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부산에서 창업한 ‘모두싸인’은 종이문서로 오가던 계약서 대신 온라인상에서 계약할 수 있는 전자계약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1위 기업이다. 쉽게 말해 근로, 구매, 부동산,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계약서, 신청서, 동의서, 확인서를 스마트폰이나 PC, 태블릿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모두싸인을 거쳐 간 계약서만 3900만 장 이상. 28만 개 이상의 기업과 기관을 비롯해 840만 명 이상의 이용자가 모두싸인의 전자계약 서비스를 이용했다. 평일엔 서울, 주말엔 부산집을 오가며 고군분투 중인 이영준 대표는 “최근 공공용 전자서명 서비스를 대상으로 오픈클라우드플랫폼 얼라이언스로부터 ‘K-PaaS’ 호환성 인증을 취득했다”며 “이로써 공공기관의 기존 시스템과 전자 서명 플랫폼을 원활하게 호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아직은 온라인상에서의 계약체결에 보안 등 심리적 장벽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까지 단 한건의 보안 관련 사고가 없었던 건 철저한 보안 인증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대 법대를 졸업했다. 2015년 변호사 검색서비스 ‘인투로’를 개발했다. 소액 분쟁의 대부분이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거나 종이계약서를 분실해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해 모두싸인을 창업했다. 현재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서비스분과 구비서류제로화TF 전문 위원이다.
Q 온라인 서비스가 일상이 됐습니다. 모두싸인 입장에선 사업하기 한결 좋은 세상이 됐는데요.
A 맞습니다.(웃음) 그 동안 계약은 출력한 종이에 인감이나 사인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잖아요. 번거로운 일들이 많았죠. 서로 만나야 하고 나중에 계약서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런데 계약이라는 건 내가 어떤 내용에 동의했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으면 법적 효력이 생기거든요. 예를 들어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계약에 관련된 내용을 얘기하고 당사자가 합의했다는 사실이 녹음돼 있으면 계약서와 동일한 효력이 생깁니다. 저희는 이러한 기록들을 전자적으로 바꾸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계약 과정에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시간이나 비용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Q 편리한 건 알지만 계약서가 아닌 전자기기에 서명하는 게 낯선 분들도 많을 텐데.
A 한 번도 안 해 본 분들은 그런 불안감이나 거부감이 분명히 있어요. 종이나 인감도장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심리적 장벽이죠. 그런데 이런 장벽을 넘으려면 직접 써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비대면으로 일해야하는 상황이 늘면서 어쩔 수 없이 전자계약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늘었어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Q 계약과 관련된 법령과 규제가 아직은 존재하는데요.
A 꽤 많은 부분이 전자계약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에만 있는 제도가 인감증명이에요. 올 1월에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우선 온라인 발급이 가능케 하고 점차 폐지해나가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Q 인감도장이 없어도 계약은 유효하다?
A 인감도장도 결국 본인을 확인하고 인증하는 수단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온라인으로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인증수단이 있어요. 인감도장이야말로 모양을 똑같이 파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모두싸인의 서비스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A 계약에 필요한 문서를 모두싸인에 올리면 전자계약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관련 파일이 없으면 저희가 제공하는 서식에 기입하면 되는데요. 작성한 후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처럼 상대방이 서명하기 적합한 방식을 지정할 수 있어요. 계약서에 상대방이 입력할 서명, 내용, 작성란의 위치를 지정하고 발송하면 서명 요청을 받은 상대방은 휴대전화나 태블릿, PC 가리지 않고 어떤 기기에서든 서명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Q 서명 요청은 어떤 방식으로.
A 아, 그 부분이 중요한데, 사인할 수 있는 링크가 전송됩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으로 계약서 링크를 전송받은 상대방은 회원가입 없이 본인 확인을 거친 후 사인할 수 있어요. 그럼 계약이 마무리됩니다.
Q 계약서는 무엇보다 관리가 중요한데.
A 전자계약이 완료된 계약서는 모두싸인의 클라우드에 보관됩니다. 물론 계약 당사자들에겐 이메일 등을 통해 원본을 전송하죠. 기업 입장에선 근로계약이나 업무 관련 계약서 관리가 중요한데, 언제, 누구와 어떤 계약을 체결했는지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Q 모두싸인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라면.
