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태에서 시위대가 군 장갑차와 탱크에 올라 깃발을 흔드는 장면은 물리력을 존중하는 아랍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1990년 말 있었던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와 기획부장관과의 대화 내용이다. 이렇게 두바이 인공섬 ‘더 팜’의 구상은 현실화돼 나갔다. 막대한 비용과 자원을 투입한 팜 주메이라는 이렇게 완공됐다. 그러나 이는 세 개의 인공섬 계획 중 하나일 뿐이다. 나머지 두 개는 사실상 계획이 백지화했다. 시공을 담당한 공기업 성격의 부동산 개발회사 ‘나킬’은 현재 거의 파산 상태다. 30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두바이는 이렇게 무너졌다. 무리한 투자로 인해 아직도 채무상환유예 상태에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두바이의 위기는 국가주도형 개발 모델의 실패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의 부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서 무리한 개발을 주도한 지도자의 판단 착오라고도 할 수 있다. 주변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투명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인 판단에 근거한 국가경제 운용이 패착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운용, 의사결정과정이 두바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아니 모든 22개 아랍국가의 성장전략과 경제운용 방식이 거의 유사하다.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독재자가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최고결정권자인 상황이다.
그런데 현재의 비효율적인 경제운용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장기집권체제가 최근 무너지고 있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 정부도 시민혁명의 쓰나미에 힘없이 무너졌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시민혁명의 불길은 다른 아랍 국가들로 옮아붙고 있다. 알제리, 예멘,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팔레스타인, 요르단, 수단 등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아랍권의 민주화가 아랍경제의 틀을 대폭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랍경제도 결국 물리력을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 권위주의체제에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인식체계를 바꾸는 포괄적 혁명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은 아랍인의 심리구조(mentality)를 바꾸어 놓았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아랍 전역으로 민주화의 물결이 이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물리력의 중시는 이슬람 이전부터 중동 지역에 존재해 왔다. 사막의 유목생활이 이러한 전통과 마인드를 가져왔다. 유목민들은 정착농경 문명과는 달리 생사를 결정하는 우물 혹은 오아시스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을 해야 했다. 남성이 칼을 지니는 것은 당연했고, 유사시에는 우물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나가 싸워야 했다. 물리력의 숭상은 방어적 차원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력을 바탕으로 한 ‘약탈’도 아랍 유목민들에게는 ‘합법적인’ 부의 축적 수단이었다. 호전적인 기질이 여기서 나온다. 예를 들어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이슬람의 사도 무함마드는 메디나 주변을 지나는 대상들을 공격해 부와 권력을 축적했다. 약탈과 전투에서의 승리로 발생하는 전리품은 가장 낮은 서열의 병사들에게도 분배됐다. 전리품에 대한 분배 비율을 언급하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된 역사 자료들이 많을 정도다.
물리력을 중시한다는 것은 ‘강력한 물리력’에는 약한 속성과 연결된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7세기 초 등장한 이슬람이 수십 년 만에 스페인 남부까지 점령하는 과정에서 큰 전투는 거의 없었다. 새로 등장한 이슬람국가를 둘러싼 두 제국 혹은 다른 민족과의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투였을 뿐이다. 페르시아 사산제국과 펼친 카디시야(현재 이라크 중남부) 전투, 동로마 비잔틴제국과 싸운 야르무크(현재 요르단 북부) 전투였다. 그 외 지역에서는 이슬람 대군이 진군해 오면 대부분 부족은 항복 서약을 행했을 뿐이다. ‘이기지 못할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유목민들의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튀니지와 이집트의 사례가 압정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역사적으로는 물리력에 약한 모습을 보여 왔지만 ‘이길 수 있는 싸움’에는 집착한다는 것이다. 도미노처럼 확산하는 아랍의 민주화 시위는 무력 독재의 두려움이라는 족쇄를 부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집트 사태에서 시위대가 군 장갑차와 탱크에 올라 깃발을 흔드는 장면은 물리력을 존중하는 아랍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결국 튀니지와 이집트발 민주화 시민혁명은 아랍인들의 인식체계를 바꾸고 있고, 주변 아랍국의 시민의식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아랍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여기에 근거를 둔다.
