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월암 김항복 선생이 자본금 1000만원으로 창업한 ㈜독립문은 국내 최장수 의류 기업이다. 대성섬유공업사로 창업한 이후 1960년대 평안섬유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1970년대엔 1300만달러의 수출액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1971년 캐주얼 브랜드 ‘PAT’를 발표한 후엔 대리점 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며 해외 시장에 진출해 사세를 넓혔다. 2005년 이탈리아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 인수와 매각(2012년)을 통해 큰 수익을 남기기도 했던 독립문은 그러나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사명을 평안L&C에서 독립문으로 변경한 2018년과 지난해 초엔 매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독립문 오너 일가인 김형숙 사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하자 업계는 “오너가의 책임경영”이라며 환영했다. 지난해 말 ‘독립문’의 현대화 작업을 진행한 김 사장은 오는 8월 가로수길에 팝업스토어를 열며 새로운 독립문을 선언할 계획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오프로드’와 메리야스 ‘독립소곧’의 발표도 예정돼 있다. 김형숙 사장은 “안정화와 성장이 우선”이라며 “창립 75주년이 아니라 100년이 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는 서울 성수동 본사에서 진행됐다. 오렌지색으로 마감된 사무실 분위기가 화사했다.
김형숙 독립문 사장
브랜드는 나이 들지 않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사실 지난 2년간 다들 힘들었잖아요. 저희도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중장년 고객층이 두터운데 밖으로 안 나오시는 거예요. 작년부터 안정화를 위한 준비를 진행했고, 올해 그 결과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팬데믹 이전으로 매출 회귀 조짐이 보이고 있어요. 또 국내에서 현존하는 브랜드 중 가장 오래된 PAT에 공을 들였어요. 회사가 오래갈 순 있지만 브랜드가 오래가는 건 국내에선 사실 쉽지 않거든요. 젊은 고객군을 유치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경영 복귀 이후 첫걸음이었군요.
▷복귀하고 보니 팬데믹으로 더 힘들었던 점도 있었지만 품질과 디자인 면에서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어요. 독립문의 헤리티지는 늘 ‘퀄리티 퍼스트’였거든요. 고객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다시 찾는 브랜드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우선 품질과 디자인 관리에 나섰습니다.
▶사명인 ‘독립문’은 사실 MZ세대에겐 생소하기도 합니다.
▷고객은 세대가 있을 수 있지만 브랜드는 나이가 있어선 안 됩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젊은 성향을 찾는 분, 좀 더 고품질을 원하는 분, 이런 분들을 위한 라인을 강화했습니다. 올 SS 시즌에 제품을 출시했는데, 여름이 되면서 반응이 꽤 좋아요. 특히 저희 오프라인 매장 파트너님들이 “확 바뀌었다”라는 말씀들을 하세요.
▶전국의 PAT 매장은 유통가에서도 회자되는 경쟁력입니다.
▷PAT의 경쟁력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에서 시작됩니다. 장수하는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선 충성도 높은 대리점 파트너님들과의 관계 유지가 최우선이에요. 회사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장사꾼처럼 대응했다면 지금의 경쟁력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독립문 75년의 역사에 수월했던 해는 없었어요. 지금도 MZ세대 쇼핑 패턴의 변화, 수많은 경쟁 브랜드,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악화, 물가 상승까지 많은 난제들이 있습니다. PAT도 안주하지 않고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원가 절감에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PAT는 20년 전 제품도 수선하는 브랜드
▶오래된 제품을 가져오면 직접 수선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저희 고객들 중에는 20년 전에 산 점퍼를 가져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파트너님들이 받아서 본사에 보내주시면 정말 열의를 다해 수선해드립니다. 사실 그 시절 원단이나 색감을 맞추는 게 쉽지 않거든요.
▶해외 브랜드들의 의류 수선 서비스가 떠오르는데요.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것보다 저희가 훨씬 오래됐죠. 저희는 늘 그래왔거든요. CS(Customer Service·고객 서비스)팀이 힘들어 할 순 있지만 오랫동안 저희를 찾아주신 분들이 만족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브랜드의 성장세를 알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매장의 확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이 얼마나 오느냐가 영업 관점에서 큰 기준이죠. PAT는 현재 9월 개장을 목표로 15개 핵심 가두 매장과 계약을 완료했어요. 12월까지 약 5개의 추가 계약도 예정돼 있습니다. 목표를 훨씬 초과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PAT의 어떤 점이 달라진 겁니까.
▷올해 배우 이시영 씨를 브랜드 모델로 기용하면서 성인캐주얼에 한정됐던 브랜드 이미지를 좀 더 젊고 트렌디한 브랜드로 확장하는 데 주력했어요. PAT만의 강점인 고품질을 더 강화해 제품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하지 않던 새로운 채널과의 마케팅도 진행했습니다. 기존 고객은 물론 신규, 잠재 고객까지 겨냥하고 있습니다.
▶독립문에서 전개하는 엘르골프도 주목받고 있는데요.
