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내기들이야 게살만 발라먹을 줄 알았지, 정작 맛있는 게국은 내다 버린다고 노파는 말했다. 아마도 첩첩산중이 아닌 바에는 기질과 정서가 가장 독특하달 충남 해안가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였다.
일행(전라도 어디의 상갓집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은 지쳐 있었고 대충 보배소주에 갯내 나는 안주라도 배에 넣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하던 길이었다. 누가 정보랄 것 없는 소문을 먼저 말했는지, 하여간 일행은 서산 땅에 가면 기막힌 술안주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길눈이라고는 다들 어벙해서 태안반도의 그 꼬불꼬불한 길을 돌고 돌아 기어이 당도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식당이랄 게 실망하고도 남았다. 처마는 함석으로 대충 잇대어 있을 만큼 허름했다. 그 덕에 단골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양철지붕에 장맛비 듣는 소리 경청하던 학창 시절이 생각나기는 했다. 그러나 안정기가 나간 20촉짜리 형광등 불빛이 끄덕끄덕하던 실내가 푸르딩딩하여 영 입맛 도는 식당의 정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길은 지쳤고, 그야말로 보배소주를 부어야 살 것 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행은 가게로 들어섰다.
식당은 얼마나 오래 되고, 사람의 손길을 잃어 버렸는지 그 당시 이미 철 지난 섹스심벌이었던 어떤 삼류영화배우의 핀업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기까지 했다. 실없는 한 녀석이 “쟤가 <애마부인> 몇 편의 주인공이었더라?”고 하여 다들 실실 웃었다.
뿐만 아니라 민정당 표시가 선명한 보자기며 등속이 가게 구석의 허름한 살림으로 처박혀 있었고 민정당 시절의 어떤 국회의원이 선물한 둥근 시계가 십 분쯤 틀린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닥은 울퉁불퉁해서 소주라도 취하면 화장실 걸음에 자빠지기 딱 알맞아 보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게국지를 먹었던 것이다.
노파는 오랜 찬물질에 툭툭 터진 손등으로 게국지를 끓여냈다. 게장 간장이 불에 닿아 익는 냄새, 그건 잊고 있던 어머니가 간장 달이는 냄새 같기도 했고, 땅콩캐러멜을 난로에 떨어드렸을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아니, 김치삼겹살이 돌판에서 마구 타는 냄새 같았다. 그러면서 일행은 하나같이 부엌을 쳐다보았는데, 알 수 없는 엄청난 식욕이 일어났다. 게국지가 익으면서 어둡고 푸른 식당 안이 일순 만장하는 식욕으로 벌떡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일제히 일행은 소주잔을 털어 넣었다. 반찬으로 나온 어리굴젓을 씹으며 게국지가 어서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게국지는 이 지역에서 나는 자그마한 능쟁이라는 게로 담근 게장의 부산물이다. 칠게라고도 하는, 흔해터진 갯가의 게로 이들은 게장을 담근다. 꽃게장은 푸짐하고 달지만 간장 맛을 더 중요시하는 이 동네에선 능쟁이게장이라야 간장에 맛이 쏙 밴다고들 한다. 그 게장에 묵은지를 넣고 끓여내는 게국지는 짭짤하고 입에 달았다.
프로 요리사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요리를 겨룰 때 조미료로 간장을 쓰면 반칙이다.’ 간장의 감칠맛이 지상 최고임을 뜻하는 말이다.
게국지에 소주가 꿀떡꿀떡 넘어갔다. 여기저기서 ‘어허!’ 하는 소리가 나왔고, 입천장이 벗겨지든지 말든지 다들 숟가락을 퍼 넣었다. 해장으로 시작한 소주병이 열을 받아 여럿 쓰러지자 노파는 사람 좋게 웃으며 얼굴에 주름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시방 그리 마시믄 낼 굴국으로 속 푸셔야겠수.”
김을 넣고 끓인 천하 해장굴국 맛은 못 보고 대충 일어섰지만 능쟁이게장의 그 야무진 맛이 아직도 혀에 아른거린다. 게만 건져먹고 간장을 버리면 소박맞는다. 뭐 이런 충청도 해안가의 토속 속담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찾아보는 수고는 못했다. 그럴 만 한 게 능쟁이게딱지는 씹으면 고소하기는 하되, 살이 적으니 먹잘 게 없다. 차라리 게가 단물을 내준 간장 맛이 더 탁월하리라.
서양에서는 게를 먹을 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살은 살대로, 간장은 또 그윽하게 김치 넣고 게국지를 끓이거나 아예 김치 담그는 데 양념으로 쓰는 한국에 비하면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웠던 나는 게만 보면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다. 워낙 게가 비싸서 살살 잘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때 비싼 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만만한 한국의 꽃게에 비하면 서양에서는 금값의 게다. 게를 삶아 살을 살살 발라내어 파스타를 버무리거나 샐러드에 올려내는 데 많이 쓴다. 올리브유에 게살을 볶아 향을 내고 내장과 껍질 삶은 물로 향을 더하면 멋진 파스타가 된다. 아니면 토마토소스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서 진한 맛을 내기도 한다.
이탈리아 요리사이니, 게는 파스타나 샐러드를 만들어야 제 맛이라고 해야 할 듯 한데 서산의 게국지 맛을 보았다면 그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 아니,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언젠가 먹었던 맛있는 게장에 비할 다른 음식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감칠맛을 뿜어내는 제철 게살에 역시 감칠맛의 황제 간장의 조합이라니! 이건 그야말로 ‘반칙’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