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여행가들을 위한 럭스멘의 제안. 이번 코스는 ‘짬자면(짬뽕+자장)’이다. 마음이라는 게 참 심술궂다. 바다 가면 산이 생각나고 산에 가면 확 트인 바다 생각이 간절해진다. 갈팡질팡 줏대 없는 마음을 단박에 잡아버리는 곳. 그곳이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다. 조합도 환상이다. 벌건 짬뽕만큼 홧홧하고 얼큰한 키나발루산(4095.2m). 그 산을 혀에 착착 감기는 자장처럼 남중국해가 감싸고 있다. 어떤가. 발음만으로도 군침이 질질 흐르지 않는가.
히말라야의 전초기지 키나발루산
이 산 맵다. 청양고추 듬뿍 넣은 짬뽕만큼이나 알싸하다. 높이 4095m 동남아 최고봉.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키나발루산이다. 이곳은 코타키나발루의 중심이다. 산의 영험한 기운이 섬 전체를 감싼다. 고산 등정에 미친 산악인 치고 이 산 모르면 간첩이다. 히말라야 8000m 고봉에 도전하는 전초기지로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한눈에 봐도 아찔하다. 이름이 품은 뜻도 살벌하다. 키나발루는 카다잔족 언어로 ‘죽은 자의 안식처’라는 의미다.
산을 오르는 루트는 크게 두 갈래다. 4000m 고봉의 속살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메실라우 게이트로 올라간 뒤 팀포혼 게이트로 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정상 등정까지 어떤 코스든 1박2일을 생각해야 한다. 보통 새벽 산행에 나선 뒤 7시간을 쉼 없이 걸으면 해발 3273m의 산장에 닿는다. 여기서 하룻밤 묵은 뒤 3시간 정도 더 걸어가야 정상이다. 기자단 산행팀도 이 코스로 향했다. 해발 1564m의 키나발루 공원 본부~팀포혼 게이트~라양라양 산장~라반라타 산장(1박)~사얏사얏 산장~키나발루 정상(로우봉)까지의 코스다.
키나발루산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건 이 산이 품은 자연유산 때문이다. 딴 곳에선 보기조차 힘든 희귀식물이 잡풀처럼 널려 있다. 압권은 세계적인 희귀식물 라플레시아다. 애칭은 이 산의 산세만큼이나 공포스런 ‘시체꽃’. 암갈색의 얼룩이 한눈에 봐도 섬뜩하다. 정상까지 안내하는 셰르파는 “큰 것은 무게만 10㎏이 넘는다”며 “이 곳에서 서식하는 난초만 1500여 종이다. 26종의 만병초와 40여 종의 떡갈나무도 서식한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식충식물 ‘네펜데스’는 등산로 주변에 흔하게 눈에 띈다. 등산객보다 식물학자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란다. 정상을 밟은 뒤에는 완주 인증서도 나온다. 역시 마음이라는 게 심술궂다. 정상에서조차 확 트인 바다가 그리우니 말이다.
마누칸섬, 하늘을 날다
키나발루 공원 / 마누칸 섬
키나발루산의 매운맛을 봤으니 이젠 새콤달콤한 자장 차례. 이번엔 바다를 품은 코타다. 코타키나발루라는 국가명도 실은 합성이다. 바람아래 고요한 땅이라는 코타와 키나발루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 이곳에 와서 산만 보고 가면 반쪽짜리 여행이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 사바주(州)의 주도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보르네오 섬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태풍이 발생하는 필리핀해 아래쪽이라 쓰나미 걱정이 없다. 글자 그대로 ‘바람아래 고요한 땅’이다. 해변엔 작은 섬들이 많다. 사피, 마누칸,마무틱,가야,슈르그까지 10~15분만 스피드 보트를 타고 나가면 된다.