인식체계 혹은 심리구조가 바뀌면서 발생한 시민봉기이기에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집트 대통령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아랍권 최대 정치, 문화 강국 이집트가 무너진 날, 22개 아랍국가 대다수 수도 중심가에 모여든 인파는 자국의 일인 양 환호했다. 압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심리구조의 변화가 이처럼 아랍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는 데는 위성방송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같은 뉴미디어 역할이 지대했다. 사실 두 나라의 시민 혁명에는 지도자가 없었다. 전면에 나서서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집결했다. 이와 같은 뉴미디어는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가 통제하던 정보흐름의 틀을 깨트렸다. 왕정국가를 제외하고 공화정 체제 하에서 뉴미디어가 가장 발달한 튀니지와 이집트가 다른 국가보다 빠른 변화를 달성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앞으로 뉴미디어가 다른 아랍권의 혁명도 주도할 것이며, 때문에 혁명의 확산 속도도 상당히 빠를 수 있다.
국가주도형 경제도 무너질 것
무력을 바탕으로 한 ‘약탈’은 아랍 유목민들에게는 ‘합법적인’ 부의 축적 수단이었다.
이번 아랍권 민주화 열풍은 단순한 정치적인 현상이 아니다. 세계경제와도 연동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사태가 악화할 때 국제 경제는 요동쳤다. 주가는 떨어지고 유가는 올라갔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 발표가 나오자 미국과 유럽의 주가는 상승했다. 국제유가도 10주 최저치로 급락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단기적인 현상을 뿐이다. 경제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아랍의 시민혁명이 가져올 중장기적 여파다.
대부분 아랍 국가들은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정권이 바뀌지 않는 독재의 형태다.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패가 만연한 곳이다. 더불어 사회적, 경제적 발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다. 산유국의 경우도 소득이 높고 복지혜택이 잘돼 있지만 석유를 제외한 산업이 거의 없어 유가가 하락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대부분 아랍 정권이 이번 사태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다. 산유국의 경우도 오일머니가 민주화 요구를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정권의 붕괴나 정치체계의 변화는 두바이의 사례처럼 국가주도형 경제구조 및 제도를 뒤집어 놓을 것이다. 아랍의 국가주도형 경제구조는 물리력을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역사적 배경이다. 이후 근대에 들어와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아랍 경제가 갖는 독특한 특성, 즉 ‘지대(地代) 추구형 경제(rentier economy)’가 또 다른 원인이다.
아랍경제는 월세를 받듯 뽑아내는 석유, 즉 지대(rent)에 의존하고 있다.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국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다. 아랍 산유국의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석유와 가스의 소유권은 국가 혹은 왕족에게 있다. 국가, 정부 혹은 왕족이 최대 생산자이자 최대 분배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의 주체가 국가이다 보니 국가주도형 경제구조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 튀니지, 튀니지 등 저산유국과 비산유국도 지대추구형 경제의 틀에 묶여있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이 산유국에서 일해 번 해외근로자 송금은 비산유국 경제에 중요한 외화획득원이다. 또 아랍 산유국들은 비산유국의 최대 투자세력이다. 결국 정권의 붕괴나 정치체계의 변화는 경제구조 및 제도를 뒤집어 놓게 된다.
시민혁명에 의한 정권붕괴 그리고 민주화 작업이 진행되면서 아랍의 경제 혹은 성장 전략의 기조가 대폭 수정될 것이다. 유전 및 가스전의 소유권이 왕족이나 독재정권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혹은 공기업으로 이전될 것이다. 여기서 나온 막대한 오일머니의 분배방식도 바뀔 것이다. 혁명 정부는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 등의 성장전략보다는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분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세계 최대 프로젝트 발주지역으로서 아랍권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상업주의 마인드도 바뀔 것
지난 2월10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집결한 시위대가 신발을 들어올리며 ‘무라바크 즉각 퇴진’을 외치고 있다.
