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괴로움을 선사하기도 하는 술. 특히 한국인들에게 있어 술은 아마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예전에는 술이라고 하면 보통 소주나 맥주, 더해 봐야 양주, 막걸리 정도를 떠올렸지만 언젠가부터 와인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즐거움은 주지만 웬만해서는 괴로움을 주지 않는 와인은 분위기를 돋우면서 술을 잘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부담이 없는 베스트 주류 아이템이다.
낯설기만 했던 와인이 생활 속의 친숙한 술이 되면서 몇 년 사이 수입되는 종류와 그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관련 정보들도 넘쳐나고 있다. 와인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와인을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즐기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떫고 무거운 느낌의 와인보다는 모스까또 다스띠 같은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와인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런 와인들은 주로 디저트 와인으로 음용되는데 가볍고 달콤하며 아로마가 풍성해 초보자들이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달콤한 와인을 어느 정도 마시다 보면 음료수 같은 맛이 아니라 깊은 와인 맛을 음미하고 싶은 때가 온다. 와인 초보에서 벗어나 와인을 진정으로 즐기고 싶다면 드라이 화이트 와인에 도전해보자.
풋풋하고 신선한 소비뇽 블랑…단일 품종 vs 블랜딩 와인
1. 1865 싱글빈야드 쇼비뇽 블랑 / 2. 소비뇽 블랑 전용 잔 / 3. 마스까롱 보르도 화이트
소비뇽 블랑은 전 세계에서 재배되고 있는 수만 가지의 포도 품종들 가운데 가장 사랑받고 있는 화이트 와인용 품종이다. 풋풋한 풀 향기가 나는 상큼하고 신선한 청포도로 재배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다. 보르도 지역에서는 세미용과 블랜딩하여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만들거나 반대로 달콤한 소테른 와인을 만드는데 자주 쓰인다. ‘골프 와인’으로 유명한 1865의 첫 화이트 와인인 1865 싱글빈야드 소비뇽 블랑은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 생산지인 레이다 밸리(Leyda Valley)에서 생산되는 소비뇽 블랑 100%로 만들어진다. 밝고 화사한 외관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와인은 투명한 병에 담긴 그린 옐로 컬러가 싱그럽고 풋풋한 소비뇽 블랑 특유의 미감을 연상케 한다.
와인을 열면 라임, 열대 과일 등의 감귤류에서 느낄 수 있는 상큼함과 미네랄 터치가 살짝 풍겨와 집중도 있고 섬세한 아로마를 형성한다. 신선한 과일향과 기분 좋은 산도가 잘 어우러져 우아한 볼륨감을 형성하며 긴 여운으로 마무리된다. 작년에 출시된 신상 와인으로 출시 직후 영국 와인 전문지 <디켄터(Decanter)>에서 ‘베스트 뉴 월드 화이트 와인(Best New World White Wine)’으로 선정되며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칠레 단일 포도원의 최고 품질 포도만을 선별해 사용하는 싱글빈야드 시스템으로 생산되며, 포도는 전량 손으로 수확하고 1헥타르당 수확량도 8톤으로 제한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
세계적인 소믈리에로 유명한 세르쥬 둡스(Serge Dubs)가 극찬을 아끼지 않는 마스까롱의 보르도 화이트는 세미용과 블랜딩하여 드라이하며 넘치는 생동감이 신선하다. 실버 뉘앙스를 띤 밝고 투명한 골드 컬러를 자랑하고, 기분 좋은 부케가 처음으로 느껴지며 사과, 복숭아, 자두 등의 풍부한 과일향과 오크 숙성에서 배가된 부드러운 바닐라향 등이 복합적인 아로마를 형성한다. 조화롭고 기분 좋게 입안을 감싸며 벨벳의 느낌으로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행운의 와인 혹은 흑기사 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마스까롱은 원래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국경이나 마을의 입구에 조각되어 있는 무서운 모습의 조형물을 뜻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위해 열리는 신성한 의식에 사용됐으며 부의 상징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과거 유리 세공자들의 숭고한 정신과 신화가 결합된 신비로운 조화가 오늘날 미려한 문양의 와인으로 재탄생해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풍부한 부케의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1. 미켈레 끼아를로 가비 레 마르네 / 2. 토마시 소아베 클라시코 2007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외에도 다양한 품종으로 드라이 화이트 와인들이 만들어진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미켈레 끼아를로의 화이트 와인인 미켈레 끼아를로 가비 레 마르네는 전통적으로 피에몬테 지방의 가비를 만들어 내는 품종인 코르테세 100% 와인이다. 하얀 네비올로 와인으로 불리우는 만큼 풍부한 과실의 느낌이 특징이며 포도 특유의 풍부한 부케와 와인의 깊이가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중 최고에 속한다. 감귤, 라임, 꽃 향기가 상쾌하게 펼쳐지며 전반적으로 신선한 아로마를 지니고 있다. 전체적인 느낌이 상큼하고 조화롭게 함유된 알코올은 와인의 우아함과 균형감을 극대화시킨다. 특별한 조경과 아트 파크로 이탈리아 와이너리의 상징적인 명소로 유명한 미켈레 끼아를로는 뛰어난 품질로 매년 디켄터나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토마시 소아베 클라시코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 중 하나인데 주로 가르가네가와 트레비아노 품종으로 만들어진다. 석회암 토양의 영향을 받아 깨끗하면서도 은은한 산도를 느낄 수 있어 매우 경쾌하고 발랄하다. 연한 달빛의 노란색을 띄며 잘 익은 과일향과 성숙한 꽃향기가 가득한 부드럽고 섬세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전체적으로 맛이 매우 깔끔하며, 아몬드향이 뒷맛에 남는다. 지금 당장 마시기에 좋은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지만 출시 후 2~3년 후 시음해도 꽃향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좋다. 토마시는 아마로네의 세계적인 거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지역의 와인으로 유명하다.
