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미얀마 열풍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미얀마를 방문한 이후 서방 정상들과 외교관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 영국, 프랑스, 캐나다 외교장관은 지난해 12월 이후 석달 사이 미얀마를 경쟁하듯 방문했고, 4월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미얀마를 찾아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및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정책수석도 조만간 방문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면에서도 각국 사절단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싱가포르는 올 2월 60개 기업 120여 명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을 미얀마에 보냈고, 3월에는 60여 개 기업으로 구성된 베트남 경제사절단과 20여 개 업체 40여 명 규모의 태국 경제사절단이 미얀마를 방문했다.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또 지난 4월 6일에는 수도 네피도에서 매일경제와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KOTRA가 함께 개최한 ‘한·미얀마 경제협력포럼’이 열려 한국의 80여 개 기업 160여 명의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미얀마는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사건 탓에 우리에게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라다. 게다가 50년에 걸친 군정, 불교식 사회주의란 묘한 이름의 전체주의 체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등 대개 부정적인 단어로 언론에 등장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미얀마가 요즘 세계의 ‘러브콜’ 대상이 됐다. 배경에는 민주화와 개혁이란 서방 국가의 입맛에 딱 맞는 조치들이 몇년간 이뤄진 덕분이다.
영국 식민지와 일본군 점령기를 거친 미얀마는 1948년 독립과 함께 민주국가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계획경제의 잇단 실패로 정치는 혼란에 빠졌고 이 틈을 타 1962년 네윈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네윈은 버마식 사회주의 혹은 불교식 사회주의를 내세워 군정을 세운 뒤 국유화와 쇄국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 탓에 주 소득원인 쌀 수출은 급감했고, 가스와 구리 등의 자원은 개발도 못한 채 방치돼 경제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독재와 경제난에 지쳐간 미얀마 국민들은 1960년대 말 이후 양곤 등 대도시에서 반정부 시위를 산발적으로 이어가다, 1988년 드디어 민중봉기를 일으켜 그해 8월 독재자 네윈을 몰아냈다. 시위대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곧 사그라진다. 권력 공백을 파고든 신군부는 같은 해 9월 또다시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다. 민정이양을 약속하며 과도 내각을 꾸린 신군부는 1990년 총선을 실시하지만 막상 아웅산 수치 여사의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하자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는 네윈 시절과 마찬가지의 군부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그러나 압제에 대한 불만과 국제사회 경제제재의 압박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군부는 2008년 신헌법을 통해 개혁을 약속했고, 드디어 2011년 3월 민정이 들어섰다.
또 올해 4월 1일 보궐선거에서 NLD가 45석 가운데 43석을 차지하면서 압승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에 앞서 2011년 10월에는 언론자유 보장을 공포했고, 정치범 200여 명을 석방하는 조치도 취했다.
민정은 과감한 경제 개혁조치로 세계의 눈길을 잡기도 했다.
단적으로 4월 1일부터 관리변동환율을 적용해 자국 통화 차트(Kyat)의 기준 환율을 1달러당 818차트로 고시했다. 그동안은 시장의 수요를 무시한 터무니없는 고정환율(1달러당 6차트)을 정부가 정해 해외투자자들은 주로 암달러 시장에 의존해야 했다. 또 제조업을 빠르게 민영화했다. 미얀마 제조업에서 민영기업의 비율은 2007년 74.2%였지만 이후 경제개혁 속에 2010년에는 91.2%로 높아졌다. 그만큼 국영기업은 줄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미얀마 경제제재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기업인들의 미얀마 진출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진 상태다.
넘치는 지하자원·문화·관광자원 경쟁력 무궁무진
“미얀마는 인구 10억명이 넘는 대국인 중국과 인도의 사이, 지정학적 요지에 자리 잡은 나라다. 인구는 6000만명에 값싸고 젊은 노동력이 풍부하다.”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지난 4월 6일 매경 미얀마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미얀마가 지닌 잠재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각국이 미얀마에 주목하는 이유다. 여기에 덧붙이면 독립 이후 처음으로 외국 기업에 문을 연다는 의미도 있다. 인구 5000만명이 넘는 시장 가운데 마지막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박철호 양곤무역관장은 “신흥시장이라고 하려면 소위 브릭스 국가들처럼 인구가 받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도 그냥 많은 것이 아니다. 15~24세 젊은 노동력이 1000만명에 달하고 임금 수준도 낮다. 제조업체의 경우 임금이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서방 경제제재 해제가 가시화된 올해부터 제조업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얀마 투자 2위 국가인 태국은 의류, 봉제업체들이 잇달아 미얀마를 두드리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40% 이상 오르자 미얀마에 생산기지를 옮기려는 업체들이 많다.