A 계약은 해야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변호사들과 함께 이런 양식들을 제공해 쉽게 작성할 수 있게끔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또 계약을 체결한 후 누구에게 언제까지 잔금을 얼마나 입금해야 하는, 이런 일들에 대해 저희가 휴대전화로 알림문자를 넣어드려요.
Q 전자계약 분야 국내 1위라고 하셨는데, 국내 시장 규모가 궁금한데요.
A 아직은 해외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미국이 65조원, 일본은 9조원 규모라고 하는데, 한국은 잠재적인 시장규모가 약 3조원 규모죠.
Q 도장과 팩스가 일상이라는 일본이 앞서가는 시장이군요.
A 계약이 전자화되는 건 당연한 흐름이에요. 고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이죠. 이 분야의 미국 1위 기업은 나스닥에 상장된 도큐사인인데, 지난해 매출이 3조7000억원이나 됩니다. 한때 시가총액이 83조원이나 됐어요. 그만큼 검증된 비즈니스죠. 일본은 사실 한국보다 약한 시장이었는데, 팬데믹 이후에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클라우드사인이란 기업의 시가총액이 한때 3조원까지 평가받기도 했어요. 일본은 공공기관에서도 이미 전자계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공기관은 아직 걸음마 단계죠.
Q 전자계약이 가장 많이 진행되는 분야라면.
A 저희 매출을 감안한다면 신청서나 동의서, 확인서가 가장 큰 영역이에요. 지난 총선에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당원을 모집한 신생 정당이 있었는데, 모두싸인으로 당원 가입을 진행했습니다. 직접 대면하거나 등기우편으로 서류를 보냈다면 시간이나 비용이 한없이 소요됐을 텐데, 전자계약을 통해 짧은 시간에 당원 수 10만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물론 저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Q 한국프롭테크포럼 이사로 활동 중인데.
A 저희가 꼭 바꿔야 할 시장은 부동산 시장이에요. 매매, 전세, 월세 등 부동산 계약은 일생에 한번 이상 진행되거든요. 그런데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느린 편이죠. 전자계약이 활성화된다면 프롭테크(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 분야의 혁신도 도울 수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직은 심리적인 거부감이 높은 분야라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Q 사실 계약에 있어서 심리적인 거부감은 보안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데요.
A 그렇죠.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인데, 약 9년간 모두싸인 서비스를 운영하며 보안 관련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국제표준화기구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에서 제정한 ISO27001 보안 인증,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ISMS-P 보안인증도 획득했습니다.
Q 최근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A 올 4월에 177억원을 받았고, 팬데믹 시점까지 합하면 총 321억원을 투자받았습니다.
Q 투자 혹한기에 유치에 성공한 비결이라면.
A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진행되면서 수혜가 있었는데, 그건 관련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고, 국내 전자계약 분야 1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게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경쟁사들의 규모가 저희보다 크기 때문에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었는데 수성하고 있거든요. 또 하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고객들의 신뢰를 얻었고 고성장할 수 있는 입지도 탄탄하게 다졌다는 인정과 평가겠지요. 공공시장 진출을 앞두고 철저히 준비한 것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Q 해외진출이 기대되는데요.
A 현재 공격적으로 나서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국내에서 모두싸인 서비스가 많이 쓰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 멀었거든요. 근로자 1000명 이상의 국내 기업 중 30%가 모두싸인의 유료고객인데, 아직도 법무팀이나 구매팀, 영업팀에선 종이 계약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자계약은 일부 용도로만 쓰이는 거죠. 기업 내에서 체결되는 전체 계약의 양을 100으로 본다면 아직 0.1 정도의 비중이에요. 그 비중을 70, 80으로 올려놓는 게 더 시급합니다. 아, 물론 글로벌 진출에 대한 계획은 있습니다. 올해도 여러번 일본과 베트남을 다녀왔는데, 관련 법령 등을 검토 중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A 계약서를 작성하고 내용을 협의, 검토, 승인한 후 체결, 관리하는 모든 절차에 AI를 접목하려고 합니다. 계약서의 데이터를 추출하고 자동화해 활용성을 높이는 게 다음 스탭이죠. 자체적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서 프롭테크도 말씀드렸지만 궁극적으로 리걸테크(Legal-tech) 서비스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Q 스타트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A 제가 항상 하는 얘기가 있는데, 자기 절제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창업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이후 상황과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장기레이스에선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대한 유혹이 굉장히 많거든요. 고객에게, 구성원에게, 관련 인사들에게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스스로 절제할 수 있어야 해요.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