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 자리한 글로우서울은 도시재생에서 출발한 공간솔루션 기업이다. 특정 지역에 어울리는 콘텐츠(스토리)를 기획하고 개발해 새로운 상권을 만든다. 2015년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글로우키친’을 내며 영글었던 꿈은 이후 디저트 카페 ‘청수당’, 일식당 ‘송암여관’, 샤부샤부 식당 ‘온천집’ 등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사업이 됐다. 익선동의 좁은 골목길에 입점시킨 자체 기획 브랜드들은 SNS의 인증샷 명소로 떠오르며 서울의 새로운 상권이 됐다. 이러한 시도는 대전 소제동과 서울 창신동으로 이어졌고, 다시 한 번 보기 좋게 성공한다.
현재 글로우서울은 내로라하는 대기업, 지자체들과 협업을 이어가며 다재다능한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유정수 글로우서울 대표는 “현재 놀이동산과 생태공원, 관광단지, 호텔, 리조트, 공유오피스 등의 공간기획을 진행하고 있다”며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오프라인 공간들이 사업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엔 주택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며 ‘아파트가 아니어도 사람은 산다’라는 슬로건을 소개했다.
새로운 공간기획, 미션 클리어
▶아침 일찍 전주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전주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방의 읍이나 면 단위 지역은 소멸이란 표현을 쓸 만큼 위기인 곳들이 많거든요. 도시재생을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들이 많습니다. 전주, 목포, 군산 등지에서 관심이 많아요. 전주의 낙후된 지역에 저희가 제일 잘하는 리테일을 통한 상권 조성을 하고 있어요. 관에서 마을 조성 사업을 하면 벽화마을이나 창작센터를 중앙에 떠억하니 만들어놓는데, 베드타운이 아니라 소비가 일어나는 환경이 돼야 기본적인 도시의 구색이 갖춰지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유동인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관심사는 전주 프로젝트인가요.
▷아뇨. 그건 중요도로 치면 한 14번째쯤 될 것 같은데요.(웃음)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공간기획이 저희의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에 다양한 공간들을 기획하고 있어요. 현재 놀이동산과 생태공원, 특정 관광단지, 호텔&리조트, 공유오피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오프라인 공간들이 모두 저희 사업 대상이죠.
▶사업의 첫 시작이었던 익선동과 비교하면 규모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원래 꿈은 컸기 때문에.(웃음) 뭐랄까, 미션을 깨나가듯 저희에게 새로운 미션이 주어질 때마다 잘해나가니 더 좋은 일들이 들어오더군요. 롯데와 의왕 프리미엄아울렛을 잘 끝내고 나니 다른 쇼핑몰에서도 많은 제안이 들어와서 현재 같이 작업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한화건설과 복합개발 업무협약을 맺었는데, 한화건설에서 주관하는 서울역 북부 역세권이나 대전 역세권, 잠실 스포츠 마이스 복합공간 등의 조성 사업에도 참여하는 건가요.
▷그렇죠. 아직은 저희가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게 리테일 쪽이다 보니 저희가 갖고 있는 F&B 브랜드 등으로 공간개발을 진행하기도 하고, 또 한화건설에서 저희의 공간기획을 좀 더 대규모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로우서울의 무엇을 보고 기업들이 찾는 겁니까.
▷건축사가 공간기획까지 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봐요. 설계자가 고객의 요청사항을 이해해서 디테일한 면까지 건축으로 풀기는 사실 굉장히 어렵거든요. 저희는 예를 들어 롯데의 아웃렛을 기획할 때 찾아오는 고객들의 모든 동선을 파사드 하나까지 전부 단면도에 그려 넣었어요. 쇼핑몰을 돌아다닌다는 개념이 바로 그 쇼핑몰의 연속성이잖아요. 평면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 종로의 익선동에 카페를 낼 때는 그냥 아지트 개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언제 사업이 된 겁니까.
▷2015년이었는데, 그 당시 익선동엔 저희 글로우키친이랑 익선다다에서 만든 익동다방이 전부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겐 굉장히 좋은 부업이었죠. 그런데 저희가 만든 공간을 보고 의뢰를 하거나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또 공간에 대해 왜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얘기했을 때 되게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았죠. 그걸 보고 좀 더 크게 확대해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 영역으로 가져가면 미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창업 멤버들이 지금도 함께 있습니까.
▷거의 다 있어요. 심지어 매장에서 서빙 아르바이트하던 직원도 지금 과장님, 차장님이 됐어요. 이분들이 회사의 미래에 대해 뭔가 토론하고 큰 기대를 갖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에 대한 기대도 있고. 제가 좀 더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글로우서울은 상권이 없는 곳에 진출해 상권을 만들어왔습니다. 그건 리스크가 큰 결정인데, 프로젝트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대부분 아니고요. 가장 큰 단위의 결정은 결국 제가 내리는 거죠.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러니까 일이 들어오면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합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당한 의견과 합리적인 결정이 나왔을 때 진행하죠. 물론 구성원들의 의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가장 집중하는 건 각자 조사해오는 리서치 자료예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서로 의견 내고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틀렸을 땐 엄청나게 깨지기도 합니다. 또 저는 팔이 안으로 굽는,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만 기대 설명하는 걸 지양합니다. 옳은 선택을 하려면 최대한 객관적이어야죠. 그래서 결정은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늘 최후에 합니다.
