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태국에서 번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가 심상치 않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정국을 혼란케 했지만 올 중순 들어 확산되고 있는 시위흐름은 그 양상이 달라 보인다. 쿠데타 이후 장기집권 채비를 하고 있는 군부독재 정권에 항의하는 성난 민심이 그동안 금기시돼왔던 왕실조차 비판의 대상에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화 이후 태국에서 벌어진 숱한 민주화 요구 시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로 현 집권층에 대한 민심의 분노 게이지를 가늠케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10일 방콕 탐마삿 대학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예상치 못한 발언’이 터져 나와 현장은 물론 태국 정부 및 정치권이 들썩했다. 단상에 오른 한 시위대 측 인사가 왕실 개혁을 공개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총 10가지를 내세웠고, 형법상 왕실 모독죄를 폐지하고 관행처럼 돼 있는 군사 쿠데타에 대한 승인 행위를 하지 않는 등 왕실의 정치적 개입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시위대 측은 왕실 폐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제도 하에서 왕실을 존속케 하기 위해 이 같은 요구를 한다고 했는데, 태국 왕실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철학을 지닌 영국 왕실처럼 실질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명분이 이렇더라도 그동안 금기로 돼 왔던 왕실을 이렇게 공개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하는 것은 사실상 왕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다. 태국 법 체계상 자비 없는 중한 범죄로도 다룰 수 있는 사안이다. 현 정부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며 발끈했다. 왕실 측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왕실과 현 정부 간의 호의적 관계를 생각해볼 때 사실상 왕실도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태국 반정부시위대가 8월 16일 수도 방콕의 ‘민주주의 기념탑’ 앞에서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다.
이날 모인 시위대는 현 정부 출범 후 최대 규모였다.
이 파장은 컸다. 그동안 반정부 시위는 전국 단위로 퍼지며 지식인 그룹 등 여러 사회계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며 점점 세를 불려갔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발언 이후 시위대와 연관된 이들은 살짝 움츠러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장 탐마삿 대학 측은 시위대 행사와 관련해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재빨리 선을 그었다. 대학 측의 이 같은 모습에는 사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깔려 있다. 태국 민주화 운동에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한 획을 그었던 1973년 반정부 시위와 이후 벌어진 군부의 시위대 대학살이 모두 대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시위의 주역 중 상당수가 탐마삿 대학생들이었고, 군부의 무자비한 시위대 진압 장소가 대학 교정이었다.
한 태국 전문가는 “탐마삿 대학 측의 모습은 2020년 시위에서 과거의 되새기고 싶지 않은 역사가 되풀이될까봐 사전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행보”라고 전했다. 왕실 모독 발언이 터져 나온 10일 시위를 이끈 주된 이들도 탐마삿 대학 학생들이었다.
16일 태국 민주화의 성지인 민주주의 기념탑에서 1만여 명이 몰린 시위 현장에서도 시위대는 현 군부 정권만을 겨냥했다. 시위대 측은 왕실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대신 쁘라윳 정권의 퇴진을 더 거세게 요구했다. 이날 모인 시위대는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정권 출범 이후 최대 인파로 알려졌다. 이들은 국민의 뜻을 반영한 새 헌법 개정과 의회 해산도 함께 요구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될 대목이 있다. 2020년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주역들이 ‘학생’이란 점이다. 태국 정치사에서 이 학생이란 키워드는 큰 의미를 갖는다. 1973년 군부를 축출시켰던 시위의 주역이 바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1973년의 학생과 2020년의 학생은 공통점도 있다. 바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힘을 비축한다는 것이다. 1973년의 학생들은 전국학생센터(NSCT)를 만드는 등 기존에 없었던 힘의 조직화를 꾀하며 집권층에 대항했다. 지금의 학생들은 세 손가락 상징, 플래시 몹 등 요즘 트렌드에 맞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이런 가운데 2020년 학생 주도 반정부 시위대를 더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연령대가 10대인 고등학생들로까지 내려갔다는 점이다. 태국 정치사에서 고등학생들까지 반정부 시위 전면에 나선 적은 없다.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2014년 반정부 시위의 주역들이 친정부와 반정부로 나뉜 정치세력이었다는 것과 확연이 대비되는 지점이다. 때문에 코로나19 와중에도 점점 확산되고 있는 이번 반정부 시위가 어떻게 끝날지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태국 전문가는 “금기어인 왕실을 거리낌 없이 꺼내들고 고등학생들까지 군부독재에 항의를 한다는 것은 새 형태의 시위 양상”이라면서 “그만큼 태국 정치가 중요한 분기점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2년 레드불 공동창업자의 손자인 오라윳 유위티야(위 사진)가 타고 가다 경찰관을 치어 사망하게 한 페라리 차량.