국가 경제의 틀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아랍인의 투자마인드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아랍인들은 역사적으로 제조업보다는 현금회전에 빠른 상업에 의존해 왔다. ‘아라비아 상인’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농토가 부족한 사막지역에서는 부를 축적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상업에 의존해야 했다. 목축을 제외하고는 상업이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다.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농토를 바탕으로 한 봉건제, 지주제도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중동에 세계적인 제조업 회사 혹은 유명한 브랜드 네임 하나만 들어보자. 답은 ‘없다’다. 아랍권 나라 수는 22개다. 또 그동안 아랍의 산유국이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생각해보면 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투자시설을 사들여올 외화가 없어 사정하듯 국제사회에 돈을 빌려 산업을 일으킨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이 충분한 아랍권이었지만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극히 미약했다.
아랍인의 경제적 사고에는 ‘머천트(merchant) 마인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상인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좀 비하한다면 ‘장사꾼’ 마인드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꼭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다. 페니키아인들처럼 이슬람 이전 시대의 사람들도 상업을 중시해 왔다. 중동 출신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장사와 고리대금에만 치중하는 민족으로 손가락질 받았다. 문제는 독립국가 형성 이후에도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 상인정신이 아랍 대부분 국가의 경제와 경제인의 마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장사에 익숙한 사람이 제조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계약만 한 건 잘 성사시키면 몇 십 퍼센트를 남길 수도 있고, 사재기를 잘하면 몇 배의 이익도 올릴 수 있는 것이 장사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자본으로 할 수 있을 뿐더러 제조업에 비해 관리도 쉽다. 국내외 인맥을 잘 구축해 계약 혹은 구매만 잘하면 된다. 중동의 무역상 중 고위관리 출신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어느 정도 인맥을 가진 사람들은 은퇴 후 무역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다. 부지를 구입하고, 생산시설을 짓고, 인력을 관리하고, 품질을 높여야 하고, 최근에는 판매까지 신경써야하는 제조업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아무리 잘해도 수익 발생에 5년~10년씩 걸리는 제조업에 중동 경제인들은 투자하기를 꺼린다. 이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중동의 오일 머니는 부동산 사업, 주식시장, 채권, 서비스업에만 집중됐다. 모두 자금회전이 빠른 분야들이다.
산업과 더 나아가 경제 전반에 있어서 아랍의 저발전 배후에는 위와 같은 상인정신이 존재한다. 이렇다 보니 과거 수십 년간 엄청난 오일 달러에도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일부 왕족들이나 군사정권 실권자들은 엄청난 돈을 해외 부동산 혹은 금융상품에 투자하곤 했다. 최근 막대한 오일머니로 정부의 공공부문 투자 노력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민간부문이 여전히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장사와 서비스업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물론 21세기에 꼭 제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동은 지나칠 정도로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아랍경제의 변화 제대로 파악해야
그런데 현재 시민혁명이 발생하고 있다. 아랍권 민주화 바람의 배경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생활고다. 이집트와 튀니지 모두 가파른 물가상승률, 높은 실업률, 부패로 인한 불공평한 부의 분배, 산업정책의 실패를 겪어 왔다. 혁명의 끝은 결국 경제개혁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왕족, 독재 군부의 최고 권력자가 발주와 낙찰을 결정하던 관행에 벗어나 보다 투명한 의사결정과정을 마련할 것이다. 더불어 아랍권은 이제 석유 중심의 기존 산업구조를 다각화하는데 전력할 것이다. 또한 일자리를 비교적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 육성에 나설 것이다. 매년 수천억 달러에 달했던 대외 투자보다는 국내 투자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무역을 통해 외국의 상품을 수입하는 것보다는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에 나설 것이다.
이번 아랍권 시민 혁명은 빠른 속도는 아니겠지만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왕정 산유국들로 확산할 것이다. 석유 수입, 상품 및 플랜트 수주 등에 집중해 온 한국과 서방 기업의 진출 방안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단순한 상품수출 혹은 플랜트 수주의 틀에서 벗어나 조인트벤처를 통한 제조업 분야 진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로비와 인맥에 의존한 수주방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플랜트 수주 방안도 수립해야 한다. 보다 동반자적 협력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새로운 중장기 진출 전략이 마련된다면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정민 /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amirse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