▷골프 춘추전국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니아들이 늘었어요. 아웃도어 열풍과 비교하면 지금이 10배는 더 큰 시장인 것 같습니다. MZ세대가 선호할 만한 디자인으로 제품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제품뿐만 아니라 홍보 채널도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또 최정상급 투어선수인 임희정, 김태훈 프로를 후원하고 투어대회 협찬, PPL 등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독립문은 오프라인 매장이 강점인데요. 반면 현재는 온라인 시대이기도 합니다.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분야죠. 오프라인에서 상품의 컬러나 사이즈를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온라인에서 상품을 보고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크로스 고객이 점점 늘고 있어요. 대부분 모바일을 이용하는 고객들이죠. 저희도 2019년부터 온라인팀을 출범시켰어요. 자사몰과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습니다. 매년 20% 이상의 온라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해 온라인 매출(자사몰 포함)이 105억원, 올해는 162억원쯤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올해는 저희 자사몰과 외부 플랫폼의 매출 비율을 9:1에서 8:2로 조정하는 게 또 하나의 목표죠. 그렇게 2025년까지 300억원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새롭게 론칭한 ‘오프로드’, 전 세계 겨냥
▶올 초 아웃도어 브랜드 ‘오프로드’를 7년 만에 재론칭했습니다. 오랜만의 브랜드 론칭이자 투자이기도 한데요.
▷오프로드는 도심과 자연을 넘나드는 컨템퍼러리 아웃도어예요. 아웃도어의 경계를 허물고 더 세련된 이미지로 시장에 진입한다는 전략이죠. 올 3월에 컨벤션을 진행했는데, 백화점 바이들과 패션 관계자들에게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8월에 출시하는데, 벌써부터 내년 SS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쟁모델을 꼽으신다면.
▷경쟁까진 아닌데, 우선 파타고니아나 아크테릭스를 바라보고 있어요. 한국이 수입하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참 많은데, 우리 브랜드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해외에서 좀 더 좋은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해외진출 계획이 있는 겁니까.
▷아직 국내 시장 출시 전(인터뷰는 7월 중순에 진행됐다)이라 내수 시장 상황을 보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울 겁니다. 오프로드 외에 PAT도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현재 중국에선 라이선스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다른 국가도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오프로드가 독립문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군요.
▷저희가 2005년에 이탈리아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를 인수했었어요. 2012년에 네파를 사모펀드에 매각한 후 또 다른 캐시카우 브랜드에 대한 투자가 더뎠습니다. 이제 그 타이밍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창립 100주년을 향한 걸음 여전해
▶올해 독립문은 창립 75주년을 맞았습니다. 국내 최장수 의류 기업인데, 그동안 두 번의 매각논란 등 흥망성쇠가 있었습니다.
▷두 번의 매각 이슈가 있었지요.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패션 기업을 하는 것, 앞으로의 발전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매각 결정을 할 수 있느냐, 우리가 이렇게 매각을 해도 되느냐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요. 애국정신으로 창업한 회사인데 매각 후 그러한 헤리티지가 없어질 것이란 우려도 했고. 결론적으로 우리가 100년 회사를 만들자, 100년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100년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된 후 다음 일을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지분 관계를 들어 ‘아직 매각 이슈가 사라지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지금 100% 말씀드릴 순 없지만 어차피 가족 지분이기 때문에 가족의 결정 사항이에요. 지금으로선 운영으로 매듭지은 상태라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어느 기업이나 중요한 건 실적 반등인데요.
▷지난해는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패션 기업들이 정말 어려운 한 해였어요. 독립문은 지난해 약 1300억원의 판매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올 상반기는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확연한 실적 개선이 예상됩니다. 고객 수도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상반기의 분위기를 하반기에도 이어간다면 올 연말까지 1600억원의 매출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8월에 신사동 가로수길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독립문의 브랜드화를 공개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달라진 겁니까.
▷우선 현대화에 집중했어요. 독립문 로고와 포인트 컬러 등을 재해석한 공간 연출, 헤리티지 의류, 독립문 로고 굿즈 등 다양한 아이템을 개발해 MZ세대도 트렌디하게 즐길 수 있는 헤리티지 콘텐츠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독립문의 상징인 한 메리야스 분야도 다시 시동을 건다.
▷국민 모두에게 따뜻하고 질 좋은 내의를 입히겠다는 게 독립문 창업주 김항복 회장님의 염원이었어요. 그 염원을 ‘누구나 편안하도록 불편함으로부터 독립’이란 슬로건으로 재해석한 ‘독립소곧’을 새롭게 선보이려고 합니다. 깔끔한 흰색과 부드럽고 편안한 감촉을 주는 내의 속성에 충실하면서 독립문만의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력을 담아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독립문의 근간인 겨울 메리야스를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첫 월급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리는 나름의 전통이 있었잖아요. 그 주인공이 바로 독립문 메리야스예요. 독립소곧이 다시금 세대 간의 연결고리가 될 겁니다.
▶올해의 목표라면.
▷숫자적인 것보다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가 있습니다. 일은 힘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사람이 힘들면 그냥 힘든 법이죠. 제가 어릴 때 휘경동에 있던 저희 회사 바로 앞에서 살았는데, 당시엔 통행금지가 있었어요. 밤 11시 40분쯤 되면 술 한잔하다 집에 들어가지 못한 직원들이 저희 집 대문을 막 두드렸습니다. 안방이 종종 직원 숙소가 되곤 했어요. 그때와는 다르겠지만 즐거운 회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라면.
▷제가 요즘 <어린왕자>에 꽂혀 있는데, ‘사람들이 서둘러 특급열차를 타지만 왜 타는지 모른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하더군요. 너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를 만큼 분주하기만 하단 건데, 생각해보니 제가 보낸 1년도 그렇더군요.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귀한 건 돈이나 건강보다 시간 아닐까요. 시간만큼은 되돌릴 수 없잖아요. 귀하게 쓰고 후회하지 말자고 늘 다짐하고 있습니다.
김형숙 독립문 사장
미국 예일대 음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SBS 교양PD로 일하다 가족회사인 독립문(옛 평안L&C) 경영에 참여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지난해 4월 다시금 독립문 대표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