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회복실 나왔던 美 경제, 다시 중환자실 가나… 코로나19 재확산세, 백신 보급 속도가 관건
박용범 기자
입력 : 2021.01.04 15:15:06
수정 : 2021.01.04 17:10:49
회복실로 잠시 나왔던 미국 경제가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갈 태세다. 코로나19 사태 확산은 예상됐던 수순이지만 그 강도가 예상보다 더 크다. 새해를 맞이하는 미국의 연말 분위기를 묘사하자면 이렇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최악의 상황이 빠져들면서 2021년 1분기는 다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 속 같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경제 회복 여부는 이 같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하느냐에 달려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상당한 진전이 있을 때까지 채권 매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021년 2분기 이후에는 회복될지 몰라도 향후 4~6개월이 고비”라고 강조했다.
대다수의 FOMC 위원들은 오는 2023년까지 제로금리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을까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가 다시 암초를 만나 회복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12월 중순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일각에서는 희망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실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반인 접종은 빨라야 2021년 2~3월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접종 이후 나타날 부작용과 초기 공급난 등을 감안하면 이 일정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이 시기에 정권 인수인계가 진행되면서 일관되고 신속하게 백신 보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점이 허들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상화 일정에 대해 가장 객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낙관론으로 일관할 때도 그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냉철한 대응을 주문했던 인물이다.
빌 게이츠는 최근 CNN에 출연해 “사태를 잘 관리한다면 12∼18개월 후쯤 정상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라고 예상했다. 그는 “외국의 코로나19 극복 노력을 지원하지 않고, 미국 내 백신 접종 비율이 높지 않다면 2022년 초에도 바이러스 재유입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2021년 여름부터 약 9개월 동안은 대규모 집회 등을 여전히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당분간은 우리가 마스크를 치워버리고 모임에서 거리 두기를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마도 2021년 늦가을이나 겨울 초쯤에나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도 내부적으로 이런 전망을 부인하지 않았다.
CNN이 입수해 보도한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을 접종해도 2021년 늦봄까지는 코로나 확산세를 꺾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국민 1억 명이 완전한 면역 반응을 보여야 하고, 이러한 과정은 늦은 봄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해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자들의 면역력이 몇 달간 지속돼야만 사망자와 입원환자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종사자와 연로자 등 우선 접종 대상에 대한 접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일반인들이 백신 접종을 맞을 수 있는 시기는 2021년 2월께로 예상되고 있다. 하루 사망자 수가 2000여 명을 넘어서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백신 보급이 시급하지만 진도는 더디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아마도 앞으로 60∼90일간 9·11 테러 때보다 더 많은 하루 사망자를 보게 될 구간에 지금 우리는 있다”고 예상했다. 2001년 9·11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2977명이었다. 곧 하루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상보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경제 정상화 일정은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조사 연구기관인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2020년 4분기에는 GDP 성장률이 2.8%(전기 대비 연율 환산치)에 그칠 전망이다. 이 경우 2020년 연간으로는 성장률이 -3.6%에 그친다.
콘퍼런스보드는 2021년 성장률이 3.6%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2021년 말이 되어야 2019년 경제규모로 간신히 회복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전망은 12월 9일 나온 것으로 이후 극심해진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봉쇄 조치에 따른 악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일자리시장이 회복되지 않는 점이 미국 경제에 짐이 되고 있다.
12월 들어 미국의 실업지표는 회복세가 멈추고 9월 수준으로 악화됐다. 12월 첫째 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85만3000건으로 전주보다 13만7000건이 늘어나는 ‘역주행’ 현상이 나타났다.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청구하는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576만 건으로 한 주 만에 23만 건 늘어나는 등 고용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강력한 자택 대기령을 재도입했고 뉴욕시는 레스토랑의 실내 영업금지 조치를 내린 데 이어 필수 업종을 제외하고 다시 완전 재봉쇄에 들어갈 것이 유력하다. 2020년 3월부터 6월 초까지 내려졌던 봉쇄조치들이 다시 등장한 셈이다. 경제 중심지인 뉴욕의 이런 경제봉쇄 조치는 미국 전역에 걸쳐 심리적 위축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어두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더 우세한 편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통화정책에 완화적 기조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며, 막대한 경기부양 조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 랠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2021년 전망 자료를 통해 “2021년은 위험 자산에 매우 건설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향후 6~12개월 기준으로 미국, 신흥시장, 대부분의 아시아 주식에 대해 ‘비중확대’를 투자의견으로 제시했다. 다만 일본과 유럽 주식은 ‘비중축소’ 의견을 내세웠다.
블랙스톤의 글로벌투자 수석전략가인 마이크 파일은 ‘2021년 전망’ 자료에서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긴축적인 범위 내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JP모건 최고경영자(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최근 열린 골드만삭스 금융서비스 콘퍼런스에서 “주식시장의 작은 부분에서 거품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견지했다. 그는 “현 국채 금리 수준에서 나는 국채에는 손도 대지 않을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미 국채보다는 주식 투자가 더 긍정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질수록 주식시장은 상승하는 역설적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