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초호황 美 부동산 시장 매물 나오자마자 ‘순삭’… 올해 14% 상승 전망
박용범 기자
입력 : 2022.03.03 10:52:12
수정 : 2022.03.03 10:52:39
‘순삭(순간삭제)’.
미국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매물이 뜨자마자 매물 리스트에서 사라지는 일이 숱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부동산 시장은 극심한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에서 학군이 우수해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테너플라이(Tenafly)는 인구가 약 1만5000명인 마을이다. 4877채의 주택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공급이 부족한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아예 매물이 씨가 말랐다. 렌트 시장, 매매 시장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이 글을 쓰면서 ‘질로(Zillow)’를 통해 검색해보니 테너플라이에 나와 있는 렌트 매물은 1건에 불과하다. 괜찮은 집이 나오면 하루 만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대기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매매의 경우 수리가 잘된 집은 매물로 나오자마자 오퍼가 쇄도한다. 담보대출을 끼고 사려는 사람은 바로 밀려난다. 100% 현금을 제시하는 구매자와 계약하면 계약을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부동산 시장이 뜨거운지 체험해보고자 ‘임장(매물 현장 방문)’을 시도해봤다.
수요일에 임장에 적합한 매물이 떠서 토요일에 집을 볼 수 있는지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연락을 해봤다. 중개인의 첫 반응이 걸작이었다.
“지금 시장이 얼마나 뜨거운데 3일 뒤에 매물을 보겠다고요? 아마 그때는 매물 리스트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너무 현실을 안이하게 봤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매물이 뜨기를 기다려봤다. 드디어 물건이 나왔다. 중개인에게 연락을 하니, 매도인 측 중개인과 연락해서 일정을 잡아보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매도인이 ‘올캐시(100% 현금)’로 팔고 싶어 하니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쇼잉(집을 보여주는 일)’도 하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보통 미국에서 집을 팔 때는 매물로 올린 지 3~4일 뒤 주말에 ‘오픈하우스’ 행사를 갖는다. 예약을 잡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차례대로 집을 구경하는 행사다. 최대한 많은 ‘오퍼(매수 희망가, 매수 조건 등을 담은 제안서)’를 받아서 유리한 조건에 매각을 하기 위한 절차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행사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진짜 매수 의사가 있는 매수인은 오픈하우스 행사 이전에 어떻게든 따로 집을 보고 과감한 오퍼를 던지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오퍼는 매도 희망가에서 조금이라도 깎은 금액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제는 정반대다. 매도 희망가보다 5~10%씩 더 높게 써내야 겨우 계약 가능성이 생긴다.
▶집값 20% 현금 있으면 80% 주택담보대출
직접 거주하려는 목적의 매수가 늘어나다보니 렌트 시장은 더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팬데믹 이후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생애 첫 내 집 마련’ 수요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LTV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다. 집값의 최소 20%를 현금으로 낼 수 있으면 최대 80%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받을 수 있다. 또 뉴욕, 실리콘밸리와 같은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집값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사회초년생도 의지만 있으면 집을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팬데믹 이후 모기지 금리가 역사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자 모기지 상환액과 보유세를 합친 금액이 렌트비보다 낮은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기존 주택 시장 구매층이 아니었던 세대까지 수요에 가세했다. 최근에 더 극심한 매물 부족 현상이 나타난 것은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되며 모기지 금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수요가 늘어나면서 매매 후에도 렌트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파견 근무를 나온 주재원들도 집을 구하지 못해 부임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집을 구하지 못해 호텔을 전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급이 워낙 제한되다 보니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어떤 집이 매물로 나온다던지, 어떤 집의 세입자가 이주할 계획이 있는 것이 알려지면 미리 입도선매로 거래가 끝난다.