기자가 찾은 곳은 마누칸 섬. 들어서는 순간 눈이 부신 섬이다. 보트 선착장에 내리면 폭 2m 남짓한 나무 데크가 100m 정도 뻗어 있다. 환상의 섬으로 향하는 놀라운 관문이다. 걷는 내내 바다 향을 듬뿍 머금은 훈풍이 몸을 간질인다.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데크의 리듬. 이 리듬을 따라 형형색색 열대어는 울긋불긋 산호 속을 절묘하게 미끄러져 간다. 예까지 와서 그냥갈 순 없다. 기자가 선택한 레저는 패러세일링. 보트에 달린 낙하산을 펼친 채 하늘을 나는 익스트림 레저다. 상상해 보시라. 짙은 코발트빛으로 채색된 남중국해 위를 패러슈트(낙하산)에 의지한 채 날아가는 그 느낌을…. 보트가 굉음을 내며 속도를 올리자 둥실 몸이 하늘로 솟구친다. 넋을 잃은 채 2분쯤 흘렀을까. 40노트(시속 약 56㎞)로 질주하던 보트가 심술궂게 속도를 늦췄다 올렸다 장난을 친다. 멈칫거릴 때마다 패러(낙하산)는 기우뚱 바다로 곤두박질칠 듯 내리꽂는다. 기어이 무릎 아래가 바닷속에 빠지고 나서야 보트는 다시 낙하산을 품고 속도를 낸다. 이런 절경 속이라면 물속에 푹 잠겨도 좋겠지.
말레이시아 국왕의 단골 휴양지 수트라하버
사실 이런 절묘한 휴양지에선 숙소를 잘 골라야 한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만큼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말레이시아 국왕과 국빈 VIP들이 단골로 찾는다는 수트라하버 리조트다. 이 리조트는 그 자체로 볼거리다. 사바주 북쪽 남중국해를 메운 인공의 땅에 지어져 있다. 규모도 매머드급이다. 전통과 현대의 매력이 짬자면처럼 어우러진 객실 수만 956개. 전통 분위기의 마젤란 수트라(객실 456개)와 모던한 감각의 퍼시픽 수트라(객실 500개)가 대칭을 이룬다. 닭 모양인 마누칸 섬 운영 관리도 수트라하버 리조트가 맡고 있다. 키나발루산의 정상아래 라반라타 산장도 직접 운영한다.
수트라하버 리조트의 으뜸은 낙조(落照)다. 이곳 석양은 마치 실크처럼 부드럽고 감미롭다. 알고 보면 ‘수트라’라는 명칭도 ‘비단’이라는 말레이어에서 따온 것이다. 골프장도 압권이다. 코스는 가든, 헤리티지, 레이크 각 9홀씩 27홀이다. 이 중 가든 코스 6번홀(파4·330m)은 남중국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그니처 홀. 물론 경치에 넋을 잃다 스코어 망치는 건 각오해야 한다. 짧은 미들 홀이지만 항상 해풍이 도사리고 있다. ‘두 얼굴의 홀’로 불리는 까닭이다. 동남아에선 보기 드물게 나이트 시설도 갖춰져 있어 밤 11시까지 편하게 라운딩 할 수 있다.
잊을 뻔 했다. 이곳을 방문할 때 대접을 제대로 받고 싶다면 꼭 노란색 티셔츠를 입을 것. 코타키나발루에서 노란색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왕족의 색이요, 왕족만 노란색 옷을 입는다. 그러니 근엄하게 하명만 하시라. 혹시 아는가. 원하는 모든 게 이뤄질지.
■ 코타키나발루 100배 즐기기
수트라하버 리조트 전용 골드카드를 이용하는 게 현명하다. 조식, 중식, 석식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레저까지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프리패스다. 중식당 실크 가든에서 10종 이상의 딤섬을 즐기는 런치 세트 와 카페볼레의 뷔페, 알프레스코의 피자 또는 스파게티 세트까지 다양하다. 테니스, 배드민턴, 당구장, 영화관 및 키디스 클럽,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 등 호텔 내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골프 라운드 특별 할인 혜택도 있다. 마누칸 섬 투어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문의 수트라하버 리조트 한국사무소 02-752-6262 취재 협조 수트라하버 리조트 한국사무소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 = 신익수 / 매일경제 여행전문 기자 soo@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