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3월 3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유로마이단(독립광장).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시민혁명의 중심무대다. 여기서는 크림반도를 차지하려는 러시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광장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푸틴은 (크림에서) 물러가라” “우크라이나의 영광을!”을 외치며 키예프 시민들을 독려했다. 폴란드의 한 시민단체 인사도 참석해 “폴란드도 과거 소련의 압박에 고통을 당했다”며 “러시아가 이를 답습해 우크라이나에 군사개입을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광장 곳곳에는 ‘푸틴은 21세기 히틀러!’, ‘푸틴은 전쟁을 그만두라’는 등의 팻말이 놓여있었다.
#2. 지난 3월 4일,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수도인 심페로폴 시내의 레닌광장, 100여 명의 주민들이 레닌동상 앞에서 “러시아는 우리의 보호자!”,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다”는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러시아! 크림! 심페로폴!’을 차례로 외쳤다. 이들은 형식상 국적은 우크라이나지만 러시아가 하루 속히 크림반도를 장악해주기를 노골적으로 바랐다. 한 시민은 ‘키예프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팻말을 들고서 “유로마이단은 불법세력의 온상지”라며 “러시아는 어서 빨리 키예프 악(惡)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달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개입을 놓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지역별로 180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나라 국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키예프와 크림공화국 주민들의 태도는 분열 그 자체였다. 사태가 원만하게 수습돼 크림이 설사 우크라이나에 남더라도 양측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워보였다.
‘크림트랩’에 갇힌 러-미, 누가 승자될까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과 협력협정 체결을 앞두고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비롯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크림반도 분리독립 문제로 확대되면서 앞날을 점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월 시민혁명을 통해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성공한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되찾을 것으로 보였지만 사태는 그동안 눌려있던 만성적인 동서 지역갈등을 계기로 올초 글로벌 정세를 뒤흔들 메가톤급 폭탄으로 변해가고 있다. 크림반도 합병안을 승인한 러시아 측과 우크라이나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미국 간 무력충돌이나 경제봉쇄 등이 진행된다면 국제사회는 이른바 ‘신냉전’으로 치달으면서 촘촘히 얽혀있는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크림공화국에서 지난 16일 실시된 러시아 귀속 주민투표로 인해 그들 간 오랫동안 쌓였던 불신은 최정점에 달했다. 향후 크림반도가 어느 나라에 속하든 간에 최소한 정서적으로는 크림과 우크라이나는 한배를 타기 힘들다는 점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문제는 크림과 키예프의 각 배후세력인 러시아와 미국 어느 한쪽도 ‘크림 트랩(덫)’에서 쉽게 발을 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양측이 자존심을 내걸고 개입해온 사태에 이제 누군가 물러서는 순간 그쪽은 패자고, 다른 쪽은 승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명분이 없다면 중간에서 손을 떼기도 힘든 상황에까지 간 것이다.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 주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크림공화국을 러시아 영토에 편입하기 위한 협정에 서명했다. ‘건널 수 없는 강’을 넘어선 푸틴이 향후 서방의 경제압력 등에 굴복해 크림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과거 이라크전이나 동유럽 미사일방어망(MD) 설치, 최근 시리아 사태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각종 국제이슈에서 미국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맡아왔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중앙정부가 들어선 가운데 크림마저 빼앗긴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두보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우크라이나 끝자락이라도 잡으려는 러시아의 의지는 결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 간의 결속을 통해 유럽연합(EU)에 맞먹는 관세동맹, 유라시아연합(EAU) 등을 추진해온 푸틴으로서는 크림사태 같은 역내 문제에 외부가 개입해 CIS통합이 방해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면 미국도 크림사태에서 당분간 발을 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혁명을 통해 친러시아 정부가 물러나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마당에 크림공화국을 러시아에 넘긴다는 것은 반쪽의 승리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접경한 지정학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를 차지하기 위해 이번 혁명에 물심양면으로 막대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예프 유로마이단에 있는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4개월 넘게 광장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들에 대한 외부의 재정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방 측이 크림을 고수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안보공약 이행과 맞물려 있다. 소련 붕괴 후 핵무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4개국에 흩어져 있었는데 미국은 핵관리를 위해 러시아를 제외한 3개국에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내걸고 핵무기를 해체시켰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된 1840여 개 핵탄두를 비롯해 1만 마일의 사정거리와 6개 개별 목표탄두를 갖춘 130기의 SS-19 핵미사일, 10개 탄두를 가진 SS-24 핵미사일 46기 등을 보유한 세계 3위 핵강국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 따른 반발이 컸지만 1994년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과 10억달러 상당의 재정 및 기술적 원조 등을 대가로 핵무기 해체를 받아들였다. 미국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서방에 경도된 우크라이나를 확보하려는 현실적인 이유 외에도 공약은 지킨다는 도덕적 명분이 남아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지난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러시아(소련)와 미국 간 최대의 대치상태가 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쿠바 위기는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해안봉쇄에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손을 들면서 평화적으로 끝났지만 흐루쇼프는 이로 인해 소련 내에서는 패배자라는 오명을 남겼다.
