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인터넷상에는 베이징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원래 미국에 있는 한 중국 반체제 단체가 퍼뜨린 루머인데 일부 한국 언론에서는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가 큰 웃음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이는 당사자들이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대표적인 해프닝이다. 현재 중국에서 모든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도 음모가들의 권력쟁탈이 중심 이슈인 것처럼 본다면 현재 중국의 안정적인 경제발전 현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만약 중국 지도부 내에 권력투쟁이 있다면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며 각각 어떤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1978년 이래 중국경제는 연속 33년간 연평균 9.8%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루어 왔다. 중국이라는 13억 인구의 나라가 이처럼 장기간 고도성장을 지속해 온 것은 ‘중국의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유명한 중국경제 전문가인 Steven Cheung 교수는 몇 년 전에 “중국에 이러 저러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어떻게 그동안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 어떤 일을 중국정부가 잘 해낸 것이 분명하다. 그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연구 과제다”라고 했는데 매우 옳은 지적이다.
중국에서는 언제나 중국경제의 발전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는데 일반 외국인들에게는 단순한 정치적 수식어로 공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경험과 자신들의 생활 체험으로부터 ‘개혁개방’이야말로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유일한 선택임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개혁’이란 향후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경제제도, 발전방식을 경제발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해 나가면서 인류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제제도와 발전방식을 모색해 나가겠다는 야심찬 의지, 노력과 과정을 의미한다. 즉 중국인들은 우선 먼저 자신들이 현재 실시하고 있는 경제제도(체제)와 발전방식에 개혁해야 할 문제점이 아직 매우 많다는 점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정한다.
또한 아무리 성공적이었던 경제제도나 발전방식 및 경제정책이라도 시간과 조건이 바뀌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에 개혁에는 종점이 있을 수 없다고 여긴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개혁’은 마치 문법에서의 ‘진행형’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제이다. 또한 ‘개방’이란 세계경제의 일체화에 동참하는 방향을 영원히 견지해야 하며 ‘자급자족’이나 ‘시장보호주의’가 결코 올바른 경제발전 방식이 아니라고 보는 관점, 노력과 과정을 의미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우선 모택동 시대의 계획경제체제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그 당시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장기간 침체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모택동 사후 국민들의 개혁요구가 강하게 분출되었고 그것이 중국 지도부가 1978년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대중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즉 개혁개방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다른 많은 나라들과는 달리 반대세력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개혁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으며 개혁성공으로 인한 경제발전 성과가 다시 개혁을 촉진하는 선순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정부는 우선 농업에서 ‘가족책임제’ 생산방식을 도입하여 농민들을 집단노동의 구속에서 해방시켰는데 이는 농민들의 인센티브를 크게 자극하여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농산물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집단노동 방식의 폐지는 농업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농촌의 거대한 잉여 노동력이 공업과 서비스업 등 비농업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중국정부는 또 농민들이 향진기업을 설립하는 것을 적극 권장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농업 잉여 노동력의 대량 흡수와 수출의 획기적인 확대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에서 이러한 개혁이 결코 어느 지도자가 사전에 계획하고 전국적으로 동시에 추진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개혁의 실험에 참가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성공한 경험을 정부가 받아들여 전국에 보급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편 도시분야의 개혁은 장기간 농민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던 도시주민들의 기득권 때문에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국유기업의 개혁이 부진하고 정부가 국유은행을 통해 부실 국유기업을 지원하면서 오랫동안 기업의 파산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바로 기득권을 가진 도시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향진기업과 외자기업들이 나타나면서 국유기업 위주의 계획경제제도가 점차 붕괴되고 기업 간의 생존 경쟁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향진기업, 외자기업 및 기타 민영기업들이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면서 국유기업 샤깡 노동자들을 대부분 흡수하였고 또 정부재정 수입이 늘어나면서 실업보조금, 재교육 훈련비용 등의 방식으로 기득권 계층의 손실을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도시부문의 개혁이 사회적인 불안을 크게 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도시분야의 개혁 역시 여러 차례의 곡절을 겪으면서 실험을 통해 점차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온 경험을 보면 기본적으로 등소평이 제시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고양이론’의 철학적 명제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의 개혁개방은 지금도 본질적으로 ‘돌을 만지면서 강을 건너는’ 실험중시의 방식이다. 계획경제체제를 실시하던 중국과 같은 큰 나라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면서 구소련에서와 같은 큰 혼란을 겪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제 고도성장을 이루어 낸 경험은 차기 중국지도부가 계속 계승하게 될 소중한 자산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에 와서 중국은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 고양이론’으로 등소평의 ‘흑백 고양이론’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은 중국 개혁개방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혼동하는 가장 초보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환경중시의 경제발전 역시 현실에 기초하고 실험을 통해 성공된 경험을 점차 받아드려 보급하는 ‘고양이론’의 논리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장기간 중국에서는 등소평을 ‘개혁의 설계사’라고 칭송해 왔는데 엄격히 말하면 중국과 같은 대국에서의 경제개혁은 그 누가 집을 짓는 것처럼 설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등소평도 현재 중국이 이 정도로 발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중국에서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개혁개방 실험에 참여하고 정부가 성공경험을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시진핑 지도부가 향후 개혁개방을 지속하겠다는 자세도 이러한 측면에서 그 전망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