▶도대체 매력적인 공간은 어떤 공간입니까.
▷저희가 작업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간은 스토리가 있는 공간입니다. 공간은 건축물로만 이루어져있는 게 아니고, 그 공간에 콘텐츠가 더해져야만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름답고 특별한 건물들은 대부분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많거든요. 그건 설계 때부터 목적이 정해져있기 때문이에요. 사용 목적이 정해져있으면 건축사도 훨씬 과감하게 작업할 수 있어요. 콘텐츠에 딱 맞는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죠. 반드시 콘텐츠가 미리 정해져있어야만 특별한 디자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콘텐츠가 없는 채로 건물이 지어지다 보니 개성 없는 사각형박스, 저희는 화이트박스라고 하는데, 다 똑같은 박스가 나오는 거죠. 마을이나 거리도 그렇습니다. 저희가 작업한 대전의 소제동 프로젝트는 그러한 콘텐츠가 뒷받침된 경우예요. 매력적인 끌림이 있는 거리가 됐어요.
팬데믹 이후 높아진 공간의 만족도 기준
▶현재 대기업들과의 작업이 활발한데, 그들이 원하는 공간은 어떤 곳입니까.
▷역사적인 사실이 바탕이 돼야 한다면 새로운 쇼핑몰이 될 수 없겠지요. 그래서 그 부분의 콘텐츠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걸 창조합니다.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서 창의롭게 진행하는 거죠. 현재 진행 중인 신축 프로젝트도 굉장히 특이한데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유지하면서 뭔가를 만들어야 할 땐 퀴즈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이 있고, 빈 땅에 마음대로 올려도 될 때는 훨씬 더 재미있는 상상들이 나오기도 하고,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제약은 없어요.
▶팬데믹 이전과 이후, 달라진 점이라면.
▷우선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달라졌잖아요. 공간적으로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니즈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건 거의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미크론 때 이미 해방됐고, 이후로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요. 실내에서 마스크만 쓰는 정도.
▶공간에 대한 기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던데.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만족도의 기준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어요.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깨달은 후 집에서 하는 무언가를 대체해 굳이 밖에 나가야 하나 싶은 거죠. 예전엔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면 이젠 밖에 나가는 시간이 집에서 뒹구는 것보다 얼마나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많은 부분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집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해놓고 OTT 보는 걸 이겨내야 하는 거죠. 집 밖에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곳인지 따져보는 겁니다.
▶수많은 곳에서 도시재생을 진행했는데, 서울의 도시재생은 어떻습니까.
▷저희가 지금 이태원 경리단길을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1, 2호 매장을 냈고 추가적으로 개장할 계획이에요. 서울은 지방과 다릅니다. 지방은 신·구시가지가 있어요. 두 곳이 행정구역만 같은 뿐 완전 다른 지역이에요. 보통 A가 너무 낡아서 신도시를 만들고 싶으면 시청이나 도청 소재지를 옮기고 아파트 단지 허가를 내줘서 쭉 올립니다. 그럼 B라는 신도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서울은 그럴 땅이 없어요.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면 낡고 버려진 공간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거죠. 경리단길만 해도 여전히 을씨년스럽고 공실이 많은데, 서울의 정중앙 지역이 이렇게 버려져있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렇다고 디벨로퍼들이 지금껏 하던 대로 땅 작업하고 밀어버린 후 20~30층 되는 오피스나 아파트를 짓는다면, 전 그런 도시에선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럼 서울이 벤치마킹 할 만한 도시라면.
▷없어요. 살고 있는 사람을 내쫓을 수도 없고 들어오는 사람을 막을 수도 없어요. 결국 이 시스템 안에서 변화와 발전을 어떻게 유도할지가 중요한 것이죠.
▶변화와 발전이라.
▷아파트를 만드는 방식도 사실 바뀌어야 합니다. 또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형태와 상업적인 시설도 돌아봐야죠. 역사가 있는 골목이나 길 등이 보존될 수 있어야 합니다. 땅이 없기 때문에 지역을 최대한 다시 활용해야 합니다.
매년 두 배 성장, 4년 후 상장 목표
▶글로우서울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올 매출은 약 300억원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년 대비 두 배 정도 됩니다.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상장하는 첫 사례가 되고 싶어요. 4년 후 상장이 목표입니다.
▶주식 시장에 상장한다는 건 사업 규모나 분야를 확장하겠다는 선언인데요.
▷저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저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종적으론 주거 시장에 진출하려 하는데, 표제는 ‘아파트가 아니어도 사람은 산다’로 정했어요. 전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 사는데 왜 그런 걸까요. 특별한 관리서비스가 포함된 단독주택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겁니까.
▷올해는 호텔과 리조트, 오피스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이후에 주택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주택을 만드는 게 법률상으로 굉장히 어려워요. 주택 부지를 소유하는 것부터 그렇습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들이죠. 하지만 저희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계세요. 내년쯤에 시작하려고 합니다.
유정수 글로우서울 대표
연세대 천문우주학과를 졸업했다. IT 스타트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익선동에 차린 카페가 주목받은 후 글로우서울을 설립했다. 익선동에 이어 대전 소제동, 서울 창신동에 새로운 상권을 만들며 현재 롯데, 신세계 등 유통대기업, 지자체들과 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 개장한 경기도 의왕시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의 ‘글라스빌’이 글로우서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