지정학적 가치도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다. 중국의 경우 미얀마를 통해서만 인도양으로 나갈 수 있다. 중국은 미얀마 서부 해안에 해군기지를 짓고, 쿤밍까지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등 미얀마를 ‘인도양 관문’으로 삼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반대로 미국으로선 중국의 인도양 루트를 봉쇄하기 위해 미얀마를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지난해 미국이 제재 일변도 정책을 버리고 미얀마 문제에 적극 개입한 것도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라이벌 일본과 인도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서 인도도 미얀마에 대한 경제 지원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일본은 이미 차관 제공을 약속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얀마의 지하자원을 가장 주목한다. 미얀마는 천연가스 매장량이 5000억㎥로 동남아시아 최대를 자랑한다. 철광석·구리·아연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대부분 미개발 상태라 매장량 확인조차 안 된 경우가 많다. 테인 세인 대통령도 미얀마포럼에서 “한국 기업들이 와서 먼저 탐사부터 해달라”고 요청했다. 티크를 비롯한 고급 목재와 타이어 원료인 천연고무도 풍부하다. 티크의 경우 세계 수요량의 90%를 미얀마에서 생산한다.
루비·사파이어·호박과 같은 귀금속 매장량도 동남아 최대다. 특히 루비는 전 세계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과 유럽의 금수조치가 완전히 풀리면 루비 수출이 가스 수출과 더불어 미얀마 경제개발의 든든한 밑천이 될 전망이다.
문화유적도 무궁한 개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쉐다곤 파고다로 유명한 양곤뿐 아니라 앙코르와트에 버금가는 불교 유적 바간, 천년고도 만달레이 등 아직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도시들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1900km가 넘는 해안선도 휴양지로 개발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미얀마를 찾은 외국인은 전년보다 30% 늘어 8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웃 태국의 1900만명과 비교하면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태국 관광객의 20%만 흡수한다 해도 연간 관광객 400만명을 유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무형의 자산도 미얀마의 매력을 더한다. 김춘섭 미얀마 한인회장은 “미얀마는 동남아에서도 교민 만족도가 가장 높은 국가”라며 “사람들이 순박하고 불심이 깊어 범죄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불멸의 이순신>과 같은 사극이 엄청난 인기를 얻어 한국에 대한 인식도 아주 좋다.
네피도, 양곤, 만달레이, 바간… 미얀마의 도시들
미얀마를 대표하는 도시는 양곤과 네피도, 만달레이, 바간 등이다. 모두 대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원이 다르고 사뭇 다른 독자적인 색깔과 특징을 지닌 도시들이다.
양곤(Yangon)
미얀마의 최대 도시로 경제 중심지다. 미얀마의 젖줄인 에이야와디강 하구에 자리 잡은 인구 600여 만명의 대도시 양곤은 이름이 수차례 바뀌었다. 왕국 시절인 18세기 이전까지는 ‘다공(Dagon)’으로 불리다 ‘양곤’으로 바뀌어 19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랑군(Rangoon)’으로 개칭됐고 150년 넘게 이름을 유지해오다 1989년 군사정부가 식민시대 잔재 청산을 내세워 다시 양곤으로 바꾸었다.
양곤은 2005년 11월까지 미얀마의 수도가 네피도로 옮겨질 때까지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앙정부의 관공서 대부분이 떠나 정치적으로는 약화된 도시다. 그래도 여전히 외국 공관은 양곤에 머물러 외교의 중심지라는 위상은 지키고 있다.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국제도시가 된 양곤은 지금도 미얀마인, 인도인, 중국인, 이슬람교도가 함께 살면서 미얀마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 세계적인 보석 상점과 그림 상점, 쌀시장 등이 자리 잡고 있고 양곤항을 통해서 동남아 각지로 연결된다.
양곤은 무엇보다도 불교 국가 미얀마의 중심 도시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쉐다곤이다. 시가지 북쪽의 언덕 위에는 정사각형(둘레 426m)의 기단 위에 높이 100m의 탑이자 사원인 쉐다곤이 서있다. 1만3000여 개의 황금판으로 표면이 뒤덮인 이 탑은 금 무게만 60t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탑 상단은 루비,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등 1만여 개의 보석으로 장식돼 있다. 양곤 사람들이 출근 전 한번, 퇴근 전 한번 들러 복을 비는 곳이 쉐다곤이다.
한편 최근 미얀마가 각광을 받으면서 방문객이 늘자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단적으로 양곤시내 호텔 숙박료가 1년새 2배나 올랐고 부동산 값도 50% 이상 올랐다.
네피도(Naypyidaw)
2005년 11월 미얀마 군정이 수도를 양곤에서 핀마나(Pyinmana)로 이전한 뒤 2006년 3월 새로운 수도의 이름을 네피도로 정했다.