청포도의 왕으로 지칭되는 샤르도네는 타고난 풍부함과 섬세함으로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가득한 미네랄 정취와 신선한 풋사과, 파인애플의 향, 갓 구운 빵 냄새를 복합적으로 풍기는데 양조 방법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보여줘 크게 각광받는 품종이다.
샤르도네 특유의 풍미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고급 샤블리 와인인 알베르 비쇼 샤블리 프리미에크뤼 레 보꼬뱅을 추천한다. 짙은 녹색을 띈 황금색에 미네랄, 아로마 허브 등의 전형적인 과일 향이 신선함을 전한다. 입안에 감도는 풍부한 질감이 돋보이고 적당한 바디감과 균형 잡힌 구조감,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기분 좋게 어우러진다.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로부터 87~89점을 받은 바 있다. 투명하고 밝은 노란빛을 띠는 콘차이토로 그란 레세르바 샤르도네는 사과, 배 등의 신선한 과일향과 달콤하고 섬세한 바닐라향이 풍성하게 입안을 가득 채운다. 부드럽고 신선하며 우아한 맛이 일품이다. 와인 회사로는 처음으로 뉴욕 증시에 상장된 칠레 1위, 남미 1위의 와이너리인 콘차이토로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주요 와인 소비 국내 칠레 와인의 독보적인 1위 점유율을 가진 회사이기도 하다.
프라이브라더스 리저브 샤르도네도 한정된 생산량과 100% 수작업을 통해서 탄생된 고품질의 샤르도네 와인이다. 밝은 황금색을 띠며 배, 복숭아, 귤, 레몬 등의 상큼한 과일향과 부드럽고 길며 상쾌한 피니쉬가 특징이다.
와인이 말을 건네다 정휘웅 팀장과 루피노 키안티 끌라시꼬 리제르바 두깔레 오로
와인은 마시는 이에게 여러 가지 만족감을 제공해야 한다. 가장 짧게는 음식과 조화를 일으키는 훌륭한 품질에서 출발해 그날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는 의사소통의 가교 역할, 그리고 나아가서 와인이 내재하고 있는 훌륭한 이야기로 그 와인을 선사하는 이가 타인으로부터 주목을 받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위대한 와인들처럼 가격이 매우 비싸거나 상대편에게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제약을 극복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와인이 하나 있으니 바로 루피노 키안티 끌라시꼬 리제르바 두깔레 오로(Ruffino Chianti Classico Riserva DOCG Ducale Oro)가 바로 그 것이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역은 예로부터 와인 산지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래된 포도원들은 천 년 이상 된 곳도 있지만 전통을 고수하면서 오늘날까지 와인을 만들어 오고 있는 집안은 안티노리(Antinori),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디에볼레(Dievole) 같은 곳이 있다. 1800년대 들어 다시 이 중부 토스카나 지역의 와인 부흥을 이끈 곳으로는 폰테루톨리(Fonterutoli), 바론 리카졸리(BaroneRicasoli) 그리고 바로 이 루피노 (Ruffino1877~)가 있다. 19세기 말엽부터 신흥 포도원으로 떠오른 이 포도원들은 자신들의 와인을 생산하면서 점차로 오늘날 잘 알려진 키안티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루피노는 현재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많은 시장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는 키안티(Chianti) 지역 와인으로 역사성뿐만 아니라 와인의 품질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시장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바로 이 두깔레 오로가 등장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저명한 미국의 와인 전문지 <스펙테이터>가 뉴욕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선정할 정도로 유명한 와인이자 Wine & Spirits가 매년 실시하는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이탈리아 와인의 1위 타이틀을 가장 많이 거머쥔 와인이기도 하다. 뉴욕의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는 ‘뉴요커의 와인’으로 뉴요커의 일상을 대변한다. 그리고 루피노의 리제르바급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에 못하다고 하는 키안티의 품질을 단숨에 끌어올려 최근에는 오히려 저렴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에 비해 뛰어난 맛을 보여준다.
달리 그 영화에서 최고급 키안티를 쓴 것이 아닐 것이다. 사회 초년생인 앤 해서웨이가 점차 베테랑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바로 이 두깔레오로로 설명하려 했던 영화의 섬세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만약 오늘 저녁 현재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매혹적인 이가 있다면 이 와인 한 번 추천하고, 이에 얽힌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보면 어떨까? 와인이 더 맛있어지고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꽃피우지 않을까? 정휘웅 다이퀘스트 기술기획팀장, <와인장보기> 저자, 네이버 와인카페 부운영자.
[유동기 / 금양인터내셔날 마케팅 차장 dkyoo@keum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