 치던 경찰을 지켜봤던 또 다른 친구 A의 전언에 의하면 그의 기소장에는 이렇게 장황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B는 관광차 방문한 자로 주종 미상의 주류에 만취한 상태로 ○○○번지 소재 어패류 취급점 ○○횟집의 옥외 설치 어패류 보관용 수조의 낙지 1미(尾)를 우수(右手)를 이용해 절도한 바… B는 극구 낙지가 자의로 탈출한 것을 범의 배제 상태에서 습득했을 뿐이라고 진술하나…”
그의 이 묘한 기행이 압권을 이룬 건 제주도에서였다. 남쪽 제주도의 포구에서 술을 마시고 멀리 갈치잡이 낚싯배들이 켜놓은 집어등이 반짝이는 밤바다를 풍경삼아 다들 정취에 취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술잔 속으로 별이 우수수 쏟아졌다. 두런두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B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렇지 B! 술자리만 생기면 다들 B의 기행이 도질까봐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지만 이 먼 제주의 밤바다, 한갓진 포구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일행은 안심했다. 그때 B가 외쳤다.
“얘들아, 이리 와봐. ”
B는 얕은 바다의 검정색 돌무더기 사이에 서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자연산 오분자기야. ”
오분자기라. 그렇지, 제주도에는 그게 많다지. 일행은 ‘야, 제주도에 온 게 맞구나’ 뭐 이런 소리를 하며 화답했던 것 같다. B가 오분자기(?) 몇 개를 들고 술자리로 돌아왔고 술이 몇 순배 더 돌았다. 숟가락으로 즉석에서 문제의 오분자기 살을 파내어 회를 쳤다기보다 그냥 씹어 먹었다. 짭짤한 바다 향이 살 속에 거칠게 깃들어 있었다. 그럼 그렇지 B! 랜턴을 든 남정네 몇이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아니, 어디서 오셨수? 밤에 이리 떠들고 어장을 다 망쳐 놓으면 어쩝니까. 어허? 전복도 따 드시는구만. ”
응? 오분자기가 아니었어? 알고 보니 뿌려 놓은 전복 종패가 바위로 쓸려온 걸 B를 비롯한 우리들은 자연산 오분자기라고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말투는 거셌지만 순박한 분들이라 단단히 사과를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날 수 있었다. B의 변명이 가관이었다.
“그 공깃돌만 한 게 전복인 줄 어찌 알겠냐. 쩝, 작아도 맛은 좋더만. ”전복은 더디 자란다. 양식하려면 어민들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손바닥만큼 큰 것은 5년 이상 자란 것이다. 자금은 여러 사정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전복이 크도록 기다리기가 어렵다. 시중에 아주 큰 전복은 그래서 대부분 자연산이다. 물론 값도 어마어마해진다. 굳이 큰 전복을 찾을 필요는 없다. 크면 맛이 확실히 좋긴 하나 시중에 출시되는 1kg에 15마리 정도 크기라도 충분히 맛있다.
전복은 아시아에서 더욱 귀한 해물이다. 중국에서는 말린 전복은 금으로까지 불린다. 실제로 광둥 지방에서는 화폐를 대신하기도 했다. 전복의 차진 식감과 뛰어난 영양은 환자의 보양식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다. 여름 한 철, 더위에 지친 사람에게도 전복은 유용하다. 삼과 전복을 넣어 닭을 끓이면 최고의 보양식이다. 삼계탕은 알아도 그다지 비싸지도 않은 전복을 넣어 한 걸음 더 진화(?)한 보양탕은 잘 모른다. 이번 주말에 한번 도전해 보자. 마트에서도 싼값에 전복을 팔지만 기왕이면 수산시장에 가보자.
라포스톨 뀌베 알렉산드르 까베르네 소비뇽 Lapostolle Cuvee Alexandre Cabernet Sauvignon
실키한 고급 와인의 촉감과 깊은 여운
한국은 칠레 와인의 각축장이다. 세계의 주요 와인 수입국 중 유일하게 칠레산이 수입액 1위를 차지할 정도. 그중에서도 라포스톨의 뀌베 알렉산드르는 돋보인다. 특히 최근 유행인 알코올 도수를 비교적 낮게 유지하면서도 당도는 잘 느껴지지 않아 프랑스 고급 와인의 이미지를 뿜어낸다. 밸런스가 뛰어나며 타닌의 유연하고 산도가 알맞다. 모르고 마신 후 가격표를 보면 놀라게 되는 와인. 문의 레뱅드매일 02-2127-9877
[박찬일 /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