네피도는 미얀마어로 ‘황제의 도시’라는 뜻이다. 행정부와 의회 등이 다 이곳에 있다. 양곤에서 북쪽으로 약 320km 떨어진 밀림지역으로 오래전부터 미얀마 군대의 거점 지역이었다. 이 같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곳으로 수도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네피도는 인공도시로 인구는 5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의 다른 도시와 달리 왕복 8차로의 넓은 도로, 고급 빌라단지, 쇼핑몰 등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공무원들만 사는 인적이 드문 도시다. 도로는 언제나 한산하고 인도에도 행인이 거의 없다. 저녁이 되면 가로등이 켜지지만 그 아래로 다니는 차와 사람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네피도가 올해부터 서서히 활기를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고급 호텔들이 줄지어 문을 열었고, 작년 12월 개장한 네피도공항은 지난 3월 국제공항 승인을 받아 타이항공을 시작으로 국제선 취항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양곤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많아 공무원들은 여전히 양곤에서 파견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만달레이(Mandalay)
인구 70만명의 미얀마 제2의 도시이자 종교와 교통의 중심지다. 약 2500년 전 부처가 다녀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이 도시는 고대 불교 유적지와 영국 식민지 시절 건립된 유럽풍 건물이 공존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시내는 크게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도시 곳곳이나 주변 소도시에 사원과 탑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만달레이 언덕 아래에 730개의 탑이 있는데, 이들 탑에는 불교 경전들이 석판 형태로 보관돼 있다.
미얀마에서 육로를 통해 중국과 인도로 가려면 보통은 국토의 중심에 자리 잡은 만달레이를 거친다. 강을 통해 만달레이까지 쌀과 광물 등이 트럭에 실려 중국의 윈난성과 인도의 아삼 지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과거 20년 동안 중국 윈난성에서 중국인들이 계속 들어와 살면서 만달레이에는 화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바간(Bagan)
달레이 남서쪽 150km 지점에 자리 잡은 미얀마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이자 고대도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유적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이 도시의 압권은 무엇보다 탑이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2200여 개의 탑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 하늘에서 바라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최초의 버마족 제국인 바간 왕조의 수도였던 이곳은 1000년대에서 1200년대에 대규모 탑들이 들어섰다. 탑의 규모가 곧 왕의 권위와 직결돼 더욱 화려하고 거대한 탑들이 연거푸 건립됐다. 하지만 바간 왕국은 1287년에 몽골의 침입을 받아 멸망한다. 바간은 손꼽히는 불교건축의 보고인 덕분에 늘 외국인 관광객이 붐빈다.
미얀마정부 “노동집약산업·2차 가공업 우대”
미얀마가 뜨면서 세계 각국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미얀마에 도착해보면 하루도 안 돼 실망하기 십상이다. 은행 거래는 거의 불가능하고 신용카드는 무용지물인 데다 인터넷은 거북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미얀마는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시장이다. 인내심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돌아다니면 시장 조사를 하는 것이다. 양곤과 네피도 등 주요 도시를 구경하고, 먹어보고, 자보고, 쇼핑해보며 시장을 탐색하는 것이다. 테인 세인 대통령도 지난 4월 미얀마포럼에 참석해 “한국 기업인들이 며칠 머물며 여행을 다녀보면 어떤 사업이 유망한지 알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외국인을 위한 투자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가장 먼저 풀린 것은 환율. 지난해 하반기 공식 환율을 암시장 환율과 같은 수준으로 정상화했다. 그전에는 최고 100배까지 차이가 났다. 지난 3월에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환율로 인한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된 셈이다.
올 하반기에는 은행에서 외환업무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외환거래 라이선스를 내준 민간은행들을 대상으로 현재 직무교육이 한창이다. 미국이 최근 경제제재를 대폭 완화하면서 미국과 유럽계 은행들도 진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미얀마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 교민은 “은행의 외환업무가 시작되면 가장 큰 애로 사항이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싱가포르 은행 등을 통해서 복잡하게 거래해왔다”고 전했다.
진입 규제도 대폭 풀었다. 지난 3월 외국인투자법을 개정해 이동통신 등 국가기간산업에서도 외국인투자를 허용하기로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외국인 단독투자 기준 완화다. 지금까지는 단독 투자 시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 대부분 미얀마 현지인을 대주주로 내세운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 외국인 대주주 허용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최대 5년 간 소득세를 감면해주고, 이익 송금도 원칙적으로 100% 보장한다. 민간 소유 토지에 대해서도 자유로이 임차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경제특구에서만 임차가 가능했다.
하지만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50년 간 군부가 집권한 국가라 인허가 비즈니스는 확실한 파트너를 잡는 게 중요하다. 행정 부문의 서비스 마인드도 취약해 지사 설립을 신청하고 6개월 넘게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가 우선시하는 업종과 방식으로 투자하면 최대한 편의를 얻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테인 세인 대통령이 지난 4월 미얀마포럼에서 언급한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정책 최우선은 일자리 창출이다. 봉제업처럼 기술 수준이 낮아도 노동집약형 업종이 오히려 환영받는다는 의미다. 봉제공장 1곳이 1000명을 고용한다고 할 때 10곳만 들어와도 1만명이 일자리를 얻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인프라스트럭처 분야다. 반세기 동안 문을 닫고 지내다 보니 미얀마는 전력, 상하수도, 주택,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이 태부족 상태다. 특히 경제개발 붐이 일고 있는 양곤시는 전력난으로 하루에도 십여 차례 정전이 되고, 주택과 도로, 호텔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장 관심 있는 자원 개발은 단순 채굴 방식이면 환영받지 못한다. 부가가치를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