▶과거 독재 타도했던 학생 계층 전면에 나서
이 같은 시위 정국을 촉발시킨 원인은 지난해 태국에서 있었던 총선에서 출발한다. 당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신생 야당 미래전진당에 대한 현 정권의 탄압으로 촉발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현 쁘라윳 정권은 선거를 앞두고 당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 구도를 만들어 압승을 꾀했지만 미래전진당으로 인해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총선에서 전진당은 군부가 주도했던 헌법의 개정, 국방예산 감축 등 반(反)군부 스탠스를 과감히 취해 개혁을 원하는 젊은 층의 관심을 사로잡아 제 3당의 지위에 올랐다. 1978년생인 타나턴 당 대표도 의원 신분을 확보해 차기 정치인으로 주가가 치솟았다.
현 집권층에게 이 같은 신생 정당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결국 타나턴 당수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했고, 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됐다.
이에 태국에서는 올 연초부터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본격화되면서 반정부 시위는 동력을 잃었다. 정부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이달까지 국가 비상사태를 4번이나 연장하기도 했는데, 일각에서는 시위대를 원천봉쇄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시각이 파다했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집합 자체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태국판 유전무죄 사건이 터지면서 시위대를 다시 결집시키는 단초가 됐다. 이 사건은 태국의 세계적인 음료 브랜드인 레드불 창업주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야의 8년 전 뺑소니 사고를 말하는데, 권력층의 비호로 음주운전으로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한 재벌가 손자가 면죄부를 받았다는 것이 골자다. 재벌, 검·경 고위층 등 태국 내 권력층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에 이 사건은 태국 내 고질적인 권력 부패문제로 대중들에게 각인됐고, 현 군부 집권층에 대항하는 반정부 세력의 시위 재개에 좋은 명분이 됐다. 10~20대의 학생들이 시위에 많이 참가하는 이유도 사고를 낸 재벌 손자가 당시 20대였던 점이 거론되고 있다. 20대에 중죄를 지었다는 의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라윳은 지난 8년 동안 자유롭게 유람선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등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쁘라윳 정권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스리핑거 인사를 하고 있다.
현재 태국 경제는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의 주축인 관광산업이 붕괴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태국 국립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가 발표한 2분기 경제성장률만 봐도 전년 동기 대비 -12.2%를 기록하며 22년 만의 가장 나쁜 성적을 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퇴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재확산이 글로벌 차원에서 시작됐다는 시각이 커지면서 관광 산업 부활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태국 경제의 추가 추락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근 베트남이 코로나19란 악조건에서도 플러스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과는 너무도 대비된다. 당연히 태국 내에서도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고민거리로 떠오른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죄지은 혐의가 있는 재벌가 손자의 일탈적 호화생활은 젊은 층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현 시위대가 왕실 개혁을 거론한 것도 결국 레드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왕실을 바라보고 있다는 해석이다.
현재 태국 내에서는 최근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1970년대의 유혈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목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상황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실제 반정부 시위대의 과감한 행보를 불쾌하게 바라보는 왕실 지지파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움깜눈 시티사만 상원의원은 “1973년 사태의 재현의 촉발을 막기 위해 의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1970년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대해 군부가 강경 진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이 공산화가 되는 등 시대적 환경이 한몫한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 기반이 되는 디지털 시대의 가속화, 네트워크 사회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군부가 무조건적인 강경 대응을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김 교수는 “임계점이 넘는 상황이 오면 군부는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낼 소지가 다분하다”면서 “이런 점에서 이번 시위의 근원적 단초가 됐던 타나턴 세력이 학생들과 함께 전면에 나서는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해산된 야당세력이 정국 불안을 고조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씌워 현 국면을 넘기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