거래는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에서 가장(?) 매물이 질로, 레드핀(RedFin) 같은 사이트에 뜨는 경우도 있다. 잠재 매수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에 소송 리스크가 있다고 보는 집주인이 형식적으로 잠시 공개하는 것이다.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미국에서 주택 매물 출회 이후 매각이 완료되기까지 평균 61일이 소요됐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다. 지난해 1월에 71일로 역대 최단 기록이 세워졌는데 이보다도 10일이 더 단축된 것이다. 2017~2020년보다는 29일이 단축됐다. 이 기간은 매물로 나오고, 잔금 완료가 될 때까지 기간이다. 미국은 주택 구입 시 한국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61일이면 사실상 매물이 나오자마자 계약이 되는 셈이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은 테네시주 내슈빌로 매각에 평균 29일이 걸렸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없이 사실상 현금으로 계약을 끝내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이야기다. 덴버(35일), 라스베이거스(38일), 시애틀(39일) 등의 순으로 빠르게 매물이 소화되고 있다.
▶‘세금 폭탄’ 피하려는 한국인 투자 몰려
미국 전역에서 1월 기준 주택 매물은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고, 전체 매물은 28% 감소했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모기지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막차를 타려는 매수 물결이 쇄도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모든 기록을 다시 쓰는 역대 최고 호황을 누렸다. CNBC에 따르면 지난해 맨해튼 부동산 거래액은 300억달러를 기록, 역대 최대였다. 1만6000건이 거래됐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현금 구매였다. 100여 년 만에 찾아온 투자 기회를 보고, 전 세계에서 투자금이 몰려들어온 것이다. CNBC는 2022년 상반기까지 높은 수요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뿐 아니다. 지난해 미국 주택 가격은 평균 약 19% 상승했다. 미국 1위 부동산 거래 플랫폼인 질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평균 주택 가격은 5만달러 상승한 32만달러에 달했다. 질로는 올해 주택 가격 상승률을 14%로 예상했다. 질로는 미국 주택의 98% 정보를 갖고 있는 빅데이터 기업이다. 한국과 달리 아파트 비중이 낮은 미국 주택 시장은 분석이 매우 어렵다. 개별 주택 가격 감정도 쉽지 않지만 질로는 각 지역별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와 제휴해 주택별 감정가, 적정 렌트비 등을 산출해 제시하고 있다.
질로는 올해 기존 주택 판매(신규 주택 제외)는 635만 채로 지난해(612만 채)보다 늘어나며, 거래량이 2006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도 2021년 10월~2022년 12월까지 미국 주택 가격이 16%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0여 년간 큰 변화가 없었던 미국 주택 시장에 이런 강세장이 찾아옴에 따라 미국인들이 ‘패닉 바잉’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뉴욕과 같은 도시에는 전 세계에서 투자자들이 몰리기 때문에 가수요가 더 붙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발 빠른 한국계 기관 투자자는 물론 개인 투자자들이 활발히 미국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가 저점이라고 판단한 개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뉴욕을 중심으로 상당한 부동산을 사들였고, 올해도 그런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강화된 것과 무관치 않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1년 3분기에 해외 부동산 직접 투자액은 23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47.7% 증가했다. 미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투자자도 한국의 소득 증빙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부동산을 대출을 받아 매입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9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어렵지만 미국에서는 외국인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규제가 없다. 한국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LTV가 최대 80%까지 가능하고, DSR 같은 규제가 없기 때문에 투자를 검토하면서 놀라는 투자자가 많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미국이 3%대 후반~4%대 초반이라서 한국보다 더 낮은 편이다. 또한 미국 주택들은 집값에 비해서 렌트비가 높은 편이라 투자용으로 매물을 알아보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거주민들 간 접촉 때문에 ‘공동주택 포비아’가 생겼지만 이제 이런 현상은 사라졌다. 뉴욕의 콘도(소유권 등록이 가능한 공동주택, 한국의 아파트에 해당)는 지난해 1분기 바닥을 찍고 상승세를 타고 있다. 가장 마지막으로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자산은 건물들이다. 뉴욕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직후 리테일(의류 등)이 연쇄적으로 빠져나가면서 뉴욕의 중소형 건물 가격이 하락했지만 이제 바닥을 찍고 상승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다주택자 규제로 꼬마빌딩은 수요가 급증해 수익성이 떨어졌지만 뉴욕의 꼬마빌딩의 경우 강남보다 수익성이 좋은 경우가 많아 한국인 투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