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방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섰던 서방 언론들에 대해 감정적인 대응으로만 일관해 왔던 중국이 최근 들어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9월 '인민일보'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위에 걸맞게 언론사들도 국제 역량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더 이상 서방식 잣대가 아닌 중국식 잣대로 중국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릴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언론매체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중국 정부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인 미국'CNN' 따라잡기에 나섰다. 물론 미국 'CNN'을 직접 공략하기는 어려운 만큼 이에 대항할만한 언론매체를 만드는 방법으로 우회적인 공격에 나섰다. 이런 의미에서 2010년 1월1일은 중국 정부나 언론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로 기록될 만하다. ‘중국판 CNN’으로 불리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새 TV방송인 '중국신화뉴스망(CNC)'이 첫 전파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출범 당시 중국 정부 관계자는 “중국 본토 시청자들뿐 아니라 미국의 'CNN'이나 아랍의 '알-자지라'방송처럼 전 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적인 방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7월부터 영어방송을 진행한 'CNC'는 중국 관영통신인 '신화통신'의 자회사 형태로 운영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한 해 예산만 92억4000만 달러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통신 해외 취재망 확충에 150억 위안 지원
중국 관영매체들은 중국 우호여론 조성을 위한 글로벌 홍보를 위해 최대한 많은 언어로 서비스를 한다는 계획이다. '신화통신'은 현재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6개 언어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CCTV'는 중문 국제채널, 영어채널, 스페인어 및 프랑스어 채널을 위성으로 세계에 내보내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22개 아랍어 사용권 국가 3억 명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24시간 방송하는 아랍어 방송을 추가하기도 했다. 중국 '국제라디오방송(CRI)'은 세계 161개 국가 및 지역에서 53개 언어로 방송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입’ 역할을 하고 있는 관영 '신화통신'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지시에 따라 뉴스코프나 타임워너와 같은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신화통신'의 해외 취재망 확충을 위해 지난해 1월 150억 위안(약 2조5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주요 신문들의 한 해 매출액이 2000억~3000억원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액수다. 이 같은 지원에 힘입어 요즘에는 해외 곳곳에서 '신화통신' 이름으로 사진과 기사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상황이다. 이들 모두가 중국 정부의 입맛에 맞게 편집된 것들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은 자신들이 국제 언론계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로 ‘미디어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신화통신'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외국 언론사 130여 개와 중국 언론사 40여 개 등 모두 170여 개 언론사 대표들을 불러 제1회 세계 미디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중국 정부는 외국 언론사와 기자들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 외신들의 합법적인 중국 취재를 계속해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얼핏 듣기에는 외국 언론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해외 언론들이 엉뚱한 내용을 함부로 보도했다가는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올해 2월에는 국제무대용 ‘엘리트 기자’들을 양성하겠다는 소리도 들렸다.지난 2월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베이징 외국어 대학, 칭화 대학, 교통 대학, 인민 대학, 상하이 푸단 대학 등 주요 5개 대학이 지난해 2년 과정의 언론학 석사과정에서 수학할 대학 졸업생 20명씩을 선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대학들이 학생들을 선발한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국제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전공한 엘리트 기자들을 육성해 '신화통신', 'CCTV', '차이나 데일리' 등 관영매체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말 그대로 중국 정부의 이익을 앞장서 대변할 100명의 ‘언론 특공대’를 조직한 셈이다.
올해 중국의 언론 장악 움직임은 인터넷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8월 <신화통신>은 중국 차이나모바일과 함께 검색엔진을 주 사업으로 하는 ‘검색엔진신매체국제통신사’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후 차이나모바일은 당장내년부터 인터넷 검색엔진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구글과의 마찰로 대항 검색업체 설립
중국 관영통신과 국영통신업체의 검색엔진 사업 진출은 연초부터 벌어진 세계 최대 검색업체 구글과의 다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 1월 구글은 중국 해커들의 공격을 받았다면서 중국 사업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중국 정부의 인터넷검열 방침에 반박하고 나섰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구글 관련 사태를 철저히 조사하라며 중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후 구글은 중국 사이트가 아닌 홍콩 사이트를 통한 우회 서비스를 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중국 정부는 인터넷 영업허가를 갱신해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우여곡절 끝에 구글이 한발 물러서며 중국 국내법을 준수하겠다고 하자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음악, 쇼핑, 번영 등 3개 분야에서만 영업 허가권을 갱신해줬다.
구글과 이 같은 마찰을 겪는 동안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항할 만한 검색업체 설립 필요성을 느꼈고 당장 실행에 옮긴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반정부적인 정보를 용인할 수 없었던 중국 정부가 이번 기회에 오히려 잘됐다며 사업 추진에 나섰다는 지적들도 나온다.