반복돼온 크림공화국 독립 문제
크림반도의 러시아 복귀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크림은 지난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독립한 직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둘 가운데 어디에 속할지를 놓고 늘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처럼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크림 영유권 분쟁의 씨앗은 지난 1954년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통합 300주년을 기념해 당시 우크라이나공화국에 소유권을 양도하면서 비롯됐다.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같은 소련에 속했기 때문에 크림 영유권에 대한 논란은 없었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불거지기 시작했다.
러시아 보수파인 공산당과 민족주의자들은 크림 영토 반환을 요구했고, 우크라이나는 1954년 양도의 절차적 합법성과 소련 해체 후 양국 간 국경 준수협정을 들어 거부했다. 보수세력이 집권한 러시아 의회는 크림 반환 결의를 채택하는 등 당시 보리스 옐친 정부를 압박해갔다. 이러한 후원에 힘입어 러시아인들이 많은 크림공화국은 1992년 3월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크림에 자치권을 확대하는 등 달래기가 이어지면서 한 달여 만에 원상복귀됐다. 그러나 2년 뒤인 1994년에는 친러시아 분리주의자인 유리 메쉬코프가 크림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다시 독립열기가 고조됐다.
메쉬코프는 러시아인을 총리로 세우고 우크라이나 군대 철수와, 러시아와 정치경제적 통합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정부는 지금과 달리 크림의 분리독립을 지원하지 않았다. 소련 해체 후 서방의 경제 지원이 절실했던 러시아 정부는 의회와 달리 무턱대고 크림의 복귀를 주장할 수 없었다.
크림 독립을 인정할 경우 러시아내 다른 자치공화국들의 분리 요구가 커질 것도 우려스러웠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1994년 7월 친러시아 성향의 레오니드 쿠츠마가 대통령에 오르면서 양국 간 협력이 고조된 것도 크림 분리독립 주장이 힘을 잃게 만들었다.
쿠츠마는 옐친과 협력 하에 분리독립을 위한 크림공화국 헌법초안 개정 등을 막았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친러시아로 돌아서자 크림 독립열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우크라이나 정부가 친서방으로 바뀐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한반도 1/9 면적 크림반도 왜 중요한가
왜 러시아와 미국은 한반도 면적의 9분의 1에 불과한 크림반도를 놓고 격돌할까. 미국으로서는 중동처럼 석유나 가스자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머나먼 크림 사태에까지 개입하고 있나. 해답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유럽 간 중간지대에 위치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먼저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냉전시절 동유럽이 대유럽 방어벽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폴란드와 헝가리가 유럽연합(EU)과 나토(NATO)에 가입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대유럽 경계철책은 우크라이나가 되는 것이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변두리라는 의미의 ‘오크라이나(окраина)’와 발음이 비슷해 경시하는 뉘앙스도 갖지만 현실정치에서 우크라이나 역할은 서구와의 완충지대로서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유럽연합에 맞서 독립국가연합(CIS)의 통합을 강조하는 러시아로서는 CIS내 강대국인 우크라이나가 없다면 이들 모임은 ‘앙꼬 없는’ 모양새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같은 동(東)슬라브인으로서 갖는 민족적 연대감 역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역사나 민족적 긴밀함보다는 철저한 지정학적 이익에 기반해 있다. 미국의 입장은 영국인 정치학자인 핼포드 매킨더가 ‘동유럽을 다스리는 자가 심장지역을 지배하고, 심장지역을 다스리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고 밝힌 지정학적 고전 명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킨더는 유라시아 중심(심장부) 세력으로서 러시아를 경계하면서 러시아로 가는 관문격인 동유럽을 지배해야 글로벌 헤게모니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러시아로 가는 관문이 되는 위치가 바로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해당한다. 미 헤리티지재단 모스크바 대표를 지낸 정치학자 예브게니 볼크는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모두 자기의 일로 여길 정도로 동질감을 느껴왔다. 러시아인들에게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EU 회원국이 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악몽”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러시아는 크림 지역을 친서방으로 바뀐 우크라이나 당국을 상대로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마지막 교두보로 삼으려는 것이고,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가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크림반도부터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편 크림반도는 제정 러시아가 혁명의 시대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 크림전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한데 한국에는 한반도 분단의 단초를 마련한 얄타회담이 열린 곳으로 기억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