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진 출연 김수로, 한재석 송영창, 류승룡, 장영남 이지용, 류덕환, 이해영 김병옥, 이문수, 이상훈 개봉 9월 16일
가을엔 아련한 멜로 영화라 했던가. 낙엽 지는 가을 문턱, 눈물 한 방울 툭 떨구기 전에 한바탕 웃어보자.
영화배우 김수로의 말마따나 추석엔 코미디 영화가 딱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노래를 하면~, 아들, 손자, 며느리가 함께 불러요~”로 시작하는 1970년대 TV프로그램 '장수만세'의 로고송만큼이나 화기애애한 시기 아닌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 영화 한 편 보자고 극장 찾는 이가 얼마나 될진 모르겠으나 메뉴 선택을 고려하면 액션, 멜로, 스릴러, 공포보다 코미디가 제격이다. 급작스런 하드코어나 노출에 얼굴 붉힐 순 없지 않은가?
장진 감독의 신작 '퀴즈왕'은 그런 의미에서 초가을, 연휴를 겨냥한 기획 상품이다. 예술 앞에 웬 상품 운운이냐고? 그럼 이렇게 기술해보자. 관객의 티켓 예매율에 일희일비하는 영화 산업의 한계를 영민하게 돌파한 수작. '퀴즈왕'은 툭 던져놓고 슬금슬금 웃게 만드는 장 감독 특유의 유머가 한 소쿠리 가득 담긴 소품이다.
한밤중 강변북로에서 4중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한다. 동시에 한 여자를 들이받고 사이좋게 경찰서로 향하게 된 네 팀. 여기에 폭주족 단속에 걸린 배달의 기수 철주 일당이 합세하며 경찰서 안은 실로 오랜만에 북적인다. 피해 여성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소지품 속 USB를 열어보는 경찰. 잠금장치를 풀기 위해 연행된 이들까지 합심해 암호풀기에 나서는데, 보관된 파일을 열어보니 방송 이래 단 한 번도 우승자가 없었던 133억원짜리 퀴즈쇼의 마지막 문제 정답이 담겨있다.
마(魔)의 문제라 불리며 누구도 풀지 못한 마지막 문제의 답이 공개됐지만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각자 사연 충만한 네 팀의 133억원 프로젝트는 웃기도록 눈물겹다. 네 팀을 등장시켰으니 스토리 전개도 그만큼 다양하다. 이 부분에서 장 감독의 수완이 발휘된다. 첫째, '퀴즈왕'의 백미는 이른바 ‘멀티캐스팅’. 주인공이 한 명, 혹은 서너 명인 여타 영화와 달리 주요 캐릭터가 20명에 달한다. 특별출연한 주연급 배우까지 합하면 도합 33명이다. 이른바 장진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 전부가 출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그럼에도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제자리를 찾는 건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전개 덕이다.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내뱉는 유머 한마디에 주변이 정리된다. 왜 여자가 죽어야 했는지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네 팀이 꿈꾸는 금빛 미래에 포커싱한다.
둘째, 20명이나 되는 주인공의 비중을 골고루 분배한다. 고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쩌면 퀴즈쇼다. 133억원의 상금이 걸린 이벤트를 중심으로 각자의 인생이 방계에 위치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만 주연급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지나치다보니 이색적인 감흥이 그저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 잠깐씩 등장하는 사회 비판이나 슬쩍 꼬아 놓은 대사도 찰나의 순간이 아쉽기만 하다.
다행히 '퀴즈왕'은 단점보다 장점이 눈에 띄는 영화다. 눈에 익은 배우들의 특별출연 러시와 평균 서너 달은 걸리는 촬영기간을 14억원의 제작비로 한 달 열흘 만에 마무리한 신속성까지. 그런데 잠깐,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다면 과연 그 순간이 행복일까?
Mini Interview 영화감독 장진
첫 주주지분제 영화, 꿈을 이뤘다!
첫 시사회가 방금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나도 오늘 상영하는 첫 시사회 편집본은 아직 보지 못했다. 영화가 맘에 들었건 아니건 재미있게 써줄 것으로 믿는다(웃음).
그 동안 카메오로 등장하긴 했어도 이번엔 대놓고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했던데.
마 반장 역할인데, 정재영, 신하균, 차승원씨에게 제의했다 거절당해서 어쩔 수 없었다. 보통 내가 연기한 부분은 편집하면서 많이 들어내는데, 이번엔 흐름상 그럴 수가 없더라고.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다. 캐릭터 성격이나 이름 설정이 쉽지 않았겠다.
역할이 많아서 어려웠다. 그래서 배우 각자에게 이름을 지어오라고 했지(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배우가 지은 것이다.
이른바 장진 사단의 파티 같은 느낌인데.
의미가 남다르다. 10년 넘게 함께한 친구들과 작년 연말 모임에서 “길지 않은 짧은 촬영이니 우리 한번 해보자. 도와줘”라고 부탁했다. 예산이 넉넉지 않아 힘들었지만 다들 마음만은 신났었다. 사실 이렇게 개봉할 줄도 몰랐다. TV에서 방영하거나 10개관 정도에서 작게 상영될 줄 알았지.
배우와 스태프 모두 주주지분제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하던데. 한국에선 첫 시도 아닌가.
영화계가 어려운 게 사실인데 특히 제작부 상황이 그렇거든. 원래 2000만원 받는 배우가 저예산 영화라고 1000만원 만 받는 주먹구구식 구조도 싫었다. 그래서 1000만원은 돈으로 드리고 1000만원은 지분으로 드렸다. 덕분에 계약서 수도 없이 썼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