중국의 밀어붙이기에 세계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도 두 손을 들었다. 지난 8월 뉴스코프는 중국 국영사모펀드인 차이나 미디어 캐피털과 3개의 중국 TV 채널 매각 계약을 맺었다. 중국 정부의 미디어 통제 강화로 중국 미디어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왜 이렇게 갑자기 미디어 글로벌화와 통제 강화에 나선 것일까.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몇 년 전으로 돌려보자.
중국인들이 준비한 지구촌 최대 축제인 베이징 올림픽을 4개월 앞둔 지난 2008년 4월. 유럽 지역을 통과하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방해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주요 외신들에 의해 긴급 타전됐다. 영국 'BBC'와 '로이터통신' 등은 소화기를 들고 성화를 끄려는 시위자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내보냈고, 미국 'CNN' 등도 그 해 3월 발생한 티베트 유혈 사태를 문제 삼으며 베이징 올림픽을 반대하는 시위대의 화면을 집중적으로 잡았다. 당시 'CNN' 뉴스 진행자였던 잭 캐퍼티는 ‘중국인들은 쓰레기’라는 발언을 내뱉으며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몰고 갔다.
사태가 이쯤 되자 경제적으로 일본, 독일을 거세게 추격하면서 자신감에 충만해 있던 중국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미국 내 중국인들은 'CNN' 본부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고 중국 인터넷상에서는 연일 미국과 서방권을 비난하는 중국인들의 글이 빗발쳤다. 그동안 서방 언론들이 중국을 무질서하고 지저분하며 인권이 없는 나라로 묘사했던 것에 대한 불만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물론 중국 정부의 그림자 역할을 하고 있던 중국 언론들도 이 같은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은 자국 영토인 티베트 사건을 서방권이 물고 늘어지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면서 격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CNN', 'BBC' 등 전 세계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언론사들에 밀려 중국의 목소리는 세계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2년 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언론보도들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중국 반대 시위대의 모습만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이들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서방권의 일방적인 보도 사전 저지
2009년 중국 신장위구르에서 유혈사태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중국 언론들의 비난 수위는 더욱 커졌다. 중국 관영 영문뉴스인 '차이나 데일리'가 서방 언론들을 비난했던 내용을 보자.
“2005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민자 폭동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들은 공권력을 투입해 치안 유지에 나선 프랑스 정부를 지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종 폭동이 벌어졌을 때도 그들은 미국 정부가 질서 회복을 위한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지원했다. 그런데 신장위구르 사태 때에는 폭도를 시위대로 표현하면서 중국 정부의 조치를 억압적인 진압으로 표현했다.”
'중국청년보'는 한발 더 나아갔다.
“폭동은 심각한 폭력 범죄다. 그럼에도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한 폭동을 서방 언론은 상호갈등으로 왜곡한다. 그들은 항상 ‘더러운 유리창’을 통해 중국을 보고 있고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비전을 가리고 있다.”
중국 정부 당국도 현장을 취재하러 갔던 외신기자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취재 현장을 통제하는 모습이었다. 서방권의 일방적인 보도를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가 있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국이 아무리 애를 써도 중국을 보는 세계의 눈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방 언론들의 잣대에 맞춰 짜인 언론 보도에 의해 중국은 여전히 ‘인권 탄압의 나라’로 비춰질 뿐이었다. 개혁개방 30년 이후 이룬 경제 성장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넘버 2’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중국 정치가들에게 이 같은 대우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 대륙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소수민족 문제를 서방언론들이 끝까지 걸고넘어지는 것은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입장을 바꿔서 중국이나 서방 언론들이 계속해서 남북한 분열을 조장하는 내용들을 전 세계곳곳에 내보낸다면 한국 사람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안에서 칭찬받는 아이
그동안 서방권의 왜곡보도에 눈물 흘렸을 중국인들의 복수심리와 중국 정부의 최대 목표 중 하나인 공산당 지배체제 유지를 감안하면 최근 중국 정부의 글로벌 미디어 전략과 언론 통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지나침에 있다. 중국 정부의 지금과 같은 언론정책이라면 전 세계인은 모두가 한 목소리인 중국 소식만 들을 수밖에 없다. 신문을 봐도, TV를 봐도, 인터넷을 검색해도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 말고는 다른 것을 찾기 힘든 세상이 올지 모른다. 중국인들도 외국 뉴스를 들을 때 중국 정부의 스크린을 거친 '신화통신', 'CCTV'의 뉴스 말고는 다른 것을 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인과 중국인 간의 인식 차이는 더욱 커져갈 것이고 중국 대 비중국 간의 마찰은 극에 달할 것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는 뉴스를 누가 믿을 것인가. 세계 경제 2위 대국이라지만 인민들의 소득수준은 아직 하위권에 불과하고 우주선 발사하는 것을 선전하지만 아직 미국과 기술 격차가 엄연히 크다는 것들을 제대로 지적해줘야 중국 사회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도 정부의 언론 정책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누구하나 제대로 짚어주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