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시진핑 3연임 앞두고 中 경제 안정 총력전, 우크라이나 돌발 변수에 경기 부양 나설 듯
손일선 기자
입력 : 2022.04.04 15:18:09
수정 : 2022.04.04 15:18:28
중국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지난 3월 마무리됐다. 양회는 중국에서 가장 큰 정치 행사로 꼽힌다. 종종 공산당 자체 행사인 당대회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양회는 공산당원이 아닌 국민의 대표들도 참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런 초대형 행사인 양회의 하이라이트를 하나만 꼽으라면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이뤄지는 총리의 업무 보고다. 중국 당국의 많은 목표들이 이 자리에서 공개되지만 외신들이 가장 주목하는 숫자는 경제성장률 목표치다.
미국과 어깨를 겨룰 만큼 훌쩍 커져버린 중국 경제 규모나 세계 최대 수준인 중국의 무역량을 고려할 때 중국의 성장률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 정부가 목표치로 제시한 2022년 성장률 숫자는 5.5% 안팎이다.
과거 고공행진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낮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실제 이번에 중국 정부가 제시한 목표치는 3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톈안먼 시위 유혈진압에 따른 서방과의 갈등 여파가 지속되면서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91년(4.5% 목표) 이래 최저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은 1991년 이후 성장률 목표를 6% 미만으로 설정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이 상대적으로 쉬운 목표치를 내세웠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고속성장 시대가 이미 저문 상황에서 최근 중국 경제를 둘러싼 여건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중국 경제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엄격한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인한 소비 둔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고조, 규제로 인한 빅테크 기업과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의 악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이번에 정부가 내세운 5.5% 목표치는 그동안 시장에서 제시된 전망치(5.0~5.5% 수준)의 최상단에 해당한다. 중국 정부의 최대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이 제시한 2022년 성장률 목표치(5.3%)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골드만삭스가 각각 제시한 4.8%, 4.3%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5.5% 성장률 마지노선
래리 후 맥쿼리증권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작년 4분기 성장률이 4%밖에 되지 않았고 올해 상반기에도 5%에 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목표치가 근래에 가장 낮게 설정됐다고 해도 이를 달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 정부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리커창 총리는 전국인민대표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같은 100조위안(약 1경9488조원) 이상급 경제에서 5.5% 성장은 중급 국가 하나의 경제 총량만큼의 성장을 의미한다”며 “5.5% 성장은 야심만만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만큼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는 “만약 당신이 1000m 높이 산의 10%를 오른다고 생각하면 100m만 가면 되지만 3000m짜리 산을 오르려면 5%만 해도 150m”라며 “뿐만 아니라 여건도 위로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지고 산소가 줄어든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도전적인 목표를 내세운 것일까. 작년처럼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내놓지 않은 것일까.(2021년 양회에서 리 총리는 성장률 목표치를 ‘6% 이상’으로 제시했고 실제 작년 성장률은 예측치를 크게 뛰어넘는 8.1%를 기록했다.)
베이징 주변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가을에는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대형 정치 이벤트가 개최되는 만큼 중국 경제가 빠르게 추락하지 않도록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총리의 올해 정부 업무 보고에서 안정이란 단어가 76번 언급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중국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 달성을 위해 한층 공격적인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3연임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 주석에게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중국 정부가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한 것은 더 많은 경기 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일단 인프라 투자와 감세 등 친시장 정책이 대거 마련됐다.
중국 정부는 올해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을 2.8%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3.2%보다 0.4%포인트 낮은 수치다. 그렇다고 재정 정책을 축소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 총리는 “재정적자율이 하향됐지만 재정 수입이 계속 증가하면서 재정 지출 규모는 작년보다 2조위안(약 385조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1조위안(약 177조원)에 달하는 인민은행 이익금이 정부 재정으로 이전됐다.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비상금이 생긴 것이다. 또 중국 정부는 올해 세금 환급 및 감세 예상액이 2조5000억위안(약 482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리 총리는 업무 보고에서 ‘감세’라는 단어를 7차례 언급했다. 시장에 부담을 주는 규제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리 총리는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고수하겠다면서도 부동산 시장의 바람직한 순환과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겠다며 추가 규제 완화 방침을 시사했다.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우려를 낳았던 시 주석의 ‘공동부유’ 방침에 대해서도 “공동부유는 다 같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며 급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보다 완화적인 통화 정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과 올 1월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1년 만기 기준)를 각각 0.05%포인트와 0.10%포인트 낮췄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경기 저점의 고비가 될 상반기에 인민은행이 추가로 기준금리 또는 지급준비율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내수 촉진의 최대 장애물인 ‘제로코로나’ 정책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리 총리는 “코로나19의 외부 유입 방지와 국내 재발을 억제하는 정책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계속해서 방역의 일상화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제로코로나’ 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수정 가능성도 열어 놨다. 그는 “일과 생활의 정상적인 질서는 보장돼야 한다. 계속해서 방역 정책을 완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올해 상반기 중 제로코로나 정책 완화 방안이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3월 들어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수천 명대로 급증하는 등 2020년 우한 사태 이후 2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